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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이란 관계 복원으로 바이든을 한 방 먹인 시진핑

이번 합의의 사전 작업이었을 지난해 시진핑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 중 열린 ‘제1회 중국·아랍 정상회의’에는 다수의 친미 국가가 참가했다 ⓒ출처 SAUDI PRESS AGENCY

시진핑은 이번 양회 동안 두 가지 행운을 얻었다. 국내적으로는 시진핑 3기가 지배계급 내 이탈표 없이 만장일치 속에 출범한 것이고, 국제적으로는 베이징에서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외교관계를 복원한 것이다. 2016년 사우디가 시아파 성직자가 포함된 47명을 테러 혐의로 처형한 뒤로 이란과 사우디의 외교관계가 단절됐었다.

시진핑은 사우디-이란의 관계 복원 중재로 많은 것을 얻을 듯하다.

무엇보다, 미국·유럽의 거센 대중국 압박 속에서 시진핑은 중동에서 우군을 확보했다. 2022년 6월 나토는 12년 만에 전략 개념을 바꿔 러시아를 편든 중국의 위협을 ‘구조적 도전’으로 표현했고, 바이든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서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런 압박에 맞서 중국은 최근 미국-사우디 관계가 불편해진 틈을 이용해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며 제국주의 질서 재편을 추구하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이 중동 국가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중국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미국 주도의 질서 속에서 부차적 행위자 구실을 해 왔다. 그런데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복원에 개입하며 중동 세계의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한 것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복원에 중국이 개입한 사건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중동의 권위주의 정권은 인권에 대해 설교하지 않으면서도 원유를 대량 구매하는 중국을 매력적으로 생각한다”고 논평했다.

이는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 상대적 약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우디가 역내 패권을 추구할 때, 미국이 아니라 중국의 힘을 빌릴 수도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중동에 대한 미국의 상대적 영향력 약화로 러시아가 시리아에 개입하고 있듯이, 중국도 중동 지역의 분쟁을 해결하는 중재자를 자처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바이든이 사우디로부터 또 한 번 뺨을 맞은 외교적 실패를 경험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22년 여름 바이든이 사우디를 방문해 원유 증산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데 이어, 이번에는 사우디가 중국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 관계 복원으로 시진핑이 얻은 또 하나의 성과는 지지부진하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2013년 시진핑이 야심차게 내놓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동남아,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는 최근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다. 중국은 스리랑카에 약탈적 차관(일명 부채 외교)을 제공해 항구를 건설한 다음, 채무 상환을 이유로 함반토타 항구를 99년 동안 자신의 영토처럼 차지했다. 1840년 아편전쟁 패배로 홍콩과 마카오를 잃은 설움을 스리랑카에서 그대로 보여 주는 듯했다.

그런데 스리랑카에서 혁명적 운동이 일어나, 중국 차관을 끌어들인 부패 정치인이 물러났다. 그러자 함반토타 항구의 미래가 초미의 쟁점이 됐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다.

시진핑은 추진력에 제동이 걸린 일대일로 정책에 전기를 제공하고자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全球安全倡議)라는 또 다른 계획을 내놓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역 안보 이슈, 국지적 충돌, 일방주의, 보호주의 등이 만연해 안보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국제적 현실에서 국제 평화 안보 수호를 위해 이 ‘이니셔티브’를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 주도의 기존 질서와 미국의 일방주의·보호주의가 지역 분쟁과 충돌을 야기하므로 중국이 분쟁들에 개입해 ‘중국 주도의 세계평화’(팍스 시니카)를 정착시키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시진핑은 이번 양회에서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복원 중재를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의 첫 사례로 알렸다.

또한 시진핑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개입해 조만간 푸틴·젤렌스키와 회담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랑 외교”

중국의 이런 행보가 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헤게모니를 구축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중국이 미국과 달리 타국에 대한 정치적 간섭과 특히 군사 개입보다는 내정 불간섭과 경제 교류 활성화의 방식으로 영향력을 키워 왔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군사력을 이용한 강압에 의존한다면 중국은 외교적 수단을 통한 도덕적 지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중국의 “늑대전사(전랑戰狼) 외교”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중국도 경제력뿐 아니라 군사력도 활용하는 공세적 외교를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시진핑은 2013년 총서기직에 오르자 이렇게 밝혔다. “중국은 결코 자국의 핵심 이익을 두고 협상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중국은 자국의 주권, 안보, 그리고 발전을 상실하는 것을 결코 참아 넘기지 않을 것이다.” 이때 중국의 핵심 이익은 국내적으로는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와 특히 대만을 뜻하며, 국제적으로는 해외의 중국 해군기지와 아프리카·중동·남미에 진출한 중국 기업의 이익이 포함된다.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이 격화되자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왔다. 중국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인민해방군의 구실도 국내 통제에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 인민해방군이 밝힌 〈강군전략〉은 이렇게 천명하고 있다. “근해를 통제하고 양양(兩洋, 태평양과 인도양)에 들어가며 서태평양과 북부·중부 인도양 해역에서 유효하게 국가 이익을 보호한다.”

사우디·이란 관계 개선과 중국의 중재로 한 방 먹은 바이든은 중국을 상대로 또 다른 공세를 준비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이런 치고 받기는 날이 갈수록 더 치열해질 것이고 세계 질서는 이 제국주의적 경쟁과 갈등으로 더 불안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