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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부터 강제동원 합의까지
민족주의 아닌 국제주의 관점으로 보기

이 글은 3월 22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과, 시청자 토론·정리발언을 녹취해 글로 옮긴 것이다.

일제 강제동원 관련해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소위 ‘해법’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무로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의 골자는 일제 강제동원 기업들이 피해자 한 명당 1억 원 정도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이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다음 해에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가했습니다.

한편 지소미아, 즉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법적 지위는 연장이 아닌 “종료 유예”라는 불완전한 상태로 지속돼 왔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한일 갈등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해법’은 제3자 변제안입니다. 이 안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은 그냥 없던 일로 하고, 일본 기업들이 내야 할 돈을 한국 정부 산하의 재단이 모금한 돈으로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피해자들이 수십년 동안 싸워서 얻어 낸 배상 판결을 정부가 외교적 해법이랍시고 무효화시킨 것입니다.

윤석열은 이렇게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무참히 희생시키고는, 엿새 전인 3월 16일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윤석열 정부가 제안한 ‘해법’을 크게 환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상회담에서 그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온전한 이행까지 요구했다고 합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박근혜가 당시 일본 총리 아베와 맺은 것입니다. 그 합의는 위안부 전쟁 범죄에 대해 일본 정부가 해야 할 법적 배상을 위로금으로 대신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박근혜와 아베는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선언했습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기시다 측이 독도에 관한 논의도 제기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측은 논의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며 회피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은 또한 올 상반기 중에 강행될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굴욕 외교?

이처럼 한일관계 개선을 앞세워 자국민 피해자들을 냉혹하게 내친 윤석열 정부를 보면서 대중 속에서 큰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해법’ 합의 철회를 요구하는 수천 명 규모의 집회가 여러 차례 열렸고, “친일파 윤석열을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내건 윤석열 퇴진 집회의 규모도 점점 커져, 가장 최근에 열린 집회에는 수만 명이 모였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주요 좌파 정당인 정의당과 진보당도 모두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철회를 요구하고 한일 정상회담 합의를 규탄하고 있습니다.

이 규탄 운동은 더 많은 지지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애국심이 아니라 반제국주의에 근거해서 그렇게 되기를 우리는 바라야 합니다.

주요 진보 세력 지도부들은 윤석열의 “굴욕 외교”를 비판합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이 “끝내 일본 하수인의 길을 선택했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빈손도 아닌 청구서만 잔뜩” 받아 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윤석열의 친일 정책이 “외교적 자율성”을 잃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국을 미국의 대중국 신냉전 전략에 종속시킨다면서 말입니다.

윤희숙 진보당 대표도 “우리가 얻은 국익은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일본은 원하는 결과물을 얻은 반면 한국은 전쟁 위험과 경제 파탄이라는 이중고를 얻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국익”에 근거해 윤석열의 “굴욕 외교”를 비판하는 주장은, 좋은 정부라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이익과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다는 가정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일관계사를 돌아보면,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한 맺힌 외침은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과 ‘국익’에 밀려 항상 짓밟히고 외면당해 왔습니다. 독재 정권과 그를 승계한 우파 정부들뿐 아니라 민주당 정부도 그 일부였습니다.

왜 과거사 문제는 이토록 오랜 세월 해결되지 못하고 외면당해 온 걸까요?

역대 한국 정부가 과거사 문제 해결보다 국가적 한일관계를 우선해 온 배경을 살펴봐야 합니다.

한때 식민지-피식민지 관계였던 한국과 일본의 지배계급들은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제국주의적 후원하에 경제적 및 지정학적으로 매우 긴밀한 유착 관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역사는 단지 양국간 관계를 넘어 서방 제국주의가 전개돼 온 더 큰 맥락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곧, 일본과 한국을 동맹으로 삼아 경쟁 상대를 견제하고자 했던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 속에서 전개돼 왔습니다.

한일협정의 배경과 한국 지배계급의 이해관계

1960년대 초 이후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하나로 묶어 당시 소련을 견제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일본을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삼았는데, 일본은 미국의 지원과 한국전쟁 특수(特需) 덕분에 연합군 군정 종식(1952년) 이후 10년 만에 경제 강국으로 다시금 도약했습니다.

그러한 일본을 방어하는 일에 한국이 중요했습니다. 더구나 한국은 대소련 전초기지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을 미국과 일본의 파트너로서 이 동맹 질서에 편입시키기를 원했습니다.

한·미·일 삼각 안보 체제가 확립되려면 한일관계가 정상화돼야 했습니다. 두 국가가 하루빨리 전후 배상 문제를 마무리짓고 국교를 맺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본이 한국의 자본 축적을 돕기를 원했습니다. 일본 측이 한국의 경제개발을 위한 저리의 자금을 대출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일본도 한국과의 국교 정상화와 경제개발 자금 저리 대출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고 미국의 희망에 호응했습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1965년 한일협정과 그 부속 협정인 한일청구권협정이 타결됐습니다.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회담에 미국은 제3의 당사국이라고 할 만큼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당시에 박정희는 일본이 경제개발 자금을 저리 대출해 주는 대가로 강제동원 등 일제의 식민 지배 피해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합의해 주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일본도, 박정희 정부도 한일협정으로 건네진 돈을 피해자들의 청구권 몫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이 받은 돈에서 피해자 지원에 쓰인 돈은 무상 지원금 3억 달러 중 겨우 5.4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 경제 성장이 사활적으로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국내의 엄청난 저항을 감수하고라도 경제개발을 위한 일본의 원조를 얻어 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한·미·일 동맹 질서에 편입되면서 경제 성장, 즉 자본 축적을 구가했습니다.

식민 지배 역사와 피해자들의 고통에 비하면 헐값에 불과했지만, 당시 8억 달러가 넘는 일본의 개발 자금은 한국의 수출 총액이 고작 2억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였습니다.

한일관계 정상화 이후 한국의 재벌들은 일본의 차관과 기술에 힘입어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한국 수출도 크게 늘었습니다.

두 나라 정부와 기업주들 사이의 인적 관계도 긴밀해졌습니다.

이렇게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는 미국 제국주의 하에서 한·미·일 지배계급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뤄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한일관계의 본질적 성격을 형성하고 규정한 기초가 됐습니다.

과거사 문제 해결 안 되는 이유

1990년 이후 세계 질서는 또 새로운 구도로 변했습니다. 옛 소련 블록이 붕괴한 것입니다. 미국이 냉전의 승리자가 돼 세계적 패권을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새로운 모순과 긴장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일 위안부와 강제 징용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가 거듭 피해자들 가슴에 못을 박는 방식으로 뒤틀린 배경입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1990년대부터 중국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0년에는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경제 2위에 올라섰고, 군사력도 빠르게 증강해 2011년 중국 국방비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도달했습니다.

이는 독보적인 세계 패권을 과시해 온 미국의 위상을 흔드는 동시에, 아시아의 최강대국이던 일본의 위기감을 특히 증폭시켰습니다.

이런 세력 관계 변화에 대응하고자 미국은 2010년대 초부터 대외 정책을 변경해 주로 중국을 견제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동맹을 재구축했습니다.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일본 지배계급은 헌법을 개정하거나 해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공격형 군사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제약을 벗어나겠다는 것입니다.

2015년 중국의 국방비는 일본 방위예산의 3배가 넘는 수준으로 증가해 아시아 전체의 38퍼센트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대응해 미국과 일본은 미일방위협력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미일 군사협력의 지리적 제한을 폐지했습니다. 자위대가 전 세계 어디서든 미군과 작전을 벌일 수 있게 한 것인데, 핵심은 중국에 대한 억제력 강화였습니다.

그 즈음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안보 법제도 도입했습니다. 이는 동맹국의 전쟁에 자위대를 동원할 수 없게 한 일본 헌법에 위배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재무장 강화 속에서 일본 정부는 역사 미화 프로젝트도 강화했습니다. 2015년 8월, 당시 총리 아베 신조는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해 “전쟁 이전의 강한 일본을 되찾자”고 천명했습니다. 침략 역사가 “부끄러운 역사가 아닌 재현해야 할 영광”이고 아시아에 이로운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화를 지지하고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아시아로 중심축을 옮기며 동맹 재구축으로 나아가던 2011년, 마침 한국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피해 배상 소송이 이어지는 등 과거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헌재는 ‘한국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위안부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 행위’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권한이 여전히 피해자들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은 “한일 간 곤란한 역사 문제의 해결을 희망한다”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과거사가 동아시아 동맹 재구축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2015년 박근혜와 아베의 한일 위안부 합의는 2011년 한국 헌재 판결에 대한 한일 양국 정부의 반동적인 대응이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동의도 없이 일본 정부가 지급하는 위로금 10억 엔에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서둘러 선언했던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이번 강제동원 합의 직후 한밤중에 입장을 발표해 “미국의 가장 가까운 두 동맹국이 협력과 파트너십의 신기원을 열었다”며 극찬했는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도 가장 크게 기뻐한 국가는 미국이었습니다.

민주당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성

한국의 지배계급은 자체의 이익(“국익”)을 위해 미국과 일본의 지배계급들과 협력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은 더는 일본이나 미국의 종속국이 아니라 세계 10위권의 산업국이 됐습니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한국 지배계급은 미국과의 전통적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도 의식해야 하는 난처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일본 등 서방에 더욱 협조하는 식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활로를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고 한반도 주변에서 대규모 한미일 군사훈련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교차하는 등 긴장이 쌓여 가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지배계급은 전통적 동맹인 미국·일본의 더 밀접한 동맹이 돼 지정학적 및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간과하고 윤석열의 외교를 그저 굴욕과 무능으로 여기면, 한국 지배계급 전체의 친제국주의적 성격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가려지게 됩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서로 경쟁하는 세계 체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국제적 국가 체계를 문제삼지 않고 그저 외교의 대등함과 자주성만 문제삼아서는 문제가 조금치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물론 현재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윤석열의 강제동원 합의 철회를 요구하고 심지어 거리 집회에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놓고는 그들과 공동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독립성을 잃게 되면 운동의 지평과 전망, 요구와 투쟁 수위, 전술 자체를 훼손시킬 수 있습니다.

정치적 독립성의 핵심은 필요한 비판을 삼가지 않는 것입니다. 첫째, 민주당은 한일 합의 배후에 미국의 제국주의적 후원과 압박이 있다는 점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둘째, 민주당은 한국 측이 일본 측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점은 맹렬하게 비판해도, 일본의 제국주의와 단절할 생각 자체는 그들에게 어불성설입니다. 민주당도 한국 지배계급에게 낙점 받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민주당은 김대중과 노무현과 문재인의 대일본 외교도 배신적이었거나 배신에 가까운 기회주의였다는 점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재명이 민주당 정부의 대통령이 된다면 그가 역대 민주당 대통령들과 본질적으로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그때에도 진보적 애국주의 운동은 문재인하에서 그랬듯이 정부에 협조하고 심지어 애국적 쟁의 자제를 결의할 것입니까?

반제국주의 국제 연대

이제 애국주의적 접근은 반제국주의적 국제 연대의 가능성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 대해 얘기하면서 발제를 마치고자 합니다.

한국 정부의 친제국주의 정책이 보통의 한국인들의 이익이 아니듯이, 일본 정부가 평화헌법을 무력화하고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나아가는 것도 보통의 일본인들에게 이익이 아닙니다.

일본 지배자들이 미화하는 과거 제국의 역사 중에는 일본 노동자들이 전쟁의 전방과 후방에서 죽음에 내몰리고 가혹하게 착취당한 역사도 있습니다.

제국주의 체제에 맞서 일관되게 싸우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주체는 국제 노동계급입니다.

한일 노동자들이 한일 지배자들의 제국주의적 협력과 한미일 동맹을 반대하고 대중 운동을 벌여 한일 정부의 친제국주의 정책들에 제동을 건다면, 그것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국제 노동계급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카를 마르크스는 말했습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시청자 발언 1: “일본의 평범한 민중은 연대할 대상입니다”

저는 한국에 사는 대학생인데요. 발제자가 마지막에 말씀하신 결론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는 강제동원 배상 같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한국인 대 일본인’의 문제로 바라봐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사를 사죄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 모든 일본인들이 동의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일본의 지배계급과 달리 일본의 평범한 민중은 우리와 연대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제가 다니는 대학에 윤석열의 배신적인 강제동원 ‘해법’안을 비판하고, 한일 정상회담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적이 있는데요.

이 대자보를 본 한 일본인 유학생이 지난 토요일에 열린 도심 집회에 참가하러 왔습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인권 침해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온 청년이 ‘이건 아니다’라고 느끼고 한일 합의를 규탄하는 집회에 먼저 다가온 것은 제게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구호를 외치고 거리를 행진하며 일본 정부와 윤석열을 규탄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평범한 한국인들과 평범한 일본인들 사이의 연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발제자가 말했듯이, 한국과 일본의 노동계급이 자국의 친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맞서는 데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지배계급과 한국 지배계급은 모두 중국을 포위하는 미국 주도의 군사 동맹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자국의 위상을 높이려 합니다. 이를 위해 일본과 한국의 지배계급은 “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배자들끼리의 연대로 한국과 일본의 평범한 민중은 전쟁의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총알받이가 되는 사람들은 지배자들이 아니라 피지배계급, 즉 한국과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지배자들의 위험한 동맹에 맞서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평범한 민중들, 나아가 세계 노동계급이 단결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 관계 문제를 민족주의가 아닌 국제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안을 제시한 이번 토론회가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청자 발언 2: “이재명의 행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최근 서울에서 열렸던 강제동원 ‘해법’ 합의 철회를 요구하는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던 청년입니다.

먼저 발제 잘 들었습니다. 특히 발제 말미에 민주당의 한계를 짚어 주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민주당이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문재인은 박근혜 집권 시절에 한일 위안부 합의를 폐기하겠다고 호언장담해 놓고, 집권한 후에는 이 합의는 공식 합의라며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꿨죠. 그리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판결도 3.1절 기념사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 없다”면서요.

그런 점에서 지난 범국민대회에 참가하면서 조금 더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요. 아시다시피 이번에 이재명 대표의 발언이 집회 참가자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윤석열이 전쟁 위험을 키우고, 한반도를 진영 대결의 중심으로 몰아넣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이런 면은 역대 민주당의 입장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재명이 평화나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방식이 대중운동이 아니라 의회 중심이고, 여지껏 과거사 문제를 조금도 손쓰지 않았던 민주당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재명은 왜 이런 강경한 비판을 했고, 어떻게 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시청자 발언 3: “굴종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

한 시청자 분이 윤석열이 도대체 왜 이런 합의를 했는지 질문하셨는데요. 저는 여기에 지정학적인 이해관계뿐 아니라 한국 지배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도 관련돼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어제 윤석열이 국무회의에서 한일 합의의 경제적 성과를 상당히 강조했는데요. 예를 들어, 일본의 반도체 소재와 관련한 공급망의 안정을 이루고, 일본과의 수출 등 시장 교류를 활성화하고, 일본 자본의 한국 투자 유치 등을 앞으로 강화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한국 자본가들에게 경제적 이득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이 때문에 한일 정상회담에도 한국의 5대 재벌 총수들이 동행했죠. 며칠 전에는 전경련과 경총, 중소기업중앙회 등 6개 주요 경제 단체들이 한일 합의를 환영하는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발제자도 말했듯이, 이번 합의를 두고 “굴종 외교”라는 비판이 많지만, 사실 굴종이라기보다는 자본가들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런 합의를 한 것입니다.

지금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지배자들은 미국 편을 드는 방향을 점점 더 강화하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중국과의 긴장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라는 대표적인 친서방 측 국가와 관계를 개선해서 공조를 강화하고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명시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이것은 미국이 원하는 방향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굴종 외교”라는 강조는 한국 자본가 계급이 자신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시도를 벌이는 것에 맞서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약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K-칩스법이 통과가 됐는데요. 반도체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대규모 세금을 삭감해 주는 법입니다. 이 법에 따라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향후 5년간 추가로 받는 세금 혜택이 무려 9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바로 이 법에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합의를 했는데요. 민주당도 ‘국익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의힘의 논리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대기업에 대한 세금 삭감에 동의한 것입니다. 이런 식의 세금 삭감이 복지 삭감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저는 국익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에 동의할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각국에서 벌어지는 투쟁들과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청자 발언 4: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한계가 많았습니다”

앞서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해 질문하신 분이 있었는데요. 저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의미와 한계를 설명하면서 민주당이 미국와 일본 제국주의 문제에서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흔히 이 선언을 두고 ‘과거를 직시하며 미래 협력으로 나아간’ 일이라고 합니다. 윤석열도 [강제동원 ‘해법’ 합의가] 이 선언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그런데 당시 이 선언은 1965년 한일협정 때부터 한국 지배계급이 추구해 온 한·미·일 협력 노선의 연장선에 있던 선언이었습니다.

윤석열은 일본이 지금껏 수십 차례나 사과했다고 하면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그 대표적 사례로 꼽았는데요. 그런데 사과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구체성이 있어야 하고 그에 뒤따르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김대중-오부치 선언에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이 선언[속 사과 언급]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 뒤에도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착착 진행됐고, 2000년대 동안에도 내각 관료들과 우익들의 망언, 역사 왜곡도 지속됐죠.

이렇게 과거를 덮고 양국이 뭘 하려고 했는지가 중요한 점일 텐데요. 30억 달러나 되는 대출 자금을 저리로 일본에서 끌어온 것이 당시 IMF 경제 위기 상황에 있던 한국 지배자들에게는 중요한 성과로 꼽힙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은 이때가 1998년이라는 점입니다. 이때는 미국이 북한에 금창리 핵시설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찰 압력을 넣을 때입니다.

이 소동은 미국이 중국 견제용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결국 금창리 핵시설은 있지도 않은 것으로 판명됐지만, 이 소동 덕분에 미국이 일본을 미사일 방어 체제에 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한·일 간에도 이른바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경제적, 안보적 밀착이 이뤄진 것입니다. 즉, 이 회담도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 삼각 동맹을 강화하는 맥락에서 이뤄졌고, 그래서 서방 제국주의의 이익을 키우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런 점들은 민주당도 근본에서는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를 중시했다는 걸 보여 줍니다. 때로는 포퓰리즘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도 하지만요. 발제자가 말한 것처럼, 현 국면에서 민주당과 함께 행동할 수 있지만, 그때조차 정치적 독립성을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청자 발언 5: “국민적·민족적 단결 논리는 계급 투쟁에 부정적 영향 줄 것”

저는 발제자가 “굴욕 외교” 규정 등 민족주의적 관점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에 공감하면서 보충하는 주장을 하려고 합니다.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좌파 상당수는 이번 합의를 “매국 외교”, “굴욕 외교”라고 규정하면서 윤석열과 국민의힘 또는 조·중·동 등의 친일 ‘매국노’를 제외한 국민적·민족적 단결을 말하고 있어요. 민주노총은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한국이 다시 식민지가 된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런 식의 논리가 한국 지배자들 중 일부를 지지하거나 이들에 대한 비판을 삼가서 계급적 단결과 투쟁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거죠. 2019년 한일 갈등이 그 사례라고 봅니다.

당시 민주노총, 정의당 그리고 지금의 진보당은 당시의 한일 갈등을 경제 침략으로 규정하고 민족주의적으로 대응했었죠. 그래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동시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삼갔고 사실상 협조했어요. 그리고 일부 노조는 예정돼 있던 파업을 유보해서 민주당 정부와 한국 자본가에게 부담 주는 것을 피하려고 했었어요.

문재인은 이를 이용해서 민족주의·포퓰리즘적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당시에 ‘국민적 단결’ 기치하에 기업 지원 확대, 산업 안전 규제 완화 그리고 노동시간 연장 등 노동자들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죠. 정부와 지배자들은 ‘민족적 단결’을 얘기하면서 사실상 그들의 계급적 이익에 충실하게 행동했습니다.

이렇듯 오늘날 한국의 지배계급은 일본 정부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제국주의에 협력해 왔습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였고요. 지금 민주당이 민족주의적 언사를 쓰면서 한일 합의를 반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김대중-오부치 선언도, 그리고 문재인 정부도 한미일 동맹에 복무해 왔습니다.

따라서 좌파는 일본과 그 배후에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공세를 폭로하고 항의하면서도 민주당과 독립적으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 박근혜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했을 때에도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이 합의는 반대했지만, 연관된 문제인 사드 배치 강행이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등에는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시 민주당에 기댄 운동은 전진하지 못했죠.

대정부 투쟁이 강화되려면 이번 합의뿐 아니라 한미일 동맹과 대규모 군사 훈련에도 반대해야 하고 윤석열의 노동개악에도 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제자의 정리

굉장히 활발한 토론 잘 들었습니다. 여러 중요한 쟁점들을 제기해 주셨는데요. 우선은 제가 답해야 하는 것들 먼저 얘기해 보겠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왜 서방 제국주의에 더 협력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가? 특히 왜 그것이 지금인가?’하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첨예해지는 갈등 속에서 운신의 폭이 줄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크라이나 전쟁이 조금씩 확전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됩니다.

또 전통적으로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최대 강점으로 앞세우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들이 중국과 가까워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전략을 펴 왔는데요.

최근에 부쩍 북한 핵 위기가 심해지고, 대만해협에서의 갈등이 만약 전쟁으로 비화된다면 한국이 즉각 연루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안보에 대한 한국 지배계급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을 미국은 간파하고서, 미국에 대한 협조나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동맹의 강화가 한국의 안보 이익과 부합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또 한 분이 발언해 주셨듯이, 최근 바이든 정부는 군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중국을 견제하는 일에 동맹들을 참가시키고 결속시키려는 어려운 일도 추진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 문제가 있죠. 이를 위해서 미국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 동맹 등을 만들고 이를 공세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로 이런 첨예한 상황들 속에서 여전히 미국이 아주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윤석열과 한국 지배계급은 전반적으로 서방에 협조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이 ‘지금 이재명의 민주당은 과거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하는 질문을 해 주셨는데요.

분명히 이재명은 민주당 안에서 왼쪽이고 좌파 민족주의적인 입장을 많이 취해 왔죠. 저는 지금 민주당이 윤석열이 하는 일에 침묵하고 지지해 주는 것보다야 집회에 나와서 규탄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이재명의 한미일 동맹 반대 입장이 굉장히 모순적이고, 일관된 제국주의 반대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령 이재명은 한미일 동맹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한미 동맹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고 동시에 주장합니다. 또, 미국이 동맹국에 핵무기 등 전략 무기를 지원하는 확장억제 정책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재명은 윤석열의 자체 핵무장론을 비판하지만, 확장억제 정책에 따르면 한반도에 핵무기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과는 동맹을 강화하자고 하면서 미국의 개입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미일 군사 공조에 일관되게 반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한편, 한미 동맹과는 달리 한미일 간의 군사 동맹 문제는 한국 지배계급 사이에서도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접한 제국주의 강대국의 군대가 유사시에 한반도로 들어올 수 있는 예민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한미일 3국의 경제적 관계 발전 속도에 비하면 군사적 공조의 발전 속도는 더디고 조심스럽게 추진돼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도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 체제를 만들고자 했지만 일본 문제 때문에 추진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각각 맺고 그것을 결합시키는 방식을 취해 왔죠. 이재명의 한미일 동맹 비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제국주의란 그저 한 다발의 정책이나 특정 국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경쟁 질서입니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제국주의 체제의 압력이 온존하는 이상 윤석열이 받는 압력과 똑같은 압력을 이재명이 집권을 하더라도 받게 될 것이고 실천적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은 행보를 취할 것입니다. 몇 분이 전화 발언에서 말씀해 주신 과거 민주당 정부들의 실천은 그것을 보여 주는 역사적 사례들입니다.

마무리를 해 보겠습니다. 지금 윤석열은 제국주의적 갈등이 깊은 상황에서 제국주의에 적극 부응해 ‘우리가 군사 강국이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더 강력한 군사 강국과 동맹하자, 그런 게 왜 국익이 아니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제국주의 체제에서는, 각국의 지배자들이 개별 국가 차원에서 군사력을 강화해서 대응하는 것이 소위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지라도 체제 전체적으로 보면 점점 더 전쟁이라는 재앙으로 치닫게 됩니다. 결코 우리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아닌 것이죠.

바로 그것을 제1차세계대전을 치르고도 또 제2차세계대전을 치른 역사가 보여 줍니다. 그 속에서 평범한 노동자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를 ‘조국의 승리’를 위해서 희생됐지만, 고위 장군들은 전쟁터에서조차 좋은 것을 먹고 좋은 데서 잤습니다. 이처럼 계급 차별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것이 바로 전쟁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제1차세계대전 시기에 한 탈영병은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이것은 모두 사기다. 전쟁은 부자들을 위한 것. 중간계급은 항복해야 한다. 민중들은 시체를 내놓아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 일본 제국의 침략 전쟁에서도 평범한 일본 사람들은 결코 이득을 얻은 게 아니라 철저한 희생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일본에서 일본 대중은 “견디기 어려운 것을 견디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라”라는 천황의 얘기를 들어 가면서 엄청난 내핍을 강요당했습니다. 패전 이후부터 1951년 전까지 수십만 명이 결핵으로 사망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급성장해, 1945년에 40만 명이던 규모가 1948년에는 670만 명까지 증가했습니다. 일본을 단독 점령했던 미국은 이런 상황이 준혁명적인 상황으로 발전하는 것이 두려워서 천황제를 유지하고 일본의 전범들을 처벌하지 않았던 것이죠.

1960년에 일본 민중은 미일신안보조약에 맞서 연인원 총 580만 명이 참가하는 안보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투쟁은 당시 기시 노부스케 내각을 총사퇴시켰습니다.

그리고 바로 몇 년 뒤인 1964년에 한국에서는 박정희의 한일협정[회담]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 시위는 연인원 350만 명이 참가해 박정희의 퇴진 요구까지 내걸었습니다. 이 투쟁은 박정희 정권을 최초로 위기로 내몬 투쟁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투쟁과 무관한 투쟁이 아니었습니다.

한·일 민중은 국익이나 제국주의를 기준으로 보면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 할지도 모르지만, 함께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면 투쟁으로 한편이 돼 연대할 수 있고 대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윤석열은 ‘압도적 전쟁 준비’를 하자고 하고 기시다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가자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각국 내에서 복지를 삭감하면서 군비를 증강하는 것과 맞물려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한·일 양국의 노동계급이 자신의 생계를 지키면서 제국주의에도 반대하는, 계급적 연대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제국주의 반대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