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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대출 부실로 또다시 고조되는 금융 불안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에 이어 스위스의 대형 은행 크레디스위스까지 부도 직전에 매각되면서 세계적으로 금융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부동산 사업 대출의 부실이 심화돼 금융권을 강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금 확산되고 있다. 정부 발표를 보면, 전국 미분양 주택은 지난 1월 7만 5359호로 10년 2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1월 2만 1727호에서 1년 만에 5만여 호나 더 늘어난 것이다.

전 세계 금융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지만, 3월 22일에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며 기준금리를 또다시 0.25퍼센트포인트 인상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5퍼센트에 달하게 된 것이다. 미국 연준 의장 파월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장이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면서 연내에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번 금리 인상으로 미국의 기준금리는 한국보다 1.5퍼센트포인트나 높아졌다. 지난 2000년 5~10월 이후 22년여 만이다. 이에 따라 자본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됐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또 올린다면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이처럼 금리가 계속 오르고 주택 가격이 하락하자 건설사들의 자금 사정도 악화하고 있다.

나이스(NICE)신용평가가 주요 건설회사 11곳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들 회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채무는 총 95조 원에 달했다. 반면, 이 기업들의 현금 유동성은 12조 원에 불과했다. 특히, 롯데건설과 태영건설은 부채에 비해 현금 보유량이 적어 위험 기업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건설 회사들의 부실은 곧 금융 회사들의 부실로 이어진다. 특히 부동산 PF는 은행보다 보험사·증권사·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에서 대폭 늘어나 이 회사들도 위험에 처하게 됐다.

금융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비은행권의 부동산 PF 위험액은 2018년 말 94조 5000억 원에서 지난해 6월 말 191조 7000억 원으로 폭증했다. 이들은 은행보다 규모가 작다 보니 부실이 발생할 경우 버틸 여력이 크지 않다.

게다가 이들 금융기관 대출의 연체율이 급증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증권사 연체율은 2021년 말 3.7퍼센트에서 지난해 9월에는 8.2퍼센트로 높아졌고, 저축은행은 1.2퍼센트에서 2.4퍼센트로, 보험사는 0.1퍼센트에서 0.4퍼센트로 상승했다.

최근에는 새마을금고가 대출해 준 부동산 PF가 급증했고, 대출 연체액 또한 급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특히 새마을금고는 집값이 급락한 지난해 하반기까지 대출을 대폭 늘려 새마을금고에서 대규모 부실이 터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금리로 집값이 하락하면서, 증권사·저축은행·새마을금고 등의 대출 부실 위험이 계속 커지고 있다 ⓒ출처 둔촌주공 시공사업

연체율

이처럼 제2금융권의 부실 문제가 다시 부각되자 정부는 제2금융권과 건설사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3월 초에는 ‘회사채·단기금융시장 및 부동산 PF 리스크 점검회의’를 열어 건설사들과 금융회사들에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수십조 원의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금융 불안정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부나 한국은행이 금융시장에 직접 돈을 투입하지는 않고 은행들을 동원해 대출을 연장해 주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당은 정부가 나서 ‘배드뱅크’를 설립하고 기업들의 부실 채권을 인수해 주는 법안을 발의했다.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의 부실 자산이나 채권만을 사들여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기관을 뜻한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기업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직접 금융시장에 개입하기를 꺼리는 것은 해외 금융시장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이 오히려 한국의 금융 불안정을 시인하는 신호가 돼, 외환위기나 정부 재정 위기의 확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달 무역수지는 반도체 수출이 반토막 나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올 들어 10일까지 무역적자는 227억 7500만 달러를 기록해 이미 지난해 무역적자(478억 달러)의 48퍼센트나 됐다. 무역적자의 확대는 외환위기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계속 미봉책을 내놓으며 시간을 끌고 있지만, 금융 시스템 전반에서 터질 수 있는 대형 위기를 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금리 급등으로 한계에 내몰리는 서민층

3월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금융권 전반에서 가계대출 연체율이 점차 상승했다.

또, 전체 가구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2021년 29.4퍼센트에서 올해 2월 34.5퍼센트로 높아졌다. DSR은 소득 대비 부채 원리금 상환액 비율로, 이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대출 이자 부담이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전체 가계대출자 중 소득의 70퍼센트 이상을 빚 갚는 데 써야 하는 비중이 15.3퍼센트나 됐다. 금리가 급등하면서 고금리로 생계난을 겪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월세나 신용카드 대금 지급 등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대출을 신청하지만 대출을 거절당하기 일쑤다.

최근 정부가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저소득층에게 100만 원을 대출해 주는 ‘소액생계비대출’을 개시하자 신청자가 폭주해 대출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자율이 16퍼센트나 돼 정부가 고리대를 놓는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정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기업 금융 지원에는 수십조 원을 저리로 지원하는 정부가 서민 소액 대출에서는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을 보면 정부의 우선순위가 잘 드러난다.

당장 생계난을 겪는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의 저리 대출을 대폭 늘리라고 요구해야 한다. 또한, 고물가·고금리에 맞서, 금리 인하와 부채 탕감, 임금 인상을 위한 저항이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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