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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민족주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기

이 글은 3월 29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윤석열이 이른바 강제동원 ‘해법’을 내놓으며 미국·일본 제국주의와 손잡자, 이에 대한 규탄이 거세다. 소위 윤석열의 ‘해법’에 대한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고, 대통령 지지율은 3주 연속 떨어졌다.

민주당·정의당·진보당 등이 주축인 강제동원 ‘해법’ 반대 집회가 매주 열리고 있고, 촛불행동의 윤석열 퇴진 집회 규모도 커졌다. 윤석열 정부를 향한 항의 행동은 더 커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항의에서 진보적(좌파적) 민족주의가 지배적인 의견이자 정서다. 윤석열의 “친일 매국” 행위에 맞서 ‘민족의 이익/국익’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집회에서는 “자주 독립”이 핵심 구호로 부각되고 있다.

윤석열과 우파는 이를 두고 배타적 민족주의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대선 후보 시절에 인종차별과 민족적 적대를 부추기는 공약들을 내놓았던 윤석열이, ‘배타적 민족주의’ 운운하는 건 역겨운 위선일 뿐이다.

일본 전쟁 범죄의 책임과 진정한 해결을 제기하는 것은 완전히 옳다. 더구나 과거사 문제는 단지 역사 평가를 둘러싼 게 아니다. 오늘날 일본이 자국의 대외 전략을 정당화하고 미국과 함께 아시아 국가들을 대중국 포위에 결집시키는 문제와 연관돼 있다.

그렇지만 강제동원 합의 규탄 운동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운동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 물음을 던져봐야 한다. 오늘날 한국은 여전히 제국주의에 민족적 억압을 당하는 처지인가?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와 자국 정부의 친제국주의에 맞서는 최선의 무기인가?

이번 시간에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민족과 민족주의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고, 한국의 좌파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자본주의와 민족

흔히 사람들은 민족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고, 민족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감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긴다. ‘우리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경제’ 발전을 염원하며, 국제 경기에서 ‘우리 나라’ 팀의 승리를 바라고, 외국 공항에서 처음 만나는 삼성 홍보 간판에 뭉클하는 등 말이다.

그러나 상당한 지리적 범위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단일한 이해관계를 공유한다는 의식은 근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민족의 형성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관련이 깊다. 단일한 언어와 화폐, 법률 체계는 시장이 작동하기 더 유리한 조건을 형성했다. 이런 조건을 조성할 때 더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게 되자 신흥 부르주아지는 민족국가의 형성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어와 경제라는 객관적 요인만으로 민족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국가 수립 의지를 비롯한 민족 의식이 필요하다. 국민국가의 건설자들은 국민국가 건설을 위해 흔히 기성 질서에 맞서 불만에 찬 대중을 동원해야 했다. 이때 ‘민족 구성원들에게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관념은, 하층 계급 사람들을 동원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됐다.

하지만 민족국가는 자연적인 동질성의 반영체가 아니라 지배집단의 이해관계에 맞춰 소수 집단을 통합하는 인위적 과정을 통해 형성됐다.

민족 구성원 사이에 계급을 초월한 공동의 이익과 정체성이 있다는 것도 신화일 뿐이다. 이는 민족 구성원 내의 엄청난 불평등만 봐도 알 수 있다. 민족보다는 계급 간 생활양식과 문화 차이가 훨씬 크다.

한국의 경우에도 반만 년의 단일 민족이 근대 이전부터 형성됐고 민족 의식도 일찌감치 발전했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서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화다.

조선은 중앙집권적 국가였지만, 양반과 노비가 신분을 불문하고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이 발전할 물질적 기초는 존재하지 않았다. 농민들의 경우 평생 자기 고장에서 벗어날 일이 없었고, 시장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지역과 긴밀하게 연결될 기회도 거의 없었다.

우리가 흔히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나 고대의 신화(가령 단군신화)로 알고 있는 것은 민족 형성과 함께 발명되거나 각색된 것들이다. 이것은 민족이 먼 과거로부터 계속돼 온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제국주의와 노동운동, 그리고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19세기 말~20세기 들어 제국주의와 국제 노동계급 운동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에 걸쳐 발전하자 민족 문제는 더욱 첨예해졌다.

우선, 서로 경쟁하는 자본들 사이의 갈등은 이제 종종 민족국가들 사이의 대결 양상을 띠었다. 이런 선진국의 지배자들은 노동운동이 이 대결에서 자국을 지지하고 투쟁을 자제하게 하려고 민족주의를 부추겼다. 실제로 당시 선진국 노동운동 안에 자신의 이익과 국익이 긴밀히 맞물려 있다는 생각(애국주의)이 확산됐다.

한편,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확보하면서, 그에 따른 억압과 저항이 벌어졌다. 이런 경험이 식민지에서 민족 의식이 형성되는 배경이 됐다.

곳곳에서 민족 해방 운동이 일어났고, 1945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많은 독립국이 생겼다. 중국, 베트남, 쿠바 등지의 민족 해방 운동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곳에서 민족주의는 반제국주의 운동의 유력한 이데올로기였다. 민족 국가의 발전이 가로막혀 출세가 어려워진 중간계급이 흔히 이 운동을 지도했다.

민족주의는 세계의 기본적인 분단선이 민족들 사이에 있고, 민족의 통합과 이익이 계급의 고유한 이해관계보다 우선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듯이,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을 그들의 적인 착취자와 묶어 두는 수단이 된다.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인 갈등이 노동계급과 자본가 계급 사이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이 우선이고, 그에 비해 민족 간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민족 억압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민족 해방 운동을 지지했다. 민족주의에 환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해서였다. 민족 해방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피억압국의 노동자들은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을 그 지배자들과 한편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또한 민족 해방 운동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킨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했다. 제국주의 단계에 이른 자본주의 세계에서 제3세계의 운동은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 됐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싸우는 민족주의라 해도, 계급보다 민족의 단결을 우선하고 자본주의적 국민국가 건설을 궁극 목표로 삼는다.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때로 매우 급진적으로 말하지만 자본주의 국가 질서 자체에 도전하기보다 그 속에서 주권을 유지할 공간을 원한다. 그러다 보면 제국주의와 타협하기 쉽다.

앞서 언급한 중국, 베트남, 쿠바의 민족 해방 운동이 제국주의 세력을 자국에서 밀어냈지만, 노동자와 농민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국가자본주의 건설로 귀결됐던 까닭이다.

그래서 레닌은 민족 해방 운동을 지지하되, 빨간 칠을 하지 말고 노동운동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한국의 좌파적 민족주의

한반도에서 민족주의의 형성과 발전은 이런 세계사적 과정의 일부였다. 일제 강점,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 산업화에 이르는 수십 년의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민족 의식과 민족 운동은 개화기 때 등장해 일제 강점기의 억압하에서 급속히 발전했다. 한반도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의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의 형태를 취했다. 특히 일제의 지배 때문에 출세의 기회가 가로막힌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널리 퍼지게 됐다.

1945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면서 한반도는 일제 억압에서 해방됐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두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 분단됐고, 한반도 남북에 별개의 국가가 건설돼 서로 경쟁을 벌이게 됐다.

한국은 독립 이후 강력한 국가 통제하에 산업화를 이룩했다. 한국 지배계급은 이를 위해 미국·일본과 손잡고 그들과 안보·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해 왔다. 그러면서 노동자를 포함한 서민 대중에게 “민족중흥”을 위해 헌신하라고 강요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우파적 전통에 충실한 정치 세력이다.

억압적이고 부패한 지배자들의 노골적인 친제국주의는 중간계급 지식인과 학생들의 반감을 샀다. 지배자들이 사리사욕을 추구하면서 제국주의에 충성하는 바람에 민족의 이익을 해치고 민족 구성원의 압도 다수인 민중, 즉 노동계급과 다수의 중간계급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외세의 지배와 그에 협력하는 반민족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민족의 나머지가 단결해야 한다고 보는 진보적(좌파적) 민족주의가 성장했다. 진정한 민족 이익을 추진하도록 국가를 바로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특히 한반도의 재통일을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여기며 이를 위한 계급 협력을 중시했다. 그 협력 대상에는 자본가 계급의 일부와 그 정치 세력이 포함된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민주당과 협력하고, 남북 경제 협력을 진전시킨 정주영을 민족 자본가로 환영했다.

또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국가 간 불평등한 관계가 개선돼 자주적 국가가 되고 통일이 되면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민중의 삶을 개선할 여건도 조성된다고 여겼다.

그동안 좌파 민족주의는 서방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나 친제국주의적 우파 정부에 맞서는 투쟁을 고무하곤 했다.

그러나 동시에 저항 운동을 개혁주의적 방향으로 이끌고 노동운동 내에서 국익을 지지하는 관념이 확산되는 데 일조하는 구실도 했다.

지배계급의 일부나 그 정치 세력은 노동운동을 자제시키는 데 좌파 민족주의의 계급 협력 노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역대 민주당 정부의 통치 전략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령 김대중 정부는 2000년에 첫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를 이용해 좌파 민족주의 지도자들을 달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고립시켰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에 롯데호텔·사회보험 노동자 투쟁, 2001년에 대량 해고에 반대하는 대우차 노동자 투쟁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총 안팎의 좌파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이 김대중 퇴진 투쟁에 나서는 것에 반대했다. 김대중 정부가 흔들리면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를 해칠까 봐서였다.

2019년 한일 갈등 당시 문재인 정부는 또 다른 사례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 자립’을 표방하며 주요 부품 산업의 국산화를 추진했고, 민족주의적 분위기를 이용해 규제 완화와 기업 지원 확대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동계 주요 지도자들은 일본의 ‘경제 침략’에 맞선 국민적 단결을 지지하며 문재인 정부의 대일본 정책에 협조했다. 정부에 맞선 투쟁을 강화해야 할 때였지만 노동계 주요 단체 지도자들이 민족주의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문재인 정부는 노동운동을 묶어 두고 이럭저럭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오늘의 제국주의 문제와 국제주의

지금 강제동원 문제에서도 주요 진보 세력 지도자들은 좌파 민족주의 관점에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 “굴욕 외교”, “제2의 경술국치”라고 말이다. 즉, 윤석열의 자주적이지 못한 외교로 국익에 불리한 결과를 얻게 됐고 한국에 대한 서방 제국주의의 입김만 더 거세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주 독립”이 진지하게 거론된다. 가령 촛불행동은 지금의 과제가 “안중근 장군이 직면했던 시대적 과제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매국 세력들의 난동”에서 주권을 지키고, “패권국가들에 휘둘리지 않[는] … 당당한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100여 년 전과 본질적으로 같을까? 비록 식민지와 분단 경험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외세의 압박에 대한 반감이 있지만, 오늘날 한국은 과거처럼 민족 억압을 당하는 처지가 아니다.

한국은 제국주의에 의해 발전이 제약당하던 식민지 처지에서 독립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불과 수십 년 만에 자본축적의 독자적 중심을 이룬,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사례에 해당한다. 제국주의 열강에는 못 미치지만 경제 규모 세계 10위, 군사력 세계 6위의 중간 규모 강국으로 변모했다. 현재 한국의 처지가 100여 년 전 종속 상태와 다를 바 없다고 보는 것은 오해이다.

한국 지배계급은 외국 자본이나 서방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매판 세력이 아니라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이다. 서방 제국주의 질서에 적극 편입됨으로써 성장할 수 있었던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일본과 얽히며 지금의 제국주의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를 갖게 됐다.

한국 지배계급이 한낱 매판 세력이라거나, 지배계급의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민족 구성원에게는 동일한 민족적 이해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관계는 계급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반대하고 있지만, 제국주의에 관한 그들의 입장은 본질적으로 그 질서에 협력하는 것이다. 지배계급 정당의 하나로서 한국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일 합의 파기를 주장하면서도 경제와 안보를 위한 한미일 협력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자주 외교”을 외치면서도 미국의 대중 봉쇄에 이바지하는 한미군사훈련에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의 처지가 100년 전과 달라졌음을 간과하면, 한국 지배계급 전체의 친제국주의적 성격을 놓치고 민주당에 환상을 갖거나 불필요한 타협을 할 공산이 커진다.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일관되게 하려면 민족적 단결이 아니라 계급에 기초한 정치가 필요하다.

민족주의는 노동계급이 제국주의에 맞서는 최선의 무기가 아니다. 제국주의는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로 환원될 수 없고,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인 경쟁적 축적에서 비롯한 강대국들의 경쟁 시스템이다.

따라서 제국주의에 효과적으로 대항하려면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세력인 노동계급의 투쟁과 그들의 국제적 단결이 중요하다. 민족주의는 아무리 좌파적일지라도 진정한 국제 연대의 발전을 저해한다.

좌파는 국제주의적 반제국주의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한미일 협력과 군국주의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면, 이는 미·중 갈등으로 격화되는 동아시아 정세의 불안정화에 맞서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