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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금융 위기, 곳곳에 도사리는 위험

지난 몇 주간 미국과 유럽의 금융 시장에서는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 반복됐다.

단 이틀 만에 185조 원에 이르는 예금 인출(뱅크런)이 벌어지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뒤, 미국 중소 은행들의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위기에 빠진 은행들의 예금을 보장해 주겠다며 사태 진정에 나섰다. 그러나 3월 10일 SVB가 파산한 뒤 최근까지 5000억 달러(약 650조 원)에 이르는 돈이 미국 중소 은행들에서 빠져나갔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의 최대 증권사 찰스 슈왑의 위기설이 나오고 있다. 찰스 슈왑도 SVB와 마찬가지로 자산의 많은 부분을 국채에 투자했다가 국채 가격 하락으로 손실이 급증했다. 금리 인상의 여파로 SVB보다 더 큰 자산가치 손실을 기록한 미국 은행은 500곳으로, 전체의 11퍼센트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에서는 크레디스위스가 UBS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일부 고위험 채권(코코본드)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그 여파는 독일의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의 위기로 이어졌다. 도이체방크가 미국 상업 부동산에 투자한 돈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커지자, 도이체방크가 발행한 코코본드 가격이 떨어지며 위기감이 커졌다.

영국의 친기업 신문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상업 부동산 시장이 다음 진앙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코로나19와 경제 침체의 여파로 상업 부동산의 공실률은 3년 전 5퍼센트에서 2022년 말에는 19퍼센트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업 부동산 관련 기업들의 파산이 늘고 있다.

상업 부동산에 대출한 은행들도 위기에 빠질 공산이 크다. 미국은 중소 은행들이 전체 상업 부동산 대출의 70퍼센트를 담당하고 있어서 은행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

이처럼 확산되는 위기 상황을 보며 〈월스트리트저널〉은 “슬로우 모션 은행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때처럼 위기가 순식간에 확산되지는 않지만, 대신 중소 은행들이 서서히 파산하는 식으로 금융 위기가 전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980년대 중반에 미국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저축대부조합과 소형 은행 3000여 곳이 파산한 사례를 들며 말이다.

물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금융 불안정이 확대되고 있고, 이 불안정은 실물 경제를 더 깊은 침체로 이끌 것이라는 점이다. 위기에 대처하려면 은행들은 대출을 축소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과 가계의 자금난을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 규제가 위기를 막을 대안일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금융감독담당 부의장은 SVB 파산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금융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민주당도 트럼프의 금융 규제 완화로 SVB가 파산에 이르게 됐다며 규제 강화를 요구했다. 〈한겨레〉도 이런 논조의 보도를 한 바 있다.

탐욕스런 은행가들을 규제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금융 규제 강화로 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사실 2008년 위기 이후 새로운 금융 위기를 막겠다며 규제 강화가 추진됐다. 그러나 이번에 또다시 위기가 터졌다.

크레디스위스는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규제 요건을 충족했고,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UBS에 합병되기 직전까지도 크레디스위스의 파산 가능성을 일축했었다. 그러나 이런 규제가 위기를 막지 못했다.

보통 위기 직후에 금융 규제가 강화되기도 하지만, 위기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진 규제는 금융 기업들의 이윤 추구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규제를 다 따르며 기업을 운영한다면 그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그래서 위기 후에는 기업들이 규제 완화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권도 규제 완화에 나서는 것이다.

금융 기업들은 온갖 꼼수를 쓰며 규제를 회피하기도 한다. 장부 조작도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게다가 규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아예 규제를 받지 않는 기업들(“그림자금융”)을 만들어 돈벌이에 나서기도 한다. 실제로 2008년 이후 그림자금융은 더욱 증가했다.

무엇보다 금융 위기의 원인은 단지 금융 부문에 있지 않다.

금융 시장의 활력은 근본에서 실물경제의 건강에 달려 있다. 금융 기업들이 갈수록 자산 거품에 의존하게 된 것은 실물 부문에 투자해서 충분한 이윤을 얻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 규제 강화로는 위기를 막을 수 없다. 금융 위기를 제대로 보려 해도 자본주의 생산의 문제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

금융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최근 방한 강연에서 장하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SVB 파산과 이후 상황은 “2008년 금융 위기의 후속편”이라고 할 만하다.

2008년 위기를 낳은 진정한 원인은 해결되지 않은 채, 각국 정부들은 저금리와 양적완화로 돈을 공급해 기업들을 부양해 왔다. 그 과정에서 부채와 함께 금융 거품은 더욱 커졌다. 세계금융협회(IIF) 조사를 보면, 세계 총부채 규모는 2007년 GDP 대비 278퍼센트에서 꾸준히 상승해 2022년에는 350퍼센트 가까이로 올랐다.

이 상황에서 코로나 이후 물가가 급등하자, 각국 중앙은행들은 물가 인상의 원인이 금리 인하 때문이라며 금리를 올렸다. 그러자 부풀어 있던 자산 가격이 꺼지며 취약한 부문의 부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잇따른 금융 버블 붕괴 반복되는 금융 위기는 1970년대에 세계 자본주의의 이윤율이 하락하고, 그 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결과이다

부채 위기의 근본 원인에는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있다. 이 위기는 1970년대에 세계 자본주의의 이윤율이 하락하고, 그 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결과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들 사이의 끊임없는 경쟁이 오히려 자본의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계와 생산수단(불변자본)에 투자를 더 빨리 늘려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데, 자본의 이윤은 오직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데서만 얻어지기 때문이다. 자본 간 경쟁이 계속되면서 자본가가 투자해야 하는 생산수단의 양은 갈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어, 이윤율은 하락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에는 이윤율 위기의 해결책이 존재했다. 경제 공황이 터지면 수익성 낮은 자본이 대규모로 파괴되고 남은 자본들은 이윤율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면 새로운 투자 물결이 일어나면서 경제 호황이 다시 시작됐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 파괴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주요 기업들이 몸집이 커지고, 금융 시스템에 깊숙이 통합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자, 기업들의 연쇄 파산이 경제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들은 위기가 심각해지기 전에 경제에 개입해야 할 유인이 커졌다. 이 때문에 1970~1980년대에 본격화된 이윤율 위기가 여태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윤율 위기가 해소되지 않자, 투자처를 찾지 못한 많은 돈이 금융권에 남게 됐다. 그리고 투자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금융권에서 빚을 져 부동산과 주식 시장을 부양하는 데 의존해야 했다. 그래서 1980년대 이후 여러 차례 금융 버블이 나타났고, 미약한 성장과 금융 불안정이 이어져 온 것이다.

이번에도 위기가 터지자 미국과 유럽 지배자들은 과거의 대처를 반복하고 있다. 작은 은행들의 파산은 용인하면서도 금융 시스템 자체가 마비되지 않도록 큰 은행들에는 막대한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제금융으로 위기를 진정시키고 일시적으로 경기를 회복시킬지는 몰라도 이윤율 저하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지배자들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짜려 할 것이고,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며 다른 나라가 더 큰 고통을 짊어지도록 하기 위한 경쟁을 강화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는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맞서는 투쟁을 전진시키며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뒤엎을 대안을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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