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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 크레디스위스, 도이체방크 …:
확산되는 금융위기, 원인과 파장

이 글은 4월 5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시작된 은행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됐다.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과 주가 급락으로 미국의 여러 지방은행들이 흔들리더니, 세계적인 대형 은행들로까지 위기가 번졌다.

SVB는 미국의 장기 국채에 대거 투자했다가,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떨어지자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예금자들이 예금을 대거 회수하자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SVB가 무너진 뒤 며칠 뒤, 스위스 2위 은행이자 1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크레디스위스가 뱅크런을 견디지 못하고 스위스 1위 은행인 UBS에 매각됐다. 크레디스위스는 2021년 헤지펀드들에 큰돈을 대출해 줬다가 주가 폭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봐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크레디스위스 합병은 초고속으로 타결됐다. 3월 20일 월요일 세계 금융시장 개장 때 위기 확산을 막으려고 스위스 정부가 압박에 나선 결과였다.

그런데 합병 과정에서 크레디스위스가 발행한 170억 달러어치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됐다. 그 채권 이름은 코코본드였고, 고위험 신종 자본증권이었다.

코코본드 실패 소식에 유럽 신종 자본증권의 불안이 심화됐다. 다른 은행 채권의 보유자들도 큰 손실을 볼까 봐 두려움에 빠졌고, 코코본드 판매가 많은 은행을 피하려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의 하나인 도이체방크의 부도 위험이 치솟았고, 주가가 급락했다.

꼬리를 물고 드러나는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

도이체방크 위기설이 퍼지자, 대다수 언론들은 위기설이 근거 없다며 일축했다. 도이체방크는 총자산이 1조 4000억 달러에 달하는 독일 최대 은행이고, 10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는데 터무니없다며 말이다. 요컨대 시장이 지금 ‘비이성적 공포’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물론 투기꾼들이 시스템의 약한 곳을 공격해서 득을 보려 하면서 사태가 악화된 면도 있다. 그러나 도이체방크도 크레디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여러 스캔들과 투자 실패로 이미 오랫동안 위기설이 나돈 은행의 하나다.

도이체방크는 1990년대부터 미국 은행들을 따라 채권과 파생상품에 집중 투자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 큰 손실을 봤다. 그 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지만, 아직도 금융위기 때 발생한 손실의 일부를 갚고 있다. 그래서 국제통화기금(IMF)은 2016년 도이체방크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금융회사로 지목한 바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대형 은행들까지 위기에 처하자, 금융 시스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드러나고 있다.

당장 사무실, 쇼핑몰, 산업단지 같은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떠올랐다. 도이체방크는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에 큰돈을 투자한 곳의 하나다.

미국 주요 대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5곳 중 1곳이 임대가 안 될 정도로 시장이 침체하고 있다. 게다가 금리가 인상돼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담보 대출의 약 21퍼센트가 채무불이행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런데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중 70퍼센트가량은 중소 은행들이 해 줬다. 미국의 중소 은행들은 2조 3000억 달러(약 3000조 원)의 부동산 대출을 보유하고 있다. 중소 은행들의 전체 대출에서 상업용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43퍼센트로, 대형 은행(13퍼센트)의 3배가 넘는다.

SVB 위기에서 보듯이, 금리 인상에 따른 미국 국채 가격 하락으로 미국 은행들의 자산 손실은 크게 늘어났다. 여기에 부동산 대출 부분의 손실까지 추가되면, 미국 중소 은행들이 버티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SVB 위기 이후 미국 중소 은행들에서 예금 인출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중소 은행에서 빠져나온 예금의 일부는 더 안전한 대형 은행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더 많은 돈은 아예 은행을 떠나 즉시 인출할 수 있는 MMF(단기금융펀드)로 이동했다. 이런 예금 인출은 가뜩이나 자금 부족으로 위기를 겪는 중소 은행들을 더 심각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 중소 은행 부실과 부동산·국채 가격 하락 사이에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즉, 부동산·국채 등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중소 은행에서 예금 이탈이 확대되고, 이는 다시 중소 은행들의 자금 회수를 촉발해, 부동산·국채 등 자산 가격을 더 떨어뜨리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악순환이 벌어지면 위기는 단지 중소 은행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기업이 파산하고 부동산 시장이 급락하면서 세계 금융 시스템 전반을 뒤흔드는 대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한국 상황도 유사

그럼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 정부는 한국의 은행들과 금융 시스템은 건강하다며 우리를 안심시키려 한다. 경제부총리 추경호는 3월 14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말하기를, “국내 금융기관이 SVB와 관련된 투자도 거의 없고 상태도 양호하다.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이런 평가였다.

물론 위기의 구체적인 양상은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금리 인상에 따른 자산 가격 하락과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인해, 가장 취약한 금융기관들이 먼저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점은 유사하다.

앞서 미국의 지방 중소 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로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제2금융권(보험사·증권사·저축은행 등)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건설기업에 대거 대출했다. 그랬다가 지금 금리 인상에 따른 집값 하락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3월 9일 ‘3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PF 대출잔액은 은행권이 30조 8000억 원, 비은행권이 85조 8000억 원이다. 은행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증권사와 보험사 같은 제2금융권의 PF 대출이 상당한 것이다. 이들은 은행보다 규모가 작다 보니 부실이 발생할 경우 버틸 여력이 크지 않다.

최근에는 새마을금고가 대출해 준 부동산 PF가 급증했고, 대출 연체액도 급증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새마을금고는 집값이 급락한 지난해 하반기까지 대출을 대폭 늘렸으므로 새마을금고에서 대규모 부실이 터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중소 금융기관들의 파산은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금융 시스템 전반을 뒤흔드는 위기와 패닉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근본 원인은 이윤율 저하

이처럼, 현재 금융 불안정의 원인은 오랫동안 지속돼 온 저금리 상황 덕분에 부채의 연쇄고리가 크게 퍼지고 곳곳에 지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2007~2008년 금융 위기 때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로 금융 시스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해서 위기가 1930년대 대불황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풀린 돈들은 경기를 활성화하지는 못하고 자산 시장 거품만 키웠다. 근본적으로 이윤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낮은 수익성 때문에 기업들은 생산적 투자를 꺼렸다. 그러자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은 채권, 주식, 부동산 등에 대한 투기에 이용된 것이다.

금융 투기를 유발한 중앙은행들의 저금리 정책의 근저에는 실물 부문의 이윤율 저하라는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경제는 낮은 이윤율 때문에 15년 넘게 저성장을 지속해 왔다. 이 상황을 우리나 마이클 로버츠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장기 불황’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세계경제 시스템은 계속 저금리와 양적완화에 의존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 2007~2008년보다 더 큰 규모로 금융 시장이 경색되자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를 확대했다.

지난 15년 내내 정통 보수 경제학자들은 중앙은행들의 통화 공급이 물가 상승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그러나 2010년대 내내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 실물 부문의 침체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2021~2022년 실제로 물가가 급등했을 때 그것의 주된 원인은 통화량 증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생산 시스템의 교란과 이를 이용한 기업들의 높은 가격 책정이었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경제의 공급 사슬을 교란시켰고, 에너지와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을 상승시켰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기업들이 이를 이용해 이윤을 늘리려고 가격을 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이 더 심화되고 길어졌다. 결국 자본가들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노동자 등 서민에게 경제 위기의 대가를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2021~2022년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자 중앙은행들은 2007~2008년 돈을 대거 풀어 기업들을 지원하던 것에서 180도 돌변했다. 물가 상승이 마치 지금껏 경제에 풀린 돈 때문인 양 주장하며 2022년부터 금리를 급격하게 올린 것이다.

이것도 노동계급에게 위기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계급적 공격이다. 금리 인상으로 경기 침체를 유발하고, 이를 통해 실업률을 높이고 실질임금을 삭감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심화되는 금융 불안정

그러나 금리를 올려 인플레를 잡는다는 전략은 금융 시스템의 여러 부문들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 그리고 대형 은행들까지 나서서 시장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한 긴급 대응에 나서야 했다.

구제 금융이 이미 상당한 규모에 이르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SVB 사태 이후 금융권에 직접 지원한 규모가 이미 2000억 달러에 달한다는 관측이 있다. 고금리로 서민 고통이 급증한 와중에도 기업과 은행을 지원하는 데는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것이다.

정부들의 이런 구제 조처가 위기를 일시적으로 진정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끝났다고 순진하게 믿을 수는 없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3월에 가장 먼저 위기를 맞은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 대해 미국 연준이 긴급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위기를 진정시키는 듯했다. 당시 연준 의장인 벤 버냉키는 “하반기에 경제성장이 재개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이런 낙관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이런 심각한 금융 공황은 아니더라도 “슬로모션 은행 위기”가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때처럼 위기가 순식간에 확산되지는 않아도 그 대신 중소 은행들이 서서히 파산하는 식으로 금융 위기가 전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4년까지 저축대부조합과 소형 은행 3000여 곳이 파산한 사례를 들며 말이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금융 불안정이 심해질수록 실물 경제를 더 깊은 침체로 이끌 것이라는 점이다. 위기에 대처하려면 은행들은 대출을 축소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과 가계의 자금난을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실물 부문의 침체 심화는 다시 금융기관들을 취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악순환의 시작이다.

이 때문에 세계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2~2030년 세계 경제 잠재성장률이 연 2.2퍼센트로 떨어져 30년 만에 최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11~2021년 2.6퍼센트, 2000~2010년 3.5퍼센트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깊어지는 갈등, 저항의 기회

이처럼 위기가 더 심각해지며 장기화되면 위기의 해법을 두고 지배자들 내에서 갈등과 대립이 심각해질 것이다. 지난해 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가 감세 정책으로 영국 경제를 부양하려다 영국 국채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자, 지배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심해지고 결국 총리 사임에 이른 것은 이런 갈등의 한 사례일 것이다.

미국과 우리 나라에서는 금리 인상 정책을 두고 지배자들 사이의 의견 충돌이 심해지고 있다. 상당수 기업주들은 금리 인상을 멈추고(또는 금리를 낮춰) 더 이상의 경기 침체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미국 중앙은행은 “연내에 금리 인하는 없다”며 여전히 강경한 고금리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만약 중앙은행들이 금융 위기를 진정시키려고 금리를 낮추기 시작하면, 인플레이션의 충격을 둘러싸고 지배자들 사이의 갈등이 격화될 수도 있다.

또한 위기의 심화는 보호무역주의를 강화시켜, 다른 나라가 더 큰 고통을 짊어지도록 하기 위한 경쟁이 강화될 것이다.

지금도 미국과 중국은 자국 경제를 성장시키고 상대방에게 경제적 타격을 주기 위한 조처들을 계속 늘리고 있다. 이런 조처들이 더한층의 경기 침체와 금융 불안정을 높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조금 전에 언급한 요인들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특히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세계경제 침체와 무역과 투자의 감소는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쳐 저성장이 고착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수출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감소한 데 이어 3월에도 전년 동월보다 13.6퍼센트 감소해서 6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이에 따라 무역적자도 크게 늘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가 올 1분기에 수조 원대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국가가 기업과 은행을 구제하려고 쓴 비용을 노동계급 등 서민층에게 떠넘겨야 한다는 점에서는 지배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위기가 심해질수록 임금 삭감, 복지 감축, 노동시간 유연화, 파업권 공격 같은 일에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정부를 떠올려보라.

이런 조처들은 노동자들이 생계를 지키기 위해 저항에 나서게 만들 것이다. 기성 정치 세력들 사이의 갈등과 혼란도 우리 측에 저항의 기회를 제공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가 첨예해지고 있는 지금, 고통 전가에 저항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조직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