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를 결코 축소하지 않겠다던 노무현이 태도를 바꾸자 영화인과 문화계 인사 들은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이 한미FTA 체결 반대 운동에 나선 것은 좋은 일이며 지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미FTA 반대 운동이 스크린쿼터 수호 지지를 전제할 이유는 없다. 스크린쿼터가 핵심적으로 자국 영화산업 자본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 장치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11개국이 시행하고 있는 스크린쿼터는 주요 산업국 정부들이 보호무역주의로 세계경제 위기에 대응하던 1930년대에 확산됐다. 영국 의회는 할리우드 영화가 영국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자 1927년 영화법을 제정해서 영국 영화의 상영을 의무화했다.

스크린쿼터제는 WTO 체제에서도 인정되는 일종의 ‘글로벌 스탠다드’다. OECD도 1년 중 자국 영화의 최소 상영시간 규제를 인정한다. 이조차 문제삼는 미국 무역대표부와 자본가들은 자신들한테 유리한 산업에서는 다른 나라에 개방을 강요하고, 불리한 산업에서는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하는 양면적 태도를 취한다.

당연히 미국의 이런 제국주의적 압력에는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나은 정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이 한국 영화산업 보호 정책을 지지하기는 어렵다. 

〈다함께〉는 예전에 스크린쿼터 수호 운동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것은 스크린쿼터 자체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전술적 맥락에서였다.

IMF 직후 미국 정부와 자본가들이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을 요구했을 때 스크린쿼터 축소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다.

당시 영화인 대책위가 구성되고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여론이 불거지자 BIT 협상이 진전되지 못했다.

당시 스크린쿼터는 BIT(그리고 나중에 FTA) 체결을 막아내는 ‘둑’이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전술적으로 BIT(그리고 FTA) 체결을 막기 위해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 정부의 통상 관료들은 스크린쿼터가 한미FTA 협상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난해 내내 실무 협상을 차근차근 진행해 왔고 결국 협상은 타결됐다.

노무현 정부의 통상 관료들은 선진 통상 국가를 위해 불가피하다며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여론이 있더라도 한미FTA를 추진할 태세다. 스크린쿼터는 더는 당시와 같은 핵심 고리가 아니다.

물론 문화주권과 문화다양성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사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세계 영화시장의 90퍼센트를 지배하는 미국의 할리우드 자본에 종속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스크린쿼터 하에서도 한국 영화산업은 다양화보다는 대자본 중심으로 획일화돼 왔다. 스크린쿼터 하에서 극장 체인을 가진 대형 영화사들이 투자·배급을 장악해 왔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CGV를 거느리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시네마서비스·쇼박스 세 국내 기업이 한국 영화 배급의 7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문화 보호 논리도 있다. 그러나 민족문화라는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설득력이 떨어지는 신기루일 뿐이다. 민족 내의 불평등이 하도 커서, 생활 방식 면에서 남한 노동자와 미국 노동자는 자신의 기업주들보다 닮은 점이 훨씬 더 많다.

할리우드 영화 중에는 제국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007 시리즈 같은 영화도 있다. 그러나 모든 할리우드 영화가 미 제국주의의 가치관을 우리한테 획일적으로 강요하고 있다고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졌지만 나찌의 유대인 대학살을 잘 다룬 〈쉰들러 리스트〉나, 사보험의 문제점을 잘 폭로한 〈존 큐〉에서 감동을 받는 이들이 많다.  

반면 조폭이나 경찰을 은근히 미화하는 상당수 한국영화에 신물이 난 이들도 많다.

또한, 스크린쿼터 하에서 한국 영화산업은 지난 몇 년 동안 갑절 이상 성장했지만 영화 노동자들은 결코 그 이익을 공유하지 못했다. 스크린쿼터가 영화산업의 안전판이라지만,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안전판은 아니었다. 영화 노동자들은 1년 평균 6백40만 원 정도를 벌며, 하루 13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린다. 영화가 완성되지 않으면 그나마 열악한 계약 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다.

스크린쿼터가 자동으로 영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지 않음은 그들 자신이 잘 안다.

문화 다양성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영화들이 자본의 압력 없이 제작되고 상영돼야 한다.

오늘날 예술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쥐꼬리만한 국가보조금, 거세지는 기업의 입김,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보수주의, 예술의 상업화, 시장과 상품화의 압력이 창작 활동들을 옭아매는 것이 문화다양성을 가로막는 진정한 원인이다.

국내외의 질 높은 영화들이 널리 소개되고, 또 그런 영화들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비주류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작품의 제작을 실질적이고 대가 없이 지원해야 한다. 영화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도 필요하다.

이런 요구들을 내놓는다면 자본주의 산업 보호 정책을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문화다양성을 없애는 한미FTA에 얼마든지 반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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