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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반도체법과 뒤통수 맞은 한국
먹잘것 적은 한미동맹, 미·중 양다리도 설 땅 좁아. 노동계가 반도체 산업 육성을 고민해야 할까?

안녕하세요. 노동자연대TV의 [시사/이슈 톡톡]입니다. [시사/이슈 톡톡]은 다양한 시사/이슈 어떻게 봐야 하는지, 팩트부터 배경, 논쟁점까지 좌파적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이 단연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반도체법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자 한국 경제계는 뒤통수를 맞았다며 당혹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중국 견제에 적극 협력하는 것에 비해 막상 한국에 중요한 반도체 문제에서 받은 게 별로 없다고 본 것이죠.

오늘 [시사/이슈 톡톡]에서는 왜 미국은 자국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려 하는지, 그것이 잘 될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한국이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 시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거나, 한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견해가 대안이 될 수 있는지도 짚어 보겠습니다.

미·중 간 경제적 지정학적 갈등이 점점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좌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노동자 연대〉 신문의 정선영 기자와 함께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자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과도하다며 반발했는데요. 그 내용이 무엇이길래 그런지 먼저 설명해 주시죠.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장 건설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기업의 생산 능력과 판매 가격 등 영업 기밀을 공개하고, 초과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내놨습니다.

대만과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본국 생산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부담을 안고 미국에 투자하니까 보조금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가, 미국 정부가 기밀 공개까지 요구하니 불만이 나온 거죠. 영업 기밀이 경쟁 상대인 미국 기업들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공장에 신규 투자를 막는 조항도 불만거리입니다. 현재는 약간 완화되긴 했지만,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있는 설비가 쓸모없게 되는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이미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때문에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돼 한국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었는데요. 미국의 반도체법 때문에 또다시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미국은 반도체 제조 관련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반도체 강국인데,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반도체는 첨단산업의 핵심 부품입니다. 최신 무기 생산에도 필수이고요.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기술 개발을 막아서 미·중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합니다.

이에 더해 바이든 정부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갖추는 것이 경제뿐 아니라 군사적 우위를 지키는 데서도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법에서 “군사용 반도체 공급 등 국가안보를 최우선 고려”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미국은 반도체 원천 기술을 상당수 보유한 강국이지만, 반도체 생산 부문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10퍼센트 정도만 담당하죠. 반면 대만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반도체 생산량의 75퍼센트를 담당합니다.

그래서 미국은 자신이 반도체 설계와 설비 기술을 주도하고 생산은 대만과 한국 등이 담당했던 기존 국제 분업 구조를 변경해, 스스로 미국 내에서 반도체 생산을 하는 것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국들을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참여시키려 하는데, 대만이나 한국 기업에 불만을 살 조건을 내놓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동안 반도체 설계와 설비 기술 등에 집중해 온 미국이 반도체 생산 능력을 키우려면, 한국이나 대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내에는 미국 세금으로 대만과 한국 대기업을 지원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기업들의 생산 시설을 유인하려고 보조금을 약속하면서도, 초과이익을 내면 환수하겠다는 등의 조건을 내거는 것이죠.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싶기 때문에 미국의 정책에 협조하는 게 득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 수준이 너무 높아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죠.

윤석열 정부는 한국 기업들의 요구가 반영되도록 미국 측과 계속 협상을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요구를 일부 들어줬듯이 반도체 부문에서도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보면서요.

그럼에도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 할 뿐 아니라, 한국· 대만 반도체 기업과도 경쟁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은 많은 갈등을 낳을 것입니다.

중국의 첨단기술, 특히 반도체를 겨냥한 미국의 정책은 어떤 효과를 내고 있나요?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이에 중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미국의 기술 제재 때문에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발전시키려던 중국의 계획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게 사실입니다. 중국 기업이 미국, 유럽, 일본으로부터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입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죠.

중국은 202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40퍼센트를 달성하겠다고 했지만, 2021년에도 자급률은 16.7퍼센트에 그쳤습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반도체 굴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한국이나 대만보다 2~3세대 뒤진 생산 설비를 수입해 저사양 반도체가 필요한 부문에서 국산화를 진척시키고 있습니다.

중국이 반도체 기업들에게 지원하겠다는 돈은 향후 5년간 1430억 달러(약 186조 원)로 미국의 2배에 달합니다.

중국은 첨단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 반발하며 이에 동참하는 국가와 기업들에 경고를 보내기도 합니다. 최근 중국 정부가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 제품에 대한 안전조사에 착수한 것이나 일본에 희토류 자석 수출 금지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그런 사례입니다.

한국 경제는 2000년대 이후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했습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홍콩을 포함하면 반도체 수출의 60퍼센트를 중국으로 하고 있죠.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시도는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협조하고 있지만, 중국 시장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 설립을 약속하면서도, 최근까지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늘려 왔습니다.

만약 미국의 제재로 중국 공장들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입니다. 또 중국이 반격에 나서는 경우에도 한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한국은 중국에 80퍼센트 이상 의존하는 수입품 수가 1850개나 됩니다. 2021년 요소수 공급 부족 사태와 같은 일이 여러 분야에서 더 심각하게 재현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 기업주들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협조하면서도, 그 대가로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도 유지하는 방안을 계속 찾고 있습니다. 최근 한일 관계 정상화 이후 미국이 일종의 보답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의 대중국 투자 규제를 일부 풀어줬는데요. 이런 일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하지만 미·중 갈등 속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입니다.

1986년 미일 반도체협정이 미친 효과에 대한 두려움 섞인 이야기도 흘러나오는데 어떤 우려인가요?

미일 반도체협정은 1986년부터 1990년대까지 세 차례에 걸쳐 체결한 통상협정입니다.

1980년대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무섭게 성장하며 시장을 장악하자 미국 반도체 산업은 심각한 위기에 빠집니다. 그러자 미국은 보복 관세 등을 무기로 일본을 압박해, 일본 반도체 시장을 개방하게 하고 반도체를 저가에 팔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당시 일본은 ‘제2의 포함 외교’라며 반발했지만, 결국 미국의 압박에 굴복했고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서서히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쉽게 말해, 최근 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해 제재를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이미 1980년대 일본을 상대로 했던 것입니다.

현재 한국 지배자들은 미일 반도체협정 같은 일이 한국을 상대로도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협조하지 않으면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느 정도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 협조하면서 중국 시장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대가를 받아내자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 시장도 잡는다는 게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현실성이 있을까요?

사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 시장도 놓치지 않겠다는 한국 지배자들의 소망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의 격화로 미국 아니면 중국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압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 속에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중국 견제에 확고히 동참하는 방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한일 합의에서 분명히 드러났듯이요. 그러나 윤석열 정부도 중국 시장을 버리려는 건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동맹 강화를 통해 안보를 보장받고 미국 주도의 현 국제 질서 속에서 위상을 높이려 합니다. 경제적으로도 미국이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을 억제하는 것에서 반사이익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면 한국이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면서 중국 시장 점유율도 높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것은 얼핏 보면 멋진 전략 같습니다. 하지만 모순이 심각합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중국 견제 동맹에 동참하는 것은 미·중 간 제국주의 경쟁 격화에 일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한국에 가해지는 미·중 간 양자택일 압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도체 지원법은 한국 지배자들의 딜레마를 훤히 드러냈는데요. 이런 딜레마는 국내 정치에 어떤 파장을 낳을까요?

얼마 전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내 갈등이 심해져 김성환 국가안보실장이 경질됐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불과 몇 주 앞둔 상황에서 벌어진 심상치 않은 일이었죠.

이 일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세부 내용이 발표되면서 한국 지배자들 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 상황을 배경으로 벌어졌습니다.

이번 일은 미·중 갈등 증대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앞으로도 한국 지배자들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이 거듭되고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금 경제계는 윤석열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관련해 좀더 많은 걸 얻어와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만약 정부가 한국 기업들의 이익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기업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윤석열 정부의 위기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미국은 지난해에 이어 조만간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를 추가하려 하는데요.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화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며 국제 분업 구조가 발전해 온 상황에서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중국 수출 규제가 잘 될까요? 이는 전 세계에 어떤 효과를 낼까요?

미국의 정책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상당한 타격을 주긴 했지만,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대중국 수출 규제에는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지적하신 것처럼,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도체 설계, 소재, 장비, 제조 영역 등에서 국제 분업이 매우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유무형의 규제를 하고, 보조금으로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려 해도, 기존 공급망을 무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자칫 미국 기업 전반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국과 대만 기업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 기업들, 심지어 미국 기업들조차 여전히 중국을 매력적인 시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 삼성 이재용과 SK 최태원이 반도체 투자 문제를 논의하러 중국을 방문했는데요. 같은 기간 미국의 애플과 퀄컴, 유럽의 지멘스, 벤츠, BMW 사장들도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 기업들을 중국 시장에서 떼어내려면, 그만한 대체 시장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중국뿐 아니라 미국도 이제는 자국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자본주의적 정책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공급망을 교란시킬 것이고, 이 충격은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을 더욱 높일 것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 등도 일종의 반도체 지원법을 추진하고 있고, 한국도 이런 상황에 뒤처져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반도체 기업에 대규모 감세 혜택을 주는 반도체법이 통과됐는데요. 자국 산업 보호와 육성 조처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얼마 전 정부·여당뿐 아니라 민주당까지 나서 반도체 기업 등에 막대한 세금 혜택을 주는 K칩스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5년간 추가로 얻는 법인세 감면 혜택은 무려 9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에 중요하니 그 경쟁력을 키우는 게 국익이라는 생각이 상식처럼 돼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 지원을 위한 감세는 생계비 위기로 고통받는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복지를 줄이는 압력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자도 희생해야 한다는 압력도 커질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국가 구성원 모두의 이익일까요?

물론 정부 지원을 받는 산업의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일시적 혜택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도 자국 기업에 지원에 나서면 결국 국제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가 희생해야 한다는 압력이 강해질 겁니다. 이는 ‘바닥을 향한 경쟁’을 심화시켜 각국 노동조건과 복지를 압박하는 악순환이 될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이런 논리를 받아들여 양보 압박에 굴복해선 안 됩니다. 그것은 국제적 경쟁 격화에 기여할 뿐입니다.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고통 전가에 맞서 노동조건 방어와 복지를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그 지원법에 어떤 입장인가요? 민주당 집권 시절 이미 이 문제에 봉착했는데요.

민주당도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계획에 협조했습니다. 2021년 5월 문재인과 바이든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공급망 태스크 포스 구축”에 합의했습니다. 당시 미국에 함께 간 한국 대기업들은 44조 원에 이르는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요.

이번에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세부 내용이 알려지자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물론 민주당은 국민의힘과는 달리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외교를 표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평한 중립이 아니라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하면서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균형’이라는 말과 달리 결국 친미로 기운 일이 다반사였던 것입니다.

민주당은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제 목소리를 내려면 국방력과 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제적 경제·군사 경쟁 심화를 부추기는 게 그들의 대안인 셈입니다. 최근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짝짜꿍이 돼 반도체 기업에 감세 선물을 준 건 이런 입장의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입니다.

정의당과 진보당은 미국의 오만한 반도체 보조금 지침에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는데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반도체 기업 감세법을 비판하고, 국가 차원의 반도체 산업 육성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의당과 진보당이 반도체 기업 감세를 비판한 것은 옳은 일입니다. 기업 감세가 아니라 기업에 세금을 더 거둬 노동자 등 서민 복지에 써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본다며 정부가 미국에 “당당히 따져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이런 주장은 마치 한국 기업들에 불이익을 강요하는 미국에 맞서 노동계 정당들이 한국 기업 이익을 잘 대변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정의당은 국가 차원의 반도체 산업 육성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육성에 방향을 맞추고 있긴 하지만요.

그러나 노동계 정당이 기업 지원과 산업 육성 정책에 협조하기로 하면, 노동자들에게 국가 경쟁력을 위한 희생을 촉구하게 되기 십상입니다. 자국 자본가에 협력해 다른 나라 노동자들과 경쟁하도록 말입니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선 안 되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를 중시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경쟁이 점점 첨예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좌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미·중 갈등은 우리가 제국주의 체제에 살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보여 줍니다. 미국과 중국 간 경제적 경쟁이 군사적·지정학적 경쟁과도 맞물려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압니다.

이와 같은 제국주의 갈등 심화에 맞서려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 편을 들거나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자체를 약화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길은 제국주의 경쟁에 일조하는 자국 지배계급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전진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좌파적 버전일지라도 민족주의나 국익 옹호, 국가산업 육성 등은 범위가 어찌됐든 자국 지배계급과 협조하고, 노동자 투쟁을 마비시키고, 다른 나라 노동자와의 반목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미·중 갈등이 더 심화되면 한국 지배자들의 딜레마가 커지고 그로 인한 지배계급 내 긴장과 갈등도 커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투쟁에 나설 자신감을 줄 수 있습니다.

이를 이용해 투쟁을 전진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투쟁들이 계급 협조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울 혁명적 조직을 건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