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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 시효 폐지’ 입법예고:
사형제는 폐지돼야 한다

법무부가 사형의 집행 시효를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재 형법 77조(형의 시효 효과)와 78조(형의 시효 기간)는 ‘사형이 확정 선고된 뒤 집행을 하지 않은 채 30년이 지나면 시효가 완성돼 형 집행이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형에는 아무런 공익적 목적도 없다 ⓒ출처 픽사베이

그런데 올해 11월이 되면 국내 최장기 사형수 원모 씨가 복역 30년을 채우게 된다. 원모 씨는 1992년 종교 문제로 아내와 갈등을 빚다가 술에 취해 종교 회관에 불을 질렀고, 그로 인해 15명이 죽었다. 이 일로 원모 씨는 1993년 11월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다.

현행 형법의 ‘30년 사형 집행 시효’ 해석에 따르면, 원모 씨는 올해 11월이 지나면 사형 집행 면제나 더 나아가 석방 여부를 다툴 수도 있다.

그러자 법무부가 아예 사형의 집행 시효를 없애겠다고 나선 것이다. 법무부는 현행법에 의하더라도 구금이 사형 집행 절차의 일부이므로, 이미 시작된 집행을 가지고 시효를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논란의 여지가 생기자 그 싹을 잘라 버리려는 것이다.

현재 사형제는 세 번째로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대에 올라가 있다. 여기에서도 법무부는 사형제를 강력히 옹호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 한동훈은 의견서에서 사형제가 “특수한 사회악의 근원을 영구히 제거해 사회를 방어한다는 공적 목적이 있”고, “인륜에 반하고 공공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하여 그 잘못에 따른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정의의 발로”이며, “범죄예방기능이 크다”고 주장했다.

사형 — 국가가 저지르는 살인

그러나 사형에는 아무런 “공적 목적”이 없다. 사형은 국가가 저지르는 살인일 뿐이다.

우선, 흉악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이미 1998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유엔은 사형제도가 범죄율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다.

OECD 국가 중 최근까지도 사형을 집행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인데, 미국은 인구 10만 명당 살인 건수가 OECD 중에서도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한국의 사형 집행과 집행 전후 3개월간의 살인·강도 건수의 상관관계를 살펴본 형사정책연구원의 한 연구도 이렇게 결론짓는다.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유의미한 억제효과나 야수화(유발)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이 연구는 오히려 1997년 대규모 사형 집행 이후 살인 범죄가 유의미하게 증가했음을 특별히 지적한다. 이는 “사형의 효과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오히려 심각한 경제 위기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사형제가 흉악 범죄를 막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주의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빈곤과 불평등, 소외가 체계적으로 인간성을 파괴하고 뒤틀린 인간을 낳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법 체계의 잘못된 판단이나 하층민에 대한 편견, 정치적 목적으로 인한 억울한 죽음과 희생양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그런 가능성을 보여 주는 유명한 사례다. 당시(1998년) 범인으로 몰린 윤 씨는 고문에 의해 거짓 자백을 했고, 20년 동안 억울하게 감옥살이했다. 경찰은 학력이 낮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윤씨를 표적으로 삼았다. 진범은 2019년에서야 밝혀졌다.

사형수 중에 이런 억울한 피해자가 없으리라는 법도 없다. 그런데 사형은 어떤 식으로도 돌이킬 수 없다.

군사 독재 정권이 야수적인 고문과 협박으로 혐의를 조작해 사형을 집행한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사례도 있다.

법무부는 사형제 존치 이유로 “유족의 울분”을 내세우기도 한다. 응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범죄 피해자 가족들이 재판부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형 선고를 요청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여론조사에서 사형제 존치가 우세하게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응보가 아니라, 피해자(와 가족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충분한 국가적 지원이다. 한국의 범죄 피해자 지원은 필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경기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전국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들은 국가 지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재원의 절반가량을 자체 모금으로 마련하는 실정이다. 이들은 인력과 예산의 부족으로 범죄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돕기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국가가 사형제를 존치하는 이유

한국은 1997년 이래 현재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서 국제 앰네스티에 의해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사형제 자체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사형이 국가의 유용한 정치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 시절은 말할 것도 없다. 사형제를 연구해 온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이덕인 교수는 1956년 이전의 사형 선고·집행은 정확한 통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국가기록원이 기록을 전부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덕원 교수에 따르면 이는 여순 항쟁과 제주 4·3 항쟁, 한국전쟁 기간에 남용된 사형에 대한 기록이 공개되면 일게 될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서다.

박정희 정부 때는 살인과 강도가 아닌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사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상당했다(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421명 중 120명).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본보기를 보여 줌으로써 대중을 위협하고 저항을 위축시키려 했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 이래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으로 사형까지 선고받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사형제는 모럴 패닉을 부추기고 국가의 사회 통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돼 왔다.

흉악 범죄를 요란하게 부각하며 사람들이 서로 두려워하게 만들고, 이를 이용해 경찰력 강화를 정당화하고, 국가가 정의의 사도인 양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일들은 계속돼 왔다. 이를 통해 권력자들은 정권이나 사회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악마같은 개인에게 돌리고 사회 통제를 강화할 기회로 삼는다.

이명박이 2009년에 강호순 사형 판결을 계기로 11년 만에 사형 집행 카드를 만지작거린 게 한 사례다. 용산 참사 등으로 말미암은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이었다.

‘실질적 사형 폐지국’ 타이틀은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사형 집행 소식이 돌자 한 사형수는 압박감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사실 사형수 대부분은 가난과 원한에 찌든 사람들이다. 현재 생존 사형수 59명 중 40퍼센트가량이 범행 동기가 금전 목적이었다. 반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사형수가 되지 않는다.

또, 인간은 변할 가능성이 있고, 사형수들도 그렇다. 사형은 이것을 원천 부정한다.

윤석열 정부의 사형 집행 시효 폐지를 반대한다. 사형제도 자체가 폐지돼야 한다. 사형제 위헌 결정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