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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경찰력 정당화 위해 ‘마약과의 전쟁’ 벌인다

윤석열이 최근 ‘마약과의 전쟁’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4월 18일 국무회의에서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범정부 역량을 총결집하겠다” 하고 밝혔다. 대검찰청·경찰청·관세청·교육부 합동으로 840명 규모의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도 설치하기로 했다.

언론의 관심을 끌려고 유명 연예인 유아인 씨를 표적으로 삼은 수사도 몇 달째 이어 가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진 사건은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마약’ 사건이라기보다는 ‘피싱’ 사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속여서 마약을 탄 음료를 마시게 하고 이를 마약 복용으로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돈을 요구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에 열을 올릴수록 오히려 이런 범죄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마약과의 전쟁은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 자본주의 체제가 낳는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소외 때문이다.

물론,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모두 약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통이 커지는 만큼 약에 의존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특히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먼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정부가 이들의 약물 사용을 처벌하는 것은 가혹할 뿐 아니라 파렴치한 짓이다. 정부 자신이 그런 고통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치동 사건은 청소년들이 경쟁 교육 속에서 겪는 고통을 보여 준 사건이기도 했다. 잠을 줄이려고 카페인과 온갖 에너지 음료들을 이용하는 수험생들에게 ‘집중력을 높여 주는’ 음료는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에너지 음료 기업들이 마약과 근본에서 차이가 없는 합법 음료 판매에 영향을 줄까 봐 마약 합법화에 반대해 온 것은 비교적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세방 한 칸 마련하려고 수십 년을 뼈 빠지게 일하고도(지난해 임금근로자 100명 중 9명은 월급이 100만 원도 안 됐다) 한순간에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정부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방치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매 순간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몬다.

마약 사용자가 급증했다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극히 적은 수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2021년 마약 사용자가 50만~100만 명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합법적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로 분류된다) 사용자인 우울증·불안장애 환자만 해도 2021년에 각각 93만 명, 87만 명으로 5년 전에 비해 각각 35.1퍼센트, 32.3퍼센트나 늘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수십 년째 OECD 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사람들의 인내심이 놀라울 정도다.

미국, 캐나다, 독일 등에서 최근 정부가 대마 등 일부 마약을 비범죄화한 것은 이런 사회에서 마약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사람들의 건강이 아니라 경찰과 감옥에 쓰이는 재정 지출 절감이 더 주된 동기였겠지만, 범죄화하고 처벌하는 것보다는 더 낫다.

돈 없고 ‘빽’ 없는 마약 사용자들은 사회적 낙인과 실업, 밑바닥 삶과 감옥에 오가도록 내몰린다. 정부는 본보기 삼아 일부 부유층 자제들을 처벌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다른 취약계층과 같은 처지로 내몰리지는 않는다.

윤석열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두 안다.

범죄화

윤석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으로 얻고자 하는 진정한 효과는 사람들을 막연한 두려움에 빠뜨리는 것이다. 경찰청장 윤희근은 “테러와도 같은 마약범죄”라고 과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첫째, 검찰·경찰 등 억압적 국가기구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권력자들에게는 거의 수학 공식처럼 잘 알려진 수법이다. 막연한 위협에 대처하려면 도·감청, 인터넷 감시와 폐쇄에 관한 광범한 권한 부여, 불시 검문이나 함정 수사 등 민주적 권리를 침해하는 조처나 가혹한 처벌도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한다는 논리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법원도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국가권력이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속죄양 삼고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윤석열은 특별수사본부에 인력 840명을 투입하겠다면서 마약 중독 치료에는 쥐꼬리만 한 예산 지원과 재활 전문인력 190명 ‘양성 계획’만 내놨다. 2022년 마약 중독 치료자는 고작 721명이었다.

돌봄 받아야 할 이들을 처벌해 서민층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 시도하기

둘째, 마약 사용을 범죄화함으로써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권위를 획득하고 통제력을 행사하려 한다. 이런 권위와 통제력은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예컨대 한미일 지배자들 사이의 경제적·지정학적 협력(윤석열이 ‘국익’이라고 말하는)을 추진하는 데에 방해되는 ‘문제들’을 비난하고 공격하기도 쉬워진다. 동맹국인 미국의 도청 문건을 문제 삼거나, 비밀리에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려던 무기 공급 계획을 폭로하는 일, 식민지 시절 일제의 위안부·강제동원 문제를 배상하라고 요구하거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일 등 말이다.

더 나아가 기업 이윤에 타격이 될 노동자들의 파업,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운동 등도 억누르기 쉬워진다.

셋째, 사회 문제들 중에서 특히 범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우익적 결론으로 이어지기 쉽다. 사람들 사이에 불신을 조장해 분리하고 원자화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범죄를 보게 하면 범죄를 맥락에서 분리해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데에 이용하기도 유리해진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생존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부유층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범죄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다.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지도, 재활을 돕지도 못한다.

노동자 등 서민층에게 진정한 위험은 마약이 아니라 장기화되는 불황, 기후 위기, 전염병과 전쟁을 일으키는 자본주의 체제다. 가난하고 소외된 청년들이 아니라 검찰·경찰을 비롯한 억압기구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위협한다.

윤석열은 바로 이 자본주의 체제와 그 수혜자들, 권력자들을 지키려고 마약과의 전쟁을 내세웠다. 마약과의 전쟁은 마약을 줄이는 데는 필패할 것이다. 그러나 선정적 언론들의 도움으로 정부가 두려움을 확산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정부는 자신들이 의도한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마약과의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