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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추악한 전쟁》 외

추악한 전쟁 - 존 쿨리, 이지북

이 책은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된 이상한 밀월 관계”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항하면서 시작된 미국의 ‘추악한 전쟁’이 결국은 자국에 대한 미증유의 테러 사태를 초래하게 됐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제2차세계대전 후 냉전기에 미국의 주적은 ‘악(惡)의 제국’ 소련이었다. “아라비아 반도 및 페르시아 만과 그 주변의 광대한 원유와 천연가스 저장고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요충지를 보호하고 해상과 항공의 접근 루트를 방어”해야 했다.

신성동맹

1979년 초에 일어난 이란 혁명은 중동에서 미국의 강력한 지지 세력을 제거해 버렸다. “미국은 반소련 기지를 이란에서 파키스탄으로, 가능하다면 아프가니스탄으로 대체하려는 의도”를 갖게 됐다.

그 전 해에 이란의 인접국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오랜 왕정이 타도되고 친소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1979년 3월에 서부 헤라트 지방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6월과 8월에는 카불에서 군사 폭동이 발생하는 등 정정 불안이 계속됐다. 그러자 당시 미국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즈비그녜프 브레진스키는 “막 태동하던 무자헤딘이나 반소련 저항 투사들을 은밀히 지원하도록 하는 비밀 지령에 대통령이 서명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영향력을 확대할까 봐 두려워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군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해 12월 23일 소련군은 국경을 넘어 카불로 진격했다. ‘베트남 증후군’ 때문에 직접 개입을 꺼리던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이집트, 중국, 이스라엘 등을 끌어들여 반소 저항 세력들을 지원하는 ‘신성동맹’을 결성했다.

아랍 세계의 이슬람 맹주 자리를 놓고 이란과 다투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과 그 뒤의 탈레반에게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파키스탄의 북서 지방은 무자헤딘의 병기창고이자 훈련기지 역할을 했으며, 파키스탄의 군 정보기관(ISI)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손을 잡고 무자헤딘의 저항 운동을 사실상 주도했다.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소련이야말로 ‘히틀러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라고 말하면서 낡은 소련제 무기를 무자헤딘 반군에게 보내주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미국 의회는 이집트에 15억 달러의 신용 차관을 제공했고, 그는 이 돈으로 미국의 첨단 무기들을 구입했다.

중국의 협조 덕분에 미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군사기지 두 곳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국은 신장의 위구르족 무슬림을 훈련시켜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에 대항하도록 부추겼다.

이스라엘도 중동전쟁에서 포획한 소련제 무기들을 무자헤딘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1979∼1989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반소 무자헤딘의 가장 중요한 후원 세력은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은 그린베레를 비롯한 자국의 특수부대 시설과 교관들을 이용하여 무자헤딘에게 “무기 사용법, 태업(사보타지), 살인 기술, 통신을 비롯한 다른 기술들”을 훈련시켰다. 당시 CIA 국장 게이츠가 “국제 사기꾼들과 범죄자들의 은행”이라고 불렀던 국제상업신용은행(BCCI)과 마약 거래도 지하드의 재정 지원에 이용됐다. BCCI 관련 커넥션의 대부분은 게이츠의 전임자였던 케이시의 ‘작품’이었다. 뉴욕 금융 역사상 가장 큰 은행 사기의 주모자로 법정에 소환된 BCCI의 회장은 카터와 개인용 제트기를 함께 타고 다닐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프랑스 정보기관 총수 마렌쉐 백작은 1981년 초에 미국 대통령 레이건과 케이시에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마약을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곰을 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면 모기를 이용해 곰을 괴롭힌다는, 이른바 ‘모기 작전’이었다.

1979∼1989년 지하드 기간에 무자헤딘들은 마약 재배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스팅어 미사일을 비롯한 미국의 무기를 사들였다. 1980년대 초에 미국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이 펼쳤던 “마약 근절” 캠페인이나 마약단속국(DEA)의 마약 거래 억제 활동은 결국 CIA의 방해 공작에 밀려 좌절되고 말았다. CIA에게 마약 수입은 중요한 전쟁 자금이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 지대는 세계 최고의 양귀비 재배지가 됐다. 그 지역에서 들어오는 헤로인 때문에 뉴욕 시의 마약 관련 사망자 수는 77퍼센트나 증가했다. 마약 중독자들이 거의 없었던 파키스탄에서도 전쟁이 끝난 뒤에 170만 명이나 되는 중독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또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마자르 이 샤리프 지역은 세계 제일의 대마초 재배지가 됐다. 탈레반이 점령하기 전까지 그 인근 지역의 마약 밀매업자들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파키스탄의 ISI도 전쟁 통에 급속히 성장한 “마약 거래에 적극 개입해 많은 이익을 얻었다.”1999년에 유엔 마약억제프로그램(UNDCP)은 아프가니스탄이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국이 됐다고 밝혔다.

프랑켄슈타인

전쟁이 끝난 뒤에 무자헤딘의 이슬람주의는 북아프리카와 동남 아시아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이집트는 전쟁에서 돌아온 무장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과격한 전투로 몸살을 앓았다. 그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1997년 룩소르에서 58명의 외국 관광객과 이집트인이 무참하게 학살된 사건이었다. 1995년 여름에는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공격도 있었다. 알제리에서는 1992년의 선거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승리하여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게 되자 서방의 지원을 받은 군부 정권이 선거를 무효화시켰다. 뒤이어 벌어진 내전에서 10만 명이 전사하고 수백만 명이 부상당하거나 테러리스트들에게 암살됐다.

리비아의 카다피도 1990년대 후반에 국내의 지하 이슬람 무장 세력의 저항으로 골머리를 앓게 됐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마찬가지로 신정일치 국가인 모로코도 그 영향을 받았다.

인도-파키스탄 접경 지대의 불안정성도 증대돼 결국 1998년 양국의 연쇄 핵실험과 이듬해의 카슈미르 전쟁으로 이어졌다.

아프가니스탄 지하드 참전 조직 가운데 하나였던 아부 샤아프 그룹은 1990년에 필리핀으로 옮겨가 남부 필리핀을 사실상 내전 상태로 몰아갔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탈레반이 등장했다. 탈레반은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미국의 합작품이었다. 이 책은 탈레반이 그 창조주도 어찌할 수 없는 괴물 ‘프랑켄슈타인’이 되어 미국의 공격을 받게 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이수현

세계 없는 세계화 - 피터 고완, 시유시

피터 고완의 이 책은 세계화에 관한 끊임없는 논쟁에 또 하나의 희소식이다. 그는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라고 지칭한 것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다. 고완은 미국의 은행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궁극적으로는 미국 제국주의가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다. 그는 미국이 은행들의 경제 권력과 빌 클린턴의 정치 권력을 이용함으로써 동남 아시아의 경제를 붕괴시켜 세계 지배를 확고히 했다고 주장한다. 불행하게도, 지배 열강이 통화 체제의 붕괴와 시장의 운동을 유일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결정한다는 그의 믿음 때문에 그의 분석은 훼손되고 만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존 르 카(John Le Carr)의 소설을 대충 읽거나 KGB 첩보원의 활약상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신빙성 없는 음모 이론들로 가득 차 있다.

고완처럼 개별 자본가, 은행, 국가가 시장을 1백 퍼센트 통제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고완이 윌 허턴이나 래리 엘리엇처럼, 부패 규제 조치들을 지적하는 것은 옳다. 그런 조치들이 시행된다면 부정 부패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주식 시장을 규제한다거나 기업과 은행들을 더욱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이 그런 조치들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주의는 1930년대의 위기와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크게 개선했는데, 나는 그런 일이 원리적으로는 되풀이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특성 때문은 아니다. 거기에는 ‘전술적 급진주의’와 비타협적 정치적 의지가 필요한데, 현재의 유럽 사회민주주의가 그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296쪽)그는 결국 허턴이나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좌파 개량주의적 해결책에 호소한다. 이런 호소의 대부분은 현대적 조건에 기초한 것이지만, 그의 해결책들은 아무 효과도 없다. 그의 희망은 지금은 축출된 전 독일 재무장관 오스카 라퐁텐의 어깨에 기대는 것이다. 독일의 대기업과 사민당 내 우파는 힘을 합쳐 그를 재무장관 직에서 쫓아냈다. “그러나 독일의 라퐁텐 재무장관은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의지가 강한 케인스 이론 추종자다. 따라서 케인스 이론이 부상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라퐁텐의 이론은 유효수효 촉진을 위해 소득 재분배를 추구한 케인스의 이론이라기보다는―이같은 재분배가 그 자체로서 바람직한 것이긴 하지만―전후의 국제경제가 성장을 지향할 수 있게끔 이끌어야 한다는 인식에 초점을 맞춘 케인스 이론이다. 즉 생산적 성장을 추진하고 금융소득 계층의 안락사를 주도하며 전 세계를 위해 ‘금융 억압’과 국가통제 개발전략을 주창한 케인스의 입장인 것이다.”(295쪽)그는 변신한 동유럽의 공산당들의 행보를 추적하고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뒤 서방이 경제적 투자를 줄여 심각한 정치적 동요가 일어나고 극우파와 나치 정당들이 매우 실질적인 위협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특히 미국이 강요하는 정치적·경제적 지배에 동유럽이 어떻게든 자동적으로 맞설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좌파 개량주의, 케인스주의, 옛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그의 환상 때문에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그의 강력한 주장들이 훼손된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에 관한 글로 끝맺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양차 대전 사이의 자본주의 사회는 과거지사로서 전후의 사회 진보에 의해 극복된 하나의 일탈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후의 사회적 진보가 일탈이었으며 양차 대전 사이의 국가와 사회가 다시 정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유럽은 분열되고 소란스러우며 추잡한 미래를 향해 표류하고 있는 듯하다.” 발칸 전쟁은 고완이 얼마나 옳은가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미국이 세계의 경제적·정치적 열강으로 계속 군림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것이라는 점을 입증한 유혈낭자하고 끔찍한 증거였다.

불행하게도 이 책은 우리가 이런 지배에 효과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유익한 정보와 많은 논쟁점을 시사해 준다.

반세계화의 논리 - 윌리엄 K 탭, 말

카타르 도하에서 ‘뉴 라운드’ 출범을 위한 WTO 회담이 열렸다. 〈조선일보〉는 이번 회담을 “반세계화의 도전에 대한 지구촌 사회의 대응”이라고 추켜 세우며 “세계 경제가 앞으로도 개방화·세계화를 통한 지속적인 발전의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폐쇄적·배타적 경제 블록화 속에서 그 동안의 성과를 부정하는 퇴행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를 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무역이 없다면 남아시아의 어린 소녀는 교육이나 의료 보장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녀로 하여금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녀를 전혀 돕는 것이 아니며, 무역은 소수의 특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백만에게 더욱 큰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고 시애틀 시위에 대해 논평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000년 4월 워싱턴에 있었던 세계은행과 IMF에 반대하는 시위에 대해서 “이번 주 워싱턴 DC에서 수천의 부유한 사람들이 대중의 가난이 지속되는 것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과연 세계화가 대중을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윌리엄 K 탭이 쓴 《반세계화의 논리》는 위와 같은 세계화의 허구적 논리에 대한 생생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끔찍한 현실을 폭로한다.

가진자를 위한 세계화

남아프리카는 인구의 8분의 1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돼 있지만 변변한 약조차 써보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남아프리카에서 이미 수백만 명이 에이즈로 사망했다.

에이즈 치료 약품은 보통 1만2천 달러가 넘지만 남아프리카의 평균 연간소득은 3천 달러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남아프리카 정부들은 기존 약보다 90퍼센트 더 싼 약을 만들어 공급하려 했지만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이것이 ‘지적재산권’ 위반이라며 WTO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2년이 넘게 진행되는 동안 30만 명의 남아프리카 에이즈 환자들이 약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결국 WTO는 미국 제약회사의 손을 들어주어 생명이 아니라 이윤을 구했다.

세계화는 부의 불평등을 더 심화시켰다. 제너럴 모터스의 1992년 매출액은 전 세계에서 단 21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큰 규모였다. 도요타의 매출액은 포르투갈과 폴란드의 GDP보다 크고, IBM은 베네수엘라보다 크며, 유니레버는 뉴질랜드보다 크다. 세계 상류층 20퍼센트가 세계 GDP의 86퍼센트를 가진 반면, 하위 20퍼센트는 고작 1퍼센트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 3명의 재산이 가난한 48개국의 소득을 합한 것보다도 더 많다.

WTO의 의사결정 방식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1981년 설립 이후 세계무역체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은 비공식 위원회인 4자무역장관모임(QUAD)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캐나다로 구성된 QUAD는 WTO의 공식 회의 전에 사적으로 만나서 다른 나라 대표들의 참여 없이 주요 결정을 내린다. QUAD의 정책결정자문위원회는 중요한 몇몇 기업에 의해 주도된다. WTO는 대중의 이익보다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저자의 말처럼 WTO는 “각국이 자기네 기업의 요구를 대표하여 모이는 포럼의 역할”을 할 뿐이다.

대중 운동

윌리엄 K 탭은 평범한 사람들을 가난과 질병에 빠뜨리는 세계화를 막기 위한 대중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은 매우 감동적이지만, 그것은 사실 헌장이라기보다는 선언이며 그 자체로는 큰 영향력이 없다. 무엇이 필요한지를 인식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것은 계급의식에 기초한 정치 운동이다. 순수한 의도를 지닌 정부의 노력보다 이러한 운동의 조직화가 훨씬 중요하다.”최근 전 세계적으로 반자본주의 운동이 반전 운동으로 모아지고 있다. 전쟁에서 미국이 별 볼일 없는 성과를 거두는 반면 저항이 더욱 커진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세도 꺾을 수 있다. 반전 운동의 한가운데에서 《반세계화의 논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해줄 수 있다.

차승일


신경제의 신화와 현실 - 더그 헨우드 외, 이후

전 세계 지배자들과 내로라 하는 체제 옹호 경제학자들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암울해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경제’ 호황으로 미국 경제가 경기 순환에서 벗어났다거나 자본주의 모순이 해소됐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경제’라는 것이 모래 위에 쌓아올린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경제평론가 마틴 울프조차 “뉴 이코노미는 완전히 넌센스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90년대 높은 생산성 증가율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IT 산업 때문이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생산성 증가는 IT 산업과는 별개로 비즈니스 사이클처럼 사회적 환경과 산업 전반에 걸친 기술 발전에 따라 올랐다 떨어졌다 하는 것이다.” 하고 신경제론에 일침을 가했다.

신화

‘신경제’라는 신화가 맹위를 떨칠 무렵 이 이데올로기를 반박했던 사람들이 쓴 글들이 최근 《신경제의 신화와 현실》이라는 책으로 번역돼 나왔다. 저자들은 미국의 좌파 잡지 〈먼슬리 리뷰〉의 주된 기고자들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신경제 옹호론자들이 산업 혁명기에 비유한 신경제라는 신화가 보잘것 없는 거품임을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신경제와 관련된 두 가지 신화에 도전한다. 첫째는 “신경제는 경제 전반에 미친 효과에서 볼 때 증기기관이나 자동차의 도입에 비견될 만한 새로운 기술-산업 혁명을 구성”하며, 우리를 “항구적인 높은 생산성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이끈다는 주장이다.

노스웨스턴 대학 경제학 교수인 로버트 J 고든은 1972년부터 1999년까지의 생산성 성장률이 1.33퍼센트라고 밝히고는 “극히 적은” 0.07퍼센트만을 내구재 생산 외부의 컴퓨터 기술과 소프트웨어 사용으로 돌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로버트 J 고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디지털 혁명이 경제 전반에 걸쳐 생산성을 높였다는 신경제 테제를 반박하고 있다.

미국이 신경제 호황으로 떠들썩할 때인 1995년부터 1999년까지의 생산성 성장률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장기 호황기의 절반 수준인 2.7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는 자본주의 경기 순환이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신경제가 도래하면서 경기변동을 낳는 요소들이 완화되고 경기 하강을 둔화시키거나 완전히 없앰으로써 경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조절할 수 있게 됐다는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1991년부터 시작된 미국 경제의 확장은 주가 급등과 기업(과 소비자) 부채의 폭발을 동반했다. 신경제 옹호론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주식 투자를 통해 부자가 될 것이라는 환상을 부추겼다. 신경제론자들은 1929년 주식시장이 붕괴하기 직전에 “주가가 항구적인 안정기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던 당대 최고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미국 경제가 호황처럼 보였던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증대하여 이윤을 늘렸기 때문이다. 신경제 호황이 지속되고 있는 동안 가계와 기업의 대출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기업은 앞으로 장사가 될 것이라고 믿고 설비투자를 하느라 은행으로부터 돈을 끌어다 썼다. 노동자들은 실질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빌렸다. 이처럼 대출을 통해 유지되는 경제는 경기 하강기에 더욱 혹독한 고통을 가한다. 개인과 기업은 파산하고, 공장의 기계는 가동되지 않으며, 짓다만 건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게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지금 미국과 세계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가 “과잉설비의 증대가 중심적 역할을 하는 고전적인 경기 순환과 훨씬 더 공통점을 갖게” 된다고 지적한다.

똑같이 불합리한 경제

저자 중의 한 명인 윌리엄 K 탭은 “보다 나은 정보만 있으면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게 보장된다는 신경제의 관념”은 언제나 잘못이었다고 지적한다. 소위 신경제의 양지에 있는 사람들은 고액 연봉에다 스톡옵션을 받을지 몰라도 그 밑에는 결코 많은 것을 가져본 적도 없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실례로 들 수 있는 곳이 실리콘 밸리다. 실리콘 밸리 주민의 대다수는 유색인종이며 멕시코 이주민이 많다. 특히 산타클라라 카운티 노동력의 42퍼센트는 파트타임, 임시직, 계약직,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는 1980년대에 비해 두 배나 늘어난 것이다.

윌리엄 K 탭은 심지어 “부유한 노동자와 가난한 노동자들이 수렴되는 전 지구적 경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계은행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 4반세기에 노동력으로 참여하게 될 10억 노동자의 99퍼센트가 오늘날의 저소득·중간소득 나라들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합법·비합법 이주 노동자들과 대규모 산업 예비군이 형성된다. 주식 시장의 급등으로 이득을 보는 극소수 사람들과는 달리 대다수 노동자들은 의료, 교육, 사회복지 지출 삭감으로 전보다 더 열악한 생활 수준을 경험하고 있다. 이 책은 “결국 과거와 똑같은 경제 체제”인 신경제의 모순을 보여 줌으로써 지금 겪고 있는 미국과 세계 경제의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를 규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차승일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 엔써니 샘슨, 책갈피

“걸프전쟁은 석유전쟁이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번 (테러와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5일 영국 텔레비전 ‘채널 4’의 7시 뉴스에서 리엄 핼리건 기자는 “(테러 외에) 아프가니스탄 공습의 또 다른 동기”를 묻는 앵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약 3조 달러어치가 매장돼 있는 중앙 아시아 지역의 원유를 서방 시장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다.(〈한겨레〉 11월 6일치)앤써니 샘슨의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는 1973년 오일쇼크 직후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석유산업의 발원지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출발해 7공주의 발자취를 따라 석유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앤써니 샘슨은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각 회사의 중역들, 아랍 국가들의 석유장관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를 다룬 책이 출판되지 않았다.

석유산업

제1차세계대전 직후 원유 부족으로 허덕이던 서방의 선진국들과 7공주(엑손, 모빌, 셸, 소칼, 텍사코, BP, 걸프)는 새로운 유전을 찾아 나섰고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가 됐다. 미국은 이미 석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석유 의존국이었고 영국 해군은 1920년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그들의 주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고 있었다.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이 세계를 지배할 판이었다. 석유 외교는 해체 과정을 밟던 오스만 제국에서 불꽃 튀는 전쟁을 벌였다. 오스만 제국이 전쟁에서 패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을 분할 통치했다. 양국은 메소포타미아(이 곳은 곧 이라크가 됐다)의 티그리스 유역에 있는 바그다드와 모술(후에 이라크에 병합된다) 두 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미국은 대전에서의 성과를 내세워 영국에 부단히 압력을 넣어 이라크에 진출했고 이라크 신정부는 7공주가 참여하고 있는 터키 석유회사의 석유 이권을 1925년부터 2000년까지 75년간 보장한다는 협정을 마지못해 조인했다.

곧이어 7공주와 프랑스계 회사 1개, 그리고 터키 석유회사의 지분 5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던 걸벤키안은 1928년 7월 석유 회사 사상 가장 획기적인 이권분할을 했다. ‘적선(赤線) 협정’이라 불린 이 협정으로 이 회사들은 터키,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옛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 컨소시엄을 만들어 참여하기로 했다. 그들은 자신들 외의 다른 회사의 참여를 일절 배제했다. 그 후 약 50년 동안 중동의 산유국들은 사실상 거대 석유회사들과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미국의 손아귀에 놀아났다. 석유회사들과 미국, 영국 정부는 이제 막 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아랍 국가들을 교묘하게 분열시켰고 터무니없는 조약과 회계 관리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경제·군사적 지원을 했지만 동시에 아랍 국가들 사이에는 석유회사라는 완충지대를 만듦으로써 중동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50년 만에 중동의 산유국들은 석유회사들이 그들에게 한 짓을 그대로 놔둬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7공주 카르텔의 자리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차지했고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더 이상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었다. 미국의 선택은 전쟁이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은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고 중동 국가들에 대한 갖가지 악선전과 협박이 난무했다.

7공주

OPEC에 그 왕좌를 내주고 단순한 석유회사로 전락한 7공주의 역사는 19세기 말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시작된다. 석유가 발견된 지 겨우 6년 뒤, 석유회사의 경리였던 26세의 록펠러는 걸음마 단계의 석유산업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석유회사를 합병하거나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 것만이 석유 지배를 보장해 줄거라 확신했다. 주기적인 생산 과잉으로 파산하여 떨어져 나간 석유 생산자들과는 달리 유통망을 주로 지배했던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공황을 피해갔다. 30년 동안 이 독점은 유지됐다. 미국에서는 스탠더드 오일이 반독점법에 걸려 넘어져 엑손, 모빌, 걸프, 소칼이라는 4명의 딸로 분리됐다. 네덜란드와 영국계 회사인 셸과 영국 정부가 절반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BP는 정부 관료들 간의 이견(완전히 국영화할 것인가 민영화할 것인가)에도 불구하고 미국 회사인 텍사코와 함께 7공주의 반열에 올랐다.

본사 안에 전 세계 석유의 수요와 공급을 (거의 정확히) 추정하는 컴퓨터 장치와 5대양을 떠다니는 자신들의 유조선의 위치와 송유관을 통한 석유 이동을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을 정도로 7공주는 지배자로 군림했다.

그들은 경쟁 대신 담합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규모의 유전이 중동에서 발견됐다는 뉴스 보도를 듣는데도 석유 값이 오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석유회사는 곧 사라질 자원인 석유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고 정부는 대체 에너지 개발 촉진을 위해 높은 유류세를 부과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미국 정부와 석유회사들이 OPEC의 유가 인상을 비난했을 때 아랍 국가들은 이전에 그들이 하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을 뿐이다.

중동의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공포에서 영구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의 핵심 부분인 석유산업을 쥐고 있는 ‘석유의 지배자’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차승일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 - 존 벨라미 포스터, 현실문화연구

‘스노우맨’이라는 환경단체는 11월 9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뉴라운드 출범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산화탄소( CO₂) 배출량 60퍼센트를 줄여라!’라는 문구를 들고 나왔다. 산업혁명 이래로 지구 온난화가 꾸준히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21세기 동안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에서 5.0도 정도 오를 것이라고 한다. 지구는 1만년 간 유례 없는 기후 변화를 겪고 있다. 갑작스런 기후 변화는 생태계 파괴로 이어져 수많은 생물이 멸종될지도 모른다. 이미 매년 2만 7천여 종의 생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30년 동안 20퍼센트의 종이 사라지는, 공룡 이래 최악의 생물 멸종이 될 것이다.

왜 이런 환경 파괴가 일어날까? 환경 파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사회적 불평등을 극복하는 데 정열을 쏟아온 사람이라면 언제나 환경적 정의를 위한 싸움에도 개입하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존 벨라미 포스터는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에서 환경 파괴의 원인은 이윤 체제에 있다고 말한다.

포스터는 생태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고 말한다. 첫째로, 환경 파괴의 전 지구적 확산이다. 환경 파괴는 전 자본주의 사회에도 존재했다. 고대 수메르, 인더스, 그리스, 페니키아, 로마, 마야 문명은 부분적으로는 생태적 요인으로 붕괴했다. 그러나 이전의 환경 파괴는 지역적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자본주의는 무분별한 자원 남용과 폐기물의 배출로 기존의 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환경을 오염시켰다. 자본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전 지구가 산업화되면서 이런 문제들 역시 지구 전체로 퍼져나갔다. 지구 온난화의 범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 세계 산업국가 모두이며, 따라서 해결책 역시 일국적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

둘째로, 자연에 대한 파괴가 보편화되었다. 기존 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필요에 맞추어 자연을 이용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이윤을 위해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있다. 아마존의 열대 우림을 광범위하게 파괴하는 다국적기업은 ‘필요’가 아니라 ‘이윤’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나무를 베어버렸다. 그리고 이 때문에 아프리카에서는 비옥한 땅이 사막으로 변했고,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어 갔다.

포스터는 자본주의가 주거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상류층 거주지와 빈민층 거주지가 현격하게 분리됐다. 빈민층의 거주지는 비위생적 상하수도 시설 때문에 전염병이 자주 유행했다. 상하수도 시설이 어느 정도 개선된 후인 1866년 런던에 콜레라가 돌자 6천 명이 사망했다. 1870년 뉴욕의 유아 사망률은 24퍼센트나 됐다. 이는 사기업들이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생시설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스터는 이 책에서 제국주의의 생태적 참상을 생생하게 폭로한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에이전트 오렌지, 즉 고엽제를 사용했던 일과 걸프전 당시 열화우라늄(DU) 포탄을 사용했던 사실들을 들며 전쟁이 환경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말하고 있다.

포스터는 생산의 사유화가 곧 자연의 사유화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포스터가 폭로하는 생태적 현실들은 생산 양식으로부터 그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이 구체화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해 준다. 포스터는 환경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 모두에 분노하는 급진적 환경주의자들의 성장, 그리고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을 희망적으로 들려 준다. 실제로 이 글이 쓰인 지 7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의 급진적 좌파들, 사회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 여성 운동가들, 그리고 환경 운동가들이 이윤 체제에 반대해 국제적으로 연대하면서 거대한 시위들을 벌이고 있다. 포스터의 말대로 “무엇보다도 사회 문제와 환경 문제 사이의 상호연관성에 기초해야만 변화를 위한 강력한 운동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한상원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 - 박홍규, 개마고원

사람들은 흔히 ‘이 세상은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다.’ ‘상식만이라도 통하는 사회라면 한층 더 살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에게 법과 질서를 열렬히 외쳐대던 지배자들의 추악한 부정부패가 봇물 터지듯 하고 지구 저편에서는 테러 근절과 정의 수호라는 미명 아래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야만과 불평등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홍규 교수는 이 책에서 “헌법은 … 국민적 상식 또는 사상이고 우리의 중요한 상식적 가치 기준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헌법이라는 상식을 부정하는 자들은 바로 정치가, 자본가, 법관, 검찰, 경찰 그리고 학자 등 지배 집단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눈에는 헌법학계와 법조계,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헌법이라는 상식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세계로 보이는 것이다. 저자는 국가 보안법 제7조 제1항[찬양·고무], 제5항[이적 표현물 소지 등]이 한정 합헌이라는 헌법 재판소의 결정이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한다.

또, 대학의 자치를 보장하는 헌법 제 31조 4항의 내용 해석을 놓고 ‘헌법상 한계’를 들어 학생회의 대학 자치 참여를 부정한 허영 교수의 견해를 비판한다. 허영 교수는 자신의 헌법 교과서에서 학생, 연구 보조자, 교직원이 대학 운영에 참여할 자격을 갖는 건 한계가 있다는 학설을 주장한다. 그 근거로서 1973년 ‘학생 등의 대학기구 대표 참가 제도’에 적신호를 보낸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든다. 하지만 실상 그 독일 판례는 교수 대표에 교수가 아닌 사람들(예컨대 정치인, 공무원 등)이 포함돼 헌법상 보장된 교수의 직업 관리제에 위배된다고 주장한 것에 불과했다. 대학 내 여러 합의제 기관을 교수, 학생, 교직원, 연구 보조자의 대표로 구성하는 법규 전체를 문제삼은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이처럼 외국의 이론이나 판례를 제멋대로 왜곡, 각색해 견강부회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학자들을 이렇게 묘사한다. “천박하고 상업적이고 유별난 현학 취미나 과시하고 헌법의 망나니들(이들 학자들의 견해를 진리인 양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법학도들)을 재생산하는 자”.

저자는 그 밖에도 공무원의 단체행동과 정치 활동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노동조합 및 노동 관계 조정법상의 제3자 개입 금지, 호주 제도, 낙태 금지, 사형 제도 등 여러 악법 규정을 합헌이라고 판결한 헌법재판소, 국적 불명의 학설 등을 동원해 온갖 현학적인 말장난으로 악법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학자들, 우리에게 그것들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지배자들을 통쾌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살헌’ 행위들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잠깐 언급한다. 저자에 따르면 학자들 대부분이 매우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학자들 대부분이 ‘가진’ 집안 출신이거나 스스로 ‘가진 자’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서양에서 어떠한 진보적 공부를 했다 해도 그것은 공부에 그칠 뿐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자들뿐 아니라 입법하는 정치인, 법을 적용해 판결을 하는 고위 법관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검·경찰 간부들 대부분도 억압받고 소외받는 대중보다는 부자 집안 출신이고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고위 법조인들 대부분이 재벌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고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자들을 고발하고 있다.

김유정

교육은 살아 있다 - 김대유, 말과 창조사

왜 교사들은 7차 교육과정을 반대할까? 그리고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라고 하는데, 사립학교법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하나같이 어려운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교육은 살아있다》라는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쓴 김대유 씨는 현직 교사이면서 전교조 정책교육국장이다. 현장의 경험을 살려 교육계의 뿌리 깊은 병폐들을 다방면으로 다루고 있다.

교육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은 참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느끼는 “이론은 맞지만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은 풍부한 현장 경험과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와 외국의 여러 사례들을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교육 문제에 대한 나름의 대안들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교육의 근본적 문제점들을 교육 관료의 병폐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의 사례에서 해결책을 찾게 된다. 분명 우리 나라 교육의 문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뿌리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교육체제로 전환되어 가고 있는 문제는 비단 교육 관료들때문만은 아니다. 교육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 논리인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필연적인 결과다. 외국도 이런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교육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다. 김대유 씨는 우리 나라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전교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너무나 옳은 결론이다. 지금 전교조 교사들이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맞서 싸우는 것은 탈선 직전의 교육 열차를 제 궤도에 올려놓는 역할을 할 것이다. 《교육은 살아있다》는 우리 나라 교육의 현주소에 대한 정보와 교육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담겨 있다. 현재 교육 현실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장하고 싶다.

박민경

다시 한국의 지식인에게 - 한완상, 당대

《민중과 지식인》, 《지식인과 허위의식》 등의 책을 통해 민중과 함께하는 지식인론을 주장하며 1970년대와 1980년대 운동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던 환완상 부총리가 《다시 한국의 지식인에게》를 펴냈다.

하지만 20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의 지식인론은 교사 노동자들에게 퇴진을 요구받고 있는 그의 현실만큼이나 무기력하다. 한완상은 지금 지식인이 할 일은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현실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식인의 역할은 현실의 상황을 분석하고 관찰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와 정치에 참여해 잘못된 현실을 고치는 것이다. 지금은 개혁적 지식인과 시민들이 몸통을 형성하고 전문 관료들이 날개를 구성해 개혁을 성공시켜야 할 때다.” 1970년대 그가 주장했던 지식인의 ‘현실참여’가 민중의 현실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면 2000년 이 책에서는 ‘정치 권력’에 참가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참여 논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완상은 ‘한국의 만델라’라 칭송했던 김영삼 정부에 들어갔을 때도 ‘현실 참여’를 주장했지만 그가 한 것이라고는 김영삼 정부에 개혁의 외피를 씌운 것 뿐이었다. “나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부총리겸 통일원 장관의 자리로 초청받고 이제 본격적인 사회의사 노릇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총리로 몸은 정부종합청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마음으로는 70∼80년대 들판의 한가운데서 외롭게 떨던 때보다 더 외롭고 괴로웠으며, 이 땅의 냉전 수구세력이 얼마나 강고한 세력인지를 창자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그가 그가 다시 ‘현실참여’를 새로운 듯이 꺼내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완상은 “국민의 정부는 처음부터 개혁 정부가 될 것임을 국내외에 천명했다. 하지만 개혁 정부의 이미지는 벌써 상처투성이가 된 듯하다. 개혁의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오히려 후퇴하기까지 한다. 개혁의 부진과 실패는 개혁 주체가 형성되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기 때문에 지식인의 역할은 현실에 참여해 개혁 청사진을 마련하고 정부 관료들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개혁의 몸통이 되는 것”이라며 다시 지식인의 역할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교육부총리로 앉아 있는 그가 제시하는 청사진이 관료들을 개혁의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그는 시장의 경쟁 논리로 무너져가는 교육을 살리기 위해 싸우고 있는 교사 노동자들에게 “집단행동에 대해선 주동자를 사직당국에 고발하는 것을 포함해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