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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누가 종파간 갈등을 부추기는가

지난달 22일 이라크 북부 사마라에서 벌어진 황금돔 사원 폭파 사건이 전례 없는 수준의 종파간 폭력으로 번지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지금까지 적어도 4백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주류 언론들은 이러한 폭력이 수니파와 시아파의 뿌리깊은 반목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라크 역사에서 종파주의는 결코 유력한 특징이 아니었다. 심지어 사담 후세인의 통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조차 바그다드 같은 대도시들에서는 시아파와 수니파가 서로 섞여 살고 있었다. 쿠르드족과 아랍족, 수니파와 시아파가 한 지역에 어울려 살았고, 시아파와 수니파가 뒤섞인 가족이나 부족도 많았다.

후세인 정권에 대한 저항은 남부의 시아파 도시들뿐 아니라 팔루자나 라마디 같은 수니파 도시들에서도 일어났다.

체계적인 종파주의는 미국의 점령과 그 부역 세력들에게 직접적 책임이 있다. 이라크인들은 이들을 “어둠의 세력”이라고 부른다. 복면을 쓴 무장 괴한들, 암살단, 자기 잇속만 챙기는 정치인들, 특수 부대 따위가 여기에 포함된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단결은 늘 점령의 성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2003년 4월 바그다드 함락 후 몇 달 만에 시아파와 수니파는 미국의 지배에 맞서 함께 저항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 저항은 2004년 4월에 절정을 이뤘다.

수니파 도시인 팔루자가 점령에 맞선 저항의 초점이 됐고, 이라크 전역에서 수만 명이 팔루자로 행진했다.

그 해 여름 시아파 밀집 지역인 바그다드의 사드르시티와 남부의 나자프에서 대규모 항쟁이 일어났고, 이 반란은 새 이라크 군대를 강타했다. 시아파 군인들은 수니파 도시에서 발생한 항쟁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한편, 시아파와 수니파 무장 저항세력 사이의 협력이 증대하자 미군은 크게 당황했다.

점령이 위기에 처하자 미국과 영국은 종파주의를 조장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미군은 쿠르드족 민병대인 페쉬메르가 병사들이나 야만적 폭력으로 악명 높은 바드르여단(현 정부를 주도하는 시아파 세력인 ‘이라크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SCIRI)가 통제한다)을 앞세워 수니파 도시들을 공격했다.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폐허와 원한만이 남았다.

2005년이 되자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과 아랍족을 이간질하려는 미국의 책략이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시아파는 수니파 지역에서, 수니파는 시아파 지역에서 떠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라크 북부에서는 아랍족, 쿠르드족, 소수파인 투르크멘족이 땅과 석유를 놓고 다툼을 벌이며 반목했다. 심지어 수니파와 시아파가 뒤섞인 가족들이 많은 바그다드에서도 종파별로 결혼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에 치러진 이라크 총선의 최대 승자는 점령에 반대하는 시아파 세력(특히 급진적 시아파 지도자인 알 사드르가 이끄는 분파)이었다. 한편, 의회 내 다른 (시아파) 그룹들은 이란에 충성하는 세력이었다. 미국이 지원한 친미 세력들의 선거 결과는 형편없었다.

외국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새 의회가 다뤄야 할 첫 안건들 가운데 하나로 상정됐다.

미국은 선거 결과를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 잘마이 칼릴자드는 “거국 정부”를 요구하며 새 정부에 수니파 그룹들과 두 주요 쿠르드 정당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CIA 첩자이자 전 임시정부 총리인 이야드 알라위(이라크인들 사이에서 “수염 없는 후세인”으로 불린다)를 핵심 요직인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려 했다.

또, 수니파 그룹들을 꼬드겨 독자적인 종파적 민병대를 만들도록 부추겼다.

황금돔 사원의 파괴와 그것이 초래한 연이은 종파간 공격은 이렇듯 종파간 분열과 긴장을 부추겨 온 점령 정책의 직접적 산물이었다.

사원 공격 이후 종파적 폭력집단들은 수니파 사원들을 공격했다. 흔히 이러한 공격들은 내무부(바드르여단이 장악하고 있다) 소속 경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졌다.

점령에 반대하는 수니파 지도자들이 살해됐는데, 미군은 이러한 학살을 막기는커녕 저항세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기회로 이용했다. 바드르여단도 사원 공격을 빌미 삼아 수니파 지역에서 폭력과 공격을 강화했다.

그러나 수니파와 시아파의 단결 호소가 고조되면서 이러한 분열 지배 책략에 맞선 저항이 조직됐다.

사원 폭파 다음 날 ‘수니무슬림학자연합’(수니파 저항 조직과 긴밀한 연계가 있다)의 수석대변인인 셰이크 압둘 살람 알 쿠바이시는 기자회견에서 알 사드르에게 수니파 사원의 보호를 호소했다. “나는 알 사드르에게 팔루자와 사드르시티, 카르발라와 나자프에서 우리가 함께 피를 흘렸음을 기억하자고 호소한다.”

그 날 오후 사드르는 이란의 (시아파) 성지인 쿰에서 시아파와 수니파 사원에 대한 공격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드르 운동’의 바스라 지부는 수니파 사원을 보호하기 위해 메흐디 민병대 병사들을 파견했다.

같은 날 시아파가 다수인 남부 도시 쿠트(‘사드르 운동’ 세력이 매우 강력한 곳)에서 수니파와 시아파 수만 명이 “미국 반대!”를 외치며 함께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또, 곳곳에서 단결을 촉구하는 연합 기도회가 열렸다. 사마라에서 열린 사원 폭파 비난 시위에는 수니파들이 앞장섰다.

후세인 시절 망명한 뒤 영국에 체류하고 있는 좌파 활동가인 사니 라마다니는 이라크의 많은 지역에서 열린 이 시위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중의 정서는 종파적 정서보다 점령 반대 정서가 훨씬 강했다. … 이라크에는 점령 세력과 부역자들이 종파적 공격과 암살단을 이용해 책략을 부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통합된 민족 저항 운동의 등장을 막기 위해 미국이 종파간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2월 28일 알 사드르는 ‘수니무슬림학자연합’ 대표자들과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점령 세력의 음모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를 죄다 죽일 것이다.”

물론 점령군과 부역 세력뿐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들(특히, 시아파)에게도 무차별적 폭력을 휘두르는 종파주의적 수니파 집단들(흔히 이들은 평범한 시아파들조차 미군과 똑같은 적으로 간주한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력은 전체 저항세력(적어도 2∼3만 명으로 추산된다)에서 매우 작은 비중(3백∼1천 명 정도)을 차지할 뿐이다. 흔히 이들과 다른 저항세력 사이에는 심각한 충돌(심지어 때로는 교전)이 있고, 점령에 반대하는 이라크인들의 아주 미미한 지지를 받을 뿐이다. 사실, 이들은 미국의 침략 전에는 이라크에 있지도 않았던 세력이다.

분명 종파주의가 이라크를 분열시킬 위험이 전의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럼에도 이라크인들 사이의 연대는 여전히 강력하다.

부시는 위선적이게도 “이라크의 통합”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점령 세력은 이라크의 안정과 결속을 돕기는커녕 증오와 분열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들은 고비 때마다 분열을 부추기고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 오직 점령 종식만이 이것을(그리고 내전의 가능성을)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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