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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와 깡통전세는 사회적 재난이다. 정부가 책임져라”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오픈 카톡방에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피해를 호소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전세금이 집값보다 큰 깡통전세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올해 만기인 빌라 10만 채 중 6만 채가 집값보다 전세가가 높은 깡통전세일 공산이 크다. 인천 75.4퍼센트, 경기 64.6퍼센트, 서울 61.1퍼센트에 이른다. 최근 전세 사기 문제가 크게 불거진 서울 강서구는 85퍼센트, 인천 미추홀구는 73퍼센트가 깡통전세일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입자들이 아무리 꼼꼼히 따져서 집을 구했다 한들 깡통전세의 위험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정말이지 전세 사기·깡통전세 문제는 세입자들의 부주의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 “사회적 재난”이다.

피해자 지원이 아니라 갈라치는 특별법 반대한다 5월 3일 정부의 전세 사기 특별법 규탄 행진 ⓒ이미진

전세 사기 문제는 이미 지난해부터 터져 나오고 있었는데도 정부는 손 놓고 있었다. 최근 미추홀구에서 세 명이 자살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며 사회적 공분이 커지자 부랴부랴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의 안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까다로운 기준을 들이밀며 피해자들을 갈라치기 하는 안이다(관련 기사:정부의 전세 사기 대책: 까다로운 조건에다 보증금 보상도 없다). 이 때문에 많은 피해자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국토부가 제시한 보증금 기준에서 1500만 원 높다는 이유로, 저는 평생 언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를 지옥 같은 집에서 삶의 희망도 없이 높은 금리와 대출 상환의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9살 아이를 혼자 키우는 한부모 가정입니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듭니다.”(5월 3일 정부의 전세 사기 특별법 규탄 행진에 참가한 한 피해자)

정부가 전세 보증금 4억 5000만 원, 피해자 부부 합산 소득이 연 7000만 원을 넘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를 구별해, 사기성이 분명한 경우에만 지원하고 깡통전세 피해자는 지원하지 않겠다며 선을 긋고 있다. 또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에만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사기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경계선이 매우 모호하다. 결국 이런 기준은 대다수 피해자들을 내팽개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집단 피해냐 아니냐를 지원 기준으로 삼는 것도 불합리하다.

책임 회피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 지원 대상이 돼도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돈을 빌려줄 테니 피해자들이 경매를 받아 집을 사라고 한다. 이러저런 이유로 경매를 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의 집을 LH가 공공임대로 매입해 계속 거주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LH가 공공임대로 매입하더라도 전세 보증금은 돌려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 기존의 전세 자금 대출은 전혀 탕감해 주지 않고, 30년 만기로 분할 상환하게 해 주겠다고 한다. 떼인 전세 보증금을 평생 갚으며 살라는 것이다.

국토부 장관 원희룡은 “개인 간 채무 해결”에 국가 재정을 투입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책임 회피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전세 대출제도, 전세보증보험제도 다 도입됐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정책으로 모든 임대사업자들이 ‘갭투기꾼’으로 변질돼 갔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뭐 했습니까?”(이철빈, 5월 3일 정부의 전세 사기 특별법 규탄 행진에 참가한 피해자)

“누가 부동산을 사람이 살아야 할 집이 아니라 다주택자와 사기꾼의 바다로 만들었습니까? 시장에 복무해 무분별한 대출 완화와 부동산 부양책으로 일관해 온 정부 아닙니까? 이에 발맞춰 은행들은 대출 장사를 했고, 다주택자와 사기꾼들이 판을 펼친 것 아닙니까?”(집걱정없는 세상연대 활동가 강지현, 5월 1일 피해자 발언대회)

윤석열 정부도 “다주택자들 세금 깎아 주는 게 세입자들을 위하는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만 온 힘을 쏟고, 막상 세입자들을 위한 대책은 나 몰라라 해 왔다.

원희룡은 “모든 사기 피해는 평등하다”고 했지만, 이제까지 시장 실패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정부는 기업들에게는 이미 많은 것을 하고 있고, 할 계획도 많습니다. 여러 건설 기업들의 부실 채권, 캠코에서 모두 다 매입할 예정입니다. 1조 원 정도 매입할 것이라고 합니다. 2027년까지 4조 원을 만들어서 부실 채권을 구입하는 데 쓰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부가 발 벗고 나서는데, 개인들이 쓰러지는 위기에서는 왜 이렇게 집단적인 구제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입니까?”(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5월 1일 피해자 발언대회)

정부는 부동산 시장 살리기를 우선하며 기업과 은행의 부실 채권을 해결해 주는 데만 힘쓰고 있다. 노동자·서민들이 경제 위기의 피해를 입는 것은 나 몰라라 하면서 말이다.

전세 보증금을 떼이게 된 서민들의 안타까운 일들은 경제 위기의 고통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겨지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런 정부에 맞서 제대로 된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정부·여당은 혈세 낭비 운운하며 서민들의 피해에 세금을 쓸 수 없다고 나오지만, 정부의 세금은 시장과 기업주들이 아니라 노동자 등 서민층의 삶을 살리기 위해 써야 한다.

국회에서는 전세 사기 관련 특별법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은 피해자 요건을 확대하고, 피해자들의 전세 보증금을 정부가 먼저 구제해 주고 주택 매입 등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라고 제안해 왔다(선 구제, 후 구상).

그런데 조오섭 민주당 의원은 자신들의 방안이 “세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민주당도 기본적으로 전세가 개인적 거래라는 관점을 공유하며 세입자들이 큰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적어도 전세금의 50퍼센트는 정부가 세금을 들여서라도 보전해 주자는 안을 냈다. 그런데 최근 정의당은 선 구제, 후 구상 안을 정부가 수용하지 않고 있다며 소액보증금 우선변제권 대상을 확대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이는 전세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된 세입자들에게 일부 금액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전세금 50퍼센트 보전안 보다는 후퇴한 방안이다.

국회에서 국민의힘, 민주당 등과의 협상에 치중하다 보면 후퇴가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거리 운동이 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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