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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혐의’ 민주노총 전직 간부들 구속 기소:
민주노총은 보안법 희생자들을 지켜줘야 한다

보안법 공격은 친북 활동가뿐 아니라 좌파 운동 전체를 겨냥한다. 올해 1월 민주노총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국정원과 경찰 ⓒ출처 〈노동과세계〉

두루 알다시피 5월 10일 검찰(수원지검 공공수사부)이 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전직 간부 4인을 구속 기소했다. 그들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지령문을 받고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를 받아 왔다.

그러나 이 사건은 (보안법 사건이 그렇듯이) 국가 안보의 이름으로 자행된 윤석열 정부의 마녀사냥이다.

그 노조 활동가 4인 기소는 검찰이 윤석열의 대통령 취임 1년에 바친 선물이다. 윤석열은 지난 3월 민주노총 간부들의 간첩 혐의가 많이 포착됐다는 수사 내용을 거론하며 대공 수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 강화를 핵심 국정 목표로 삼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윤석열의 주안점은 한미일 삼국의 안보 협력 강화였다.

그와 동시에,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주로 친북 좌파 활동가들을 탄압하고 있다. 특히 간첩 사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북한 위협”을 가까이에서 실감하게 하는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공격은 사상·표현의 자유라는 핵심적인 민주적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함의상 친북 활동가들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윤석열은 안보를 강화해야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윤석열은 북한과 ‘내통’한 사람들의 민주적 권리는 간단히 무시하고 있다. 검찰은 기소도 하기 전에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렸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는 윤석열이 입만 열면 외치는 법치 민주주의의 원칙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훼손하는 행위다.

측면 지원으로 우파 언론은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보안법 피해자들을 ‘간첩’으로 단죄했다.

“간첩 노조?”

검찰은 관련 노조 활동가들이 북한 공작원과 처음 상견할 때 본인 인지 표지를 제시한 것을 두고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검찰은 역대 보안법 사건 중 최대 규모인 90건의 북한 지령문과 24건의 대북 보고문을 확보했다고 했다. 거창한 발표에 비해 실 내용은 대단한 게 없다.

실체가 불분명하거나(‘주요 국가기관 인물 포섭하라’), 부풀려져 있거나(‘민주노총 조종 및 장악 시도’), 북한의 지령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들이다(‘이태원 참사나 화물연대 파업 등 민주노총을 정치투쟁 선동에 동원하라’).

민주노총은 아직까지 이번 구속 기소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5월 10일 YTN이 “민주노총은 일부 조직원의 개인적인 일탈일 뿐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록 민주노총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그 내부에 기회주의적인 자세가 만만찮음을 짐작케 한다. 아마 우익들이 민주노총을 “간첩 노조”라고 비난하는 것을 의식한 언론 플레이였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노총을 “노동운동을 빙자한 간첩단이 암약하는 근거지”(당대표 김기현), “북한 대남공작의 지부”(원내대표 윤재옥)라고 비난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간첩 노조”라니, 논리의 비약이 한심한 수준이다.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맞서 권익을 지키기 위해 정견과 크게 관계없이 모여서 만드는 방어적 조직이 노동조합이다.

원칙적으로 노동조합은 국민의힘 후보를 찍는 사람부터 자본주의를 전복하길 바라는 혁명가까지 정치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가입한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비록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정치조직들을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다른 노동조합보다는 조금 많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소수다).

물론 북한을 남한보다 낫다고 여기는 조합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이런 친북 사상을 가진 노동조합원들을 솎아 내려 할 때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다음의 유명한 경구를 떠올려야 한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 한사코 싸우겠다.”

볼테르의 전기 작가가 볼테르의 신념을 요약한 이 말을 바꿔 말하면 이렇다: 사상의 차이는 참을 수 있으나 사상의 자유에 대한 탄압은 참을 수 없다. 진실이니, 정의니 하는 말들이 사라진 이 시대에 특히 새겨야 할 원칙이다.

노동자연대가 한결같이 취해 온 입장이기도 하다. 노동자연대는 북한 사회가 사회주의이기는커녕 남한과 꼭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대중을 억압하는 자본주의의 변형태일 뿐이며, 따라서 아래로부터의 혁명에 의해 전복돼야 한다고 언제나 주장해 왔다.

이런 기본적 입장에 따라 우리는 북한 사회의 진정한 성격을 놓고 친북 좌파 활동가들과 의견을 달리해 왔다.

그러나 국가가 친북 활동가들을 탄압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한결같이 반대했다. 그들은 북한 관료(북한 사회의 지배계급)의 일부가 아니라 남한 피억압자 운동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일부 좌파들은 국가보안법은 반대하지만 북한 국가를 지원하는 간첩 행위는 방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관련 친북 활동가가 누군가를 죽이거나 다치게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일관되게 실천에 옮기려 했다면 그 행위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이다.

민주노총이 보안법 마녀사냥 희생자들을 방어하고 나서면 윤석열의 보안법 공격 반대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일반적인 보안법 반대 운동에 이름이나 올리고 돈 좀 대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자기 사건에 구체적인 저항을 제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회피하면 우익들은 그다음에는 민주노총이 만들겠다는 ‘진보연합당’을 두고도 ‘간첩당’이니, ‘친북 정당’이니 하며 물어뜯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