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서울시 양천구에서 30대 전세 사기 피해자가 뇌출혈로 목숨을 잃었다. 올해 2월과 4월 전세 사기 피해자 3명이 자살한 데 이어 네 번째 희생자다.

그는 전세 보증금 3억 원 중 2억 4000만 원을 대출로 마련했다고 한다. 전세 사기로 보증금을 날리고 빚만 남게 될 것이라는 걱정과 스트레스 속에 대출 이자, 소송 비용 등 마련을 위해 밤낮 없이 일하다 건강이 크게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자들은 이토록 절박한데 정부·여당은 계속해서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더는 외면 말고 정부가 책임져라 5월 8일부터 국회 앞 농성장을 차린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 ⓒ정선영

이 때문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이하 피해자 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는 5월 8일부터 국회 앞 농성장을 차리고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5월 8일 기자회견에서 안상미 피해자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안은] 결국엔 피해자들이 다 빚에, 빚에, 빚을 떠안고 평생 그걸 갚아야 한다는 거예요. 알맹이 없는 빛 좋은 개살구 지원책을 통과시키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우리들을 속이는 일입니다.”

피해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세 보증금을 떼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안에는 피해자들의 전세 보증금을 구제해 주는 내용은 전혀 없다.

정부의 대책은 대출을 해 줄 테니 경매를 통해 집을 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피해자에게 경매에서 먼저 낙찰을 받을 수 있는 우선매수권을 주고, 대출 지원을 해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안대로라면 전세보증금보다 선순위인 근저당이 있는 경우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대부분 잃는 처지가 될 것이다.

세입자보다 앞서는 근저당이 없어 경매를 받을 수 있는 경우에도 이미 전셋값보다 집값이 떨어진 깡통전세가 대부분인 상황이다.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올해 진행된 주택 경매의 낙찰가는 감정가의 50~6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세입자들은 수천만 원에서 1억 원이 넘는 손해를 보고 원치 않는 집을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기존에 받았던 전세자금대출을 고스란히 갚아야 하고 집주인의 밀린 세금까지 떠안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일부 세금에 대해서는 감면을 해 줬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이 입주하기 전에 생긴 세금은 피해자들이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피해자가 경매를 원하지 않고 거주하기를 원하는 경우 LH가 집을 낙찰받아 피해자가 공공임대로 거주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정부는 피해자들의 보증금은 돌려주지 않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마저도 지원 대상이 되려면 까다로운 선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부는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 피해자를 나누고, 다수의 집단 피해와 소규모 피해를 나누고, 보증금 액수 등을 따져 피해자를 골라내겠다고 한다. 정부의 관심은 피해자 지원이 아니라 지원 대상자를 줄이는 데 있다. 피해자들이 정부의 안을 “피해자 걸러 내기”라며 비판하는 이유다.

전원·전액 구제하라

정부·여당은 “혈세 낭비”라거나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전세 보증금을 지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단지 개인들 간의 사기가 아니라 정부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재난”이다. 이제까지 정부들은 시장 친화적 주택 정책을 쓰면서 사실상 부동산 투기 붐을 조장해 왔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가 민간 임대사업자 제도를 육성하며 다주택자들에게 감세 혜택을 주자 갭 투자를 통해 많은 주택을 보유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러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세입자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떠넘겨진 것이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정책으로 인한 것인 만큼 마땅히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사기꾼이 저지른 전세 사기 피해자이든 집값 하락으로 인한 깡통전세 피해자이든, 보증금이 크든 작든,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전 재산을 날리고 빚더미에 앉게 생긴 모든 피해자들을 구분하지 말고 지원해야 한다.

야당들은 공공기관이 나서 피해자들의 전세 보증금을 먼저 보상해 주고, 추후에 경매 등을 통해 회수하자는 안을 내 왔다.(‘선 구제, 후 회수’) 물론 이는 정부의 안보다는 나은 것이지만 보상해 주는 전세 보증금의 액수를 채권 기관의 심사를 통해 할인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피해자들이 상당한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안이다.

정의당은 전세 보증금의 50퍼센트 이상은 정부가 보전해 줘야 한다며 민주당보다는 나은 안을 냈지만, 이조차 피해자들의 손해가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 정의당, 진보당, 기본소득당이 민주당과 함께 기자회견을 해 정부·여당이 선 구제, 후 회수 안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대신 소액보증금 우선변제권 대상 확대를 요구하겠다고 했다. 이는 전세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된 세입자들에게 일부 금액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전세금 50퍼센트 보전안보다 후퇴한 방안이다.

국회에서 국민의힘, 민주당 등과의 협상에 치중하다 보니 진보 정당들도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후퇴가 보증금을 다 떼이게 생긴 세입자들에게 일부라도 지원하자는 선한 의도일지라도, 이런 선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이 합의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큰 손실을 봐야 하는 많은 피해자들이 고립돼 향후 목소리를 내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현재 나온 안들을 조율해 5월 25일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좋지 못한 합의를 하기보다 정부가 온전히 책임지라고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국회 안에서 협상을 우선하며 요구안을 후퇴시킬 것이 아니라 국회 밖 투쟁을 우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