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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의 ‘간호법 거부권’ 규탄 투쟁 정당하다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는 복지 삭감의 일환이다

윤석열이 5월 16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간호법은 윤석열의 대선 공약이었는데도 뻔뻔스럽게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제 간호법은 다시 국회로 넘어가 재의결에 부쳐진다. 재의결 때는 재적 과반이 출석하고 출석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되므로, 양곡관리법 재의결 때처럼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통과된 간호법에 새로운 내용이 많지 않고, 간호사의 활동 영역에 ‘지역사회’가 새로 들어갔어도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현행 의료법을 따른다.(자세한 내용은 본지 460호 ‘간호법 논란: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 부당하다’를 보시오.)

5월 19일 간호사·간호대 학생 4만~5만여 명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 ‘간호법 거부권’에 항의했다 ⓒ조승진

그런데도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공약 파기의 책임을 민주당에 전가하고자 간호법으로 생길 변화를 과장하며 직역 간 갈등을 핑계 삼았다.

윤석열이 간호법 공포를 거부한 이유는 민주당과 정국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쟁투의 맥락이 있다.

그뿐 아니라, 재정 긴축과 복지 삭감이라는 맥락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양곡법 개정안 거부도 같은 맥락이었다.)

고령화로 노인 돌봄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는 지역사회 돌봄 서비스 확대로 그 수요를 상당 부분 채우려 하는 듯하다. 상당수 노인과 그 가족들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입원보다 그런 방식이 더 낫다고 여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물론이고 전임 문재인 정부조차 그 비용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정부·여당 사이의 이견은 어떻게 하면 그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생색을 크게 낼 수 있을까 하는 데 있다.

사실, 간호사 처우 개선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새로운 내용은 간호법에 거의 없다. 그럼에도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는 많은 간호사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간호사들의 노동조건과 처우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코로나 대응 과정 등에서 간호사들이 한 중요한 구실을 말로만 칭찬했을 뿐 정작 보상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간호법은 그런 간호사들의 사회적 역할을 선언적 수준에서나마 인정한 결과로 여겨졌는데 윤석열은 그조차 거부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잘 조직된 간호사들이 간호법 시행 뒤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간호사의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라고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게 싫을 것이다. 그로 인해 노인 돌봄에 더 많은 재정을 지출하게 될까 봐 우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인 돌봄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 직후, 보건복지부 장관 조규홍은 “고령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의료, 요양,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에는 간호법의 대안으로 (가칭)‘의료요양돌봄통합지원법’을 제정한 후 이 법에 맞춰 의료법·국민건강보험법·노인장기요양보험법 등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계획이 서민층 노인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정부는 2023년 노인 돌봄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공립요양시설 확충, 노인요양시설 증·개축 및 개보수, 치매전담형 노인요양시설 신축 등에 들어가는 예산이 대폭 줄었다. 전국 256곳의 치매안심센터에 지원되는 2023년 사업비도 전년보다 43.8퍼센트 줄였다.

노인 요양서비스에는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 등이 대거 투입되고 있지만 기관의 99퍼센트가 민간업자이고 지자체의 관리·감독도 거의 이뤄지지 않아, 제공되는 서비스가 매우 제한적이고 질도 낮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는커녕, 가뜩이나 시장화된 의료·요양·돌봄을 더한층 시장화(“서비스 산업화”)하려 한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노인요양시설 임대를 허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 보험회사들의 요양시장 진출을 돕고자 시설 규제를 완화하려는 것이다.

이런 규제 완화는 민간기관들 사이의 경쟁과 수익성 논리를 강화할 것이다. 그로 인한 갑작스러운 폐업, 영세시설 난립 등으로 인한 피해는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시설 이용자들이 입게 될 것이다.

현재 의료기관이 아닌 요양시설 대부분에는 의사·간호사 같은 의료인이 상주하지 않는다. 인력 배치 기준도 (사업자의 비용 부담을 이유로) 수많은 예외를 인정하고 있어서, 간호사 없이 간호조무사만 있는 요양시설이 60퍼센트가 넘는다.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의 노동조건도 열악하다.

노인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의료와 돌봄 인력이 충분히 배치돼야 한다. 이것은 국공립 요양시설을 확충하고 충분한 재정을 지원해야 가능하다.

노인에게 양질의 의료·돌봄 서비스가 확대되려면, 복지 삭감에 반대하며 보건의료와 돌봄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동계급의 투쟁이 성장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 맞선 정치적 투쟁이 성장해 복지에 지출을 늘리도록 압박해야 한다.

간호사들의 분노

윤석열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유관 직역간 과도한 갈등’, ‘간호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로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한다며 간호법을 거부했다. 국민의힘은 간호법을 ‘의료체계 붕괴법’, ‘신카스트제도법’이라 비난했다.

공약을 파기한 자들이 사과는커녕 간호사들을 의료체계 붕괴의 주범으로 비난한 것은 간호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간호법이 대선 공약이 아니라고 계속 우기고 있다.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이 간호협회와 한 간담회 ⓒ출처 국민의힘

간호사들은 5월 17일부터 ‘준법 투쟁’을 벌이고, 5월 19일 광화문에서 4만~5만여 명이 모여 ‘간호법 거부권 규탄 및 부패정치 척결을 위한 범국민 규탄 대회’를 열었다. 전국의 많은 간호사가 연가를 내고 참가했고 간호대 학생도 많이 왔다.

간협의 준법 투쟁은 의료현장에서 간호사들이 병원과 의사의 지시로 진행돼 온 대리처방, 대리수술, 대리기록, 채혈, 초음파와 심전도 검사 등을 거부하는 것이다. 의사 부족 등으로 간호사들은 의료법이 허용하지 않는 업무도 많이 해 왔는데, 특히 ‘PA간호사’(진료 보조 간호사)가 투쟁에 얼마나 참여할지 주목받고 있다.

PA간호사는 전국에 1만 명이 넘는데, PA간호사의 업무는 현행 의료법상 허용되지 않아 고발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래서 보건의료노조 등은 PA간호사 문제 해결(제도화)을 요구했다. 하지만 의협 등의 반대 속에서 보건복지부는 이를 방치해 왔다.

간호법 거부권 행사에 항의하는 간호사들의 투쟁은 정당하다.

간호사들이 간호법뿐 아니라 자신의 노동조건과 처우 개선에 필요한 요구들도 적극적으로 내놓고 투쟁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