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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코인 논란:
투기 아니고 투자다?
워렌 버핏은 금융 투자자인가, 금융 투기꾼인가?

김남국 의원을 변호하는 주요 논리 하나는 김남국 의원이 한 일은 투자이지 투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와 투기는 리스크의 크기로만 차이가 나서, 현실 금융시장에서는 구분하기 어렵다.

흔히 투자는 수익성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와 분석에 기초한 합리적 판단에 따른 이익 추구 행위로 여겨진다. 반면, 투기는 그저 ‘한 방’의 시세 차익을 노리는 비합리적 이익 추구 행위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투자와 투기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가령 주식 투자도 대부분은 시세 차익을 노리고 하는 일이다. 반대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투기 시장에 뛰어들 때조차 나름의 정보에 기반해 수익성을 따져 가며 하는 것이지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하지 않는다.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는 암호화폐 거래가 부자들에게만 유리한 도박임을 보여 줬다 ⓒ조승진

투자와 투기를 굳이 구분하자면, 자금을 투입하는 사람이 얼마나 위험을 감수할 태세가 돼 있느냐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무엇보다 투자든 투기든 ‘돈 놓고 돈 먹는다’는 본질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더구나 코인 시장은 투기적 성격이 특히 심해서 완전히 도박판이라고 알려져 있다.(관련 기사: ‘코인 시장은 거대한 도박판 — 규제 강화는커녕 적극 동참한 김남국 의원’)

그럼에도 누구나 한탕을 기대하고 뛰어든 일에 김남국 의원만 못 할 게 뭐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열심히 일해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어 좌절한 서민들이 푼돈 모아 코인을 사 모으는 일과, 진보를 자처하며 당선해 고액의 연봉과 특혜를 누리는 국회의원이 된 자가 거액의 돈을 굴리며 이득을 취해 온 일이 같을 수는 없다.

전자가 자본주의의 소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라면, 후자는 그런 서민들의 푼돈마저 빼앗아가는 부도덕한 행위인 것이다. 게다가 그가 청년·서민의 대변자를 자처했다는 점 때문에 그 위선에 많은 서민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관련 기사: ‘세상은 국힘 대 민주당이 아니다 — 김남국 의원 비판은 윤석열을 이롭게 할 뿐인가?)

불법 아니다?

김남국 의원을 변호하는 또 다른 논리는 그의 행위가 위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불법이 아니라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김남국 의원의 행위는 위법이나 불법은 아닐지라도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수익을 얻으려 한 일임은 분명하다.(탈법인지는 두고봐야 한다.)

사실 법 준수 여부는 핵심적 문제가 전혀 아니다.

법으로 치면, 푸틴의 우크라이나 공격도 러시아 법으로는 합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몇 년 전까지 여성의 운전이 법적으로 금지됐다. 또, 한국에서는 불법인 기업들의 정치자금 제공이 미국에서는 합법이다.

김건희가 수사도 기소도 면제된 것이 검찰이 딱히 법을 어긴 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최고 권력자의 아내이기 때문에 그런 특권을 누리는 것이므로 사람들이 특검을 요구한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들이 합법이라고 해서 정당하다고 해야 할까?

반대로, 법에 저촉되더라도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또는 사회주의적으로) 정당한 행위가 있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화물·건설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점거하거나 공장 출입을 통제하는 행위(피케팅)가 불법이라고 비난하지만, 이런 일들은 파업 효과를 높이기 위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저항 수단이다.

또,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일부 좌파 활동가들의 비폭력 정치 활동을 탄압한다(또한 대단한 정보를 북측 당국에 제공한 것도 아니다). 여기서도 오히려 문제는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보안법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법이 행위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자본주의의 법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질서를 반영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구실을 한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법은 자본가들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체제 전복 기도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다.

그래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과 실천을 헌법이나 실정법 내로 한정하려 하면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도전 역시 가능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전세 사기 피해 문제에서 보듯, 일관되게 서민의 삶을 지키려면 사적 소유 논리와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인식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윤석열 퇴진 운동의 주장만 봐도 정치적 비판에서 위법이 핵심 기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윤석열 퇴진 운동 참가자들의 윤석열 비판은 불법성 때문이 아니다. 부자 감세, 핵오염수 방류 지지,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 반노동 정책, 언론의 자유 단속 등은 법을 어겨서 문제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윤석열이 반대 세력 탄압에 법·질서 준수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왔다.

곽상도에게 ‘대장동 50억 퇴직금’ 뇌물 재판에서 무죄가 나왔기 때문에 그를 비판한 것은 잘못된 일이 된 걸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계급 특권 질서에 대한 비판이 쟁점인 것이다.

‘끝장소송’으로 자식이 저지른 학교폭력을 비호한 정순신을 비판하는 것도 그가 그 재판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다. 자식의 잘못을 무마하는 데 계급적 특권을 사용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런 비판은 윤석열 정부와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특권을 사용하고 이를 변명하는 것에 대한 서민층의 분노를 대변한 것이었다.

우파 비판에 적용된 이런 잣대가 김남국 의원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자기 진영의 부도덕함에는 눈감는 위선 때문에 지지자인 서민층으로부터 환멸만 살 뿐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활동가나 정치인을 판단하는 잣대는 자본주의 법률이 아니라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의 조건과 이익, 의식에 미칠 효과가 결정적인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큰손들의 한탕놀음판에 청년들의 무덤이 된 코인 시장에서, 진보파 정치인을 자처해 온 사람이 큰손의 일부가 돼 돈벌이를 해 온 일은 비판받아 마땅할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