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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논란:
왜 이주노동자를 환영해야 하는가? 열악한 노동조건 문제는?

이 글은 6월 7일에 같은 제목으로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려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중에서는 조선족 등 재외 동포, 결혼이주민, 영주권자만이 가사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데요. 다른 외국인, 주로는 동남아시아 출신자도 가사노동자로 일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올 하반기에는 시범사업이 실시됩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돌봄 서비스 필요가 증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나이 든 부모를 누가 어떻게 모실지를 두고 자녀들이 갈등하는 일을 주변에서 보거나 직접 겪어 보셨을 겁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조부모 등의 도움을 받더라도 무척 힘듭니다.

그러나 돌봄 서비스의 공급은 필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대체로 시장에 내맡겨져 있고, 수익성 위주로 운영됩니다. 개별 가정은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서비스를 비싼 비용을 치르며 이용해야 하고, 돌봄 노동자들의 임금과 처우는 열악합니다.

정부가 돌봄 시설을 직접 운영하면서 양질의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해야 합니다. 돌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대폭 개선돼야 하고, 필요한 교육이 실질적으로 제공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부의 지출이 대폭 확대돼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필요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정부 예산에서 공공 노인요양시설과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모두 전년 대비 20퍼센트 가까이 삭감됐습니다. 오세훈의 서울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돌봄 서비스에 대한 지원 책임을 회피하며 저렴한 노동력 투입으로 때우려고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주노동자들이 가사·돌봄 부문에 유입되는 것을 반대해야 할까요? 가사노동자를 조직해 온 가사·돌봄유니온과 한국YWCA연합회, 노동계 주요 조직인 민주노총, 정의당, 진보당 등은 모두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사실 비슷한 문제가 여러 부문에서 반복돼 왔습니다. 건설노조의 일부 지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배척하는 것을 묵인해 왔습니다. 지난해에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와 조선업계 노조들이 조선업의 이주노동자 고용을 늘리는 정부 정책에 반대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부문들에 이주노동자가 유입될 전망입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숙련된 이주노동자에게 10년 이상 장기 체류를 허용하고, 이주노동자를 더 다양한 직종에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이주노동자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모는 것은 규탄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고 고용되는 것을 환영해야 합니다. 비록 임금과 노동조건이 열악한 부문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야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단결과 연대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서 단연 가장 필수적인 요인입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이주노동자 유입 반대?

물론 노동조합들과 좌파 정당들이 노골적으로 이주노동자 반대를 내거는 것은 아닙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의 경우, 대체로는 그 이주노동자들이 처할 열악한 조건과 차별을 지적하며 반대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조정훈 시대전환 소속 국회의원이 낸 고약한 법안이 반발심을 부추겼을 듯합니다. 그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말고 월급을 100만 원만 주자고 하고 있죠.

정부와 서울시의 계획은 그 정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고용허가제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용허가제의 폐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폐해란 이주노동자의 이직과 업종 변경을 제약해 형편없는 조건을 그들에게 강요하고, 미등록 체류로 내몰고, 살인적인 단속과 추방을 하는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조건과 차별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가령 지난해 조선업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도 차별을 당합니다. 그들은 조선소 내 업무 중에서도 고되고 힘든 일을 맡아 하는데도, 임금은 한국인 조선소 노동자 평균임금의 84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최근에 조선소 이주노동자 일부가 이탈한 일이 있었는데, 이런 열악한 조건과 관련 있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유입을 막으면 그들이 열악한 일자리에서 고통받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행이 막히면 그들은 다른 나라의 열악한 일자리로 가려고 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애초부터 미등록 신분으로 한국에 올 수도 있습니다. 해외로 나가는 게 어렵다면 자국의 더 열악한 일자리에 취업하거나 실업자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발전의 지역적 불균등, 자본주의가 낳는 세계적 불평등과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외국으로 이주해 일하려는 사람들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국제적 인구 이동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몇 년 주춤한 것을 제외하면 국제 이민은 꾸준히 증대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로의 외국인 유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이라도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민하려는 것은 정당하고 당연한 욕구입니다. 이런 움직임을 옥죄고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이주노동자들이 차별받고 고통받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과 차별에 반대한다면, 이주노동자 유입을 억제할 것이 아니라 이민 통제를 반대해 싸워야 합니다.

이주노동자가 유입되면 내국인 고용·임금이 타격을 받는가?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반대하는 주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국인 일자리와 임금을 우선 지키자는 것이 진정한 동기인 것으로 보입니다.

5월 25일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공개 토론회에서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노동 능력과 노동 의사가 있는 중고령자들이 진입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시범사업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5월 28일 KBS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지난해 시행된 가사근로자법이 정착되고 나면 국내 노동자들이 더 유입될 것이다. 그 전에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쓴다고 하면 당연히 내부적으로 반발이 많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진보당은 공식 논평을 내어, “국내 인력보다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를 도입하여 노동의 값을 후려치겠다는 발상이 말이 되는가!” 하며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전에 조선업과 건설업에서도 비슷한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주장들의 전제는 사회적으로 저평가되고 임금이 낮은 이주노동자가 유입되면 그 부문의 임금이 떨어지고 내국인의 고용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우선 일자리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 연구 결과들을 보면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고용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한국 노동자들이 고용 위기를 크게 겪은 것은 1997~1998년과 2008~2009년인데, 당시는 이주노동자 유입이 늘어난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이주노동자 수는 1997년 24만 5000명에서 1998년 15만 8000명으로 급감했지만, IMF 위기로 실업률이 크게 뛰었습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직후에 이주민 수는 거의 변동이 없었지만, 실업률과 실업자 수는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이주노동자 수가 줄었지만 실업률은 올랐습니다. 2020년 한국 전체의 고용률이 1.3퍼센트 감소하고 실업률이 0.5퍼센트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이민자의 고용률은 1.7퍼센트 감소하고 실업률은 2.1퍼센트 증가했습니다. 이주노동자도 내국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경제 위기의 피해자일 뿐 아니라, 내국인 노동자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일부 기간 이외에 우리나라 이주노동자의 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실업률은 큰 변동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일자리 감소가 경제 상황의 악화를 반영하는 것이지 이주노동자 증가 때문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정부 설립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저숙련 부문과 건설업에서는 이민 증가로 내국인의 고용이 적잖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 연구 결과는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이민 증가가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끼쳐서 내국인 건설업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낸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IOM 이민정책연구원의 보고에서도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6년 이주노동자는 생산 효과 54조 6000억 원, 소비 지출 효과 19조 5000억 원 등 총 74조 1000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즉, 저숙련 부문과 건설업도 이주노동자가 유입된다고 해서 내국인 일자리가 자동으로 줄어들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이주노동자 증가가 내국인 노동자 임금 수준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로 주춤했던 이주노동자 수가 다시 증가하는 2013년 이후 통계를 살펴보겠습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이주노동자가 계속 증가하는데, 같은 기간 비정규직의 실질임금도 꾸준히 올랐습니다. 2013~2014년 이주노동자 수가 다소 급격하게 증가하자 일시적으로 비정규직의 실질임금이 감소하는 듯했지만, 장기 추세는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면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 속에서 2008~2010년 이주노동자 수는 제자리걸음이었지만 정규직의 실질임금은 감소했습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돼 이주민 수가 급격히 떨어졌는데, 비정규직의 실질임금도 소폭 감소했습니다.

단결과 저항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노동시장에 저임금, 저숙련의 이주노동자가 새로 유입되는 것이 고용과 임금 감소, 노동조건 악화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로 경제 상황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용과 임금 수준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저항하느냐에 따라 가장 크게 좌우됩니다. 일자리 수나 임금 수준은 고정돼 있는 게 아닙니다. 정해진 몫이 있어서 이를 노동자들끼리 나눠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 몫을 줄이려는 사용자에 맞서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제 상황이 나빠도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투쟁하면 일자리를 지키고 복지를 얻어 낼 수 있습니다. 1930년대 대불황기 미국과 프랑스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런 사례입니다. 한국에서도 노동조합의 상대적 임금 효과는 조사 연구에 따라 4~8퍼센트가량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투쟁에서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이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 시맨스키는 1970년대 미국 50개 주를 비교 연구한 결과, 흑인 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이 강한 곳일수록 백인 노동자의 소득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노동계급의 분열이야말로 일자리와 임금에 해로운 것입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에 대해서도 이런 관점을 적용해야 합니다. 이주노동자 유입이 한정된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볼 게 아니라 그들을 환영하고 조건 개선을 위해 함께 투쟁하고 조직해야 합니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이유로 이주노동자 유입을 반대하는 것은 소박한 연민일 수는 있어도 이런 도덕주의는 아무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맞벌이 부부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 내국인 노동자를 우선 보호하자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협소한 부문주의를 가려 주는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연대와 단결을, 투쟁을 꺼리는 태도인데도 말입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에 반대하는 노조와 정당들은 지난해 시행되기 시작한 가사근로자법이 정착되면 노동조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의 시장 지향적 문제점을 폭로하며 오히려 조건 개선을 위한 연대와 단결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설령 이번에 시범사업을 중단시켜 일시적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유입을 막더라도, 이주노동자 유입을 계속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정부의 주기적 단속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미등록 이주민은 꾸준히 늘어, 올해 4월 기준 41만 명이 넘습니다. 전체 이주민의 약 18퍼센트입니다.

수요가 있으면 이들 중 일부는 가사노동자로 일하려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이 이미 한국에서 ‘불법’으로 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와 좌파 정당들이 이주노동자 고용·유입 제한 입장을 펴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노조나 노동운동을 불신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의존하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또한 내국인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를 고용과 임금 인상의 장애물로 여기는 정서를 부추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부와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가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모두 더 열악하게 만드는 압력이 커질 것입니다.

요컨대 내국인 노동자들을 우선 보호하자며 이주노동자 유입을 제한해서 얻을 ‘이득’은 기껏해야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 노동자들에게는 결국 더 큰 손해로 돌아옵니다.

결론

고령화와 저출산, 이에 따른 정부의 이주노동자 유입 증가 정책 등으로 앞으로 우리는 일터와 일상생활 곳곳에서 더 많은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주민과 직접 부대끼며 친숙해지면 가장 조야한 형태의 편견은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활동가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지배계급이 끊임없이 노동계급의 분열을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국민 국가들로 나뉘어 있고,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들은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인종과 국적에 따른 지배자들의 이간질이 잘 먹혀들 수 있습니다.

이런 이간질이 통하면 노동계급 전체의 힘은 약해집니다. 국경을 넘는 자유로운 이동을 옹호하고 이주노동자를 방어하는 관점이 확고해야 그런 이간질에 일관되게 맞설 수 있습니다. 상이한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추구하는 국제주의 관점이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