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의 기자 이사벨 링로즈가 차별 관련해서 쓴 연재 기사들을 7월 1일 서울 퀴어퍼레이드를 맞아 번역한 것이다.
모든 형태의 차별과 혐오에 맞서려는 이들에게 유익할 것이다.


차별이 어떻게 체제에 뿌리박혀 있는가

차별은, 의료·교육 서비스를 이용하고 집을 구하는 문제부터 직장 내 차별, 개인 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수많은 흑인·아시아인·여성·성소수자를 비롯한 천대받는 사람들이 국가기구의 체계적인 차별에 시달리며, 자신의 삶이 안전하지 않고, 자신이 고립돼 있고 부적절한 존재라고 느낀다.

차별이 우리 사회에 너무 뿌리 깊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차별이 엄청나게 오랫동안 존재해 왔거나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차별은 계급사회와 자본주의의 발전에서 근원하고, 인류 역사의 극히 일부 시기에만 존재했다.

차별이 없던 세상, 즉 성별 다양성에 따른 행위가 수용되거나 피부색에 따라 인종차별을 받지 않던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계급사회가 등장하기 전에는 그런 세상이 존재했다. 차별은 자연스럽지도 영속적이지도 않다.

이 시스템은 차별을 유지·조장하는 데에 물질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가 있는데,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기 위해 차별을 이용한다.

사회주의자들이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은 차별이 지배계급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차별이 사악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차별은 죽고 사는 문제다. 성차별 때문에 여성은 밤에 안전하게 귀가할 수 없다. 성소수자·트랜스젠더 혐오는 증오 범죄로 이어진다.

인종차별 때문에 흑인이 경찰에게 살해될 가능성이 백인보다 더 높다. 차별받는 사람들의 삶은 이런 경험 등에 영향을 크게 받으며, 이것이 바로 인종차별을 없애야 하는 첫째 이유다. 인간과 그 인간의 생각은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는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에게서 나온다고 썼다. 태어날 때부터 인종차별주의자·성차별주의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런 생각은 학습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차별적 생각이 어쩌다 보니 사회에 유포돼 있다거나, 거기서 [차별받지 않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득을 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정치인·국가·언론 등 지배계급은 그들의 필요에 맞는 사악하고 편협한 사상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분열돼 서로를 적으로 여기면, 진정한 책임이 사회 상층부에 있다는 점을 간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책임 전가

그래서 [영국] 보수당이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 사람들을 공격하고 난민을 악마화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이다. 그들은 실패에 대한 자기 책임을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전가할 수 있다.

노동계급은 사회를 바꿀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인종차별·성차별적 메시지 때문에 분열해서는 사회를 바꾸는 싸움으로 단결하지 못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용자들이 의도적으로 분열을 조장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1800년대 전반기에 마르크스는, 인종차별 사상 때문에 영국 노동자들이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아닌 영국인 사용자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적대감은 언론·종교·만화 등 지배계급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에 의해 인위적으로 유지되고 강화된다.”

차별이 오늘날에도 만연한 이유는 차별에 의존하는 사회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성폭행, 성별 임금 격차 등 성차별에 노출돼 있는 것은 계급사회가 등장하며 여성이 가족에 예속됐기 때문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출현하면서 지배계급은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차별에 의존했다.

역차별이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예컨대 여성이 남성을 차별할 수는 없다.

노동계급 남성은 지배계급에게 착취당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른 노동자의 차별에서 이익을 얻는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지배계급도 차별당할 수 있다. [인도계 여성인] 영국 내무장관 수엘라 브래버먼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모두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브래버먼이 겪는 인종차별·성차별은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과] 다를 것이며, 그는 보수당 정부의 내무장관으로서 그런 인종차별·성차별을 필요로 하고 거기서 이익을 얻는다.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한다. 또, 차별에 맞선 투쟁을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투쟁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분열과 고통이 없는 세상을 위한 투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중심이 돼야 한다.


차별에 맞서는 데에 정체성 정치로 충분할까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서 흑인·트랜스젠더·동성애자 같은 정체성이 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사람들은 가혹한 부정의에 시달리기 때문에 정체성을 바탕으로 동지애와 유대감을 나눌 수 있다. 때로는 차별의 고통을 이해하는 당사자만이 차별 반대 투쟁에 나설 이해관계를 갖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공통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조직된 운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은 강력한 시위로 이어졌고, 제도적 인종차별이나 영국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바꿨다.

런던의 트랜스젠더+ 프라이드 행진은 트랜스젠더가 겪는 악의적인 공격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함께 투쟁하는 과정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은 억압자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하지만 정체성 정치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다.

정체성 정치의 약점 한 가지는 파편화의 위험이다. 특정 정체성에 누가 포함되고 누가 제외될까? 그것을 누가 결정할까? 운동이 약해질 때면 정체성 정치에 기반한 단체들은 점점 더 작은 단체들로 분열하곤 했다.

또 다른 약점은 공통의 정체성으로 조직하는 것만으로는 체계적인 차별에 맞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차별은 사회의 계급 분단선을 넘나든다. 사회 상층부의 여성·흑인·성소수자들도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특정 차별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영국 내무장관 수엘라 브래버먼도 인종차별·성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을까? 물론이다. 그가 개인적으로 이를 싫어할까? 그렇다. 하지만 브래버먼은 보수당 정부의 이주민 공격에 앞장서고 있고, 북아일랜드에서 낙태를 허용하자는 법안에 반대 투표했으며, 트랜스젠더를 거듭 공격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차별을 지속하는 체제에 맞서는 것은 브래버먼의 계급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 체제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단결을 위해 필요한 것

모든 여성이나 흑인이나 성소수자들이 [정체성을 기반으로] 단결해도 해방을 쟁취하기에 충분치 않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앞서 얘기했듯이 차별은 항상 존재했던 것이 아니며 그 뿌리는 계급사회의 등장과 자본주의의 발전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시스템을 무너뜨릴 힘이 있는 사회 세력이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답은 바로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은 자본가들의 이윤의 원천이기 때문에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고유한 힘이 있다.

그렇다고 노동계급이 본성적으로 진보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노동계급이어도 흑인·백인, 여성·남성, 트랜스젠더·시스젠더 노동자들이 겪는 경험은 서로 다르다.

여성은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가사 노동과 성적 괴롭힘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겪고 있다. 흑인 노동자는 따돌림, 차별, 징계, 진급 누락을 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백인·남성·시스젠더 사람들은 차별에서 이익을 얻지 않는다. 차별은 지배계급에게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다름 아닌 분열 지배의 수단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마이클 라이히는 1970년대에 흑인·백인 간 소득 불평등을 조사했다.

라이히는 흑인과 백인 사이에 소득 격차가 클수록 부유한 백인과 가난한 백인 사이의 소득 격차도 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종차별의 경제적 결과에는 흑인의 소득 감소뿐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소득 증대, 백인 노동자의 소득 감소도 있다.”

차별당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대개 훨씬 더 힘들지만, 분열 지배는 노동자 전체에게 피해를 준다. 차별로 물질적 이득을 얻는 것은 지배계급이다. 따라서 백인이고 시스젠더이고 이성애자인 노동계급 남성이라도 차별에 맞서 투쟁하는 데에 객관적·물질적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다.

모든 노동계급이 당하는 착취는 단결을 위한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다. 그리고 국가와 시스템에 맞서려면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하지만 단결은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자들은 항상 차별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노동계급 내부의 인종차별, 성차별, 트랜스젠더 혐오 사상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차별에 맞서 ─ 계급투쟁과 해방

차별에 맞선 투쟁에서 강력한 전략이 있다. 바로 계급으로 단결해 싸우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경제 문제에만 집중해서 해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체제에 맞서 싸우려면 차별을 핵심 문제 중 하나로 보고 의식적으로 거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은 사회주의자는 “폭정과 억압의 모든 발현”에 맞서 싸우는 “인민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고 했다.

노동계급이 단결하면, 특히 혁명적 격변기에 단결하면 해방을 향한 전진을 가장 크게 이룰 수 있다.

이 말이 곧 변화가 하룻밤 새 일어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어떤 일이 가능한지를 흘낏 보여 준다.

1871년 파리 코뮌은 잠깐이지만 최초의 노동자 정부를 탄생시켰다. 항쟁 중이던 빈민들을 프랑스 정부가 무장해제 시키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 결과 파리 코뮌이 등장했다.

이 승리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었다. 현장 목격자 한 명은 이렇게 썼다. “여성들이 선두에서 이끌었다. 투쟁에 나선 여성들은 남편을 기다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의 지위가 자동으로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여성들은 코뮌 선거에서 투표권이 없었다.

1918년 독일 혁명은 성소수자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마그누스 히르슈펠트는 “연구·교육·치유·피난처”를 표방하는 성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성 문제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고, 강연을 개최하고, 출판물을 제작했다.

또한 독일의 모든 도시에 성소수자 사교 단체가 설립됐고, 성소수자를 위한 최초의 대중 조직이 생겨났다. 예컨대 인권연맹의 회원 수는 가장 많았을 때 4만 8000명에 이르렀다.

1933년이 되면 베를린의 34개 진료소를 비롯해 독일 전역에 1000개가 넘는 상담 센터가 세워져, 피임과 아동학대·가정폭력 퇴치에 관한 조언을 제공했다.

여성들은 1936년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스트 세력에 맞선 스페인 내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생 공화국 정부가 제정한 1931년 헌법은 보통선거와 이혼의 자유를 보장했다.

1936년 파시스트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카탈루냐에서는 노동자들이 일터를 장악했고 도시 전체를 포괄하는 단체들이 생산 활동을 서로 조율했다.

여성들은 낙태 합법화와 피임약 사용 권리 법제화를 쟁취했으며, 여성이 지역위원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역할을 맡는 일이 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체제 아파르트헤이트를 무너뜨리는 데서는 노동계급의 저항, 특히 파업이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노동자들은 합법적인 노동조합이 없던 1973년부터 공장, 광산, 교통 중심지에서 열악한 조건에 맞서 싸우는 동시에 정치적 요구도 제기하기 시작했다.

남아공 정권이 활동가들을 고문하고 살해할 수는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조직이나 경제적 힘을 파괴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남아공 국가는 혁명으로 쓸려 나가지 않기 위해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011년 이집트 혁명에서도 차별받는 집단이 다시 투쟁의 중심에 섰다. 혁명 이전에는 여성에 대한 성적 괴롭힘이 만연해 있었다. 하지만 혁명을 거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집트의 여성 사회주의자 기기 이브라힘은 당시에 이렇게 썼다. “혁명이 일어나고서, 그리고 내가 18일 동안 타흐리르 광장에서 지냈던 동안, 한 번도 성적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인, 무신론자, 니캅을 쓴 사람, 히잡을 쓴 사람, 혹은 어떤 종교적 의복도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단결해 투쟁했다. 그러나 반(反)혁명이 득세하자 폭력배들은 여성을 표적 삼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종교적 소수자를 공격했다.

투쟁이 쇠퇴하거나 파시스트와 반혁명 세력이 득세하면 차별받는 사람들이 얻은 성과가 가장 먼저 빼앗긴다.

차별 없는 세상을 쟁취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려면 사회주의자들이 그런 투쟁에 동참해 일부가 돼야 한다.

노동계급의 투쟁이야말로 모든 차별과 혐오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정치다 ⓒ양효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