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에서 다음의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은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의 일부다. 개방화·자유화의 압력에 따라 영상문화산업 전반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고 스크린쿼터 축소도 이러한 맥락 하에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이 한미FTA 반대 운동으로 확대되고 있고 한미FTA 저지 범대위의 여러 단체들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주장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스크린쿼터 축소가 세계 영화시장의 85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거대 영화자본의 일방적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거대/중소 자본, 외국/국내 자본의 명확한 선긋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광범한 반미 정서를 우리가 지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문화 다양성과 관련된 문제다. 김어진 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쿼터가 문화 다양성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스크린쿼터가 대자본이 투여된 ‘잘나가는’ 몇몇 영화들과 조폭·코미디 영화들만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크린쿼터 제도 때문에 장르 편중,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난 것이 아니다.

스크린쿼터 제도는 부족하지만 다양성 증진에 일정 정도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극장에서는 흥행성이 부족한 영화라도 ‘쿼터 일수를 채우기 위해서’ 걸어 주기 때문이다.

독립영화협회에서 정부의 지원금을 거부하면서까지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지지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메이저 영화사가 한국 영화 배급을 지배하고 있다는 김어진 씨의 지적도 적절치 않은 근거다. 이들이 제작·배급한 영화들 중에는 예술성 있는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다함께’는 스크린쿼터 문제에서 민족문화가 ‘신화’이거나 ‘신기루’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국민국가의 경계가 만들어내는 문화적 특수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문제를 다루는 영화라 하더라도 국민국가의 경계가 만들어내는 정서적(미학적/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우리가 지지해야 할 문화적 다양성의 범주에는 ‘민족문화’의 특수성도 ― 물론 이것이 특권적 위치를 차지해서는 안 되지만 ―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셋째, 영화산업 노동자들의 상황이다. 스크린쿼터 제도는 불안정하고 영세한 한국영화 ‘제작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이다. 영화산업 노동자들(그리고 예비 노동자인 영화 전공 학생들)은 중소 제작자본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최근 출범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스크린쿼터 지지를 표명했다. 최진욱 위원장은 스크린쿼터 제도로 ‘고용조건이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고용 기회는 분명 늘었고 이는 생존권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는 1994년 미국의 압력으로 스크린쿼터를 축소한 후 자국 영화제작산업이 거의 붕괴했다.

위의 사항들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주장과 운동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야 한다.

김어진 씨의 말처럼 이 운동에는 계급적 주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주장은 운동 ‘안에서’ 제기돼야 한다. 우리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에 참여해 그들과 함께하면서 이 운동을 좀더 ‘왼쪽‘으로 옮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운동 ‘밖에서’ 사회주의자의 원칙만을 주장한다면 성장의 기회와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지지하는, 그리고 우리 주장에 귀기울일 만한 사람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권호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