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8일 프랑스에서 CPE(최초고용계약법)에 반대해 1백5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지난 2월 7일 이후 몇 차례 계속된 대중 시위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영국의 혁명적 반자본주의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가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운동에 대해 말한다.


프랑스 청년들이 반란에 나섰다. 교외 빈민가에서 명문 대학까지, 청년들이 자신들의 노동권을 파괴할 새 고용법에 맞서 거리를 메우고, 대학을 점거하고, 학교를 폐쇄했다.

이 운동은 이제 국가와 직접 충돌하고 있다. 전국의 도시에서 대중 시위가 벌어지고, 날마다 시위 진압 경찰 CRS와 충돌이 일어난다.

오리아나 가르시아는 상시에 파리 제3대학의 학생이다. 그 대학은 2월 24일 시위가 시작되고부터 점거에 돌입했고, 현재 점거에 참가하고 있는 67개 대학(프랑스의 대학은 모두 80여 개다) 중 하나다.

가르시아는 〈소셜리스트 워커〉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운동은 1968년의 정신을 보여 줍니다. 그 때의 반란이 억압에 맞선 것이었다면, 우리의 반란은 신자유주의와 청년들의 노동조건을 19세기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정부에 맞선 것입니다.

“우리의 운동은 지금 매우 중요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정부에 맞서 싸우기에 좀더 유리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지만, 지금 우리의 투쟁은 노동자와 빈민, 실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이 반란을 촉발한 것은 CPE로 알려진 “최초고용계약[법]” ― 고용주들이 26세 미만의 청년 노동자들을 사전 통지나 보상 없이 해고할 수 있도록 한 청년 고용법 ― 의 도입이었다.

CPE는 우파 총리 도미니크 드 빌팽의 작품이었다. 그는 새 법이 방리유(프랑스 도시 외곽 지역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아랍계·아프리카계 이주자들의 고용을 지원하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상시에 대학의 동원위원회 대표 가운데 한 명인 마리 페랭은 새 법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교외[빈민가]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지난해 11월의 폭동, 인종차별 등에 대한 집회와 토론을 조직했습니다. 이 집회들 덕분에 학생들과 많은 노동자들은 우리의 운동이 방리유로 확대돼야 할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확실한 방법은 리세[프랑스의 고등학교]의 고등학생들과 연관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빈민가에 찾아가 소외된 청년들에게 직접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점거는 지난해 여름 성공을 거둔 유럽연합 헌법 반대 운동의 일부이자 지난해 11월 폭동으로 분출된 분노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반전 운동의 일부이자, 프랑스의 파시스트 지도자 장 마리 르펜에 맞선 운동의 일부입니다.”

드 빌팽은 새 법이 방리유[의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보장하는 것인 양 주장하며 노동자, 학생, 실업자 청년들을 분열시키려 한다.

정부는 학생들이 실업자들의 기대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특권을 고수하려는 이기적 집단이라고 매도했다. 많은 신문들이 방리유 주민들은 고용 기회를 환영할 것이라고, 심지어 그 고용 조건이 그들을 이등 시민으로 만들지라도 그럴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들을 내보냈다.

그러나 그 법은 교외 빈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고등학생들은 방리유의 투쟁을 대학생 투쟁의 핵심으로 가져왔다. 그들은 대학생 투사들의 환대를 받았다.

대학생인 아당 실바는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생들에게 우리가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게 우리로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학생들은 주도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그러나 운동에 동력을 제공해 온 것은 고등학생들입니다.

“정부는 이 투쟁을 특권을 지닌 학생들의 반란으로 묘사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광범한 투쟁의 단지 일부일 뿐입니다. 고등학생들, 실업자들, 저임금의 시간제 노동자들, 방리유의 빈민들, 노동자들 역시 이 운동의 일부입니다.”

3월 16일의 학생 시위는 그러한 단결의 중요한 시험대였다.

대학생들이 그들이 점거한 대학에서 나와 행진하는 동안, 파리 곳곳에서 고등학생 시위 대열 ― 방리유에서 온 수만 명이 포함된 ― 이 “저항”을 연호하며 역사적 장소인 센 강 좌안[1968년 투쟁의 주무대]에 집결했다.

오후 2시 무렵 파리에만 15만 명이 집결했다. 전국적으로는 5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많은 고등학교들이 휴업에 들어갔다.

밀랑, 조안, 스테판, 알렉상드라, 앙투안은 그 날 아침 그들의 학교에서 파업을 조직한 뒤 행진에 참가했다.

그들은 〈소셜리스트 워커〉에 이렇게 말했다. “지난 화요일에 우리 학교의 학생들을 데리고 나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 우리 가운데 일부는 학교 정문에서 8시에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파업을 호소했고 학교 전체가 [거리로] 나왔다. 심지어 선생님들조차 우리의 파업을 독려했다. 그들도 새 법안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우리는 배너를 만든 뒤 시위대에 합류하기 위해 행진을 시작했다.”

피에르 튀불은 파리 북부 소재 오노레 발자크 고등학교의 학생이다. 튀불의 학교는 지난 화요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다.

“현 정부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압력을 가하고 거리의 운동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다음 주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클로딘 마르탱은 조합원 18만 명의 교사노조(FSU)의 조합원이다. 클로딘은 시위에 참가한 교사 대표단 가운데 한 명이었다.

“우리는 이 법안을 강력히 반대합니다. 교사로서 우리는 아이들이 그저 기업주들을 위한 재료가 되도록 가르치는 것을 반대합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원치 않습니다. 고용 계약이 없다면 살 집을 얻거나 대출을 받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금, 임금, 고용조건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에도 반대합니다. 현 정부는 우리를 모두 단기 계약직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고용하고 해고하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전 국민이 학생과 청년들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투쟁의 선두에 서 있습니다. 노조들이 이번 주말쯤 우리의 다음 행동 계획을 세우기 위한 집회를 가질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다수는 파업을 원하고 있습니다.”

남부에서 일단의 철도 노동자들이 시위 참가를 위해 상경했다. 제라르와 드니는 남부 도시인 몽펠리에서 온 국영철도(SNCF) 소속의 철도 차장들이다. 그들은 청년들에 대한 공격과 유럽 노동자들에 대한 더 광범한 공세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것은 기업주들이 유럽 전역에서 벌이고 있는 공세의 일부입니다” 하고 드니는 말했다. “따라서 이 반란은 단순히 청년들이나 학생들의 문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 법에 반대하는 운동을 이끌어 왔습니다. 오는 3월 18일에는 1백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시위에 참가할 것입니다.”

“정부는 우리를 엿 먹이고, 청년들을 엿 먹이려고 해요” 하고 제라르는 말했다. “만약 정부가 [법안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거리 시위를 벌여야 합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시위 때문에 정부는 비틀거리고 있다. 드 빌팽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그의 당 소속 장관들은 드 빌팽 때문에 온 국민이 정부에 맞서 단결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냉정을 되찾자고 호소했지만, 지난해 11월 폭동을 촉발한 장본인인 내무부 장관 니콜라 사르코지는 시위 진압 경찰 CRS가 마음껏 시위대를 공격하도록 했다.

CRS는 지난 3월 11일 토요일 밤에 소르본 대학을 습격했다. 역사적 장소인 라탱 지구의 한가운데 있는 이 대학은 1968년 반란의 중심지였다. 사르코지는 소르본 대학 점거 농성자들을 공격해 운동의 맥을 끊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계산은 어긋났다. 소르본의 학생들은 상시에 대학 점거에 합세했고, 반란은 고등학교들로 확산됐다. 화요일이 되자 전국 각지에서 비공인 파업과 작업 거부가 벌어졌고, 소르본 대학 주변에서는 밤마다 경찰과의 충돌이 발생했다.

[시위] 조직자들은 경찰이 목요일 시위를 공격할까 봐 우려했다. 대규모 노조연맹인 CGT와 FO의 노조 활동가들은 행진 대열 앞쪽에서 스크럼을 짜고 경계선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행진 코스를 따라가면서 CRS 주위에 인간 장벽을 쌓았다.

그러나 경찰은 행진 대열을 공격하기로 작심했다. 행진 코스 막바지에 이르자, 진압용 방패를 앞세운 CRS가 시위대의 선두를 에워쌌다. 경찰은 노조 활동가들의 대열에 최루가스를 뿌려 댔고, 체포조가 청년 시위자들을 구타했다.

두 시간이 넘도록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공격하고, 최루탄을 터뜨리고, 최루가스를 쏘아댔다. 그런데도 정부는 방리유에서 온 “훌리건” 깡패들이 문제라고 비난했다.

상시에 대학 학생인 마리 페랭은 정부로서는 판돈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방리유와 연결된 것처럼 노동자들과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법뿐 아니라 유럽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도 좌절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