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교사의 죽음에 분노한 교사들이 3주째 항의 행동을 이어 가고 있다. 폭염에도 수만 명이 거리에 나올 정도로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그 덕분에 교사들의 열악한 교육 환경이 국민적·국가적 이슈로(다시 말해, 정치 문제로) 떠올랐다.

그래서 이 운동은 정치와 운동의 관계라는 오래된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집회 주최 측이 “정치 배제”를 주장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주최 측은 다음과 같은 안내 방송을 했다. “저희 집회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집회로 정치색을 배제하고 있다.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긴 피켓이 보일 경우 숨겨 달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참가자들을 모으고 버스를 대절하며 집회 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을 하는 등 교사들은 실로 자발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순수한 자발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 집회를 발의하고 주도력을 발휘하고 리더십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매주 집회 신고, 집회 무대 설치, 팻말 제작, 연사 섭외 등을 조직할 수 있었겠는가.

집회 주최 측은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나 전교조 등 기존 교원 단체가 조직한 집회가 아니라는 뜻에서 “자발적 집회”를 표방하는 듯하다.

교총은 교장·교감·장학사·교수 등이 고위 임원으로 있고 교육계의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단체이다. 따라서 교총으로부터 독자적으로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좋다.

반면, 전교조는 불신을 받는 진보 교육감들과 동행하는 온건한 개량주의적 실천 때문에 뜻있는 소속 교사들의 신뢰가 크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교총과 도매금 취급을 해서는 안 되는 좌파적인 노동조합이다.

그런데 12일 4차 집회에서는 교총·전교조를 비롯한 6개 교원 단체가 공동 요구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막상 집회 주최 측인 ‘전국교사일동’은 포함돼 있지 않다. 심지어 같은 집회에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측의 발언도 있을 예정이다.

그래서 집회 주최 측의 “정치색 배제” 방침은 혼란스러운 데가 많다.

연대를 위해

운동에서 정치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새롭지 않다.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무수하게 되풀이됐다. 마르크스 시대에도 아나키스트인 미하일 바쿠닌이 비슷한 주장을 했다. 이에 맞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각각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 〈권위에 관하여〉를 써 논쟁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전개된 대안세계화 운동에서도 자율주의 사상 지지자들은 운동이 정치와 분리돼야 한다거나, 정당이 운동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08년 반이명박 촛불 투쟁에서도 비슷한 주장들이 제기된 바 있다.

“정치 배제”의 문제점을 비판하기에 앞서 정치란 무엇인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의 집중된 표현이 정치라고 지적한다. 이 말의 뜻은, 정치를 알려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존재하는 모순, 즉 착취와 계급투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뜻으로는, 정치 영역에는 경제로 환원되지 않는 그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논리는 국가 권력을 둘러싼 투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점에 비춰 교사들의 투쟁을 보자. 교사들은 국가(교육부와 교육청 등)를 상대로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가 교육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적 주장과 행동 없이 어떻게 국가에 맞설 수 있겠는가.

교육 환경을 개선하려면 국가에 맞서야 하는데, 이는 정치적 주장과 행동 없이 가능하지 않다 ⓒ조승진

그래서 “정치 배제”는 공상적이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같은 주류 정당들이 집회 주최 측의 “정치 배제” 호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을 발표하며 미디어는 물론이고 다양한 통로를 통해 집회 참가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려 한다.

운동에서 정치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류 정당들의 그런 영향력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막는 셈이다.

현실에서 그런 “정치 배제”의 그물망에 걸리는 것은 교사들의 투쟁을 일관되게 지지하는 좌파일 것이다. 노동자연대 교사 회원들이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참가자들에게 리플릿을 나눠 주자, 집회 주최 측은 “주최 측의 허가 없는 유인물을 받지 말라”는 안내 방송을 했다.

리플릿을 받고 안 받고는 집회 참가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문제인데도 주최 측은 “정치 배제”를 내세워 통제하려 했다. 물론 그럼에도 수천 명이 리플릿을 받아간 것을 보면, 참가자들이 모두 “정치 배제”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운동에서 정치를 배제한다는 것은 공상이며, 실제로는 그 투쟁을 일관되게 응원하는 좌파를 배제하는 효과를 낼 뿐이다.

비종파적이고 운동의 대의에 충실한 좌파라면 기본적으로 운동의 저변을 넓히고 운동을 전진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점에서 좌파 배제는 교사 투쟁에 대한 연대를 확산하는 데에 장애물이 된다.

교사 수만 명이 폭염 속에서 분노의 행동을 이어 가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는 여간해서는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는커녕 윤석열 정부는 교사들의 교육 환경 개선에 필요한 교육 재정을 삭감하려고 한다.

따라서 교사들의 투쟁이 정부를 효과적으로 압박하려면 더 크고 넓은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광범하고 강력한 연대만이 운동 참가자들에게 싸워 이길 자신감을 줄 것이다.

효과적인 단결을 위해

반대로, “정치 배제”는 운동 참가자들을 효과적으로 결속시키지 못한다.

이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다양한 정서와 개념, 의식이 공존할 것이다. 아무리 초보적인 수준일지라도 나름의 이론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솔리니 감옥에서 순교한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그람시 말대로 “누구나 철학자다.”

그래서 초기에는 광범한 단결을 이루는 듯하다가도, 운동의 국면이 바뀌는 때 참가자들 사이에서 투쟁 방법이나 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두고 이견이 표출된다. 어떤 운동이든 중립적인 정치적 공간을 형성하지 않는다.

가령, 누구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들에게 의지하려 할 수 있고, 누구는 주말 집회보다 더 강력한 행동을 선호할 수 있다.

이때 정직하고 개방적으로 토론하되,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운동 리더들이 “정치 배제”를 내세워 참가자들이 상이한 의견을 내는 것을 막으면 운동 내에서 오히려 비민주성이 강화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