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등교 거부 중인 인혜(가명)의 부친과 통화를 하게 됐다.

인혜는 친구 관계가 파탄 나는 바람에 학교 생활에 의욕을 잃었다. 학교에 오더라도 4교시만 끝나면 집에 보내 달라고 떼를 쓴다. 인혜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었다. 전학을 가면 다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인혜는 학교에서 제안하는 모든 종류의 관계 회복 프로그램이나 상담을 거부했다. 마음을 완전히 닫아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아이와 학부모, 그리고 담임 교사에게 종합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거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퇴를 시켜 달라는 인혜를 억지로 학교에 붙잡아 놓고 있는 것뿐이다.

인혜의 아버지는 답답했는지 나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정에서는 할 만큼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학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어떡합니까.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내 딸을 싫어한다고 하지요. 그럼 그 아이들 잘못입니까? 아니면 내 딸의 잘못입니까?”

관계의 문제에서 잘잘못을 따지려는 응보적 관점에 순간 욱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도 그렇고, 학부모들도 그렇고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려야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대체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래도 나는 인혜 아버지 입장이 이해가 간다. 가정에서 할 만큼 했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은 아니다. 그리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그 원인을 누군가의 잘못으로 치부하려 시도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라도 잠깐 편안해지면 그나마 좋은 거니까. 물론 그것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어제 인혜는 교실에 들어가기 싫다며 눈물을 쏟아 냈다. 요즘 학교 수업은 협력을 중시해 짝 활동, 모둠 활동을 강조하는 편인데, 인혜와 같은 모둠이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없다. 수업 시간은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하는 시간일 뿐이니 공부에 대한 흥미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2학기 들어서는 없던 반항기가 생긴 인혜는 눈빛도 달라지고, 말씨도 달라졌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솔직히 내 힘으로는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이가 조퇴시켜 달라고 찾아올 때마다 나는 또 무력감에 시달린다.

담임 교사도, 부모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나와 인혜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교육 당국의 지원이다. 학생들을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 둬서는 안 된다. 상담 자원과 대안적 교육 자원을 동원해 교사를 지원해 줘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을 돌보는 교사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더 많은 교사를 선발해 학급당 학생 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교육 당국은 현장 교사들의 SOS를 계속해서 외면해 왔고, 견디지 못한 교사들이 집회를 열자 그제야 미흡한 대책들을 내놓았다.

그렇기에 9월 4일로 예정된 ‘공교육 멈춤의 날’은 내게 한 줄기 희망이다. 인혜 같은 학생들을 종합적으로 돌보기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진 학교, 나와 인혜의 부모처럼 진퇴양난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줄 수 있는 학교. 서로 힘든 사람들끼리 다투게 만드는 환경을 애초에 조성하지 않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교사들의 힘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일부 교사들은 우리가 학교를 비우면 인혜 같은 학생들은 어떡하냐고 내게 묻기도 한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수업을 빼먹어서, 학생 상담을 게을리해서 학교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고, 그렇기에 권한이 있는 정부와 교육 당국이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도록 우리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수업 한 시간, 상담 한 시간보다 더 많은 학교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고, 학교가 변해야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공교육 멈춤의 날’ 성사를 위한 교사들의 열망이 크다. 그 열망은 엎어질 위기에 처했던 9월 4일 집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교사들의 노력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이 투쟁이 의미 있게 회생하고 더 많은 교사들이 동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