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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을 다시 변호한다

지난 호(1호) 《열린 주장과 대안》은 보수 정치 세력에 맞서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을 변호했다.

그 뒤 우리가 당혹스러웠던 것은, “낙천·낙선 운동을 지지하고 반노동자 후보에 대해 낙선 운동을 펴기로 결정했다”던(1호, 17쪽) 민주노총이 4월 25일치 〈한겨레〉에서 총선연대를 비판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그 사이에 태도를 바꾼 것일까? 바꿨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닐까?

총선연대가 민중 운동 단체들이 아닌 시민단체들에 의해 지도됐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시민단체들의 성격이 압도적으로 중간 계급적이라는 점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다음의 지적들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정치 개혁과 보수 정치권 심판에도 실패했다. 또, 소극적 운동이었지, 적극적 운동은 아니었다. 민중적 의제와 보수 정당 심판을 정확히 제기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민 운동은 친자본 보수 개혁 노선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시민 운동 일반이 아닌, 특별히 낙천·낙선 운동이 단지 중간 계급의 운동이었는가? 2월 19일 부패 정치인 추방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사람들과 그 대회가 잘 되기를 염원한 사람들 대다수가 중간 계급 시민들이었는가, 아니면 평범한 민중과 노동자들이었는가? 그 운동이 표방한 목표가 중간 계급 시민들만의 지지를 받았는가, 아니면 노동자 계급도 지지했던 ‘국민적’ 또는 민중적 요구였던가? 부패·반인권·반민주 정치인 청산이 ‘친자본 보수 개혁’인가? 말할 나위 없이 그것은 ‘민중적 의제’의 일부이기도 하다.

정치와 경제의 결합

1987년 ‘6월 항쟁’을 떠올려 보자. 그 운동의 핵심 요구는 ‘호헌 철폐, 독재 타도’였다. 그것은 김영삼과 김대중도 지지해 마지않던 요구들이었다. 운동의 정치적 지도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들로부터 나왔다. 비록 실제 투쟁을 기층에서 조직한 것은 학생들이었지만 말이다. 또한 이 운동의 최대 수혜자는 나중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김영삼·김대중 두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6월 항쟁의 저 위대한 역사적 의의가 감소되는가? 항쟁이 노태우의 6·29선언에 포함되도록 만든 양보 조처들은 한낱 두 김씨를 권좌에 앉혔을 뿐인 무가치하거나 반동적인 요구들이었는가?

물론 총선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의 규모와 전투성 모두 6월 항쟁에 견줄 바는 못 됐다. 하지만 그 때와 똑같은 사회 세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때와 똑같은 교훈이 적용돼야 했다. 즉, 운동을 지지하면서도 노동자 계급을 그 운동에 연루시켜, 운동을 급진화시키는 동시에 노동자 계급도 각성시키고 조직하는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은 7∼9월 노동자 대중 파업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의 시너지 효과가 작용했던 것이다. 이것이 지난 세기 초의 마르크스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가 제공한 교훈이다.

반면에, 노동자주의자들은 이번 총선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비정규직 노동자 급증(54%)과 극빈층 증가 등 신자유주의적 질서 재편에 따른 민중 생존권 악화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적 해석이다. 총선연대의 개입 탓이든, 조직 노동자들의 미각성 탓이든, 기성 언론의 외면 탓이든, 어찌 됐든 이번 총선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부패 정치 청산이었다. (이 ‘부패’ 개념에는 반인권·반민주 개념도 포함돼 있었다.) 조직 노동자 운동은 이러한 정치 쟁점에 기권하고 경제적 쟁점을 대신에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이 정치 쟁점에 깊숙이 연루되면서 경제적 쟁점을 동시에 제기할 줄 알아야 한다. 단순히 ‘정치’와 ‘경제’를 대립시키는 것으로는 포퓰리스트적 정치 운동의 주도력을 넘어설 수 없다.

대중 급진화의 특수한 형태

낙천·낙선 운동이 보수 정치권 심판을 제기하지 못하고 인물론에 머물렀고 또 소극적 운동에 머물러, 정치 개혁과 보수 정치권 심판에 실패했다는 것은 온전한 진실이 아니다. 낙천 운동이 처음 벌어지기 시작했을 때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당 차원에서 반대했다. 집권당인 민주당의 태도는 전형적인 위선으로 특징지울 수 있었다. 이 위선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건 그 당 총재 김대중이 대통령으로서 선거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던지라는 총선연대측의 요구를 외면했고, 따라서 이후 검찰이 총선연대측의 활동을 심각하게 제약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낙천·낙선 운동을 지지한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특정 인물들만 반대했는가? TV 토론에 나온 총선연대측 인사들이 단지 특정 개인들만 비판하던가, 아니면 기성 정당 모두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이 더 주된 양상이었던가?

누구를 반대한다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 누구 (그리고 어느 당)를 지지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차원으로까지 나아가기를 총선연대측에 기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려 하는 것과 같다. 시민 단체의 존재 이유는 소위 정치적 ‘중립’에 있는 것으로 표방되고 있고, 바로 이 ‘중립성’ 표방 덕분에 그들의 운동이 기성 언론의 초점이 되곤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지 이데올로기일 뿐, 결코 현실은 아니다. 현실은 시민 운동/단체가 보통 때 기껏해야 공식 정치의 틀 안에서만 ‘중립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총선연대의 일부 핵심 인사들은 정권과 연계돼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몇몇 인사는 수상쩍기조차 하다.

하지만 낙천·낙선 운동의 유력한 특징은 무엇이었는가? 운동은 민주당의 음모였는가? (많은 낙천·낙선 운동 비판자들은 그렇다고 암시하는 듯하다.) 아니면, 서유럽과 달리 대규모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아직 건설되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 대중 급진화가 표현되는 특수한 형태였는가? 보수 정당들의 반격을 받아 주춤하기 전 총선연대가 주최한 집회에 참석해 본 사람들은 집회 지지자들이 사회에 중대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고 또 그러한 변화를 위해 행동하려 한다는 점을 느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급진화’의 의미다. 민주노동당의 존재를 모르거나, 알아도 우리 당이 민주노총의 당임을 잘 모르거나, 또는 자기 선거구에 우리 당 후보가 나오지 않은 급진화하는 청년들이 투표에 기권했거나 민주당 또는 심지어 한나라당의 ‘개혁적’ 이미지를 가진 386 후보들에게 투표했다는 건 매우 있음직한 일이다. 대중적 사회민주당이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 미국에서도 시애틀 시위의 정치적 주도력은 시민 단체들에서 나왔고, 시위를 지지한 학생·노동자·활동가 들은 매우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의 독특한 조합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면, “죽은 세대의 전통은 마치 악몽처럼 산 사람들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대중의 의식은 갑자기 도약하지 않는다. 그나마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출마한 지역에서 평균 13퍼센트의 득표를 한 것은 대단한 일로 평가돼야 한다.

전술의 유연함

민주노동당으로 올 성과를 중간에서 총선연대의 운동이 ‘386‘ 쪽으로 빗나가게 한 역효과를 냈다는 주장은 우리 자신의 얼굴에 침 뱉기다. 총선연대가 부각시킨 반(反)부패 후보에 우리 당 후보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386’ 후보(들)와 우리 당 후보가 나란히 출마한 경우, 필요한 일은 ‘386’ 후보들 개인들에 대해 폭로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안주하기로 한 기성 정당의 본질을 들춰 내는 것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것을 총선연대가 삼갔다는 것인데, 이 또한 총선연대에 기대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성 정당 모두에 반대한다는 것은 좌파 정당인 민주노동당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노동 운동과 민주노동당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민중 운동이 시민 운동을 견인하는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중 운동이 시민 운동을 견인하려면 노동자 운동이 사안에 따라 시민 운동에 대해 종파적 태도를 버리고, 시민 단체들이 이끄는 대중 운동 속에 때때로 연루되는 개입주의적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술적 유연함 없이 그저 경직된 태도로만 일관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새 세대의 급진적 청년들을 시민 단체 지도자들의 자유주의적 개혁 노선에 내맡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총선연대는 눈치 보느라고, 즉 자신들의 운동이 민주당을 이롭게 하는 편파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강하게 고집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식 정치에의 이러한 종속은 중간 계급의 정치적 독립성 결여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우리 당과 노동자 운동이 강력해지면 시민 운동의 상당 부분을 우리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금 강조하는 바지만, 노동자 운동과 노동자 정당이 강력해지려면 시민 운동에 대한 불필요한 경쟁심이나 방어적 태도를 버리고, 또 지나치리만큼 좌파적이길 그만두고, 그들의 운동이 노동자·학생 대중의 지지를 받는 한 그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한다. 구경꾼처럼 그 운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에 일체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그 동안 노동조합 쟁점에만 시야가 갇혀 있던 우리 나라 노동자들은 부패나 환경 또는 인권 문제 등 제반 정치 문제들이 자신들의 쟁점임을 절실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는 않고 계속해서 경제적 쟁점들로써 시민 운동 또는 학생 운동과 차이를 부각시키려는 노동계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현단계 노동자 계급 의식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애써 거스르는 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