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점까지 아제르바이잔 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계 주민 12만 명의 80퍼센트가 아르메니아로 피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기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러시아 간 제국주의 경쟁이 어떻게 다른 지역에서도 참상을 낳고 있는지 보여 준다.


지난주 아제르바이잔군이 분리 독립 공화국[아르메니아계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아르차흐공화국]을 점령하자 6만 5000명 이상의 아르메니아인 난민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탈출했다.

튀르키예의 지원과 러시아의 묵인하에 아제르바이잔은 순식간에 공세를 펴, 1991년 이후 그곳을 통치해 온 분리주의 세력을 제압했다. 아제르바이잔의 공세로 9월 28일까지 나고르노-카라바흐 인구의 절반이 쫓겨났다.

주민들을 아사 직전으로 몰아간 10개월간의 봉쇄 끝에 벌어진 일이다. 이제 아제르바이잔 국가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수많은 차량이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아르메니아로 가는 유일한 도로로 몰렸다.

9월 28일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은 돌아오는 1월까지 자진 해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재통합을 준비하면서 이전의 자치권 제안은 “폐기됐다”고 경고했다.

ⓒ제작 <노동자 연대>

난민들이 직면한 공포의 배경에는 유럽, 중동, 아시아 사이에 걸쳐 있는 남캅카스 지역(지도 참조)을 둘러싼 제국주의 경쟁이 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제국주의 경쟁의 충돌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충돌 지대는 러시아와 발트해 연안 국가들이 접한 북유럽 쪽의 국경에서 시작해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캅카스 지역을 지나 중앙아시아로 이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 충돌 지대를 따라 미국과 러시아, 중국, 그 외 역내 강대국 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됐다. 우크라이나에서 미국 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 간 대리전으로 인해 캅카스 지역에서는 러시아,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이 새로이 동맹을 맺게 됐다.

이제 러시아는 전통적 동맹국인 아르메니아보다 중동과 아시아로 향하는 주요 육로인 아제르바이잔을 전략적으로 더 중요하게 여긴다.

튀르키예는 아제르바이잔과 나흐츠반을 잇는 육로를 건설하고 싶어 한다. 나흐츠반은 아르메니아에 의해 지리적으로 분리돼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다.

그 육로가 열리면 중국과 중앙아시아에서 튀르키예와 지중해로 향하는 새로운 운송로가 생긴다. 그러면 나토와 협력하는 조지아가 역내 교통·에너지 허브로서 갖는 위상을 약화시킬 수 있다.

러시아는 아제르바이잔의 작전을 승인함으로써 아제르바이잔에 군대를 계속 주둔시키고 그 통로를 감독하는 경찰 역할을 하고자 한다. 러시아는 2020년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군대가 충돌한 이후 그곳에 “평화 유지군”을 주둔시켜 왔다(아래 참조).

이를 통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굴욕적 좌절을 겪으면서 절실히 필요해진 승리를 얻을 수도 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탈출해 피난길에 오른 아르메니아계 주민들 ⓒ출처 davit_hakobyan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우크라이나가 위험한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상기시켜 주는 또 다른 사례다. 나토 고위급 인사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지금 무시무시한 전쟁과 핵 절멸의 위험을 키우고 있는 “강대국 경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 충돌에서 어느 한 제국주의 진영을 지지하는 것은 더 많은 전쟁, 더 많은 죽음, 더 많은 난민을 낳을 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토나 푸틴을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참상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캅카스 지역의 제국주의간 경쟁 역사

1991년 소련이 15개 공화국으로 분리된 후 러시아는 크게 약화됐다. 그러나 러시아는 “근외국 지역”이라고 부르는 이웃 국가들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로 이뤄져 있고 에너지가 풍부한 캅카스 지역이 핵심이었다. 러시아의 한 고위 관료였던 킴 차갈로프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이 세계 강대국 간 대결의 장에서 불리한 조건에서 그 대결에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캅카스의 교두보에서 우리의 지위를 지켜야 한다.”

국력이 약해진 러시아는 민족 분열과 분리·독립 분쟁, 내전을 부추기는 데 의존했다.

1991년 분리·독립 세력은 아르메니아인과 기독교인이 주로 거주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아르차흐공화국을 선포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1992~1993년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아르메니아군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장악하려고 전투를 벌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호전적 동맹 나토의 일원인 튀르키예는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전쟁으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이 불안정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에게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 에너지 자원에 접근할 잠재적 교두보였다.

한편 미국은 옛 소련 소속 국가들과 관계를 구축하려 했다. 미국은 냉전 종식 후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패권을 가차없이 다지려 했다.

미국은 아제르바이잔의 옛 스탈린주의 지배계급의 일부에서 기꺼이 협조적인 파트너를 찾을 수 있었다. 전 KGB 비밀 경찰 헤이다르 알리예프는 민주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로 변신했다.

1993년 대통령이 된 알리예프의 권위주의 정권은 나토, 유럽연합, 석유·가스 기업들과 일련의 협정을 맺으며 서방과 더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2003년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일함 알리예프는 그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2020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군대가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충돌했고, 이는 러시아와 튀르키예 감독하의 휴전으로 끝났다.

러시아든 미국이든 어느 제국주의 강대국도 캅카스 인민의 자결권이나 평화에는 진정한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오직 자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증진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