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위기 - 상근 활동가의 전문성 강화가 해결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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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민운동 활동가들이 지난 2∼3년 동안 시민단체의 회원 수 감소와 상근 활동가 재생산, 대안 정책 마련에 실패해 왔다는 사실을 들어 시민운동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시민운동의 활력과 사회적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느낀다. 낙선운동이나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저지 투쟁 때 시민운동 활동가들한테서 받은 인상을 요즘은 찾기 힘들다.
김정훈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2월 열린
또 김혜정 환경연합 사무총장은
최근에는 환경재단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시민운동 활동가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은 듯하다.
하지만 이런 위기 진단은 원인보다는 현상을 나열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또 그 현상도 사실과 다른 것들이 있다.
우선 시민사회의 탈동원화라는 인식은 실제 현실과는 다르다.
2004년 탄핵 사태 때나 2002년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을 때 이에 항의하기 위해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부안 핵폐기장 저지 투쟁과 김선일 씨 사망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 중 상당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그리고 이 모든 투쟁에서 시민운동 단체들은 확실히 질서유지 이상의 활동을 했고 투쟁의 전술을 결정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민주대 반민주 구조의 해체라는 인식도 다분히 일면적이다. 물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정권의 성격이 조금씩 자유주의 쪽으로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04년 연말에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한나라당의 반대로 좌절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주화의 과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오히려 1980년대와 1990년대 내내 민주화 쟁취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 일부 주요 시민단체 지도자들의 인식이었다. 특히 이 경우에 민주화는 주로 절차 민주주의, 의회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협소한 의미로만 한정되곤 했다.
그러다보니 한편으론 개혁적 정부를
특히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대중의 환멸이 광범해진 이후에도 더욱
마지막으로
환경재단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상근활동가들이 전문성 제고가 중요한 과제라고 하면서도 그 중에서 특히 조직 관리와 운영, 예산·정책 결정 등
이는 개혁을 이루는 데 중요한 걸림돌이 사람들의 낮은 의식 때문이라는 엘리트주의와도 연관이 있지만 개혁을 이루는 방법으로 대중 투쟁보다는 주요 시민단체들이 정부와의
물론 이런 일이 어떤 시기에는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아주 잠깐을 제외하고는 경기 침체가 이어졌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추진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결과 극도로 심화한 경제적 불평등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제아무리 개혁적 정부라 해도 양보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고 따라서 자그마한 개혁 조치도 예전처럼 쉽게 쟁취할 수가 없어졌다. 특히 임금이나 일자리 같은 경제적 문제에서는 더욱 그랬다. 각종 복지제도는 생겨나기 무섭게 개악돼 버렸고 노동조건은 악화됐다.
따라서 어지간한 중도적 대안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예컨대 삼성 주주총회에서 항의하는 행동 정도로 삼성과 재벌 기업들이 달라질 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훨씬 줄어들었다. 낙선운동으로
따라서 시민단체들이 지금보다 더 급진적인 대안들을 내놓지 않는다면 예전의 인기와 지지를 다시 얻기는 어렵게 됐다.
그러려면 단지 체제가 낳은 낱낱의 문제들에 항의하고 절차 민주주의를 개선시키기 위해 싸울 뿐 아니라 그 작동 원리 자체에도 ― 지금 그것들은 신자유주의, 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 도전하려 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요 시민운동단체의 지도자들은 이런 대안을 선택하기보다는 더욱 정교한 정책을 만들어 전문적으로 정부와 협상하고, 때로는 정책을 제공하는 길을 선택하려 하는 것 같다.
사실
그런데 이제 와서 상근자들의 전문성 강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제껏 위기를 심화시킨 요인들을 훨씬 강화하자는 것밖에 안 된다.
그보다는 반자본주의 운동이나 반전 운동 같은 급진적인 대중 운동을 건설하려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