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신문〉은 지난 2월부터 시민운동 위기론을 다룬 기사를 연재했다.

많은 시민운동 활동가들이 지난 2∼3년 동안 시민단체의 회원 수 감소와 상근 활동가 재생산, 대안 정책 마련에 실패해 왔다는 사실을 들어 시민운동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시민운동의 활력과 사회적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느낀다. 낙선운동이나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저지 투쟁 때 시민운동 활동가들한테서 받은 인상을 요즘은 찾기 힘들다.

김정훈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2월 열린 ‘시민사회 변화와 시민운동의 새 역할’이란 주제의 토론에서 “민주대 반민주 구조 해체, 시민사회 탈동원화 … 등의 외부 조건과 시민운동가 재생산 문제, 이념의 분화, 권력 감시 운동의 약화 등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위기론의 핵심”이라고 지적하고 “운동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시민의신문〉 3월 6일치)

또 김혜정 환경연합 사무총장은 “더 이상 시민들은 90년대식 운동에 동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식상해하기까지 한다”며 위기의 원인을 시민들의 의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관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최근에는 환경재단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시민운동 활동가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은 듯하다.

하지만 이런 위기 진단은 원인보다는 현상을 나열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또 그 현상도 사실과 다른 것들이 있다.

우선 시민사회의 탈동원화라는 인식은 실제 현실과는 다르다.

2004년 탄핵 사태 때나 2002년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을 때 이에 항의하기 위해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부안 핵폐기장 저지 투쟁과 김선일 씨 사망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 중 상당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총동원령’에 호응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조직된 사람들의 존재는 운동이 확대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투쟁에서 시민운동 단체들은 확실히 질서유지 이상의 활동을 했고 투쟁의 전술을 결정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민주대 반민주 구조의 해체라는 인식도 다분히 일면적이다. 물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정권의 성격이 조금씩 자유주의 쪽으로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04년 연말에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한나라당의 반대로 좌절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주화의 과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오히려 1980년대와 1990년대 내내 민주화 쟁취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 일부 주요 시민단체 지도자들의 인식이었다. 특히 이 경우에 민주화는 주로 절차 민주주의, 의회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협소한 의미로만 한정되곤 했다.

그러다보니 한편으론 개혁적 정부를 ‘반민주’ 세력으로부터 방어하는 데서 더 나아가 그들과 일체감을 느끼고 ‘개혁’ 정부에 환멸을 느낀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내지 않거나 침묵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대중의 환멸이 광범해진 이후에도 더욱 ‘개혁 정부의 개혁’을 기대하며 위로부터의 개혁에만 의존하려 했던 태도가 많은 사람들을 실망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그 동안의 계몽식” 시민운동에서 전문성은 언제나 특별한 가치를 부여받았고 그 결과 몇몇 명망가들과 전문가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상근 현장 활동가들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돼 왔다.

환경재단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상근활동가들이 전문성 제고가 중요한 과제라고 하면서도 그 중에서 특히 조직 관리와 운영, 예산·정책 결정 등 ‘리더십’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싶다고 대답한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전문성’ 자체라기보다는 전문가들이 시민단체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관계가 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개혁을 이루는 데 중요한 걸림돌이 사람들의 낮은 의식 때문이라는 엘리트주의와도 연관이 있지만 개혁을 이루는 방법으로 대중 투쟁보다는 주요 시민단체들이 정부와의 ‘전문적인’ 협상을 통해 위로부터 개혁을 선사하는 것이 실현 가능하고 효과적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일이 어떤 시기에는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아주 잠깐을 제외하고는 경기 침체가 이어졌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추진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결과 극도로 심화한 경제적 불평등(양극화)은 이런 가능성을 거의 막아버렸다.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제아무리 개혁적 정부라 해도 양보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고 따라서 자그마한 개혁 조치도 예전처럼 쉽게 쟁취할 수가 없어졌다. 특히 임금이나 일자리 같은 경제적 문제에서는 더욱 그랬다. 각종 복지제도는 생겨나기 무섭게 개악돼 버렸고 노동조건은 악화됐다.

따라서 어지간한 중도적 대안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개혁’ 정부와 이에 환멸을 느낀 평범한 사람들 모두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 버렸다.

예컨대 삼성 주주총회에서 항의하는 행동 정도로 삼성과 재벌 기업들이 달라질 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훨씬 줄어들었다. 낙선운동으로 ‘걸러진’ 국회의원들은 개혁과는 거리가 멀고 한쪽에서 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막아도 정부는 꾸준히, 심지어 금권·관권을 동원한 부정투표로 건설 계획을 밀어붙였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이 지금보다 더 급진적인 대안들을 내놓지 않는다면 예전의 인기와 지지를 다시 얻기는 어렵게 됐다.

그러려면 단지 체제가 낳은 낱낱의 문제들에 항의하고 절차 민주주의를 개선시키기 위해 싸울 뿐 아니라 그 작동 원리 자체에도 ― 지금 그것들은 신자유주의, 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 도전하려 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요 시민운동단체의 지도자들은 이런 대안을 선택하기보다는 더욱 정교한 정책을 만들어 전문적으로 정부와 협상하고, 때로는 정책을 제공하는 길을 선택하려 하는 것 같다.

사실 ‘탈동원화’나 ‘대중 투쟁의 종말’ 같은 얘기는 1990년대 내내 주요 시민단체 지도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생각이었고 그 동안 시민단체들은 어느 사회운동단체들에 비교해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전문성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상근자들의 전문성 강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제껏 위기를 심화시킨 요인들을 훨씬 강화하자는 것밖에 안 된다.

그보다는 반자본주의 운동이나 반전 운동 같은 급진적인 대중 운동을 건설하려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