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파업 종료 직후 〈매일노동뉴스〉와 〈민중의 소리〉 인터뷰에서 “이번 파업은 승리한 투쟁”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공성 강화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제기하여 정당성을 확보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철도노조가 공공성 강화를 내걸어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비정규직 연대 투쟁에 모범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파업 돌입과 나흘간의 유지 자체를 승리로 간주할 수는 없다. 

1994년 지하철 파업에서 노동자들은 경찰의 광폭한 탄압으로 전원이 연행되면서 물리적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최후까지 완강히 투쟁했다. 덕분에 정치적 자신감과 단결력이 훼손되지 않을 수 있었던 지하철노조는 곧 조직을 추스르고 투쟁에 나섰다.

이처럼 설령 힘의 열세로 어쩔 수 없이 지더라도 단호하게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 비해 철도노조는 파업 대오를 산개해 힘을 약화시킨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를 압박하기에 충분한 힘이었던 “(1만 명의) 대오를 가지고 마지막 결사 항전을 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 불편과 열차 안전을 생각해서 아무런 조건 없이 복귀할 것인가”를 고심하던 지도부는 아쉽게도 파업 중단을 택했다.

따라서 이 파업을 ‘물리적 패배, 정치적 승리’라고 볼 수도 없다.

노조가 저들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취약한 반면, 파업이 끝나자 〈조선일보〉는 강경탄압으로 일관한 철도공사 사장 이철을 ‘철도 파업이 낳은 스타’로 추켜세웠다.

결국, 이번 파업은 철도노조 지도부의 자기제한적 전술과 국가 탄압에 대한 정면대결 회피, 민주노총 지도부의 소극적 연대 등으로 승리의 기회를 놓쳤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파업을 승리라고 평가하는 것은 설득력 없는 변명처럼 들린다. 올바른 평가를 바탕으로 올바른 교훈을 끌어내야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오건호 철도정책연구위원은 공공성 확보를 내건 파업의 의미를 강조한 끝에 임금인상과 인력충원 같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관련된 내용’을 ‘부차적’인 것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사회 공공성 강화와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은 결코 대립하지 않는다. 공공성 확대 운동에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욱 필요하지만, 철도 노동자의 처우 하락과 함께 철도 공공성도 후퇴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라도 노동자들 자신의 ‘경제적 요구’를 내거는 것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