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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스포츠, 자본주의

월드컵, 스포츠, 자본주의

이수현

[편집자 주] 2002년 5월 31일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월드컵 경기가 시작된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월드컵 경기를 보며 열광한다. 이 글은 스포츠와 자본주의의 상호 관계를 분석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기고, 또 그 때문에 스포츠는 거대한 사업이 됐다. 1995년에 미국의 스포츠 관련 산업의 규모는 연간 1천5백20억 달러였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퍼센트가 넘는 것으로, 자동차·보험·식품 관련 산업보다 큰 규모다. 현재 우리 나라 스포츠 산업 규모도 12조 원에 이르며, 2010년이면 27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스포츠와 산업의 결합은 비교적 최근 현상이다. 아주 오래 전 원시 시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됐다. 신체 활동은 노동 과정에서 분리되지 않은 일상 생활의 일부였다. 여가 시간에 즐기는 경쟁적인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았다. 경쟁적인 운동 경기는 소수 군사적·종교적 특권층이 농업 사회의 잉여 생산물을 지배하게 된 계급 사회의 발전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前)자본주의 사회에도 스포츠 비슷한 것은 있었지만 그 사회적 기능은 오늘날과 사뭇 달랐다. 기원전 776년에 시작됐다는 고대 올림픽은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제전의 일부였다. 그 게임에는 여성과 외국인, 노예는 참가할 수 없었다. 현대 올림픽과는 달리, 관람이나 구경이 아니라 군사 훈련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권투, 레슬링, 투창 등 격투기 위주의 종목으로 시작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전사 양성이라는 군사적 목적이 더 분명했다. 농구와 배구처럼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창안된 스포츠도 있다. 농구는 겨울에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배구는 농구보다 더 나이 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덜 격렬한 운동으로 개발됐다. 그러나 이런 운동들은 자본주의의 동학 속에서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스포츠 산업으로 발전하게 됐다.

제국주의

고대 중국과 일본, 그리스, 로마에도 축구와 비슷한 공놀이가 있었다. 각각 츄슈, 케마리, 하르파스톤, 하르파스툼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의 축구와는 달랐다. 그런 운동들은 전혀 경쟁적이지 않았고, 스포츠의 어원인 ‘유희’에 가까웠다.(스포츠는 ‘뛰놀다’를 뜻하는 동사 데스포르테(desporter)의 명사형 데스포르(desport)라는 고대 프랑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은 축구는 19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발전했다. 당시는 19세기 초의 끔찍한 장시간 노동이 점차 사라지고 산업 생산이 안정기에 접어든 때라서, 건강하고 안정적인 숙련·반숙련 노동력이 필요했다. 주말과 휴일의 여가 시간과 대도시화는 대중 스포츠의 길을 열어 놓았다. 당시 축구 팀 가운데 4분의 1은 도시의 노동자 주거 지역에서 성장하기 위해 애쓰던 교회들이 주도해 만들었다. 영국의 프로축구 명문 아스날은 울리치의 병기 창고(아스날은 병기 창고라는 뜻이다) 노동자들이 만들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랭커셔 앤 요크셔 철도 노동자들이 만든 것이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던 영국의 기술자, 군인, 공장 소유주, 선교사들은 세계 각지로 축구가 확산되는 데서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영국의 축구협회는 1863년, 럭비연맹은 1871년, 사이클연맹은 1878년, 육상연맹은 1880년에 각각 설립됐다. 이 시기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세계 각지를 분할 점령해 나가던 바로 그 시기였다. 현대의 제국주의는 자본가들의 영향력이 해외로 확장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자본가들의 영향력이 노동자들 사이에 더 깊이 뿌리내림으로써 국내 노동 계급을 제국주의 프로젝트에 동원할 수 있어야 했다. 제국주의는 민족주의와 인종 차별 사상을 이용해 노동자 대중을 자국의 지배 계급과 연결시킨다. 제국주의 나라들 안에서 스포츠는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구실을 했다. 예컨대 축구는 제1차세계대전 전에만 하더라도 상당히 취약했던 이탈리아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상징이 됐다. 프리드리히 얀이 창안한 투르넨 체조는 나폴레옹 점령에 대항해 독일 민족을 단결시키고 훈련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체조 교사들은 제식 훈련, 분열 행진 등을 가르치고 훈련시켰다. 독일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조치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또, 구베르탱 남작이 현대 올림픽을 제창하게 된 것도 1870∼1871년의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데서 자극받은 것이었다. 그는 영국의 럭비 학교를 방문한 뒤에 영국식 스포츠 교육 체계를 프랑스에 이식하려 했고,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체육을 교육 제도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재 정권 치하의 스포츠는 그 사회적 역할이나 민족주의와의 연계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TV로 중계된 최초의 올림픽인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에서 나찌의 대규모 선전 공세는 절정에 달했다. 광주 민중을 학살하고 집권한 전두환이 서둘러 프로야구를 출범시켰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포츠 게임이 인류의 평화와 우애 증진에 기여하는 비정치적인 행사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20년에 영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내의 중립국이 패전국과 경기를 치른 것에 반발해 연맹을 탈퇴했다. 1930년 제1회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에 패배하자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성난 군중이 우루과이 영사관에 난입해 결국 두 나라 사이의 외교 관계가 단절됐다.

1968년에 멕시코 정부는 올림픽이 돈 낭비라고 생각하는 젊은이 수백 명을 학살한 뒤에야 올림픽을 치를 수 있었다. 1980년에 서방 국가들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면서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코트했다. 4년 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는 그 반대로 소련이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에 항의해 보이코트했다. 1996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은 뇌물 상납 스캔들로 얼룩진 대회였다.

소외

오늘날 수백만 명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과정과 소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력이 사고 팔리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과 일하지 않는 시간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공장·광산·사무실·병원, 어디서든 노동자들은 일하는 시간에는 만족을 느낄 수 없다.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거나 변화시키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이 끝난 뒤, 오직 “자유 시간”에만 노동자들은 자기 존재와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또 느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압도 다수 사람들은 지루한 일상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바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경기장에서, 또는 TV를 통해 게임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잠시나마 해방감을 맛본다. 현실에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9회 말 2사 후 만루 홈런의 짜릿한 묘미를 스포츠에서는 맛볼 수 있다. 공장·광산·사무실·병원에서는 좀처럼 뒤집히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축구장, 야구장, 농구장에서는 몇 번씩 무너지곤 한다. 사람들은 또 자기가 응원하는 선수나 팀, 국가와의 일체감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박찬호에 관한 것이라면 시시콜콜한 것까지 외우고 다니면서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야구 팀이나 한국 월드컵 대표팀의 승패에 일희일비하면서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라. 하지만 스포츠는 수많은 사람들을 한데 불러모음으로써 저항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몇 년 전에 리비아 경찰은 축구 경기장에 모인 군중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자 그들에게 발포했다. 프랑코 치하 스페인에서는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에 야유를 보내고 바르셀로나 팀을 응원하는 것이 정부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운동 선수들의 정치적 저항도 있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복싱 경기(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딴 캐시어스 클레이(나중에 무함마드 알리로 개명한)는 미국에 돌아온 뒤 인종차별에 항의해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 버렸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는 시상대에 오른 미국의 흑인 육상 선수 두 명이 미국 국가(國歌)가 연주되는 동안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높이 치켜들어 주먹을 쥐고 ‘블랙 파워’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것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축구 경기장에 모인 관중의 분노는 상대팀 선수나 응원단을 겨냥하기 십상이고, 욕설에 이어 폭력 사태로 비화하는 경우도 많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합리성”은 우리의 노동뿐 아니라 여가도 지배하고 계획함으로써, 우리의 개성을 보잘것없게 만든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말처럼,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락은 노동의 확장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여가 생활은 스포츠·레저 산업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결국 현대의 스포츠는 국가간 경쟁, 자본주의적 생산, 계급 관계라는 틀 속에 완전히 통합돼 있다. 언론 매체는 스포츠를 이용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공격적인 개인주의, 냉혹한 경쟁심, 엘리트주의, 맹목적 국수주의, 성차별 관념과 인종 차별 관념)를 쉴새없이 퍼뜨린다. 스포츠의 위계 구조는 자본주의의 사회 구조, 경쟁적 선발과 승진 시스템을 반영한다. 성적, 경쟁, 기록으로 표현되는 스포츠의 추동력은 자본주의 생산의 추동력을 비춰 주는 거울이다. 존 하그리브스는 제도 스포츠가 현대 자본주의에 꼭 필요한 ‘유순한 노동력’을 훈련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스포츠와 산업이 “고도의 전문화와 표준화, 관료적이고 위계적인 행정 기구, 장기적인 계획,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 증대, 생산성 극대화, 무엇보다도 소비자와 생산자 둘 다의 소외”라는 특징을 공유한다고 강조한다. “스포츠도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대량 소비를 통해 엄청난 이윤을 남길 목적으로 생산되고 포장되고 시장에서 판매된다.” 생산 관계를 끊임없이 변모시켜야 하고 그에 따라 온갖 사회 관계도 변모시키는 자본주의는 스포츠도 자본의 논리에 맞게 변형시키고 그에 따른 갈등과 투쟁을 만들어 낸다. 진정한 유희로서의 스포츠, 경쟁 압력과 기록 갱신의 강박 관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스포츠는, 사람들이 노동·여가·자연에서 소외되지 않고 경쟁이 아니라 상호 협조에 기초한 사회에서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