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대법원이 박유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제국의 위안부》 속 표현들이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이고,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판결 직후 박유하는 “국민의 사상을 보장하는 자유가 있는지에 관한 판결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할머니들 편에 서서 쓴 책”이라는 헛소리를 덧붙였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부”라며 능멸한 박유하가 ‘사상의 자유’를 들먹이는 것은 듣기가 역겹다.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에 일본 국가의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저 “도의적 책임”만 있다는 것이다. 박유하의 주장은 전쟁 범죄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지배자들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뉴라이트가 박유하를 방어하고 나설 만했다.

특히, 박유하는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으로 묘사하는 등 그 피해자들을 심각하게 모욕했다. 위안소 포주나 일본군 출신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내세우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거나, “피해자였지만 식민지인으로서의 협력자이기도 했다”는 등 역겨운 주장을 늘어놨다. 이것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대법원은 박유하의 이런 주장을 “학문과 표현의 자유”라며 합리화해 줬다. 도대체 위안부 문제가 일본 국가에 의해 자행된 전쟁 범죄였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그 범죄의 피해자를 모욕하는 것을 어떻게 표현의 자유로 합리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전쟁 범죄 피해자 모욕을 표현의 자유라며 존중해 줄 수는 없다 ⓒ출처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송 초기에 유감스럽게도 좌파 일각에서 박유하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후 비난이 빗발치자 거의 잦아들었지만 말이다.

표현의 자유 문제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잣대는 “누구의 자유이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 자유”냐는 것이다. 전쟁 범죄의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주장을 표현의 자유라며 존중해 줄 수는 없다.

《제국의 위안부》 출간 당시 좌파 진영이 항의 운동을 벌여 박유하의 주장을 공론장에서 퇴출시켰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위안부 피해자들은 불가피하게 뉴라이트 등 우익의 지원을 받는 박유하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유하를 고소한 아홉 명의 피해자 중 세 명만 살아계신다. 이번 판결 직후 나눔의 집 관계자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할머니들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이옥선 할머니 등 세 분 모두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지만,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 일본군에게 끌려가 성 노예로 착취당했다. 박 교수 책은 거짓이라고 하신다.”

지배계급의 노선을 반영하는 판결

주류 언론들은 박유하를 옹호하며 무죄 판결이 왜 이토록 오래 걸렸냐며 개탄했다. 〈조선일보〉는 “상식 확인하는 데 6년 걸려야 했나” 제하의 사설을 냈고, 전경련의 나팔수 〈한국경제〉는 “지연된 정의” 운운했다.

한편, 판결 이후 의기양양해진 박유하는 위안부 운동에 대한 비방과 색깔론을 폈다. 위안부 운동은 유죄 판결을 받았는 데 반해 자신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식민지 배상을 북한이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 위안부 문제 운동의 감추어진 목적이다.”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는 박유하가 위안부 운동을 비난한 것을 길게 인용해 보도했다. 박유하 무죄 판결을,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위안부 운동의 대의를 깎아내릴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지배계급은 미·일의 서방 제국주의와 협력하기 위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염원을 내쳐 왔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군사 동맹 강화를 위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을 무력화하는 합의를 기시다 정부와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