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3월 18일 연세대에서 열린 '종교·진보운동·사회주의' 강연회의 발제를 녹취해 정리한 것이다.

박노자 종교 강연회

"짓밟힌 자의 신음소리"

하필이면 왜 이 주제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일종의 변명 같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1∼2년 전에 민중 신학과 가까운 한 기독교 계통의 잡지로부터 현대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을 청탁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엔 '죄송합니다. 못쓰겠습니다'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제 학술 분야가 원래 기독교보다 고대사였기 때문에 불교 공부를 좀더 많이 한 부분도 있었고, 또 신자가 아닌 신분으로 비판하기에는 뭔가가 쉽게 내키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사실 그때 제가 거절의 말씀을 드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이건 굳이 기독교뿐만 아니라 결국 불교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만   '기업 활동에 대해서 이념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기업 활동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얼핏 보면 신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신에 대한 발언이 아니라 현존하는 종교 조직에 대한 발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외국의 사회인류학이라든가 사회학 같은 부문에서는, 특히 종교사회학에서는 요즘  '종교 시장'이라는 용어를 거의 별 거부감 없이 쓰다 보니까 저도 약간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어쨌든 한국의 경우 사찰이든 교회든 예외적인 소수를 제외하면, 일종의 기업 활동으로 보이는 신앙 활동의 형태가 많이 보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떤 이념적 입장에서 비판하기가 왠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업 활동이란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아는 소위 기복 장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사찰이나 교회를 찾을 때는 마음 속에 일종의 거래를 하는 듯한 마음으로 찾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말씀이지요. 예컨대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기도하면 내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겠지" 하고 생각할 때 여기서 신의 축복이란 게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물질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신앙 생활 잘 하고 기도를 잘 하면, 대학교 입학뿐 아니라 예컨대 직장에서도 인간 관계가 원만해져서 안 짤리겠죠. 그러니까, 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결국에는 여유있는 생활하고 잘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통력이 있다,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힘과 거래할 수 있다"는 조직에 가입해서, 헌금이라는 이름이든 성금이란 이름이든 불전이란 이름이든, 어떤 명목으로 거기에다 일종의 물질적 대가를 바치고 그 대신에 상당히 현실적인 성격의 축복을 돌려 받는, 성격의 신앙 생활이 우리한테는 아주 익숙해진 것이고,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기복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복 신앙은 꼭 구체적으로 '자녀 입학하게 해 달라', 아니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 하는 것뿐만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현실 생활이 원만하고, '현실적인 잣대'로 봤을 때 행복한 생활을 초자연적 힘에 의해서 돌려받으려는 것이 기복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찰이든 교회든 수많은 종교단체에서 이와 같은 넓은 의미의 기복을 제공함으로써 상당한 대가를 받고, 또 그 대가로 사찰의 경우엔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대형 불상을 짓고, 교회 같으면 단일 교회로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고, 말하자면 기복 장사를 잘 한다는 것을 건물이나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결국 그런 거래나 장사에 대해서 이념적 입장에서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기복 장사, 종교를 신통력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와 거래하는 곳으로 이해한다는 것, 또는 종교의 대상으로 신이나 초자연적 힘, 또는 그 힘을 빌려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제그제 생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비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혹시 고등학교 때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신라의 이차돈이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신라 법흥왕 때의 순교자 이차돈을 잘 기억하시겠지만, 왕이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도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법흥왕이 이차돈을 희생시킨 거죠. 대신들하고 화해하기 위해서 이차돈을 죽였는데, 결국 대신들의 반대가 무로 돌아가고 불교가 받아들여졌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이야기인데, 혹시 여러분은 이차돈이 순교했을 때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삼국유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이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동기가 됐는데, 이차돈이 참수당하기 직전에 '만약 부처님에게 신통력이 있다면, 부처님에게 기적을 일으킬 권세가 있다면, 내가 죽고 나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예언하고 참수당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피 대신에 하얀 물, 그러니까 우유와 같은 색깔의 하얀 물이 갑자기 목에서 솟아 나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대신들이 부처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무서운 신인 줄 알고 거기에 감복하고 불교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분히 설화적인 이야기이고, 불교를 믿는 수행자의 목을 칠 때 하얀색의 액체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붓다의 본생담(本生譚), '자타카'에서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설화로서는 유래가 깊은 설화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신라에서 생긴 설화도 전혀 아닙니다.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신라 사람들한테 초기의 붓다, 초기의 부처가 바로 기적을 일으킬 만한 힘을 가진 그런 신통한 존재였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 승려나 순교자 이차돈 같은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킬 만한 신통력의 소유자로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백제가 불교를 일본에 전달했다는 것을 상당한 민족적 긍지로 삼는데, 만약  일본서기 , 일본의 공식 역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백제 성왕이 일본에 불교를 전수했을 때, '부처를 믿으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이고 붓다가 나라를 지켜줄 수 있다'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일본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붓다라는 신이 힘이 세고 무서운 신통력을 갖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초자연적 존재였던 것이죠. 그런 면에서 종교에다 초자연적 힘을 부여하고, 종교 전문가들, 성직자들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섭고도 신비한 도사로 생각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고 우리 역사 속에 상당히 깊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건드리기가 상당히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기복과 오늘날의 기복은 상당히 다릅니다. 기복은 복을 빈다는 이야기인데, 복을 누구를 위해서 비는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컨대, 자녀가 수능시험을 볼 때 어머님이 사찰에 가서 대입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입 기도라는 게 결국 내 옆에서 기도를 하는 다른 아줌마의 아들보다 내 아들을 먼저 입학시켜 달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청중 웃음), 기도는 같이 하지만 결국 그 속에는 상당한 경쟁 관념이 내재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현대의 기복은 완전히 장삿속이 되기도 하지만, 아주 원자화된 개인, 말하자면 옆의 아줌마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만을 입학시켜 달라는, 개인·개체 위주의 장사인데, 전통적인 기복이 이것보다는 약간 차원이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 시대 때 미륵상이나 아미타상을 만들고 거기에다 어떤 명을 새겼는가 하면, 나의 부모를 비롯한 칠세(七世) 친척들을 극락왕생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 국토가 태평하고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게끔 하소서 하는 명을 새겼습니다. 결국 나뿐만 아니고 국가 전체가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뭔가를 받도록 비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기복 신앙이라는 것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미 문화 속에 얽히고설킨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가 그 때는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기가 왠지 참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때 제게 어떤 생각이 들었냐하면,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 삼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기복 장사에는 사찰이나 교회라는 공급자가 있는가 하면, 그 장사를 제발 해 달라고 하는 수요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사찰들이 갑자기 없어지고 수요만 그대로 남는다면, 예를 들어 무당이나 점쟁이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수요자로 하여금 이런 기복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공급자나 수요자만을 인격적으로 탓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삼을 순 없다 하더라도 소위 '상도덕'은 문제삼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상도덕' 아시죠? 장사할 때 그래도 어기면 안 되는 일종의 '상도'가 있는데, 기복 장사하는 과정에선 이것이 너무도 많이 어겨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 재벌들끼리 장사를 해도, 만약 LG 휴대폰 쪽에서 '삼성 휴대폰이 곧 고장날 것이니 삼성 휴대폰을 사는 사람은 그것을 행복하게 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악성 흑색 광고를 낸다면 이것은 아마 당장 재판을 받아 상당한 돈을 물을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불신지옥'이라고 외친다면 이건 사실 LG 휴대폰만이 진리고 삼성 휴대폰이 거짓이라는 말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인데. 그걸 또 '불신지옥'이라고 외칠 때에는 꼭 '불신(佛信)지옥', 그러니까 '불교를 믿는다면 지옥이다' 라고 들리기 때문에... (청중 웃음)

이것은 상도덕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장사를 열심히 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도 장사를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청중 웃음)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기업체에서는 고용자를 막 다루면 안 되지 않습니까?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한다고 해서 삼성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삼성말고 무노조 경영하는 곳이 '종교 재벌'들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혹시 대형 교회나 대형 사찰에서 노조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없죠?(청중 웃음)

사실은, 삼성보다 대형 교회에서 주인이 아닌 '밑에 사람'으로 일하기가 훨씬 불안합니다. 대형 교회의 부목이나 전도사, 운전사 정도면   뭐 월급이 박한 건 그렇다 치고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이죠. 주목의 마음에 안 들고 노선을 달리 하면 자르는 데 별 절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노조를 만드는 시도를 2년 전부터 한 것 같은데, 아직 대다수 대형 교회들에 노조가 없습니다. 고용된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대형 교회도 그렇지만 최근 부산의 삼광사라는 대형 사찰에서 노조 탄압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비정규직 사찰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다 사태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매일노동뉴스〉에서 알게 됐습니다. 결국 장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장사를 해서는 무노조 삼성보다 더 못된 장사가 될 것 같아서 좀 문제가 있습니다.

또, 예를 들어, 아무리 장사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기업체가 정치에 부당하게 압박을 주면 안 된다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FTA 투자 협정을 맺고자 하는데 실제로는 이 협정이 체결되면 가장 혜택을 볼 기업체가 어느 기업체인지 뻔하거든요. 삼성입니다. 삼성에서는 아마도 FTA가 맺어지기를 대단히 바라고 있겠지만, 만약에 삼성이 이를 위해 정치권에 상당히 노골적인 로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형 교회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와서 미군을 찬양한다든가 'We Love America!'를 부른다면 이것도 결국엔 일종의 기업체의 정치적 압박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형 교회의 경우에는 미국과의 역사적 관계도 있고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 전체의 정치를 한 집단 위주로 하려고 한다는 건 문제입니다.

또, [그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올 때 드는 생각은,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주류 지식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유 중 하나, 즉 미국을 '새로운 로마제국'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로마제국'처럼 미국이 전 세계를 다스리면서 사람들한테 라틴어 대신 영어를 가르쳐 주고 공동 문화를 만들어 주고 문명의 공간을 확보해 준다." 이것은 미 제국의 주류 지식인들이 제국을 옹호하는 입장의 골자 중 하나인데, 그러면 미 제국의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결국에는 새로운 로마제국의 깃발을 들고 다니는 꼴이 되는데, 예수를 못 박아 죽인 것은 바로 로마제국이 아닙니까? (청중 웃음) 그러니까, 그런 역사적 관계까지 생각하면 이것은 상당히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로마제국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숭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무한의 힘의 상징인 성조기를 숭배하는 것인지 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업체에 대해서 한 가지 문제 삼는 부분이 '탈세'인데, 종교단체 같은 경우엔 탈세도 아니고 '무세'입니다. 세금을 아예 안 냅니다(청중 웃음). 만약, 주요 종교단체들의 수익이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많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예컨대 대형 교회에서 세금을 내서 그 세금 전액이 무상 의료나 무상 교육의 실천에 쓰인다든가, 아니면 단순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선에 쓰인다든가 이런 조건을 내세워 세금을 낸다면 이것은 교리에 반대되는 부분이 전혀 없을 텐데, 어쨌든 탈세도 아닌 '무세'라니 이건 참 '상도덕'상 문제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있습니다(청중웃음).

또, 제가 늘 한국 종교에 관해 문제 삼고자 하는 또 하나의 부분은 '상품 강매'입니다. 일반 회사가 그렇게 하면 당장 걸리겠지만, 예를 들어 종교 재단이 세운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예배시키는 것은 결국 '상품 강매'와 다른 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들이 신앙 시장에서 본인들의 상품을 열심히 마케팅하고 추진하는 것까진 좋은데, 본인들의 회사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학생들한테까지 그 상품을 사게끔 강제한다면 이건 헌법상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상도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주류 종교를 얘기할 때, 이것은 단순히 기복 장사로만 얘기할 수 없는 성질의 훨씬 더 복합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의 한인 사회에 왜 하필이면 교회가 그렇게 많은가 물어보면 그것은 신앙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교회가 일종의 네트워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미국의 한인 사회나 유럽의 한인 사회에서는 '왕따'를 당하게 돼 있습니다. 교회들이 일부러 왕따 시키지 않더라도 저절로 당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바깥에서는 그것이 좀더 극명하게 나타날 뿐이지만, 한국 안에서도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교연, 즉 교회와 교맥을 통해서 맺어지는 것까지 포함하면, 한국에서 흔히 '관계 자본'이라고 말하는 3연, 즉 학연·혈연·지연말고도 '교연'을 분명히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나 사찰의 경우에는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 사회나 기존 질서에 뭔가 신성한 듯한 외피를 덮어 주고 기존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 신의 도움을 받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 평생 살면서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공인(public figure)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주 일찍 초·중·고등학교에서 국가주의적인 주입을 받아 국가를 대단한 숭배 대상으로 삼을 수 있지만, 국가를 존경하기가 좀 힘들어요.

국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 다들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추상적인 국가'를 숭배해도 '구체적인 국가'를 존경하기란 좀 힘듭니다. 존경하고 싶어도 곧잘 무슨 최연희 의원의 성파문이든 무슨 파문이든 (청중 웃음)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상적으로 운동 경기에서 우리 팀이 꼭 이겨야 한다든가 태극기로 상징되는 추상적인 대한민국이 숭배 대상이 돼도 구체적인 대통령, 국회의원, 고급관료들이 존경 대상이 되기는 아무래도 조금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것도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어떤 학교 의식이라든가 어떤 공적인 의식에 대통령을 모신다고 하면 아마 참석자들이 대단히 좋아할 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노무현 씨라는 한 개인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대통령직에 추상적으로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죠. "대통령도 왔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위계 서열에서는 대단히 높은 사람이 온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아마도 노사모 빼고는 인격적으로 노무현 씨를 아주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청중 웃음)
그러니까, '추상적인 권위 인정'과 '구체적인 인격적 존경,' 이 두 가지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우리가 제도적으로도 존경하게끔 돼 있지만, 좀 신비한 옷을 입고 신비한 말씀을 하고 뭔가 신성한 듯한 아우라(청중 웃음), [즉] 후광을 갖고 나타날 추기경님이나 큰스님이다 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제도적인 인정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존경까지도 하게 돼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공인된 종교 지도자들이 이 체제가 나쁘다든가, 이 체제를 우리가 빨리 바꿔야 한다든가, 이 체제의 문제점이 무엇이라는 말씀을 잘 안 하시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청중 웃음), 사실 맞다고 할 수도 없고 틀리다고 할 수도 없는 말씀을 하도 잘하시기 때문에, 이 분들의 존재 자체는 체제를 상당 부분 합리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으신 스님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나 〈중앙일보〉에 인터뷰하시고 법문다운 좋은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에는 별 문제가 없어도   어차피 그 말씀 상당 부분이 당나라 후기나 송나라 때 선사들의 책에서 다 베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말씀이라 별 문제는 없는데   주류 언론에다가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는 대한민국 제도권의 권위를 높여주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이 체제가 인간이 살 만하고 이 체제가 인간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라는 환상을 피지배자들한테 상당히 효과적으로 덮어씌우는 면이 있는 건데 이것은 굳이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작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실,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사람이 여러 가지 주장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피임을 종교적 죄악으로 본 겁니다. 그것이 종교적으로 맞다 틀리다 하는 건 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서 뭐라 할 수는 없는데, 어쨌든 아프리카, 특히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에이즈가 지금 대단히 치성(熾盛)을 부리고 있어서 예컨대 잠비아나 나미비아의 경우에는 에이즈에 전염된 사람이 이미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까지입니다. 이미 나라가 멸종으로 치닫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보호 없는 섹스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대단히 위협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성교시에 피임하지 않을 경우 곧잘 에이즈가 전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교황의 말씀을 듣고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에이즈에 걸려 죽은 사람이 과연 몇 만 명이 되는지 대단히 궁금할 따름입니다.

낙태 수술에 대한 교황의 입장도 아주 단호하셨는데, 현실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는 어차피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낳았다가는 결국 사회적 살인처럼 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낙태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종교 입장을 따라서 많은 여인들이 결국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는데, 결국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빠뜨렸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가 죽었을 적에 한국 언론들도 그렇지만 외국 언론에서도 그것을 언급하는 언론이 몇 군데밖에 안 됐고, 대다수는 요한 바오로를 거의 새로운 성인으로 모시고 그랬습니다. 요한 바오로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여러 언론 중에서도 한두 군데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 지도자의 권위는 세계 지배계급에게 그만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굳이 한국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러한 신성하다 싶은 지도자로 상징되는 종교가 원자화·개체화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결국 '여러분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나 인격의 문제가 되는 것이고, 여러분의 불행은 여러분이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인격을 수양해서 언제든지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리고 구조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신과 종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거래하면 일단 개인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죠.

그런데, 이 메시지는 이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 예수님이나 부처님하고는 별 관계가 없고 바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비자이자 노동자들한테 모든 사회적 문제를 인격이나 수양 문제로 돌리기를 원하는 게 아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기복 장사하는 기업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기업체의 정체는 체제 전체를 합리화하고 공고화하고 아주 당연할 뿐만 아니라 거의 신성하다 싶은 것으로 만드는 기능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해서 한 말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이 제일 유명해졌는데, 그 문장에서는 그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종교는 마르크스가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이자 민중을 위한 아편'이라고 이야기한 건데, 그런 면에서 마르크스는 신음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종교를 찾게 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종교가 단순히 위에서 강요하는 '아편'이라기보다는 이 상황을,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을 사람들이 바꾸지 않는 한은  결국 민중이 저절로 찾게 돼 있는 불가피한 것, 또는 일부분이나마 민중의 현실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종교 이단들이 바로 민중의 반항 의지, 저항 의지를 대변했고, 말 그대로 민중의 신음소리를 담았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종교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지금의 한국 현실을 중심으로 본다면 종교는 과연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에 더 가깝습니까, 아니면 '민중을 위한 아편'에 더 가깝습니까? 둘 다 종교의 기능을 묘사하는 얘기인데 저는 잘 모르겠지만 얼핏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보다 그 신음 소리를 진통시켜 주고 침묵을 강요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상처가 아프지 않게 진통시키는 일종의 마취제에 더 가까운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아주 아플 때 마취제를 먹게 돼 있지만, 마취제·진통제를 먹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당분간 아프지는 않겠지만 상처는 그래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무엇이냐면, 지금의 종교가 기존 체제를 옹립하고 합리화하고 체제로 인한 개인의 불행을 개인적인, 상당히 자기 기만적인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들의 원래 모습이 과연 맞는가 하는 점입니다. 종교가 정말 민중을 위한 아편 정도라면 하필이면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왜 그렇게 오래도록 존재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기만이라면 상당히 빨리 깨우칠 수 있는 부분인데, 또 실제로는 신음하는 소리, 짓밟힌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담지 않은 종교는 지금 봤을 때는 그렇게 오래 안 가요.

예컨대, 최근에 만들어진 소위 신흥종교들 중에는 상당히 빨리 쇠퇴하는 종교들이 꽤 있는데, 통일교만 해도 1960∼70년대에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교세 확장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실제로 교세가 상당히 쇠미해졌습니다. 기존의 신자도 많이 탈락하고 새로운 신자 확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는데,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실제 통일교 교리에서는 이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를 거의 들어볼 수 없다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선명한테 카리스마가 있지만 문선명이 미국의 지도층·지배층하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아무래도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신흥종교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대개 아픈 사람의 신음 소리를 담아 주지 않는 종교는 장수하지는 못합니다.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이 때까지 장수해 온 비밀이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이 분명히 민중 편에 섰던 것이고, 민중의 그 신음 소리를 많이 담고 민중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쪽으로 나아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나 붓다, 무하마드의 카리스마를 이용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용하려면 일단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결국 붓다나 예수님, 무하마드에게 그 카리스마를 만들어 준 것이 아마도 종교 속에 담겨 있는, 그러니까 초기 불교나 초기 기독교, 초기 이슬람에 담겨 있는 상당히 강력한 평등 정신이나 저항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저항 정신이란 말이 아마 지금의 불교를 보면 어울리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제도 불교는 저항과 전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닌데, 실제로 붓다라는 사람   원래 상류계급에 속했다가 진리를 찾겠다고 혼자 뛰쳐나와 6년 동안 고생해 결국 뭔가를 깨달았다는 그 붓다   은 그 깨달은 것이 공(空)과 연기(緣起)라는 진리였는데, 이 진리대로라면 당시 인도 계급 제도인 카스트 제도나 남녀차별이 사실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이 실제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불경을 통해서는 읽어내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대다수 불경들이 붓다가 죽은 뒤 4∼5백 년 뒤에 만들어진 글들입니다. 거기에 붓다가 그렇게 말했다고 돼 있지만, 그건 사실과 전혀 관계 없습니다. 실제 붓다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초기 경전들 중에서도 붓다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담았다고 믿어지는 것은 아마  숫타니파타 라든가 그 정도 경전 몇 개이고요, '니카야',  아함경(阿含經) 이라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기 경전도 붓다가 죽은 지 훨씬 뒤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붓다가 실제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마  숫타니파타 를 보면 대충 알 수가 있겠지만   윤색된 부분도 있고 가미된 부분도 있습니다만   붓다는 처음에 깨닫고 나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평등을 많이 얘기했습니다.

진정한 바라문이 무엇이냐? 바라문은 인도의 성직자 계급입니다. 당시에는 계급 질서 맨 위에 있었다는 성직자 계급인데, 이 바라문에게 붓다가 얘기한 것은 사람 귀하다는 것이 결국에는 남에게 자비를 베풀고 탐욕을 내지 않는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 절대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 사이에서는 '내 종이다, 내 종이 아니다. 동류다, 이류다' 이렇게 서로 차별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다 이런 얘기를 한 것입니다.

붓다가 깨달은 이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공허하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만들어지는 이유와 결과의 순환이다" 이런 것이었는데, 거기에서는 영구한 계급 차별이라는 부분이 개입될 수 없는 그런 가르침을 만든 것입니다.

붓다는 만인 평등을 외치기도 하고, 동물 죽여서 제사 지내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원칙적으로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또, 붓다의 생활 방식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탁발 아니었습니까? 탁발이라 하면 동냥을 구하는 것인데, 실제 붓다가 탁발하면서 뭘 했었냐면 요즘 말로 아마 심리정신과의 상담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중이 밥을 줄 때는 뭘 물어보지 않습니까? 붓다가 그 대답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생활 문제 풀어 주고 어떻게 바르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해 주고, 말하자면 상담을 해 주고 식량을 받는 그런 거래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민중과 아주 가까운 생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붓다는 기적을 절대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신통력이나 기적이라는 부분은 붓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들을 부활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한 여자한테 붓다는 '그래요? 한 번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 마을에서 친척 중에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사람을 한 번 찾아 주면 제가 당신 아들도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하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무슨 얘기냐면, 붓다의 원래 가르침은 신통력, 초자연적 힘, 신이라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겁니다. 붓다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던 거죠. 민중한테 붓다는 존경받는 스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붓다에게 한 가지 좀 아쉬운 점은, 붓다는 일종의 초기 공산주의적인 공동체인 승가를 만들기 위해 국가 권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 제자, 수행자들과 함께 숲 속에서 살기로 한 것인데요. 그것은 어찌 보면 민중과도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효과가 있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그런 저항의 태도, 아주 소극적인 저항의 태도에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붓다는 자기 부인 야쇼타라와 아들 라후라를 내버려두어도 그들을 먹여 살릴 만한 사람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훨씬 더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붓다의 제자들 중에는 대개 수행 생활을 해도 되는 상당한 재력과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결국 그 사람들이 붓다가 죽자마자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 편한 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붓다의 제자 중에는 노예 출신들도 있었는데, 붓다가 죽고 나서는 노비는 스님이 될 수 없다는 계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노비나 왕의 고용자한테는 스님이 되는 기회를 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다가 했는지 아니면 그 제자가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초기 불교의 주류 승단에서 한 것 같은데  , 처음부터 여성이 승려가 되는 데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팔경법'[尼八敬戒]이라는 건데, 여덟 가지로 여승이 남자 승려를 공경해야 한다, 아무리 나이 어린 남자스님이라 하더라도 나이 많은 여자 스님이 먼저 꼭 절해야 한다든가 하는 법들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붓다에게 가탁(假託)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제자들이 만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불교는 상당 부분 아주 초기부터 왜곡되기 시작했고 체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는데, 인도를 통일했다는 아쇼카왕 때는 불교가 왕의 국교가 돼서 거의 원래 정신을 이미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으로 유입된 불교는 이미 절대평등주의적이고 남녀평등주의적인 붓다의 가르침과는 거의 관계 없다 싶은, 이미 체제에 완전히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런데 붓다라는 스승의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후기의 승단, 후기의 승려들이 그것을 계속 이용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고, 바로 그런 붓다의 카리스마는 불교가 그래도 죽지 않고 계속 민중들한테 인기가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한 묘사는 기독교에 대한 묘사와 놀랍게도 비슷합니다. 아마도 복음서를 읽으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특히 누가복음에는 계급투쟁적이라 할까요. 상류 계급에 대한 상당한 혐오감이 담겨 있습니다. '배부른 사람들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배고픈 사람들이 배부르게 되리라' 하고 돼 있고,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렵다'는 말은 체제에 편입된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도 그렇지만 그런 체제 반대적인 발언들이 가장 많은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올 것으로 기술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 로마제국이 망할 것이고, 로마제국에 협력했던 부자들이 결국 벌을 받을 것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서들이 최종 편집되는 것은 180년대라고들 추정하고 있습니다. 180년대에 이미 기독교는 거의 체제에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체제에 협력하고 있던 교단 지도자들이 '부자들이 복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 갈 수 없다'는 예수의 진짜 말씀을 남겨 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예수의 카리스마가 그 사람들한테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만약에 부자들이 하늘나라로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과연 기독교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겠습니까?

이미 2세기의 기독교는 상당히 보수화됐는데, 그래도 예수의 원래 정신은 상징적으로라도 복음서에 담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고, 그런 예수의 정신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짓밟힌 사람들한테 영감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편집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게 4복음서   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   에는 재미있게도 노예의 존재나 노예제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는 겁니다. 예수가 살았다고 믿어지는 1세기 초반에는 노예제가 경제의 주춧돌이었습니다. 노예들이 대단히 많았고, 예수가 부자 보고 하늘나라 못 간다고 했다면 분명히 노예 문제에 대해 발언을 안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노예에 대한 얘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 그러니까 기독교 보수화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이 나중에 '종들이여, 주인들에게 복종하라' 하고 말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그대로 신약에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그 편집 과정에서는 말하자면 대중한테 어필할 수 있는 미끼 밥을 남겨 두기는 했는데, 상당 부분은 바울 사도와 그 제자들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로 메워진 것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기독교도 그렇지만 또 아주 재미있는 예가 이슬람입니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하마드라는 사람은 메카라는 상업 도시에서 '거지가 왜 이렇게 많은가. 왜 부자들은 이렇게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왜 이렇게 못사는가' 이런 불만이 출발점이 돼서 새로운 종교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무하마드와 그 공동체가 메디나에서 망명중이었을 때, 당시에 예배할 수 있는 장소가 무하마드의 집뿐이었는데, 그 집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예배를 봤습니다.

그런데 무하마드가 죽고 나서 무하마드의 계승자 우마르가 거의 맨 먼저 개악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남자와 여자는 예배를 따로 봐야 한다'는 법률을 정한 겁니다. 무하마드의 원래 육성을 담은 코란의 기록을 보면 여성의 권리를 상당 부분 주장했습니다. 이혼권이나 피임권리나 유산상속권이나, 여자와 남자는 원래 알라신에 의해서 평등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등 여성 권리에 대한 주장들이 상당히 많은데, 나중의 이슬람 율법을 보면 이게 상당 부분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슬람권의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상당 부분 서구의 페미니즘에서도 영감을 받지만, '무하마드의 진짜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슬람을 페미니즘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슬람을 보든, 기독교를 보든, 불교를 보든 우리가 살고 있는 계급 사회에서 고등 종교의 스토리는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제가 뭔가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기존 종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것을 결론 삼아 끝내겠습니다.

결국 지금 성직자 집단이 대표하는 기존의 제도권 종교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그 종교를 만들었다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사실, 옛날에 한용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만약 붓다의 가르침이 맞다면 나도 붓다가 될 수 있는 존재인데 왜 사찰에 가서 불상 앞에 절해야 하는가. 나 자신에게 절해도 되는데" 하고 말했습니다. 또는 "명부전에 가서 부모님들이나 내 자신이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 재판관한테 뇌물 주는 것하고 무엇이 다르냐. 결국에는 내가 죄가 없으면 왕생할 거고 죄가 있다면 아무리 빌어도 안 될 텐데, 뇌물 주듯이 비는 게 다 뭐냐" 하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살려서 우리가 기존 종교가 분명히 그 원래 정신과 다른 부분을 당연히 비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 하더라도 속류 마르크스주의자나 스탈린주의자들처럼 '종교, 그 정체는 무용지물이다. 마약이다' 하고 버리기보다는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의 진짜 의지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 사람들한테 그렇게 많은 민중이 모였는지, 왜 그 사람들이 지금도 민중한테 이렇게 귀중한 이름들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수많은 빈민들의 집에 딱 두 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차베스 대통령이죠. 그러니까 양쪽을 상당히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하여튼 왜 하필이면 수많은 빈민들한테 예수는 지금도 이렇게 영감을 주는지, 우리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스탈린주의 식으로 종교를 무조건 팽개치기보다는 종교를 비판함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원래 종교의 모습에 대해 나름으로 애착을 가지는 것도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와의 대담

김하영 :
무릇 모든 종교에는 보수파와 진보파가 있습니다. 가령 불교의 경우, 일본제국주의와 박정희의 "호국불교"가 있었는가 하면, 암베드카르를 지지한 인도 불가촉 천민(달리트)의 불교가 있었고, 또 1980년대 한국의 "민중불교"가 있었습니다. 박노자 동지의 경우 민중불교와 흡사한 데가 적잖이 있는 듯합니다. 민중불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노자 :
한국에서 민중불교의 창시자는 바로 만해 한용운 스님입니다. 민중불교는 일본과 한국에서 1920∼30년대에 상당히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민중불교의 주장이 결국 이거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의 사찰들이 산송장,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시체에 불과한 것이고요, 붓다의 원래 정신이 초기에 수행자 공동체, 즉 승가의 무소유 공산주의적인 생활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원래 승가에서는 한 승려가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게 옷 한 벌과 밥 그릇 하나 정도였고요, 민중한테 상담을 해 주고 민중한테 여러 가지 살고 죽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심어 주고 식량을 받아 살았던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원래 불교에서 모든 고뇌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게 '탐진치(貪瞋痴)'라는 건데, '탐진치'가 뭐냐 하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입니다. 그런데 한용운 스님도 그렇고, 일본의 민중불교도 그렇고, 성냄이나 어리석음보다 가장 무서운 게 탐욕이라고 생각했고, 탐욕을 그 기반으로 삼으면서 늘 재생산시키는 자본주의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자본축적과 확대재생산이라는 것이 심리적으로 분석하자면 결국 탐욕과 공포 심리 없이 개인 차원에서 불가능한 것입니다. 많이 가지려고 탐욕을 내고 낙오자가 될까 봐서 늘 겁에 질리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세계는 만약 축적이 안 되고 확대재생산이 안 되면 죽게 돼 있는 세계인데, 공포와 탐욕의 이중주입니다.

그래서 민중불교는 거기에 주목을 해 "자본주의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중생들이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불교가 생각하는 진정한 인간의 삶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낸 겁니다. 그래서 일본 민중불교 같은 경우 전후에 소수자로나마 남아 있고, 비판불교라는 이름으로 1970∼80년대에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는데, 한국 같은 경우 잘 아시겠지만 1950∼70년대 중반까지는 거의 얘기를 꺼낼 수 없었습니다. 만해 한용운은 민족 지도자로 상당히 우상화됐는데, 그렇다고 해도 만해 한용운의 진짜 사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하영 :
불교가 초기 단계를 벗어날 때 보인 모습은 그리스도교의 수도원 운동과 닮은 데가 많은 듯합니다. 초기 불교의 승가 공동체는 말 그대로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기반은 도시의 상인과 금융업자, 장인 들이었습니다. 이들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았던 거죠.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기부금으로 부유해져, 노예를 부리게까지 됐습니다. 중세 스리스도교 수도원들이 농노를 부린 것처럼 말입니다. 비폭력 교리도 7세기 왕 하르샤 실라디티야의 경우처럼 아주 간단히 무시되곤 했습니다.

이런 모순은 다른 모든 종교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이런 종교적 모순 때문에 또한 각 종교는 부패와 쇄신 운동이 충돌하곤 합니다. 또, 다양한 사회 계급들이 같은 종교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며 충돌하곤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합니까?

박노자 :
노예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원래 불교에서는 스님이 구족계(具足戒)를 받게 돼 있습니다. 구족계를 받아야 자격을 갖춘 스님이 되는 것이고, 이 구족계는 남자 승려의 경우에는 2백50 가지 계율이나 됩니다. 그런데 구족계 내용을 보시면   불교 서점에 가셔서  사분율 이라는 책을 보시면 거기에 내용이 나오는데   그 계율 중에 "금전을 취급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직접 제정한 계율이죠. 또, "노예를 소유하거나 부리면 절대 안 된다"는 계율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계율을 진짜 계율답게 하자면, 노예 내지 농노를 부린다든가 [하는 것은] 불교 공동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아쇼카왕 때 불교가 주류 종교가 된 뒤에는 인도에서도 불교 사찰에서 노예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고요. 중국이나 조선에서는 사찰이 노비를 부리는 데 별다른 제한이 없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국가에서 사대부들이 더 이상 가만두면 안 된다고 사찰의 토지와 노비를 빼앗아서 그렇지, 빼앗기 전까지 사찰들은 주요 노비주 중 하나였습니다.

결국 불교가 중국에 들어서면서부터 초기 계율을 원천적으로 무시해 왔다고 봐야 하는데, 불교의 경우에도 이것에 대한 쇄신 운동이 몇 번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에는 많이 안 들어왔지만, 중국에는 삼계교(三階敎)라는 중세의 민중불교 교단이 있었습니다. 6세기, 7세기에 수나라와 초기의 당나라에서 많이 유행했는데, '다 불성(佛性: 부처로서의 성격)을 갖춘 일체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곧 평등하게 사는 것이 종교의 진짜 교리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운동인데, 당나라 중기 때 탄압을 받아 무산됐습니다.

수많은 쇄신 운동이 있었다는 것은 맞습니다. 기독교만 해도 예를 들어,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주로 루터 교회라든가 칼뱅 교회에서도 출발했지만, 또 한편으로 수많은 소수자 교회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소수자 교회 중에는 예를 들어서 퀘이커라는 종파가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다들 아시죠? 박정희 때 곧은 말씀을 많이 하신 분이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신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한국 종교인이 함석헌 선생이죠. 한국에서 함석헌 선생님이 한국 퀘이커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퀘이커라는 종파가 영국에서 17세기에 만들어졌는데, 퀘이커 교도들이 프로테스탄트 중에서도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트였고요. 국가권력을 부정했고요, 또 제일 중요한 것으로 노예제를 부정했습니다. 미국에서 퀘이커 교도들이 흑인 노예 해방운동에서 늘 선두에 섰습니다. 수많은 다른 소수 종파들이 미국에서 노예제와 전투를 벌였던 것입니다. 지금의 퀘이커는 그 모습이 전혀 아니지만, 18세기 이전에는 계급 타파 운동, 계급 전복적인 운동을 봐도 종교적이지 않은 운동이 거의 없습니다. 종교적이지 않은 속세적인 반계급 운동은 18세기 이후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종교를 좀더 변증법적으로, 말하자면 양면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김하영 :
이라크 전쟁이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충돌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부시 일당은 미국의 보수우익 기독교인 집단입니다. 미국의 보수 우익 기독교는 어떤 성격입니까?

박노자 :
이런 얘기를 들으면 듣자마자 무엇이 생각났느냐 하면,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바티칸의 교황청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합니까? 절대 반대하는 거죠.

그것은 교황청이 꼭 착해서 그런 것이기보다는 만약 전쟁에 찬성한다고 하면 지금 카톨릭 신도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빈민들이 과연 가만히 두겠습니까? 아마 신자들 대다수가 탈락할 것입니다. 어쨌든 교황청은 공식적으로 이번 이라크 전쟁뿐 아니고 1991년 제2차 걸프전쟁도 교황청이 반대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쟁이라고 하는데 기독교는 전쟁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독교 중에서 다수파라 할 수 있는 가톨릭은 전쟁하면 안 된다고 하니 종교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는데, 아까 말씀하신 미국의 일부 기본주의[근본주의]적인 신학자들, 부시와 상당히 가까운 기본주의적인 교파들은 대충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냐면, 인류의 최후가 지금 다가오고 있는데, 그 인류의 최후는 바로 아마겟돈이라고 할 만한 악과 선의 마지막 전투에서 결정될 것이고, 선은 물론 미국이고, 악은 물론 이슬람 세계입니다. 그래서 최종 전투에서는 결국 핵폭탄도 사용될 수가 있는데, 그 최종 전투로 인류가 멸망할 것이고, 인류가 멸망함과 동시에 선택받은 자들만이 "휴거"(携擧: "들어올림", "이끌어 올림"의 뜻)되어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인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끔찍한 이야기인데, 어쨌든 이 얘기가 미국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 중 하나는 지금 미국의 중산층이   한국도 그렇지만   해체 중에 있다는 겁니다. 상당 부분의 중산층의 위치가 하락하고 있는데, 기본주의적인 신앙은 위치가 하락되는 중산층의 불만을 체제가 아닌 종교적인 관심으로 돌리는 데 상당히 사용되는 것입니다.

사실, 미국의 경우 전체 노동인구 중 제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8퍼센트도 안 됩니다. 제조업은 그 비중이 지난 50년 동안 거의 3∼4배 정도 줄어든 것입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돼 지금은 아주 불안정한 서비스 직종을 찾아 헤매야 되는 것이고, 미국은 지금 의료보험이 안 돼 있는 사람들만 해도 4천만 명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적 불만을 종교적인 관심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아까 말씀하신 부시와 같은 종류의 기본주의적인 신학이죠.

김하영 :
최근 덴마크 일간지 〈율란트 포스텐〉이 예언자 무하마드를 모욕적으로 묘사한 만평을 실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서방 세계에서 이슬람 혐오가 인종차별의 가장 뚜렷하고 또 유력한 형태가 됐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이슬람 혐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박노자 :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인터넷을 통해 무하마드 만평을 직접 보신 분들 계십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혹시 독후감이라도 있습니까? 이따가 저도 제 독후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만평을 보면 무하마드는 모자 대신 커다란 폭탄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났느냐 하면, 코란에는 '만약에 이슬람교인 여러분들 중에서 기독교인이나 유대인한테 누군가 악을 끼치면 나(즉, 무하마드) 자신이 최후의 심판의 날에 당신의 죄악을 증거할 것이다' 하고 써 있습니다. 무하마드의 부인들 중에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한 명 있었고요. 무하마드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한테 배운 바도 있고 해서요.

그리고 실제로 유대인들에게는 중세 이슬람 국가야말로 제일 살기 좋았던 곳입니다. 그들은 중세 유럽에서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는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박해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원래 이슬람이야말로 다른 종교, 특히 같은 계통의 기독교나 유대교에 대해 대단한 똘레랑스를 갖고 있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요즘과 같은 자살 공격이라든가 하는 것은 종교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 정치적인 것이고, 무엇보다도 무력감의 발로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율란트 포스텐〉이라는 신문이 무하마드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을 괴롭힌 사람을 내가 최후 심판 때 고발하겠다고 한 무하마드   를 마치 기독교도나 유대인을 죽이겠다고 폭탄을 들고 있는 사람처럼 묘사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역사 왜곡'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까? 무하다드 만평이야말로 종교 왜곡일 뿐이죠.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 만평 중에는 또 어떤 것이 있었던가 하면, 자살 테러로 숨진 사람들이 낙원에 들어서자 무하마드가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처녀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더 이상 여러분들한테 붙일 처녀가 없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인데, 코란은 자살 공격은 물론이거니와 자살 자체를 아주 안 좋게 보고 있습니다. 자살 공격은 이슬람에서 주장된 적이 없습니다.

유럽인들이 요즘은 이슬람에 대한 혐오, 이슬람에 대한 공격의 근거로 삼는 것이 이슬람의 지하드인데, 이 지하드라는 말이 유럽에서는 가끔 '신성한 전쟁', '성전'이라고 번역되는데, 원래 지하드가 무슨 뜻이냐 하면 불교의 용맹정진(勇猛精進)과 똑같은 뜻입니다. 열심히 노력한다는 뜻이에요. 다만 알라신을 받드는 공동체를 외적이 괴롭힌다면 지하드는 방어전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용맹정진을 뜻하는 이 말이 유럽에서 갑자기 신성한 전쟁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 시작하니, 이것은 왜곡 중에서도 아주 심한 왜곡에 속합니다. 유럽인들이 이슬람에 대해서 왜곡하고 일종의 위협으로 꾸미는 것은 말 그대로 상식을 넘는 이야기죠. 뭐 히틀러의 반유태주의 공포하고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김하영 :
그리스도교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개신교의 경우 1980년대에 민중신학에 근거한 민중교회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 운동이나 그 주의주장에 대해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박노자 :
안병무 선생이나 서남동 선생 등 몇 분의 저서를 읽었는데, 이분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기존 교회라는 매개체를 넘어서 예수라는 사건, 예수가 나타났다는 그 사건을 직접 체험하고, 우리와 그 사건과의 관련성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예컨대, 예수는 역사 속의 예수도 있는데 역사 속의 예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 말로는 '오흘로스'(ochlos), 즉 민중이죠. 그러니까 민중에게 둘러싸여 있고, 민중을 위해서 부자들은 축복받을 수 없다고 말한 예수라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우리들 사이에도 예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민중신학의 주장이었습니다.

민중신학자들 중 몇 사람은 전태일 분신 사건 때 대단한 충격을 받았는데, 그들은 분신하고 있는 전태일을 보면서 예수를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이 사람이 예수와 같은 길을 선택한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을 위해 이렇게 자기를 아끼지 않는, 그리고 민중편에 서서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보고, 평등한 세계가 오게끔 노력하는 것이 예수를 재현하는 하나의 체험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기독교 신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원래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자면,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민중신학이 하나의 첩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 1970∼80년대 민중신학의 열기가 높았다가 결국 그것이 주류 교회에서 따돌림을 당해서 대중적인 운동으로 전화되지 못했습니다. 대단히 아쉬운 일이죠.

함석헌 선생님 같으면 민중신학자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실제로 함석헌의 기독교 이해는 주류 신학하고 너무 달랐습니다. 그런데 함석헌 선생이야말로 아마 20세기가 낳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철학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주류" 신학은 귀중한 문화적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김하영 :
천주교는 최근에 교황이 바뀌었습니다.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이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못지 않은 보수파, 전통파인데요. 최근 우리 나라에서 새로 추기경이 된 정진석 추기경도 사회 문제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분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더는 1980년대의 진보 인사가 아니라는 점도 이제는 진부한 얘기가 됐죠. 반면에, 천주교 고위 성직자층의 이런 보수화에 저항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목소리는 들릴까 말할 할 정도로 미약한 듯합니다. 왜 이런지 설명해 주십시오.

박노자 :
한국 천주교는 재미있는 부분인데요. 1970년대 천주교는 반독재 운동의 대명사처럼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외국 학자들이 많이 지적한 부분입니다만, 사실 1970년대 한국의 천주교는 정치적으로 박정희 독재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신학적으로는 전혀 진보적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민중신학이라는 것이 오로지 개신교 속에서, 그것도 기독교장로회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것인데, 천주교 같은 경우 신학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천주교가 군사독재에 반대했던 것은 군사독재가 그만큼 부르주아적인 사회질서를 위협한다는 의식이 있어서였기도 했습니다.

대개 부르주아 질서로는, 소위 제도적인 민주주의 이상으로는 안정적인 것이 없거든요. '박정희가 결국 나라를 파멸로 끌고간다, 박정희의 무제한 종신 집권 같은 성격의 군사독재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잘못하면 사회적인 급진적 변동의 가능성까지 열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하자면, 1970년대부터 이분들은 박정희를 일종의 불안 요소로 간주해서, 정상적으로 부르주아 국가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박정희가 물러나고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회복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르주아의 제도적 민주주의가 회복된 뒤에는 사실 더 이상 한국 천주교가 바랄만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신학적으로 한국 천주교는 사실 중남미의 해방신학 같은 진보적 흐름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부르주아적 질서가 회복됐다면 이 질서를 옹호하는 데 그냥 사력을 다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면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이라든가 하는 분의 보수화는 어찌 보면 합법칙적인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밖에 될 수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청중 질문에 대한 박노자의 답변

1.
수행 단체가 과연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인데요. 문제는, 불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중생 모두가 수행자가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수행 단체는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이 세계를 어떻게 바꿔 보자는, 일종의 전위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 자체가 자본주의라는, 모든 속인들을 포함하는 한 제도의 대안이 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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