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지하 터널(땅굴)은 비열한 전술이 아니라 세력 관계를 고려한 전술이라고 사이먼 바스케터는 설명한다.


지하 터널(땅굴)은, 저항 세력이 침략군에게 기습 공격을 가한 후 지하로 은신할 수 있도록 여러 갈래로 뻗어 있고 그 출입구는 은폐돼 있다. 처음에 터널은 고대 제국의 공격에서 사람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지어졌다.

처음에 그것은 순전히 그 안에 숨어 있는 사람들에게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군사적 공격 용도로 확장됐다. 일단 어두운 통로로 적군을 유인하면 매복해 제거할 수 있었다.

이번 중동 반란에서 핵심으로 거론되는 지하 터널은 서기 132년경 로마의 지배에 맞선 바르 코크바 유대인 반란 기간 중 헤로디움에서 처음 건설됐다.

그 땅굴은 더 강력한 로마군에 대항해 반란을 몇 년간 지속할 수 있도록 해 준 무기였다. 로마의 대응은 불을 질러 땅굴에 숨어 있는 사람들이 연기를 피해 땅 위로 올라오게 만들거나 그들을 질식시키는 것이었다.

현재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총 연장이 약 500킬로미터에 달하고 약 1300개의 출입구를 가진 지하 터널망을 구축했다. 이스라엘이 지하 터널에 대처하는 방식 한 가지는 가짜 입구를 찾고는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수도관을 지하 터널이라고 주장했고, 지하 창고를 두고도 그랬다.

그리고 로마 제국을 따라하기라도 하려는 듯, 이스라엘은 지하 터널에 접근하기 위해 지상의 모든 병원과 학교, 난민촌을 쓸어버리기로 결정했다.

로마 제국 시기와 마찬가지로 지하 터널은 저항 세력이 군사력 불균형에 대응하는 수단이다. 총을 들고 패러글라이더를 탄 하마스 전사들은 F-35 전투기를 이길 수 없다. 새총은 전투 헬리콥터의 상대도 안 된다. 하지만 최첨단 드론으로도 깊이 20미터의 지하를 볼 수는 없다. 탱크도 지하 터널에 들어갈 수 없고 지하에서는 전투 부대원들이 GPS나 무전기로 길을 안내받지도 못한다.

군사력 불균형

하마스의 지하 터널은 무장력이 우세한 적에게 반격하는 수단이다.

하마스 전 지도자 칼리드 메샬은 2014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어진 군사적 균형을 감안해, 우리는 혁신적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지하 터널은 우리의 혁신 중 하나였다.”

하마스의 지하 터널은 무장력이 우세한 이스라엘에 반격하기 위한 수단이다 ⓒ출처 IDF

지하 전투에는 잔혹하고 유구한 역사가 있다. 하지만 땅 속이 본격적으로 전쟁터가 된 것은 지난 세기의 전쟁을 겪으면서였다. 이달 초, 영국 정치권이 그토록 기념하려고 한 제1차세계대전에서 땅굴은 대량 학살을 위해 얼마든지 동원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제1차세계대전의 참호전을 치를 때, 영국과 독일 모두 무인 지대에 땅굴을 만들어 상대방의 발 아래 폭발물을 설치했다. 그 절정은 벨기에 메시느에서 독일군 진영 아래로까지 팠던 8킬로미터 길이에 달하는 땅굴이었다. 1917년 6월 7일 영국과 그 동맹국은 약 600톤의 폭약을 터뜨려 1만 명을 죽였다.

하마스 지하 터널과 더 직접적으로 비교할 만한 것은 베트남 전쟁에서 쓰였다.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북베트남군은 땅굴을 매우 효과적인 게릴라 무기로 활용했다. 베트남군은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깊은 땅굴을 은신처로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땅굴에는 통신망과 보급로, 병원, 부엌, 음식과 무기 저장고, 거주지, 심지어는 전투원을 위한 극장까지 있었다.

2007년 이스라엘이 하마스 영향력 강화에 대응해 봉쇄를 더욱 무자비하게 강화하자, 가자지구와 이집트 사이의 국경 지대 지하에 밀수를 위한 터널망이 거대하게 형성됐다. 이 지하 터널들은 이스라엘의 봉쇄를 우회해서 무기나 전자 기기부터 건설 자재와 연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품을 반입하는 데에 사용됐다.

이집트 권력자들은 이 지하 터널망을 파괴하기 위해 바닷물을 퍼부어 침수시키거나 붕괴시키는 등 열을 올렸다. 지하 터널 건설을 하마스의 비열한 음모처럼 묘사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오히려 그것은 전력상 열세인 상황에 대한 완전히 합리적인 대응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인들이 갇혀 있는 ‘감옥’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 ‘죄수들’은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지하 터널을 파고 있다. 지금 서방의 지도자들은 더 많은 살육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지하 터널 때문이라고 비난하지만, 오히려 카를 마르크스가 혁명을 가리키며 한 말이 지하 터널에 있어서는 더 그럴듯하다.

오랫동안 저항은 압제자의 무게에 짓눌린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야 밖에서 저항이 전개되고 있고, 결국 지면 위로 올라와 우리의 억압자들을 경악하게 한다. 그리고 저항이 눈 앞에서 벌어질 때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마땅하다. “잘 팠도다, 노련한 두더지여!”(《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