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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비지론”(비판적 지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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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전선체'의 계급연합 정치

1987년과 1992년에 자민통 진영은 김대중에게 비판적 지지(실제로는 무비판적 지지로 나타났다)를 제공했다. 대다수 노동자들도 김대중에게 투표했다.

그러나 1997년 1월 대중파업을 경험한 뒤 많은 노동자들은 독자적 정치세력화로 나아갈 필요를 절감했다. 배신을 거듭하는 자본가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넘어서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등장한 뒤에도 “비지론”은 자민통 진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은밀해졌을 뿐이다.

민중운동 안에서는, 더구나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민주노동당말고 열린우리당을 찍으라’고 누구도 내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서울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이런 고민은 이미 은밀히 시작되고 있다.

여러 분석은 강금실이 열린우리당뿐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표를 상당수 끌어모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상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의 연합 효과를 낸다는 의미다. 덕분에 여론조사는 강금실이 한나라당 후보들을 누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한나라당 전선”의 중요성을 지난 몇 년 동안 강조해 온 자민통 진영의 상당수가 강금실 카드에 마음이 동할 법도 하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미 술 한 잔 마시고 강금실 쪽으로 기우는 이 마음을 어쩌랴는 자민통 경향 당원들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있다.

하지만 쉿! 공식적인 언급은 삼가야 한다. 벌써부터 민주노동당 후보를 찍니 마니 논란을 벌이다 괜히 비판받을 필요는 없다.
시장 후보 당내 경선에도 후보를 내지 않았듯이, 시장 선거에 사실상 힘을 싣지 않음을 기층 지지자들이 눈치 채게끔 하면 된다. 혼선이 빚어지겠다 싶으면 막판에 민주노동당 밖 인사(원로?)가 총대를 메고 성명서 하나 내면 된다. 이것이 바로 은밀한 “비지론”이다.


“반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강화” 사이


자민통 진영의 누구라도 자신들이 “민주노동당 강화”를 지방선거 대응 방향으로 삼고 있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민주노동당 강화”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반한나라당”도 늘 핵심 기조로 따라붙는다. 여기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반대 입장이 분명하면 “반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강화”가 서로 충돌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민통 진영의 “반한나라당”이 “반보수대연합”, 즉 “개혁세력과의 공조”를 뜻하는 한(북한은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남조선에서 반보수대련합을 이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강화” 방향과 모순을 빚게 마련이다.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자”는 게 가장 우선하는 가치가 되면 “당선 가능성” 논리에 무릎을 꿇게 된다.

선거 때마다 자민통 진영의 정파들은 “반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강화”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에 따라 분열하면서도, 둘 모두를 충족할 묘수를 찾으려 부심하곤 했다.

지난 총선에서 그 묘수는, 지지 정당으로 민주노동당을 선택하되 지역구 후보는 한나라당에 맞서 “당선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주자는 것이었다.

이번 지방선거에 대응해 제시된 묘수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박빙인 광역단위에서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힘을 싣지 말자는 것인 듯하다. “당선이 쉽지 않”은 광역단위에서는 “한나라당반대전선에 힘을 결집”(http://etc.615.or.kr/board/view.php?&bbs_id=etc1&page=&doc_num=2)하자는 것이다.(그리 되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김종철 동지가 아니라 강금실에게 투표하는 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묘수가 아니라 악수다. 민주노동당이 “반한나라당 전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이중대 노릇이나 하려 한다면, 열린우리당에 대한 깊은 환멸에 진저리치는 대중은 민주노동당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을 열린우리당과 한통속으로 보고 실망해, 반열린우리당 정서는 한나라당으로 기울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의 실정을 낱낱이 들춰내고 열린우리당과는 전혀 다른 대안을 내놓을 때만 열린우리당에 대한 환멸이 한나라당이 아닌 민주노동당으로 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