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력 투쟁이 남겨 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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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력 투쟁이 남겨 준 교훈
이정원
김대중 정부가 철도 사기업화법 처리를 추진하자 정부와 철도 사기업화를 반대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지난 12월 4일 국무회의에서‘철도산업발전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과‘한국철도시설공단법안’ 등 철도 사기업화법이 의결됐다. 철도 노조는 철도 사기업화법이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되는 즉시 파업하겠다고 선언했다. 철도 노동자들은 이미 11월 파업 찬반 투표에서 72.23퍼센트로
정부는 철도 노동자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철도 사기업화법 처리를 임시국회
술책
진퇴양난에 처한 김대중은 탄압과 회유를 병행하고 있다. 철도 노조의 파업 선언에 김대중 정부는 “사기업화에 반발해 불법 파업을 벌일 경우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화답’했다. 김대중 정부는 “1인 승무 2002년 말까지 유보, 수당인상, 정원 205명 증원” 등의 양보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양보안은 너무나 보잘것 없다. 올해 들어 12월 8일 현재 29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었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한국철도 사기업화 반대와 공공철도 건설을 위한 연구팀’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8시간 노동을 위해서는 1만 2천8백83명의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내놓은 노동 조건 개선안은 보잘것 없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술책이다. 열차 운행에서 기관사들은 핵심 역할을 한다. 정부는 기관사 1인 승무 도입을 1년간 유보한다는 안으로 기관사들의 환심을 사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1988년과 1994년 기관사 파업 때 8시간 근무, 주휴일 보장 등의 양보안이 제시됐지만 결국 공문구에 지나지 않았다. 철도 사기업화법 처리가 임시국회로 넘어간 이후 언론은 여·야당 모두 철도 사기업화 추진에 소극적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반면교사
작년 전력 노조는 전력 사기업화법 입법화에 반대해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이후 두 차례 파업을 유보하며 협상에 매달렸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전력 노조 지도부는 다시 한 번 파업을 선언했다. 파업에 돌입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전력 노동자들이 서울로 속속 집결했다. 그러나 최초로 직선으로 선출된 오경호 위원장은 두 번 번복 끝에 다시 선언한 파업조차도 협상을 위한 압력 수단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전력 노조 지도부는 ‘이번엔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조합원들과 사기업화를 강행하는 정부 사이에서 갈등하다 끝내 정부의 압력에 굴복했다. 전력 노조 오경호 위원장은 파업을 접는 것이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구국의 결단”이라며 전력 노동자들을 배신했다. 전력 노조 지도부는 정부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파업을 할 경우 잃을 것이 너무 많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흔히 노조 지도부는 투쟁이 노조 조직을 와해시킨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전력 투쟁이 패배하자 분할된 발전 자회사 노동자들은 한국노총을 버리고 민주노총을 택했다. 지금 한전 노동자들에게 남은 것은 심각한 고용 불안뿐이다. 전력의 경험은 올해 철도 노조가 가서는 안 되는 길을 보여 준다. 전력 노조 지도부는 2만 조합원의 운명을 노동자들의 힘이 아닌 협상에 의존했다. 현장 조합원들에게 파업을 벌일 열의와 자신감이 충분했는데도 말이다. 지금 철도 노동자들 역시 작년 전력 노동자들 못지 않게 투지와 열기가 높다. 철도 노조는 12월 13일 “설사 사기업화법안이 이번 임시 국회에 상정되지 않는다 해도 철도 사기업화법안의 철회와 특별단체교섭 승리를 위해 마지막까지 흐트러짐 없이 투쟁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말은 옳다. 혹시 정부가 부담을 느껴 이번 임시국회 동안 입법화 시도를 미루더라도 사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사기업화 자체를 완전히 무산시키기 위해 국회 일정과 무관하게 싸우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