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같은 제목으로 12월 13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오늘은 이스라엘 국가가 어떻게 유대교와 유대교 경전, 즉 히브리어 성경을 이용해 전 세계의 1500만 유대인과 수억 명의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에게 환심을 샀는지를 보려 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공유하는 경전입니다. 유대교 측은 타나크라고 부르고, 그리스도교 측은 구약성경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냥 여러분들에게 익숙한 말인 구약성경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유대교는 기원전 6세기경 예루살렘이 수도인 유다라는 나라에서 시작된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유다교라고 부르는 게 정확합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여러분들에게 익숙한 말인 유대교라고 부르겠습니다. 또한 유다인이 더 정확한 말이지만 그냥 유대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유대는 유다의 로마식 지명입니다.

시온주의자들과 이스라엘 민족사학은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의 땅”이라고 부릅니다. 이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온주의자들은 소위 “고대 이스라엘”과 “유배” 또는 “유랑”이라는 개념들을 이용합니다.

그들은 “고대 이스라엘”이 기원전 10세기 지중해 남동부 연안 지역 일대에 광대하게 존재했던 막강한 강대국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후 분열과 주변 열강의 침략을 겪고, 서기 70년 로마제국에 맞선 해방 전쟁에 참패한 결과 세계 곳곳으로 “유배”를 가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입니다. 시온주의는 유대인 민족주의인데, 모든 민족주의가 그렇듯 훌륭했던 과거와 그것의 회복 이야기를 지어 낸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먼저 “고대 이스라엘”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구약성경의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그들의 나라 얘기를 엄청나게 부풀려서 유대인 민족주의의 신화로 삼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출애굽, 즉 이집트 탈출과 모세, 여호수아 얘기를 들어 보셨을 겁니다. 구약성경은 유대인의 조상들이 아주 오래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다가 기원전 13세기에 모세의 지도로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를 헤매다가 마침내 여호수아의 지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즉 지중해 남동부 연안 지역을 정복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0세기 초반과 중반에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과 태평성대가 펼쳐졌다고 합니다. 특히,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거대한 성전을 지어 더없는 영광을 과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고고학자들은 1990년대에 아주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모세와 여호수아도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도 존재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다신교적 토속 신앙을 가진 부족장들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정직한 이스라엘 고고학자 제에브 헤르조그가 1999년 10월 이스라엘의 〈하아레츠〉 신문이 발행하는 잡지에 기고한 기사(10/29)에서 인용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결코 이집트에 산 적이 없고, 광야를 헤매지도 않았고, 군사적으로 그 땅[가나안]을 정복하지도 않았고, 그 땅을 이스라엘의 12지파[부족]에게 물려주지도 않았다. 아마도 받아들이기 훨씬 더 어려운 사실은 성경에 지중해 남동부 연안 지역 전체에 걸친 제국으로 묘사된 다윗과 솔로몬의 장엄하다는 왕국이 기껏해야 소규모 부족 국가였다는 것일 것이다.”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은 또한 솔로몬 시대에 장대하게 건축됐다는 성전이 실제로는 몇백 년 뒤에야 비로소 유다 나라에서 소규모로 건축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실제의 고대 이스라엘

지금까지 시온주의자들이 찬미하고 자기네가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소위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적 실체가 시온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다윗과 솔로몬의 찬란한 통일왕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고대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그 나라는 기원전 8세기경에 등장했는데, 시온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유일신 예배에 충실한 사회가 아니라 다신교적 토속 신앙이 지배했던 사회였습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이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인데, 이는 다른 신들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실제 고대 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였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성경에서는 이 나라를 사마리아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와 유다는 극도로 사이가 나빴습니다. 유다는 제가 앞서 언급했듯이 예루살렘이 수도이고 유대교가 시작된 나라입니다. 사마리아와 유다는 종종 전쟁도 벌였습니다. 신약성경에 루카복음서라는 문서가 포함돼 있는데, 루카복음서에 그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있습니다. 강도를 당해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구해 준 사마리아인 얘기입니다. 자신들을 경멸하는 유대 사람인데도 구해 준 것입니다. 그 비유는 예로부터 유다인이 사마리아인에 대해 가졌던 매우 부정적인 편견을 역사적 맥락으로 반영합니다.

이처럼 고대 유대인들은 실제의 고대 이스라엘을 유대적이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시온주의가 스스로 고대 이스라엘의 적통을 자처하는 것은 견강부회입니다.

사마리아와 유다의 불화와 반목에는 주변 강대국과의 지정학적 관계가 상당 부분 작용했습니다. 사마리아는 신아시리아제국 – 그냥 아시리아라고 부르겠습니다 – 과 감히 맞서려고 했던 반면 유다는 스스로 아시리아의 속국이 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마리아는 기원전 720년경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유다 나라로 피난 와서 난민으로 살았습니다. 그때 그들이 가져온 문서들 중에는 유다의 전통과 경쟁하거나 심지어 다윗 가문에 적대적인 내용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서로 불일치하고 심지어 다윗 가문에 불리한 내용들도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이런 부분들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슬쩍 넘어갑니다.

유다도 약 130년 뒤인 기원전 586년 주변 제국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신바빌로니아제국 – 그냥 바빌로니아라고 부르겠습니다 – 이 침략자였습니다. 패망의 결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다의 엘리트층 사람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억류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우셨을 바빌론 유수입니다. 바빌론은 당시 바빌로니아의 수도로, 오늘날 이라크의 바그다드 부근입니다.

바빌론 유배

바빌로니아의 예루살렘 파괴가 유대인 식자층 사람들의 마음에 어찌나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지 그 사건은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서 유대인의 과거에서 결정적 순간으로 여러 차례 언급됩니다.

그러나 시온주의의 주장과 달리 실제 역사에서는 유다 사람 모두가 아니라 그 엘리트층 사람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바빌로니아도 인접 강대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에 의해 바빌로니아가 패망하자, 바빌론에 유배 중이던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페르시아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허락한 왕은 키로스 2세였는데, 성경에는 고레스로 표기돼 나옵니다.

바빌론에서 귀환한 유다 지도층은 성전 재건축과 함께 종교적 지도를 허용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유다는 독자적 국가가 아니라 페르시아의 한 속주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교가 단순한 페르시아 종교가 됐던 것은 아닙니다. 페르시아는 제관 자리를 확고하게 틀어쥐어 유대인들의 성전과 희생제사를 통제했지만 유대인들의 다른 형식의 신앙 생활까지 지배하지는 못했습니다. 덕분에 유대교는 다양성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그 가운데 메시아주의적 종파들 중 하나는 후대에 그리스도교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시온주의의 주장과 상충하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바빌론 “유배” 중이던 사람들은 대다수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바빌론 거주 유대인 중 많은 사람들은 그냥 바빌론에 눌러 살았고, 그러지 않은 사람들도 지중해 남동부 연안 지역 곳곳으로 이주해 가서 살았습니다.

특히, 바빌론에 계속 산 유대인들은 아주 잘 지냈고, 후대에 팔레스타인 탈무드보다 훨씬 우수한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만들어 냈습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들 이라크 유대인들은 실로 찬란한 문화적·지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라크 최고의 음악가들 중 3분의 1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웃 아랍인들과 잘 지내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시온주의를 반대했습니다.

시온주의의 거짓말과 달리, 근대 이후 유대인들은 이라크에서처럼 다른 나라 대부분에서도 이웃 주민들과 잘 어울려서 잘 살았습니다.

디아스포라

바빌로니아의 침략 이후 유대인들은 유다 나라에서만 살지 않고 지중해 일대에 걸쳐 흩어져서 살았습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했습니다. 디아스포라는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페르시아 시대와 특히 알렉산드로스 대왕 및 그 후계자들의 시대를 거치면서 팔레스타인 거주 유대인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서기 1세기경 유대인 인구는 약 400만 명가량 됐습니다. 로마제국 전체 인구 6000만 명의 7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인구는 학자들에 따라 겨우 2만 명에서 4만 명 사이로 추산합니다. 팔레스타인보다 팔레스타인 바깥에 사는 유대인이 훨씬 많았습니다. 팔레스타인 전체의 유대인이라 해 봤자 이집트 거주 유대인의 절반도 못 되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서기 70년 로마제국 군대가 유대인들을 모두 팔레스타인에서 추방해 유대인들은 이후 거의 1900년간 유랑 생활, 유배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게 바로 소위 “유배” 담론입니다. “추방”이라고도 하고 “유랑”이라고도 합니다.

과거의 찬란한 영광과 더할 나위 없이 대비되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세계인의 동정을 받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그러나 많은 피해자 코스프레가 그렇듯이 엄청나게 과장돼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서기 66년에 로마제국에 맞서 해방 전쟁을 벌였다가 서기 70년 참패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거나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의 유대인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근교에 살던 유대인들이 추방된 것이고, 이들의 비율은 당시 로마제국 전체의 유대인 가운데 많아야 1퍼센트밖에 안 되었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했듯이, 예루살렘 파괴 전 이미 여러 세기에 걸쳐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로 살았습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와 바빌론이라는 대도시에는 아주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 후에도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나머지 유대인들은 그대로 살았습니다. 이들은 1948년 나크바 대재앙과 이스라엘 건국 때도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랍인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때까지 팔레스타인 땅이 “주인 없는” 상태였다는 시온주의자들의 주장은 순전한 거짓말입니다. “땅 없는 사람들이 사람들 없는 땅으로 돌아왔다”는 건 지어낸 얘기입니다.

시온주의가 민족 해방 운동?

이제 시온주의, 즉 현대의 유대인 민족주의 운동을 서기 66~70년 반로마 해방 투쟁에 견주어 말하는 주장의 부적합성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지난 75년간 시온주의자들은 억압자로서 피억압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냈습니다. 반면 서기 66~70년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피억압자로서 억압자인 로마제국을 쫓아내려 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예루살렘의 부유한 지배계급에 맞서 근교의 농민들과 함께 농민 전쟁을 벌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투쟁은 침략자에 맞선 인민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계급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전쟁의 결과로 예루살렘의 지배계급에 기반을 둔 유대인 정파 사두가이 파는 일소됐습니다. 유대인 지배계급이 농민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로마제국의 응징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들을 보면, 지배계급의 정파인 사두가이 파에 대한 예수의 비판이 매우 희소하고 오히려 중간계급 지식인 중심의 정파인 바리사이 파에 대한 비판이 압도적이고 혹독합니다. 이것은 바로 신약성경 복음서들이 반로마 항쟁 이후 시기에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와 예루살렘 지배계급에 맞선 예루살렘 빈민들과 근교 농민들은 유대교의 신 외에는 어떤 국가 구조도, 종족성도 단호히 거부한 메시아주의 운동을 벌였습니다.

압제자들인 시온주의자들이 이런 고결하고 명예로운 당대 유대인 운동에 자신들의 수치스럽고 비열한 운동을 견준다는 것은 뻔뻔하고 파렴치한 동일시입니다.

시온주의는 또한 유대인 민족주의 운동인데, 1세기 당시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민족은 실제로는 근대의 개념입니다. 흔히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유대 “민족”에 대해 말하며 1세기의 유대인이든, 20세기와 21세기의 유대인이든 추상적으로 동일시해 버리는데, 이는 오류입니다.

예컨대 반로마 해방 전쟁 전야에 팔레스타인에는 엄격히 구별되는 세 개의 지리적·정치적 영역이 있었는데, 그중 예루살렘과 그 근교 사람들만이 반란에 나섰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갈릴래아 사람들은 거의 다 유대인들이었는데도 예루살렘의 반로마 항전에 일체감을 못 느껴 거기에 불참했습니다. 물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갈릴래아 사람들은 자체의 계급투쟁에 열렬히 참여하면서 그 일부 소수만이 예루살렘에도 원정 가서 그곳 계급투쟁에 참여했습니다.

이런 사회 운동 양상에서 드러나듯이, 1세기 예루살렘과 근교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민족 국가 수립을 목표로 민족 의식과 지향성을 갖고 민족 해방 운동을 했다는 말은 시대착오적인 주장입니다.

발제를 마치면서, 제 얘기가 구약성경을 신뢰하는 분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었음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저는 유대인 혐오자가 아닙니다. 제가 속한 노동자연대 단체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하고 이스라엘을 규탄한다고 해서 유대인 혐오자들이 아님은 제가 단체 기관지 〈노동자 연대〉 신문에도 기고한 바 있습니다.

제가 성경의 역사성을 문제 삼는 얘기를 다소 했지만, 성경을 역사 책이 아니라 문학 책으로 읽으면 신앙인에게는 물론이고 비신앙인에게도 감동과 영감, 신선한 통찰을 주는 부분들이 적잖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에스테르기(에스더)와 아가(아가서)는 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전도서(코헬렛)는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세속적인 지혜문학이라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다만 저는 시온주의자들이 유대교 경전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인 인종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이 근거 없음을 밝히려 했음을 강조하면서 발제를 마치겠습니다.

발제자의 정리

많은 질문과 주장들이 나왔는데요. 최대한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전화로 발언하신 한 분이 고고학적인 설명을 덧붙여 주셨는데, 제가 추천한 책의 하나인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라는 책입니다. 그 저자인 이스라엘 핑컬스타인은 이스라엘 고고학자입니다. 그 책은 우리나라의 까치 출판사에서 한 20여 년 전에 나왔다가 보수 기독교인들이 아주 격렬하게 반대를 해서 출판사 측이 책을 거둬들여야 했던 책입니다.

한 분이 “구약성경은 국가에 부정적인 기류가 기본적이다. 히브리는 하비루라는 사회적 하층민들을 뜻하는 용어였고, 종족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범주에 해당한다. 야훼 신앙은 그들에게서 시작됐다. 그들은 가나안 민중 봉기에 합류했거나 그 주역이었다”라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이것은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의 입장이고, 듣기에는 굉장히 좋은 얘기라고 생각하고 공감할 부분도 다소 있다고 생각해요.

인용하신 부분(왕을 추대하는 것에 반대하는 주장)은 구약성경 사무엘서에 나오는 부분인데, 구약성경에는 국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그런 기류도 있어요. 서기 66~70년 사이에 예루살렘과 근교의 농민들이 반로마 전쟁을 벌였을 때 앞장섰던 당파는 열심당 또는 젤로데라고 하는 조직이었는데요. 그들의 사상이 그런 모종의 혁명적 아나키즘 같은 사상이었어요. 야훼 외에는 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죠.

그러나 동시에 구약성경에는 왕의 권위를 굉장히 높이 인정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다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을 통해서 유다교의 원초적 형태가 마련됐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그 뒤에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와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유대교를 창설할 때에도 그들은 각각 대제관과 그 속주 총독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때는 페르시아가 왕을 허용하지 않았으니까요. 이는 위로부터의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러니까 아래로부터의 전통과 위로부터의 전통이 함께 있는 거죠. 사실, 성경 전체로 보면 서로 모순되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히브리가 하비루를 뜻한다는 건 하나의 학설인데, 고고학이나 역사 문헌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역사적 사실처럼 얘기하는 거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또, 야훼 신앙이 하비루에게서 시작됐다는 것도 동의하기 어려워요. 야훼 신앙 자체가 처음에는 유일신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아까 발제에서도 얘기했듯이 유다 나라와 이스라엘이라고 불렸던 나라 모두에서 유일신 신앙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일신 신앙이 아니라 다신교적인 토속 신앙들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야훼는 아세라라는 배우자가 있었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그밖에도, 야훼와 대결하는 바알 신 등 여러 신들이 등장하거든요. 그래서 사실 역사학자들은 유일신 신앙이 오히려 이집트 같은 곳에서 더 먼저 나타났지 유다 쪽에서는 좀 늦게 나타난 편이라고 지적하고 있어요.

그다음, 가나안 민중 봉기라고 하는 것도 참 근거가 희박한 학설입니다. 나중에 소위 히브리라고 불리기도 하고 야곱의 자손, 즉 이스라엘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던 그 인민은 이집트에서 건너왔다는 설도 있고, 농민 봉기라는 설도 있고, 이집트에서 이민 왔다라는 설도 있는데요. 지금은 면밀한 연구에 의해서 다 부정당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가나안의 토착민들 중 일부였다는 거예요.

다른 분이 “정통 유대교에서 시온은 죽은 뒤에나 갈 수 있는 곳이고 메시아가 와야만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데 지금 국가를 건설하는 건 교리에 위배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는 하레디라는 정통 유대교의 한 분파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레디는 일단 굉장히 극소수이고요, 엄격하게 이를 데 없는 극단적 전통주의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레디가 모두 시온주의 국가를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하레디 파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기는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시온주의 국가를 지지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을 그렇게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다음에 “메시아가 와야 국가를 세운다”는 교리에 관해서는요. 성경에서 유다 국가를 세우고 이후 계속 강대국의 속주로 있었던 유다가 독립을 하려고 애쓴 것이나, 서기 66~70년 반로마 전쟁을 한 것도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였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유대교의 사상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을까요? 그건 아니죠.

시온주의자들은 지금 메시아가 왔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메시아를 준비하고 있는 거라고 주장해요. 그들이라고 감히 지금 메시아가 왔다는 그런 신성 모독적인 주장을 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주장을 감히 하는 자들은 없는 거고, 메시아가 올 때를 대비해서 준비하고 있는 거라는 주장이니까 이게 유대교에 어긋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초 사상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인간의 소외에서 비롯한 거고 소외에 대한 특정 반응인 건데요. 즉, 인간이 스스로 만든 사물에 대해서 통제 불능 상태에 처해 있음을 절감하면서 거기에 대해서 모종의 통제력을 느껴 보려고 애쓰는 수많은 방법들 중 가장 대표적인 방법 하나가 종교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양한 사회 계급과 다양한 사회 집단의 염원과 요구들을 흡수하고 아우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계급적으로든,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 집단들 사이에서든 모순된 입장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게 진짜 유대교 교리고, 이들은 유대교 교리에 맞고, 저들은 맞지 않다’는 식의 접근법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 종교관과는 다릅니다.

유대교에도 가톨릭의 해방신학 같은 게 있냐는 질문도 있었는데요. 네, 물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평화협회의 리더였고,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드신 필리스 테일러라고 하는 여성 분이 바로 대표적인 유대교 해방신학의 주창자입니다.

1960~70년대 미국에서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유대교의 사상가이자 반전 운동가였던 아브라함 요슈아 헤셸도 급진적인 유대교 사상가이고 신비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도 해방신학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심지어 발터 벤야민도 유대교 해방신학의 일종이었다고 생각해요. 벤야민은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동시에 유대교 신비주의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모종의 유대교 해방신학의 일종이라고 봐도 된다고 봐요. 더구나 그는 분명하게 메시아주의를 주장했었고 혁명을 대중이 메시아적으로 역사에 개입하는 거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든 굉장히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조류도 있고 또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과 같은 매우 급진적인 조류도 있고, 여성 신학이나 흑인 신학, 심지어 퀴어 신학 같은 ‘해방신학’들도 다 있는 거죠.

그다음, 시온주의 좌파라는 건 요즘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포스트 시온주의자라는 분들이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진보파입니다. 아까 어떤 분이 《만들어진 유대인》에 대한 얘기를 하셨는데 그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포스트 시온주의자는 이스라엘 지식인들 중에서 고(故) 에드워드 사이드의 탈식민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분들인데요. 탈식민주의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반제국주의적으로 급진화시킨 사상이거든요. 당연히 그들은 우리의 연대 대상이지만, 그들이 이스라엘 내부의 변혁을 이끌 수는 없습니다. 오늘 그 주제까지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이든 누구든 이스라엘 내부의 변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사회 구조적인 요인과 무엇보다 주변의 제국주의적인 시스템 때문이예요.

시온주의자 사상이 현실에서 효과가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시온주의자들이 그저 신이 어떻고 천사가 어떻고 하는 종교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보다는, 지금까지 봤듯이 옛날에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었는데 모세라는 ‘민족’ 영도자가 나타나 해방을 이끌었다 등 이런 역사의 용어로, 그러나 실제로는 신화인 그런 용어로 말을 합니다.

그래서 30여 년 전에 이스라엘 국민에게 여론조사를 해 보니까 절반이 자신은 종교적이지 않다고 답변을 했어요. 그런데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에 선진 자본주의 사회가 굉장히 빨리 세속화됐으니 지금 이런 사람들은 더 늘어났을 거라는 말이예요.

그럼에도 시온주의가 먹히는 것은 그저 초자연적인 얘기라든가 노골적인 종교적 언어로서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역사의 언어, 실제로는 일종의 민족 신화인 그런 언어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도 고조선이 어떻고 위대한 통일신라가 어떻고 세종은 대왕이었고 영조·정조의 중흥과 개혁 운동이 있었고 하는 식의 민족 신화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민족 신화가 있다는 것이죠.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시온주의의 신화를 살펴봤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의 민족 국가를 설립하자고 하는 자들입니다. 유대인은 근대에 들어와서 자본주의에 의해서 차별받고 천대받는 인종이 된 거예요. 그중에서 시온주의자들은 소수입니다. 절대 유대인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이 소수는 유대인은 ‘민족’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민족 국가를 만들려고 해요. 그러나 유대인은 민족이 아닙니다. 유대인은 인종입니다.

그런데 시온주의자들은 그들의 민족 신화에 종교적 경전을 가져다가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거짓말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심지어 이스라엘의 포스트 시온주의자 같은 지식인들하고도 진중한 대화를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시온주의 반대 운동을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과 연결시키고, 특히 그것을 아랍 전체의 노동계급의 해방 투쟁과 연결시켜서 보고 또 실천하는 시도를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