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유럽 지배계급들의 신자유주의 전략이 난관에 봉착했음을 살펴보고, 급진 좌파적 정치 대안 건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프랑스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이 부결된 지 1년이 다 됐다. 그것은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의제들이 줄줄이 패배를 당하는 것의 시작이었고, 세계의 부르주아 언론은 분노로 길길이 날뛰었다.

4월 14일치 〈뉴욕 타임스〉는 “경제 변화를 거부한 유럽”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박빙의 선거가 있은 뒤에, 정부의 약화와 여론의 분열 때문에 유럽 주요 3개국에서 성장률 회복에 필요하다고 대다수 정치 지도자들이 인정하는 경제적 변화를 추진하기가 불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정서가 유럽 전역에 퍼지고 있다.

“많은 유럽 전문가들은 유럽의 높은 노동비용과 낮은 인구증가율이 유럽의 경제력뿐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의 장기적 쇠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의] ‘빅 쓰리’가 세계화된 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분명 문제는 심각하다. 영국과 달리 유럽 대륙의 주요 경제들은 여전히 대규모 제조업 부문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저가제품 생산업자들, 특히 중국 제조업체들과의 경쟁에 취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유럽 전역의 주류 정치인·기업·언론 들은 유럽연합이 2000년에 채택한 소위 ‘리스본 어젠다’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자유시장 ‘개혁’ 정책들인데, 유럽 노동자들이 20세기 동안 성취한 복지 조항과 각종 사회보장 조처들을 없애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문제는 주류 정치와 대다수 국민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총선 직전 뱅크오브아메리카[미국 최대 은행]의 한 경제학자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는 상품시장과 노동시장에서 성장 지향적 급진 개혁, 규제 완화, 자유화와 아직 거대한 국영부문을 줄이기 위한 사유화와 행정개혁이 필요하다. … 유권자들은 감세와 공급 중시 경제학적 개혁[레이건과 대처가 추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보다는 사회보장과 사회지출 증대를 선호한다.”

이탈리아 대기업들은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부패하고 제멋대로인 정부 아래서 ‘개혁’을 진행하는 것은 절망적이라고 느꼈다. 그들은 전 총리로서 1996∼98년에 이탈리아의 유로 통화권 가입 조건인 지출 삭감을 단행했던 프로디가 더 안정적 선택이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프로디가 간신히 과반수 득표를 확보하면서, 그의 새 정부는 재건공산당의 표에 의존하게 됐다.

복지국가[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대중의 압도적 지지라는 벽 앞에서 유럽 각국의 신자유주의 의제들이 약화됐다.

독일에서 게르하르트 쉬뢰더의 적록연정은 실업수당을 깎는 ‘개혁’을 도입했다. 지난 9월 연방선거에서 수많은 유권자들이 두 주요 정당을 버렸고, 많은 이들이 신생 좌파당에 표를 던졌다. 주류 정당들은 기민련 지도자인 앙겔라 메르켈을 총리로 내세워 ‘대연정’을 할 수밖에 없었고, 기업들은 새 정부가 복지국가를 더 해체하기에는 힘이 너무 약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가장 강력했던 곳은 프랑스였다. 청년 노동자 해고를 쉽게 하는 도미니크 드 빌팽의 최초고용법(CPE)에 맞선 저항은 프랑스에서 10년 이상 진행된 반란의 물결 중 최근의 것이었다.

프랑스 반란의 물결은 1995년 11∼12월 공공부문 파업에서 시작됐고, 자크 시라크의 첫번째 총리[알랭 쥬페]가 물러나야 했다. 그 뒤 2003년 5∼6월에 대규모 교사 파업이 일어났고, 작년에는 유럽헌법이 부결됐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CPE 철회 이후 분노를 터뜨렸다. “놀랍게도, 프랑스인들은 모든 사람들이 공무원 대접을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들은 일자리가 완벽하게 보장받는 동시에 부가 늘어나는 기적을 바라고 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이것은 집단적 인지장애라 부를 만하다.”

좌경 자유주의 일간지 〈르몽드〉의 전 편집장 에드위 플레넬은 유럽헌법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 반대 진영의 승리를 친나찌 비시 정권[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점령 치하 프랑스의 꼭두각시 정부]의 등장에 비유하며 ‘국민혁명’의 재등장이라고 비꼬았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 ‘개혁’을 철저하게 신봉하는 주류 정당과 대중 매체 들이 그것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대중에게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었다.

블레어 지지 단체인 ‘유럽 개혁 센터’의 찰스 그랜트는 이렇게 말했다. “유럽 대다수 국가에서 반자유주의 성직자들[즉, 지식인들]이 지적 논쟁에서 승리했다. … 그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자유주의 경제 때문에 아동 노동과 거리에서 울고 있는 늙은 여성 등 찰스 디킨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는 관점을 전파했다.”

이러한 주장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1990년대 말 이후, 유럽 대륙에서는 대안세계화  운동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나 피에르 부르디외, 노움 촘스키와 수잔 조지 등의 필자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체계적 비판을 보급했다.

국제 금융 투기에 반대하기 위해 탄생한 아딱(ATTAC)은 프랑스의 유럽헌법 반대 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독일 아딱은 노동조합과 함께 슈뢰더의 ‘개혁’과 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위협하는 볼케슈타인 강령에 반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재건공산당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자들이 2001년 7월 제노바 G8 정상회담 반대 시위와 반전 운동 덕분에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유럽 지배계급은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유럽 노동자들은 국가의 힘을 이용해 자본주의의 해악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프로젝트를 지지한다.

노동운동 내부의 주요 정당들은 그러한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들 왼쪽에 공백을 만들었다. 독일 선거가 보여 줬듯이 자신이 지지하던 정당에게 배신당한 사회민주주의 지지자들은 정치적 대안을 찾고 있다.

유럽의 급진 좌파와 혁명적 좌파 들은 영국의 리스펙트처럼 스스로가 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만약 그들이 성공한다면, 유럽 지배계급의 위기는 그들 자신이 현재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음이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