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월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승용차 한 대가 폭발했다. 차에 타려던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의 기관지 편집인이자 대변인인 갓산 카나파니와 그의 조카가 사망했다.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차량에 부비트랩을 설치했던 것이다.

갓산 카나파니의 장례식에 수십만 명이 운집한 것은 36세로 요절한 그가 얼마나 불꽃 같은 삶을 살았는지 보여 준다. 그는 혁명가인 동시에 팔레스타인 난민의 한과 저항 정신을 담은 뛰어난 문학 작품들을 남긴 걸출한 작가였다.

난민

카나파니는 열두 살이던 1948년에 나크바 때문에 고향인 팔레스타인 아크레를 떠나 시리아 다마스쿠스로 피난을 가야 했다.

카나파니는 다마스쿠스 시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난민촌 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일했다(그는 화가이기도 했다). 이후 카나파니는 쿠웨이트를 거쳐 1960년에 레바논 베이루트로 망명했다. 베이루트에서 카나파니는 죽을 때까지 투사, 언론인,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나크바의 트라우마와 다마스쿠스 난민촌에서의 경험은 이후 카나파니의 정치 활동과 작품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그가 한 달 동안 베이루트의 집에 은신한 채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 1960년대 팔레스타인 난민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에는 일자리를 찾아 이라크 난민촌을 떠나 불타는 듯한 사막을 가로질러 쿠웨이트로 밀입국하려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밀입국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트럭의 빈 물탱크에 숨어서 밀입국하려다 불볕 속 물탱크 속에서 질식해 죽고 만다.

당시 여러 중동 국가는 석유 호황에 힘입어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극소수 팔레스타인인은 부를 쌓기도 했지만, 대다수 팔레스타인 난민은 아랍 정권들의 무시와 배척 속에서 곤궁한 삶을 살거나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카나파니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얘기를 많이 썼다. 그는 1936~1939년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란을 분석하면서 부패한 팔레스타인 지도자, 팔레스타인 주변 아랍 국가의 권력자, 그리고 제국주의와 시온주의 동맹을 팔레스타인 대중의 적으로 규정했다.

카나파니의 소설에 등장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고결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카나파니가 소설에서 묘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은 혹독한 삶 속에서 고통과 욕구를 느끼는 현실의 사람들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에 등장하는 팔레스타인인 물탱크 트럭 운전수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면서도 질식해 죽은 동포들의 시신에서 돈과 시계를 훔친다. 〈슬픈 오렌지의 땅〉에 등장하는 난민 가족의 아버지는 도무지 살길을 찾기 어렵다고 느끼자 권총으로 어린 자녀들을 죽이려고 한다.

카나파니는 점령과 강탈로 인해 참담한 처지에 놓인 팔레스타인 난민의 삶을 현실적으로 보여 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팔레스타인인들의 비극이 무엇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 자연스레 묻게 한다.

저항

카나파니는 저항을 촉구하는 작품에서도 분노와 두려움을 모두 지닌 현실 속 사람들을 등장시켰다.

〈하이파에 돌아와서〉는 시온주의 민병대 하가나의 공격 때문에 집과 아이를 남겨 두고 떠났다가 20년 만에 하이파의 집을 찾아온 팔레스타인인 부부의 얘기다. 20년 만에 찾은 집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살고 있었고, 장성한 아이는 기가 막히게도 이스라엘 군인이 돼 있었다.

카나파니는 엉켜버린 듯한 상황을 찬찬히 풀어내면서 간단 명료한 핵심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면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

카나파니 사후 미국의 한 극장이 〈하이파에 돌아와서〉를 각색한 연극을 제작하려 했지만, 극장 이사진은 카나파니가 ‘테러리스트’라며 제작을 거부했다.

〈움 사아드〉에는 아들이 저항 조직에 가담한 팔레스타인인 어머니가 등장한다. 아들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억누르면서 아들의 선택을 지지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어머니의 심경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가자에서 온 편지〉는 저항을 위해 친구의 미국 유학 제안을 끝내 거절하는 가자의 청년 얘기다. 이 청년은 부자가 되길 꿈꿨고 가자를 “탈출”하고 싶어 했지만, 아끼는 어린 조카가 이스라엘군 때문에 다리를 잃자 저항 운동에 나서기로 마음먹는다. 지금 가자에도 이런 청년들이 있을 것이다.

여러 작품에서 저항과 투쟁을 강조한 카나파니이지만,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했을 때는 잠시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카나파니는 좌절하지 않고 더 좌경화해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실제로는 마오주의 단체인)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에 가담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의 해방을 위해선 아랍 세계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갓산 카나파니의 부인이자 동지인 아니 회버(Anni Høver)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 세계의 전반적인 사회적·정치적 상황과 분리된 채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항상 강조했다.”

또, 갓산 카나파니는 팔레스타인의 대의는 “착취받고 억압받는 대중의 대의”이고, “머리는 동아시아에, 심장은 중동에, 동맥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 걸쳐 있는”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학적 재능, 전투적 행동

저명한 팔레스타인 역사가 라시드 할리디는 직접 만난 적 있는 갓산 카나파니를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문학적 재능만이 아니라 번뜩이는 지성, 자기비하적이고 냉소적인 유머 감각, 유쾌하고 개방적인 행실과 언제든 슬며시 보여 주는 미소 때문에도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문학적 명성과 전투적 행동주의에 비춰 볼 때, 그는 부활한 팔레스타인 민족 운동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1월 13일 팔레스타인 연대 국제 행동의 날 서울 집회에서 발언자로 나선 김남일 작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문학에 담긴 정신을 얘기하며 갓산 카나파니를 소개했다.(김남일 작가는 2021년 10월 경향신문 칼럼에서 〈하이파에 돌아와서〉를 추천하기도 했다.)

갓산 카나파니의 작품들을 읽으면 소중한 영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모두 오래전 절판돼서 구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도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는 만큼 갓산 카나파니 등 팔레스타인 문학 작품들이 번역돼 출간되길 기대해 본다.

베이루트 사무실에 있는 갓산 카나파니 그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펜과 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