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전세 사기 피해대책위원회(이하 대전 대책위)가 30명의 사연을 모아 《월세, 전세 그리고 지옥 ― 대전전세사기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발간했다. 101페이지의 얇은 책이지만 사연 하나하나에 성실하게 한 푼 두 푼 모으며 더 나은 삶을 꿈꿨던 피해자들의 삶이 녹아 있다.

“매달 200만 원씩 10년간 모은 전 재산이 사라졌다. … 작년 분양받은 아파트의 중도금을 치를 돈이었다. 10년간 쉬는 날도 없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 왔던 결과가 하루아침에 부정당했다.”

다른 한 피해자는 사기 당한 전세금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겨 준 보험금에 빚을 더한 것이었다. “나는 전세 사기 피해자임을 알게 되곤 ‘내 잘못이구나’ 생각했다. 내가 많이 알아보지 않아서 부모님의 목숨값을 헛되이 버렸다고 생각했다.

“죽어 부모님을 뵐 낯이 없을 것 같다. 이번 일로 무너지지 않도록 … 최선을 다해 끝까지 싸웠다고 말하고 싶다.”

1월 30일 대전에서 열린 대전 전세 사기 사례집 발간 기념회 ⓒ정선영

이처럼 오히려 피해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곱씹으며 가까운 사람들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마음 아프다.

신혼부부로 자녀 계획을 세우고 있던 한 여성은 전세 사기로 그 계획이 “한낮의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기야 미안해.”

자신도 전세 사기를 당했고, 자신의 집 근처로 이사를 오게 한 엄마도 같은 사기꾼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딸은 “엄마, 미안해.”

전세 사기를 당하고 피폐해지는 삶, 예민해지는 태도, 커지는 우울을 겪고 있는 남편은 아내에게 “결혼해서 미안해.”

같은 전세 사기를 당했지만 다른 세입자보다 선순위여서 보증금을 돌려 받을 가능성이 조금 더 큰 세입자는 후순위인 세입자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이렇게 질문한다. “저는 가해자인가요?”

정작 진정한 책임자인 정부는 뻔뻔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 대책위의 조사에 따르면 대전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는 3259세대에 이른다. 그 중 다가구 피해자가 3191세대로 거의 대부분이다.

다가구는 집주인 1명에 세입자는 여러 명이다. 그래서 근저당과 함께 여러 명의 전세금이 한꺼번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아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 받기가 더욱 힘들다.

특히 다가구 피해자들은 전세 사기 특별법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세 사기 특별법은 경매로 피해자들이 집을 떠안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데, 다가구 피해자들은 이런 방식을 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재산을 잃고 빚을 떠안게 돼 신용불량자가 되는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

사례집에는 같은 다가구의 세입자들끼리 서로의 전세금을 확인할 수 없다는 현행 제도의 허점을 활용해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사기를 친 사례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근저당, 선순위 보증금액, 주택의 시세가격 등을 모두 가짜로 속이고 계약을 진행한 것이다.

이런 집들 중에는 정부가 주택도시기금을 지원해 LH 전세임대를 시행한 곳들도 있었고, 중소기업청년전세자금대출을 시행한 곳도 있었다.

“나라가 팔아 먹은 대출 상품을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다” 하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세 사기는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면서도 세입자 보호는 등한시해 온 이 사회와 정부가 만든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들이 아니라 사기꾼들과 정부가 사죄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다.

“정부는 특별법을 마련했다며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왜 정부 본인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이것이 개인 간의 거래였다고만 주장하는가?”

“정부는 부도 위기의 기업에는 사회적 합의 없이 수백억의 예산을 투입하여 구제하면서, 잘못된 법으로 인해 사기당한 국민에게는 사회적 합의를 요구한다.”

피해자들이 얼마나 지옥과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지 사례집을 통해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이는 정부가 노동자 등 서민들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또 하나의 범죄 행위이다. 피해자들의 온전한 구제를 위해 투쟁과 연대가 커져야 한다.

장선훈 《월세, 전세 그리고 지옥》 엮은이 인터뷰

“100퍼센트 선구제가 모든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향입니다”

1월 30일 대전에서 《월세, 전세 그리고 지옥 ― 대전전세사기피해자들의 목소리》 발간 기념 행사가 열렸다. 100여 명이 모인 행사가 끝나고 이 책의 엮은이인 장선훈 대전 전세 사기 대책위 부위원장을 인터뷰했다.

그는 “나는 전세 사기 피해자입니다” 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알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가 피해를 인지하고 나서도 가족이나 제 배우자에게 알리는 데까지 2주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지난해 9월 말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전세 사기 대책위 활동을 통해 자신보다 더 심각한 피해자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대책위 활동가들 사이에서 사례집을 만들어 문제를 더 알려 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총 62명의 사연을 듣고, 그 중 30건을 추려서 글로 정리해 책을 발간했다.

그의 집은 건물 가격 대비 근저당이 90퍼센트에 달한다. 여러 피해자가 있는 다가구 건물인데 피해자 대부분 보증금을 한 푼도 건질 수 없는 처지이다.

“전 재산보다 더 많은 돈을 날리게 됐습니다. 저의 전세금은 1억 6000만 원인데, 절반은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거예요. 전 재산을 잃은 것만이 아니라 빚까지 떠안게 된 거죠.”

정부의 대책은 거의 쓸모가 없다고 했다.

“[정부 특별법으로 혜택 받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습니다. 그냥 ‘빚을 빚으로 갚는다’ 정도.”

얼마 전 민주당은 사기당한 피해자들의 전세 보증금을 최소 30퍼센트 구제해 주는 내용을 담은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국민의힘은 이런 미흡한 안조차 반대하고 있다.

장선훈 부위원장은 민주당의 안에 대해 “기존에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30퍼센트라도 있는 건 고맙”지만, 그 정도로는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전세금이 1억 원이면 보통 대출을 80퍼센트까지 받아서 8000만 원의 대출이 있어요. 그런데 [30퍼센트면] 3000만 원만 주겠다는 거잖아요. 그럼 5000만 원의 빚은 그대로 있는 거거든요.

“100퍼센트 선구제가 모든 피해자분들이 원하는 방향이고 일부만 주겠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전체 보증금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충분히 논의를 해야 하는데 논의 자체가 안 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는 이를 위해 앞으로도 대전 지역에서 피해자들을 모아 내는 활동을 할 계획이다. “2월 말에서 3월 초 즈음 대전 지역에서 다시 한번 대규모 집회를 할 예정입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 대책위원회는 2월 24일 전세 사기 희생자 1주기 추모제를 연다. 대전 대책위는 이 추모제에도 참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