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독자편지에서 일부 독자들은 ‘민족문화’ 문제를 문화 다양성 수호와 민족자결권 문제로 제기했다.

나는 자본주의 시대에 문화 다양성의 핵심은 상업적 고려와 검열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문화의 창조라고 본다.

그러나 민족문화는 문화의 상업화와는 다른 대안을 제공하지 않는다. 실제로, 영화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유네스코의 문화 다양성 협약에서 문화 다양성이란 “지역 문화”, 다시 말해 민족문화를 뜻하는데, 이 협약은 “지적 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구절을 담고 있다. 민족문화와 상업화가 굳이 대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민족문화 사수’ 구호로는 국가의 검열에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다. 나찌 시대 검열은 보통 독일 민족의 명예나 감수성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행해졌다.

박정희 정권은 보수적 ‘전통 문화’의 재창조와 보존에 힘썼고, 그 반대 급부로 히피와 반문화에 영향받은 예술가들을 서구의 퇴폐문화를 숭상하는 이들이라고 공격했다. ‘물 좀 주소’의 한대수가 당한 일을 생각해 보라.

나는 민족국가별로 경계가 뚜렷한 민족문화란 것이 실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민족문화가 실재하는가 아닌가가 아니다. 레닌은 민족문화 수호 구호의 핵심적인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민족문화라는 슬로건의 의미는 전 세계 국가에 존재하는 계급들이 객관적으로 관계 맺는 방식에 달려 있으며, ‘민족문화’가 부르주아 문화라는 것이 [주어진] 현실이다. … 부르주아 민족주의는 노동자의 마음을 혼미하고 무능력하게 만들고, 그들을 서로 분열시킨다. 바로 그럴 때만 부르주아들은 노동자들을 질질 끌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세계화에도 느슨한 의미에서 민족문화라는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에서 지배적 문화는 곧 부르주아지의 문화이며, 그것을 사수하자는 것은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을 저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족자결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민족자결권은 제국주의 나라와 피억압 나라의 노동자들이 서로 단결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것은 세계적 노동계급의 단결을 촉진하기 위한 구호였던 것이다.

그래서 레닌은 민족문화 지지 구호를 “피억압국의 노동자들을 그 나라 부르주아들에게 도매로 넘기는 행위”라며 반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