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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들의 돈벌이 경쟁을 강화할 한미FTA

경제부총리 한덕수는 “한미FTA가 되면 마치 우리의 공교육을 다 양보[한다는] … 것은 선동적 허구이며 절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교육과 의료 개방은 우리가 필요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도특별자치도 등을 만들어 외국 학교를 유치하는 등 교육 개방을 추진해 왔다.

노무현 정부나 보수 언론들은 교육 개방으로 외국의 우수한 교육기관을 유치해 한국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고, “미국 유학생이 8만 5천여 명인 현실을 감안할 때” 유학 수요를 흡수해 외화 유출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버드나 예일 같은 미국 유수의 대학들이 한국에 분교를 세우고 졸업장을 나눠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에 들어올 교육기관들 대다수는 돈벌이가 목적인 영리 대학들일 텐데, 이들은 어학이나 교양과정만 한국에서 운영하고 전공수업은 미국에서 함으로써 미국 본교로 한국 유학생을 유치하는 구실을 주로 할 것이다.

전경련이 2004년에 발표한 《고등교육 개혁 실천방안》이란 글도 “교육개방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교육수지 적자 축소가 아니라 교육 경쟁력 강화”라고 지적해 유학이 별로 줄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세계 유수의 학교를 유치하지도 못하고, 유학도 줄이지 못하면서 교육 개방을 추진하는 이유는 대학 구조조정을 위한 ‘외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 등을 통해 교육 개방을 추진하는 이유는 결국 ‘글로벌 스탠다드’인 미국식 대학 경쟁 체제를 도입해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교육 경쟁력 강화’와 학생들이 바라는 교육 환경 개선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고려대 총장 어윤대의 악명 높은 ‘등록금 1천5백만 원’ 발언에서 드러났듯이 한국 대학들은 등록금을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중이다.

“1인당 국민소득 수준[으로] … 비교하면 미국은 4천만 원이고 한국은 1천5백만 원이라는 얘기다.”

한국 대학들은 등록금을 계속 올리면서도 교육환경 개선보다는 적립금 쌓기 경쟁을 벌여 비판받고 있다. 그런데 바로 적립금 쌓기 경쟁이 바로 미국식 ‘교육 경쟁력 강화’다.

적립금이 가장 많은 하버드의 경우 2004년까지 226억 달러(약 22조 원)를 쌓았다!

그리고 미국의 다른 명문 대학들도 수조 원씩 적립금을 쌓고 있다. 어윤대 식으로 비교해 말하면, 5천7백38억 원을 쌓아 적립금 1위인 이화여대도 6조 원 정도는 더 쌓아야 ‘글로벌 스탠다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대학들도 대학 지원에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대학들이 적립금을 헤지펀드 등으로 운용해 얻은 이익만큼만 지원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는 45명의 전업 펀드매니저를 고용해 직접 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83억 달러)보다 큰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다.

한국 대학들도 적립금의 대부분을 건축기금이나 사용처를 정하지 않은 ‘기타 기금’으로 쌓고 있어, 미국 대학들처럼 자금 운영을 위해 돈을 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2월에 연세대가 1천억 원의 자금을 우리은행에 위탁해 운영하기로 했다.

하버드나 예일 등도 초기에는 은행에 위탁해 자금을 운영했던 것을 고려하면 한국 대학들도 직접 투자회사를 운영할 날이 멀지 않았다.

더 많은 돈을 끌어 모을 수 있고, 더 많은 자산을 갖고 있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라는 미국식 대학 경쟁 체제에서는 학생들은 대학들의 ‘경쟁력 강화’로 어떤 득도 볼 수 없다.

대학들의 자산 불리기 경쟁에서 학생들은 더 많은 등록금을 내야만 할 것이다.

대학들이 재산 불리기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부를 받아야 한다. 미국 대학들은 대학 동문들과 기업들의 기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 동문이 사회 상류층일수록 기부액도 커질 것이다. 대학 동문이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면 기업 기부금을 받기도 쉬울 것이다.

한국 대학들도 고교등급제를 도입해 상류층 학생들을 더 쉽게 받아들이기 위한 정책을 은밀히 추진한 바 있다.(〈다함께〉 41호)

고려대 총장 어윤대는 “입시제도가 자율화된다면 ‘졸업생 자녀에 대한 우대(legacy)’ 제도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는데, 이 제도는 미국 명문 대학들이 널리 채용하고 있다. 이 제도 덕분에 성적이 중상위권이던 조지 W 부시가 예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현재도 상류층의 명문 대학 진학률이 높다. 그런데도 지배계급은 ‘졸업생 자녀 우대’ 제도까지 도입해 더욱 손쉽게 명문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제도를 도입하기 힘든 지방의 ‘3류’ 대학들은 영리법인화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다. 대학을 기업처럼 운영하면서 높은 등록금으로 이윤을 얻고, 수익이 없을 경우에는 마음대로 폐쇄해 버릴 수 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신자유주의 교육 체제에서 ‘경쟁력의 강화’는 바로 상류층 자녀들이 경쟁에서 벗어나 왕도를 따라 명문대생이 되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다. 결국 교육에서 계급 분단선을 더욱 또렷이 하는 셈이다.

초·중등교육은 보호?

노무현 정부는 “초·중등교육은 개방을 유보하고, 고등·성인교육 분야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 점차 개방할 것”이라고 말하며 교육 공공성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평준화 보완을 명분으로 추진해 온 자립형 사립고 설립이나 과학고·외국어고 확대 등의 정책들은 평준화를 심각하게 훼손하며 교육공공성을 파괴하는 것들이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우익들은 이미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며 일관되게 자립형 사립학교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데, 한미FTA는 이런 논리를 강화하는 강력한 외압이 될 것이다.

지난 2006년 4월 김진표 교육부 장관이 자사고 확대를 반대해 우익들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우익들이 길길이 날뛴 이유는 노무현 정부가 말을 바꿨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송도 경제자유구역에는 1년 등록금이 2천만 원일 것으로 예상되는 초·중·고등학교가 2008년에 개교할 예정이다. 이런 ‘귀족학교’가 설사 경제자유구역에만 설립된다고 하더라도 등록금 1천만 원 수준인 민족사관고등학교 같은 자립형 사립학교 확대의 근거가 될 것이다.

한미FTA가 체결된다면 부자들이 받는 교육과 평범한 사람들이 받는 교육이 또렷이 나뉘어지는 현상이 초·중등교육에서도 강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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