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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라틴 아메리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남미는 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게걸스럽게 부를 챙겨 갈 수 있는 “준비된” 땅이었다. 1980년대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은 중남미 국가들에게 돈을 빌려 주는 조건으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했다. 공공 자산을 사유화하고, 국가 보조금을 철폐하며, 자본과 부동산 시장을 개방하며, 노동자들의 임금과 연금을 삭감하며, 재정 긴축 정책을 추진하라는 것이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이었다.

다국적 기업과 미국은 중남미를 세계 경제에 통합하는 첫걸음으로 1994년 1월 1일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를 선포했다. 미국과 캐나다와 멕시코의 정부들은 자본과 노동의 자유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을 모두 철폐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4월 캐나다 퀘벡에서는 2005년에 미주자유무역지대(FTAA)가 출범한다고 선언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의 결과는 끔찍했다. 대다수 중남미 민중의 생활 수준은 피폐해졌고, 실업률은 치솟았으며, 권력과 부가 더한층 소수에 집중됐다. 이 과정의 희생자들은 주로 노동자, 영세 농민, 학생, 도시 빈민, 실업자 들이었다.

준비된 땅

중남미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경제·정치 위기는 끝이 없어 보인다. 최근 아르헨티나의 붕괴는 그 일부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처음에는 성공하는 듯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1980년대가 지나간 뒤 1990년대 초반에는 인플레가 수그러들었고 수출이 증가했다. 1980년대에 2퍼센트였던 수출 증가율은 6퍼센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런 경제 성장은 대중의 생활 수준 하락 덕분이었다. 경제 성과는 대다수 중남미인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부채 증가로 파산한 사람들이 늘어났고, 대량 실업이 일상사가 됐으며, 계급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다. 공공 자산을 사유화한 결과, 중남미 국가들은 국내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데서 선택의 폭이 제약됐다.

중남미 국가들의 총외채는 1990년에 4천3백90억 달러에서 1998년에는 6천7백98억 달러로 증가했다. 1980년대 초 외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입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오히려 외채를 더 늘어나게 만들었다. 다국적 기업들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제 기구들은 중남미 국가들에 보건·교육·사회복지 비용을 줄이라고 강요하고 있다.

오늘날 브라질·아르헨티나·콜롬비아의 실업률은 20퍼센트를 넘나들고 있으며,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는 16퍼센트, 칠레는 11퍼센트다. 노동자 임금도 대폭 삭감됐다. 이는 IMF로부터 대부받는 조건으로 임금이 거의 절반으로 삭감됐던 1980년대를 연상시킨다.

그러다 보니 지금 중남미에서는 빈곤이 만연해 있다. 너무 낮게 발표해 신뢰할 수 없는 공식 통계로도 농촌 가구의 대다수와 도시 가구의 30퍼센트가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빈곤층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본 생필품도 사지 못하는 사람들이 중남미 전체에서 60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극빈층도 중남미 지역 인구의 35퍼센트에 이르는데, 이는 10년 전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과로 중남미 국가들이 독자적인 경제 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더욱 줄어들었다. IMF와 세계은행이 강요한 가혹한 조건과 지금까지 진행된 사유화로 인해 중남미 경제는 미국과 세계 경제에 더욱 얽매이게 됐다.

세계 8위 경제 대국인 브라질에서 지난 5년 동안 기업의 70퍼센트가 외국 기업에 인수·합병됐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세번째 경제 규모를 지닌 아르헨티나의 경우, 20년 전에는 대략 대기업의 3분의 1이 외국인 소유였지만 지금은 석유·에너지·통신·공공 서비스·철도 등 핵심 산업들을 포함해 경제의 3분의 2가 다국적 자본가들의 수중에 있다.

투쟁의 시작과 확산

라틴 아메리카를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을 거라는 다국적 기업들의 생각은 나프타가 공식 출범하던 날부터 틀렸음이 드러났다. 멕시코 남부의 치아파스 주에서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치아파스 주의 주도(州都) 산 크리스토발 델 라 카사스를 장악하고는 세계화에 저항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전 세계를 향한 첫번째 선언문에서 사파티스타는 억압당하는 자들의 봉기를 선언하고 “야 바스타!”(이제 그만!)를 외쳤다. 그 후 ‘야 바스타!’는 반자본주의 운동을 상징하는 핵심 구호가 됐다. 사파티스타는 멕시코 남부의 30개 토착민 단체의 연대 투쟁을 대변했다. 멕시코 정부는 사파티스타와 평화 협상을 질질 끄는 한편, 6만 명의 군인을 투입해 사파티스타가 통제하는 공동체를 포위하는 전략을 동시에 추진했다.

2001년 3월 사파티스타는 치아파스 주둔 군대의 철수, 사파티스타 소속 재소자 석방, 토착민 공동체의 권리를 명시해 놓은 산 안드레 협정 준수 등을 요구하며 멕시코시티까지 행진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중남미에서 반자본주의 저항을 상징했다. 한편, 중남미의 다른 지역에서도 반자본주의 저항이 계속 성장해 더 거대한 운동으로 발전했다. 여러 쟁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항의와 저항은 공통의 적을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그 적은 바로 사회적 비용이 얼마가 되든 상관 없이 중남미 지역 전체에 자신의 논리를 강요하려는 자본주의 경제였다.

예컨대, 볼리비아의 반세르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며 공공 자원들을 사유화했다. 수자원의 사유화 시도에 반대하는 투쟁은 다양한 부문을 끌어들였으며, 이들은 2001년 4월에는 코차밤바에서 라파스까지 6백44킬로미터에 이르는 장거리 시위 행진을 하기도 했다. 행진에는 노동조합원들뿐 아니라 농장 노동자, 소상인, 소농, 토착민 단체들도 참가했다. 경찰의 잔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투쟁에 참여한 여러 단체는 5월 이후 항의 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민중 회의를 소집했다.

자본주의의 지역적 통합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서 ‘달러와 연동시키는 정책’이 있는데, 이에 반대하는 투쟁의 선두에 에콰도르가 있다. 1999년 초 하밀 마우아드 정부는 대폭적인 물가 인상과 함께 생산 합리화, 보조금 폐지 정책을 펼치다가 통일노동자전선, 에콰도르토착민연합(CONAIE) 등으로부터 강력한 반격을 받았다. 마우아드가 유가 인상 정책을 번복한다고 발표했음에도 투쟁은 1999년 말까지 계속됐다. 2000년 1월 마우아드는 대중 봉기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다. 경제를 마비시키고, 키토 거리를 통제했으며, 민족민중협의회로 표현됐던 대중 운동이 잠시나마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부통령 기예르모 노보아가 군부와 협력해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CONAIE의 지도자 한 명이 노보아 정부에 입각했으나, 노보아는 그의 전임자와 비슷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노보아가 달러화 정책을 다시 시도하자 2001년 2월 7일에 전국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에콰도르 정부는 감금된 CONAIE 지도자 안토니오 바르가스를 석방하고, IMF가 강요하는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으며 미국의 콜롬비아 개입 계획인 ‘플랜 콜롬비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저항과 대안

요즘에는 아르헨티나가 중남미가 갈 길을 보여 주는 듯하다. 아르헨티나에서 데 라 루아 정부가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인플레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실업률은 신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3월에도 데 라 루아가 교육 재정 삭감과 가스 및 전기에 대한 보조금 폐지를 포함한 가혹한 긴축 조치들을 발표하자 조직 노동자·학생·연금 생활자들이 파업, 거리 점거, 고속도로 봉쇄, 대중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아르헨티나의 대중 투쟁은 데 라 루아의 계엄령을 무력화시키고, 그와 그의 후임자 로드리게스 사아를 물러나게 했다. 지금 아르헨티나에서 대중 투쟁의 폭발력은 봉기를 넘어 혁명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브라질은 지난 20년 동안 대중 운동의 본보기를 보여 줬다. 1970년대 말 산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군부 통치의 종말을 앞당겼다. 그리고 노동자 파업 투쟁의 성과로 노동자당(PT)이 건설됐다. 1990년대에는 ‘땅없는 사람들의 운동’(MST)이 수십만 명의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토지와 주거권을 위해 투쟁을 벌였다. PT는 주요 정당으로 발전해 여러 주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PT는 자신이 유기적 연관을 맺고 있는 대중 운동과, 브라질 정부와 세계 경제가 가하는 압력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다. FTAA(미주자유무역지대)가 브라질 경제에 가하는 압력이 커질수록 PT는 기성 질서와 제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압력을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오늘날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이 넘어야 할 장애물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나라다. 미국은 ‘플랜 콜롬비아’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위해 13억 달러를 제공했다. 군사 장비나 코카인 생산을 못하도록 이 보조금은 주로 화학 약품으로 제공됐다. 미국은 마약 단속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내걸지만 사실은 다른 이해관계를 감추고 있다.

콜롬비아는 현 정부군이 통제하는 지역과 콜롬비아혁명군(FARC)이 통제하는 지역, 그리고 민족해방군(ELN)이 통치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상이한 파벌 사이의 협상 테이블 노릇을 해 왔다. 1990년대 초반, 게릴라 조직을 제도 정치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우익 민병대 조직이 게릴라 조직 지도자들을 암살함으로써 좌절됐다.

‘플랜 콜롬비아’는 콜롬비아 대통령 안드레스 파스트라나가 미국 정부에 제시한 계획으로, 이 지역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통제를 위해 콜롬비아 국가의 군사력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콜롬비아 접경의 에콰도르 군사 기지가 미국의 후원을 받는 군벌의 세력권 안에 들어갔다. “마약과의 전쟁”은 미국이 주요 마약 생산지인 페루·에콰도르·볼리비아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페루에서는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가 우두머리로 있던 억압 기구의 만행들이 폭로되면서 후지모리 정부가 몰락했다. 대선 주자였던 알란 가르시아는 거액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이며, 현 대통령 알레한드로 톨레도는 신자유주의 경제 계획에 충실할 것임을 천명했다. 칠레의 현 대통령 리카르도 라고스도 사회당 출신인데도 신자유주의에 충실하다는 점에서는 톨레도와 똑같다.

중남미의 전체적인 상황이 매우 분명해지고 있다. 1980년대 말 소위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함께 시작된 과정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 과정의 우선 순위는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중남미 경제를 “자유화”(개방)하는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민간 정부의 구성이었다. 많은 새 정부들이 게릴라 조직의 지도자(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콜롬비아)나 야당 인사들(칠레)을 정부 내로 끌어들였다. 중남미의 저항 운동은 토지나 주택을 위해 투쟁하는 단체에서부터 토착민들의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과 밀접한 연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운동의 특징은 현 사회와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종종 눈에 띄는 항의 행동을 벌이면서 세계화의 결과(환경 파괴, 인권 침해, 경제적 폐해 등)에 반대해 싸운 점이다. 멕시코 대통령 비센테 폭스가 사파티스타에 몇 가지 양보 조처를 내놓는다 하더라도 1999∼2000년에 멕시코 국립대학을 14개월간 점거하며 투쟁했던 학생들의 무상 교육을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멕시코-미국 접경 지역의 마킬라도라(수출 자유 지역)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거나 멕시코시티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약간의 양보를 한다 할지라도 곧 멕시코 사회 전체에서 새로운 약탈과 파괴를 시도해야 할 처지에 빠질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포퓰리스트인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면서 석유 수입에 바탕을 둔 강력한 국민 국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역사적 경험은 석유 수출이 아무리 잘된다 할지라도 세계 시장이 시장에 반대하는 세력을 어떻게 붕괴시켰는지를 잘 보여 준다. 카리브해의 쿠바가 생생한 선례일 것이다.

대안은 아르헨티나·볼리비아·에콰도르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나라들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농민·토착민·유색인·여성·도시 빈민·학생 등이 부를 직접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