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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 개악 시도는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

지난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 이후 경찰청장 이무영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현행 집시법은 집회를 여는 단체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집시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찰이 검토중인 주요내용은 ① 폭력과격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참가 배제를 의무화하고, 위반시 처벌규정 신설 ② 질서유지선 침범시 처벌 강화 ③ 주말과 공휴일 도심지에서의 대규모 집회, 시위의 제한 ④ 집회신고시 질서유지각서 제출 의무화 등이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지금도 정부는 기존 집시법으로 집회와 시위를 방해해 왔다. 헌데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집회하기가 어려워진다.

독소조항

1999년 5월 24일 개정된 집시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은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와 시위 금지’(집시법 제5조 제1항)이다. 이 조항은 지난 5월 10일 서울지방경찰청이 민주노총이 신고한 5월30일 ‘노동시간 단축 총파업’ 집회를 불법·폭력 집회를 개최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금지통고 내리는데 적용되었다. 물론 민주노총의 반발로 허가했지만 이는 언제든지 다시 적용될 수 있다.

최근 민주노총 집회에 경찰은 “공공의 안녕 질서에 위협하는 집단이기주의” 운운하며 법질서 확립차원에서 엄단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결국 이 조항은 정부가 우리의 정당한 집회를 언제든지 불법화시키고, 폭력 경찰을 동원해서 행사를 방해할 수 있는 악법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새로운 개정안을 통해 위반시 처벌조항을 신설, 탄압을 강화하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회를 방해하는 또다른 대표적 조항은 국회의사당, 법원, 헌법재판소, 외국의 외교기관이 위치한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 옥외집회를 금지(집시법 제 11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들은 이 같은 조항이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항이라며 지난 5월 25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광화문 네거리의 광화문 빌딩 앞은 1999년 7월 브루나이 대사관이 입주하면서부터 합법적인 집회를 열 수 없게 돼 버렸다. 해고노동자들의 장기집회로 골머리를 썩이던 삼성그룹도 2000년 3월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건물에 엘살바도르 대사관의 입주를 유치하면서 집회를 원천봉쇄했다. 전영숙 삼성생명 해고자는 “집회를 하면 왜 하는지를 듣고 해결을 해야 하는데 아주 귀를 막어버릴 작정인 것 같다.”며 분개했다.

한편, 재벌들은 외국공관 입주를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은 5월26일 파나마 대사관을 입주시키면서 다른 곳보다 좋은 임대조건을 제시했다.

대사관 직원에 따르면 “이사하는 날 신문에서 집회를 막기 위해 싼값에 외국대사관을 유치한다는 말을 듣고, 파나마 대사도 황당해 했다.”고 한다.

현재 한화그룹 내 그리스 대사관, 대우센터에 우루과이 대사관, 교보빌딩에 7개국 대사관 등 재벌들의 주요 건물에는 외국공관이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만약 이 조항이 강화된다면 우리는 집회장소를 찾기 위해서 1,000분의 1짜리 정밀지도를 샅샅이 뒤져야할 날이 머지 않을 것만 같다.

물론 어렵게 집회 장소를 허가받아도 다른 법 조항 때문에 집회와 시위는 쉽지 않다. 1999년 5월 24일 집시법 개정시 신설된 ‘질서유지선 침범시 처벌 규정’은 합법적 집회조차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다. 집시법 제21조 제4호에는 ‘질서유지선 침범시 최고 6개월의 징역형을 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질서유지선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그 선이 누구를 또는 무엇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분명하다. 질서유지선은 오로지 집회 시위대에 의하여 전달될 메세지로부터 국가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김종서 배재대 교수 ‘집회 및 시위의 규제와 그 한계’ p 18)

결국 국가나 경찰이 인정하지 않는 집회와 시위는 언제까지나 불법폭력시위로 매도하기 위한 조항일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개정안에 가장 중요한 쟁점은 기존의 야간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주말과 공휴일까지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하게 노동자 집회를 방해하기 위한 수작이다. 도대체 평범한 노동자들이 무슨 수로 평일 낮시간 집회나 시위에 참가할 수 있겠는가?

결국 김대중 정부는 현행 집시법조차 지나친 제한으로 말미암아 불만이 많은 시점에 오히려 그 요건을 강화하는 쪽으로 집시법을 개정하려고 하고있다.

반격

집시법 개정은 단지 학생들의 화염병 시위를 막고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도가 있다. 가령, 김영삼 정부는 1996년 10월 24일 집시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했었다. 이것은 당시 연세대에서 벌인 한총련 시위 재발 방지를 위한 목적이라고 했지만 실상 상반기부터 공공연하게 정부에 반대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잠재우기 위한 반격의 일환이었다.

김대중도 마찬가지의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 김대중 집권 2년 반은 노동자, 민중의 불만과 분노의 세월이었다. 특히, 하반기 금융권 구조조정을 비롯해 철도, 체신, 한국통신 등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려면 노동자들 파업을 무력화시켜야만 했다.

집시법 개정은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운동을 공격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다. 최근의 김대중 정부의 만행은 이것을 입증하고 있다. 롯데호텔노조의 무력진압과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 폭력,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경찰 투입은 김대중 정부가 노동자들과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7월 10일 롯데호텔 앞에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강제연행과 구타는 경찰의 폭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집시법 개정은 학생들과 몇 몇 좌파단체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 민주노총에서 적극적인 저항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롯데와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경찰력 투입 항의시위와 함께 제기된다면 더욱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1996년 집시법 개정을 하지 못한 이유도 민주노총의 1월 대중파업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