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술 분야마다 “자본”과 “시장”이 모든 현상들을 설명하는 주된 도구가 돼가는 느낌이다. 내가 꽤나 관심을 갖는 종교학만 해도, “종교 시장” 같은 용어가 거의 고착이 됐다. 꼭 완벽한 틀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아마도 “시장/자본 비유법”이 유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선거라는 시장에서 기존의 성과와 이미지를 상품 삼아 팔아 결국 “인지도”, “평판”이라는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정당과 정치인 아니겠는가? 물론 선거에서 “판매”를 할 때 ‘비유’ 아니라 실질인 돈 없이는 마케팅이 잘 안 된다는 것도, 즉 후원 기반도 정치 자본 형성의 하나의 기원이라는 것도 염두에 넣어야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열우당의 지리멸렬과 한나라당의 압승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열우당의 정치 자본이란 실제 정책보다 주로 “이미지”와 정치적 보스들의 경력에 많이 의존해서 축적된 듯하다. 유산된 정책(국보법 폐지 등)을 빼고 실행이 된 정책을 놓고 보면, 열우당은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제2한나라당”의 노릇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문제는 아류가 아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를 좋아할 사람들이 “제1한나라당”을 찍을 것이 뻔하고,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 짓 왜 하나” 해서 정치에 염증 느껴 기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열우당이 먹고 산 것이 사실 1980년대부터 쌓인 이미지 자본이지 정책 자본이 아니었을 듯하다. 고문받은 김근태, 녹화교육을 받은 유시민, 진보적 입장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이종석 ….

통에 그려진 얼굴 보고 사는 상품이 열우당이었는데, 통을 열어보니 조림의 맛은 그저 그렇고, 실책에 실책을 거듭하는 신자유주의다. 열우당 덕분에 한반도 평화가 유지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고, 열우당에 투표해 달라고 〈로동신문〉이 호소한 것도 웃지 못할 사실인데, 그게 엄청난 오판인 것 같다.

삼성과 LG의 공장과 사무실이 여기에 있는 이상 삼성과 LG의 후원을 받는 정치세력이 서울과 경기도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집단에게 자극적인 행위를 할 이유가 있을까? 더군다나 그 집단이 경쟁자인 중국의 예속 하에 들어갈 위험이 있는 지금, 이북 지배층 포섭책은 아마도 권력 교체가 돼도 지속될 듯하다.

1980년대부터 축적된 열우당 리더들의 정치 자본이 이미 바닥났지만, 한나라당의 “개발주의·성장주의·애국주의” 삼위일체의 실질적 모토는 한국 사회의 완강한 소부르주아적 기질에 대단히 잘 호소하지 않는가. 내 경험은 매우 부족하지만 정치를 땅 값 추이로 보는 사람을 수없이 많이 봤다.

그런데 나에게 핵심적 문제는 우리 민주노동당의 자본이 왜 이토록 부족했을까 하는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중에 따로 쓰고 결론은 이렇다. 대체로 좋은 공약만 내건다고 해서 대중이 절로 운집하는 법이 정치시장 바닥에 없는 듯하다. 진보정당의 정치 마케팅은 결국 길거리에 나가서 투쟁한 성과, 그리고 치열한 투쟁의 이미지일 것이다.

KTX여승무원들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고 경찰들에게 연행되고 했을 때 우리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그들과 함께 길바닥에 앉아 웃고 울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민주노동당에 대한 인식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민주노동당이야말로 여승무원을 제대로 지지한 유일한 정당이지만, 나는 투쟁의 강도를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