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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 칼럼 - 메스를 들이대며:
한미FTA에 대한‘세이렌의 노래'에 맞불을

6월 초 1차 한미FTA 본협상이 끝났다. 미국협상단은 1차 협상에서 이처럼 많은 진전을 이루어낸 적이 없다며 큰 만족을 표시했고 한국협상단도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자평했다. 단 한번의 협상으로 17개 분야 중 13개 분야의 통합협정문이 작성됐다니 ‘협상’이라기보다는 합의를 위한 요식행위를 거쳤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철저한 비밀협상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두 가지만 살펴보자.

한미FTA의 핵심 사안 중 하나는 “투자” 조항이다. 한국 협상단은 “투자 분야에는 대체로 의견이 접근”했다고 말했다. 올해 2월 말 미국이 콜롬비아나 페루와 체결한 미-안데안FTA의 투자 조항이 대체적인 내용을 짐작케 해준다. 미-안데안FTA는 내국인대우와 최혜국대우는 물론이고 미국이 투자한 기업은 원래 국내기업에 부과되는 고용의무나 노동조건 보장, 환경 규제 등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또, 기업의 시장 지분과 예상되는 영업이익에 대한 침해도 ‘간접적인’ 기업 몰수로 간주된다. 공기업에 의한 독점도 투자와 공정 경쟁의 장애로 간주된다. 이렇게 기업이 공적 제도나 공기업의 ‘독점’에 의해 영업이익이 침해당했다고 생각되면 기업은 상대방 국가를 제소할 수 있다.

투 자 조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예를 들어보자. 택배서비스로 잘 알려진 UPS가 캐나다 우체국이 소포배달을 하는 것은 정부 보조를 받는 행위라고 국제중재심판소에 캐나다 정부를 제소했다. 이 중재심판에서 캐나다 정부가 지면 캐나다 우체국은 소포배달을 중단해야 할 판이다.

이를테면 한국 정부가 암에 대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려 하면 암 보험을 파는 AIG가 영업이익을 침해당한다고 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런데 이 ‘투자’조항에 해당하는 것은 미국의 기업이 아니라 미국이 투자한 모든 ‘주식’이다. 국내 기업 중 미국 투자지분이 없는 기업이 있는가? 한미FTA는 한미 양국 기업 모두에게 환경 규제 등의 공공적 규제와 노동자의 권리보장 조항 등을 한꺼번에 없애버릴 수 있는 기회다.

공기업의 독점? 한국가스공사가 가스 도입권을 독점하지 않게 되면 누가 이득을 볼 것인가? 당연히 GS칼텍스의 GS와 셰브런텍사코(칼텍스의 모기업) 그리고 SK와 SK의 지주회사인 SK엔론의 50퍼센트 지분을 가지고 있는 엔론이다. 물론 한국 정부는 이미 가스 직도입권을 GS칼텍스와 SK에 허용해 주었다.

자본에 대한 공공적 규제가 풀리고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가스값이나 수도·전기 값이 폭등하는데 GDP가 올라가고 평균소득이 3만 달러가 되든 어쨌든 평범한 노동자들에게는 재앙일 뿐이다.

한 미FTA의 또 하나 중요 분야인 서비스분야를 보자. 정부는 이번에 미국이 ‘교육과 의료분야의 영리법인 허용을 통한 서비스개방은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교육과 의료는 예외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는 WTO처럼 개방 대상을 열거하는 것(포지티브시스템)이 아니라 개방하지 않는 것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미래에 나올 상품까지 모두 개방한다는 포괄주의(네거티브시스템) 체계다. 결국 정부의 말은 ‘영리법인 허용을 통한’ 교육·의료 개방만 안 하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할 것이라는 이야기일 뿐이다. 게다가 교육과 의료 영리법인은 이미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서 알아서 시행했다.

재앙

정 부가 개방이 없다고 주장하는 의료서비스 중 하나만 살펴보자. 우리 나라 건강보험재정 중 30퍼센트는 약값으로 나간다. 한미FTA가 되면 약값은 어떻게 될까? 지금 미국이 요구하는 특허기간 연장 등의 내용을 받아들인 페루의 경우 페루 보건성이 예측한 바에 따르면 미-안데안FTA 효과로 1년 뒤 약값이 9.6퍼센트, 10년 뒤 1백 퍼센트 오르고 매년 70만∼90만 명이 필요한 약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를 한국에 적용해 보면 한미FTA 후 다국적 제약회사에게 추가로 줘야 할 약값만 1년 뒤 8천억 원이고 10년 뒤에는 8조 원이다. FTA가 체결되면 당장 1년 뒤 한 집안당 6만 5천 원을 다국적 제약회사에 더 줘야 하고 약을 못 먹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날 텐데도 의료는 개방이 없고 공공성 훼손이 없다고?

여 기에다 최근 미국의 전경련이라고 부를 수 있는 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특별소비세 폐지, 보험료 규제 철폐, 식품안전검사 폐지, 모든 제도 도입시 기업의견 관철 등을 한미FTA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며 “한미FTA가 진정한 자유화로 나아가려면 최근까지 미국이 맺은 모든 FTA를 뛰어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적 NGO인 옥스팜은 미-안데안FTA에 대한 보고서 제목을 “세이렌의 노래”라고 붙였다. 매혹적이지만 그 노래에 홀려 따라가면 결국 괴물에 잡아먹히게 되는 세이렌의 노래. 정부가 하고 있는 한미FTA 선전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아르고호의 오르페우스가 했던 것처럼 정부의 ‘세이렌의 노래’에 또 다른 노래로 ‘맞불‘을 놓는 일이다. 우리가 부를 노래의 제목은 이렇다. 자본의 이윤만을 위한 FTA를 중단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위한 맞불을 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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