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공화국과 부패 검찰

 

정병호

4년 전 “정경유착으로부터 기업을 해방”시키고, “부정부패로부터 우리 사회를 단절”시키겠다던 김대중의 약속은 완전히 위선이었음이 드러났다. 김대중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최악의 부패 정권”으로 기억될 판이다.

정권 초기부터 옷로비·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에 김태정 법무부 장관·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연루됐지만, 이것은 최근 연일 터지고 있는 3대 게이트(진승현·이용호·윤태식 게이트)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3대 게이트에 대한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메들리 노래’가 따로 없다. 어제는 이용호, 오늘은 진승현, 내일은 윤태식. 매일 새로운 혐의들이 드러나고 있고 정권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사탕’ 마냥 걸려들고 있다.

진승현 게이트에는 신광옥 전 법무차관,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뿐 아니라 김대중 아들 김홍일과 김홍업이 연루돼 있다. 진승현이 불법대출한 2천3백억 원 중 일부의 행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이용호 게이트는 희랍 신화에 나오는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 히드라처럼 금감원·국세청·국정원·검찰·민주당·조폭이 뒤엉킨 권력형 비리 사건의 종합판이다.” 김홍일은 여기에도 연루됐고,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신승환은 금감원·자산관리공사·검찰 로비용으로 거액을 받았다. 신승환의 수첩에는 로비 대상 검사들의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윤태식 게이트는 가히 메가톤급 폭탄이다. 부패방지위원장으로 내정됐던 김성남이 도리어 부정부패에 가담해 부패척결은 우스꽝스러운 희극이 되었다. 정권의 “입“노릇을 하던 박준영 국정홍보처장과 김정길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박지원 전 공보수석, 그리고 이종찬 전 국정원장까지 살인범 윤태식의 전방위 로비망에 줄줄이 엮였다. 거기에 전직 정보통신부 장관들과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들에게까지 로비의 손길이 뻗쳤다.

 

부패 정권

청와대,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국가 권력 핵심 기구가 모두 비리에 연루돼 김대중 정권 자신이 부패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김대중 정권은 출범 당시, 정경 유착을 통해 성장한 재벌이 경제를 망쳐왔다면서 재벌 대신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술력만 갖춘 벤처기업은 성공할 수 없었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주식 투기와 정치권 로비 등의 편법이 필요했다.

결국 쇠고랑을 찬 벤처 기업가들은 하나같이 IMF 위기 이후 정권이 부추긴 벤처기업 붐에 편승해 불법 대출, 주가 조작 등을 저질러가며 사업을 확장했다. 이런 식으로 떼돈을 번 사업가들은 “비약적인 사업 팽창에 따른 ‘보호막’ 형성을 위해” 서로가 정권의 핵심 실세와 연관 맺으려고 전방위로 로비를 펼쳤다.

이러다 보니, 이 정권 하에서 부패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부패국민연대의 조사 결과, 우리 나라 청소년들의 90퍼센트 이상이 “우리 사회는 부패한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대중은 지난 14일 연두 기자 회견에서 “일체의 부패를 가차없이 척결”하겠다고 말했으나 이제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검찰·안기부 같은 핵심 국가 기구가 연루된 이번 사건으로 김대중 정권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 특히 검찰이 이용호·진승현 게이트를 은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중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각 게이트 수사에서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김재환 전 MCI 코리아 회장 같은 브로커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검찰은 그들이 출국한 뒤에야 출국 금지를 발표할 정도였다. 대중의 높은 분노 때문에 검찰총장 사퇴라는 고육지책을 택한 김대중은 ‘특별수사검찰청 설치’를 통해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것은 특검제 상설화라는 대중의 요구를 회피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부패한 검찰이 스스로 개혁될 순 없다. 게이트의 몸통 중 하나인 검찰은 부패 사건을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할 것이다.

 

김대중에 맞선 투쟁

김대중 정권은 완전히 부패한 정권이다. 도대체 이런 정권이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그대로 내버려둬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정권은 퇴진돼야 마땅하다. 1998년 5월 인도네시아에서는 극심한 실업난과 물가 인상, 그리고 대통령 수하르토와 그 일가의 부패에 분노하던 민중이 독재자 수하르토를 퇴진시켰다. 2000년 필리핀의 에스트라다도 부패 추문에 시달리다 퇴진했다. 그리고 지금 아르헨티나에서는 관료들의 부패 스캔들이 대중적 불만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 나라도 정권 자신이 부패로 얼룩져 있기 때문에 불만이 광범하다. 게다가 정권의 레임덕과 지배자들의 분열 때문에 그들이 위기를 모면하려고 발버둥칠수록 더욱더 깊은 늪에 빠지는 형국이다.

실제로 이번 3대 게이트가 폭로되고 수사가 진행된 것 자체가 이런 정치 위기의 결과물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권력 핵심부가 연루된 이 비리들을 덮는 데에 안간힘을 썼다. 검찰은 비리 수사 결과를 비밀에 부치거나, 관련자가 더 밝혀지기 전에 서둘러 수사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10·25 재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 김대중 정부는 상황을 통제할 힘을 급속도로 잃었다. 한나라당이 이 기회를 이용해 덮어둔 이용호 게이트와 진승현 게이트를 되살려 내면서 김대중 정권은 더 깊은 위기로 빠져들었다. 민주당은 윤태식 게이트로 진승현 게이트에 ‘맞불 작전’을 펼쳤지만,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정권의 위기만 심화시켰다. 이 사건은 원래 수지김 간첩 조작 사건을 주도한 당시 안기부 수사관 한나라당의 정형근을 비롯한 구 여권 인사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역시 이 사건을 은폐했을 뿐 아니라 ‘패스 21’을 비호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완전히 ‘제 무덤 제가 판 격’이 돼 버렸다.

이렇게 정권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은 노동자들이 싸우기 좋을 때다. 노동자 운동이 부패 문제 같은 정치 쟁점을 임금이나 노동조건 등 생활상의 요구들과 결합시켜 투쟁을 벌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지난 여름 민주노총의 파업이 지지부진하게 끝나고 단병호 위원장이 자진 출두하면서, 전국적인 차원의 노동자 운동은 다소 주춤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패 정국이 만들어 놓은 유리한 정세 때문에 노동자 투쟁들이 발전하고 승리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배자들은 현 정치 위기의 극복 방안을 두고 더욱 분열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작년 4월 대우차 폭력 만행과 같은 정치적 실수를 초래할 수도 있다.

부패 정권에 환멸을 느낀 대중은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 50년간 일당독재를 자행하며 노동자·민중을 탄압하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른 장본인인 한나라당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다. 이 사회에서 민주 개혁을 가져올 진정한 힘은 대중 투쟁에 달려 있다. 대중 투쟁 속에서 부패한 기성 정당과 다른 새로운 대안 ― 진보정당 ― 을 건설하는 데 주력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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