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 도입 - 즉각, 모두에게

 

김어진

 “금요일에 동료들과 마음 편하게 술 한잔 한 뒤 토요일 늦잠을 잔다. 일요일 일찍 일어나 부인과 영화관으로 간다. 가격 할인에다 번잡스럽지도 않은 조조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인과 대형 마켓에 가서 한 주 동안 사용할 물건들을 산다. 아이들과 점심을 함께하고 서울 근교로 차를 몰고 나간다. 찌든 일상을 말끔히 없애기 위한 ‘자연학습’을 위해서다. … 일요일 오후 아이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바둑을 두며 머리를 식힌다.”이것은 한 일간지에 소개된, 주5일 근무를 하는 어떤 노동자들의 주말 일상이다. 이런 주말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은 이 바람을 집권 4년 내내 무시해 왔다. 김대중은 기업주들의 요구는 재빠르게 수용해 왔다. 작년 12월 19일 중소기업 사장들 1천여 명이 모여 “주5일 근무제 도입 반대 긴급 결의대회”를 열자 그 즉시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어디 이뿐인가. 일련의 게이트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김대중의 측근들은 벤처 사기꾼들이 뻗친 청탁의 노예였다. 김대중 정권의 ‘사정’ 업무 총지휘관이었던 신광옥은 주가 조작과 불법 대출을 일삼은 벤처 사기꾼들의 요구를 넙쭉넙쭉 들어 줬다. 김대중의 가장 유력한 충고자였던 박준영도 희대의 살인마·사기꾼 윤태식의 부탁에 발벗고 나섰다. 김원길과 이종찬도 벤처 기업주들의 청탁에 연루됐다. 또한, 게이트에 연루된 공안 기구의 수뇌들이 한 손으로는 구조조정 정책과 노동 탄압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주가 조작, 불법 대출 허가, 주식 투기 등을 일삼았다. 그러는 동안 노동자들의 오랜 바람인 주5일 근무제 요구는 노사정위라는 블랙홀에 처박혔다.

 

어물쩡, 더 누더기로  

김대중이 주5일 근무제 요구를 어떻게 무시해 왔는지 살펴보자. 1997년 1월의 대중파업 전부터 노동자들은 주5일 근무제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1996년 여름, 자신감에 차 있던 자동차 노동자들은 주40시간 노동제 도입을 주요 요구로 내걸고 싸웠다. 기아·아시아자동차, 데이콤 등 7개 노조가 주 41시간으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한라중공업, 쌍용차 등 73개 노조가 주4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압력을 받아 상당수 기업들도 격주 휴무제를 도입했다. 1997년 말 경제 공황이 터지자 민주노총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노동자 투쟁의 압력을 받은 김대중은 대선 공약으로 주5일 근무제를 내세웠다. 그러나 김대중은 노사정위에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떠넘겼다. 민주노총은 어물쩡 넘어가려는 김대중에게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주5일 근무제 요구와 민주노총의 파업 분위기에 밀려 김대중은 서둘러 연내 입법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다시 노사정위에 떠넘겨진 노동시간 단축 입법화 문제에는 먼지만 수북이 쌓여 갔다. ‘노동자들의 투쟁→연내 입법화 약속→노사정위에 떠넘기기’라는 그림은 2001년에도 재방송됐다. 2001년 7월 말 김대중은 기만적 양보 조치의 일환으로 연내 입법화를 공언했다. 그러나 7월 말부터 12월 사이에 또다시 노사정위원회로 공이 넘어갔다. 노사정위 위원장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동 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이니 길게 봐야 한다”며 능청을 떠는 사이에 법안은 더 누더기가 돼 갔다. 더 후퇴된 주5일 근무제 법안 내용은 주5일 근무제를 무색하게 만드는 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현 재 정부의 법안은 기존의 공익안보다도 더 후퇴해 그 동안 노동자들이 싸워서 쟁취해 온 권리들을 무(無)로 돌리는 개악 조항들로 이뤄져 있다.

현재의 정부안대로라면 주5일 근무제는 9년에 걸쳐 단계별로 도입해야 한다. 그리 되면 전체 노동자의 86.5퍼센트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은 최소 5년 안에는 주5일 근무제의 혜택을 볼 수 없다. 전체 노동자의 45퍼센트(5백90만 명)를 이루고 있는 10인 미만 업체 노동자는 2010년에 가서야 혜택을 보게 된다. 초과 근로시간 할증률은 현행 50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줄였다. 최종안에 따르면, 밤 9시 이후 야근하는 노동자들의 월급은 더 줄게 된다. 생리휴가 무급화, 월차휴가 폐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는 말할 것도 없다. 임금 삭감 문제도 법안 부칙에 선언적으로 “보전을 명시했을 뿐”이다. 한 마디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식이다. 11월 중순 노사정위를 탈퇴하기는 했지만 주5일 근무제를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드는 데에 이남순을 비롯한 한국노총 지도자들도 한몫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뭉개면서 기업주들과 우익의 압력에는 계속 밀려 대중의 개혁 요구를 속빈 강정으로 만들어 온 게 집권 4년 동안 김대중 정부가 한 일이다. 그런데도 김대중은 민주노총이 정부 법안에 반대하자 “노사정위 합의를 더욱 유도하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주장대로 뒤틀려지고 누더기가 된 정부측 주5일 근무제 법안은 폐기돼야 한다.

 

고통의 치료약

이윤 제일주의 경제가 낳는 요동치는 위기는 대중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한 쪽에서는 너무도 오랜 노동시간 때문에 지쳐 있는 노동자들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일자리를 못 구해 신음하는 실업자들이 늘어 간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 나라 노동자의 연간 총 노동시간은 지난해 2천4백74시간이었다. 이것은 영국·프랑스·독일·스웨덴 등 유럽 나라들이나 호주·뉴질랜드 등에 비해 약 1천 시간이 많다. 미국과 일본보다는 6백 시간에서 7백 시간이나 더 길다. 철도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하철 노동자들도 명절 때 제대로 한번 쉬지도 못한다. 그러는 동안 ‘시민의 발’은 위험의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청년 실업자들은 취업의 높은 담을 쳐다 보며 한숨 짓는다. 김대중은 얼마 전 연두기자회견에서 청년 실업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해야 했다.

이런 모순과 불합리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이 바로 노동시간 단축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1년 내내 공장을 돌려야 하는 기업은 20퍼센트의 인력을 더 뽑아야 한다. 주5일 근무는 68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기업주들은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할 재원이 없다며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경제 위기 때문에 어렵다는 주장도 갈수록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외국에서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됐던 많은 경우는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을 때였다. 미국은 대공황 이후 쏟아져 나온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1938년에 주40시간제를 도입했다. 프랑스가 주40시간 노동제를 쟁취했던 때는 1936년이었고, 경제 위기에서 확실히 벗어나지 못했던 1998년에는 주4.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설득으로 기업주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는 없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자는 논리는 현실의 검증을 이겨 내지 못함을 노사정위는 잘 보여 준다. 한국노총이 하나를 양보하면 경총이 두 개를 더 양보하라고 요구하고 정부 관료들이 못 이기는 척하면서 경총의 손을 들어 주는 모습이 바로 4년 동안 노사정위 내에서 주5일 근무제 논의가 흘러 온 과정 아니었던가.

 한나라당을 활용해 김대중에게 압력을 넣자는 의견을 경계해야 한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작년 말 “입법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협력해 줄 것”을 주문했는데, 이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한나당이 어떤 작자들인가? 한나라당은 주5일 근무와 주5일 수업제에 반대해 왔다. 한나라당은 “정부의 5일 수업 시행 방안은 교사를 노동자로 보는 데서 나온 발상”(권철현 대변인)이라며 “부작용”을 운운해 왔다. 작년 12월 중소기업 사장들이 보여 준, 자기 계급 이익을 지키기 위한 ‘기민하고 철두철미한’ 움직임에서 교훈을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단호하고 일관된 태도 만이 세계 각국의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지금 민주노총은 ‘2월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적절하게도 노동법 개악과 약자 희생 없는 주5일 근무제 쟁취가 파업의 목표다. 정부 법안을 폐기하고 진정으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주5일 근무제를 쟁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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