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휴전 제의를 거부한 지난 8일, 나는 팔레스타인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라말라에 사는 친구 마흐무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식량은 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저께 가자지구에서 22명이 죽었다. 어제는 8명, 오늘은 지금[저녁 7시]까지 5명이 살해됐다. … 오늘로 가자지구의 식량은 바닥났다. 이집트를 통해 식량을 들여오려 하지만, 이스라엘이 허락하지 않는다. … [하지만] 나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살해 위협에 맞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목표인 듯하다. 이따금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낙담한 내가 “요르단이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라”고 말하면, 내 팔레스타인 친구들은 하나같이 “나는 이 땅을 떠나지 않는다. 이 땅은 내 고향이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게 내가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바로 여기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추방과 학살 정책에 맞서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2일부터 본격적으로 거리의 인티파다[‘봉기’라는 뜻]가 시작됐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외국의 지원에 의존해 운영되는 팔레스타인 경제는 지금 거의 마비상태고, 대다수 사람들은 사실상 실업 상태다. 이것은 젊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거리로 내몰고, 결국은 불타오르는 3차 ‘인티파다’에 기름을 붓고 있다.

붕괴

1987년 12월에 시작된 1차 인티파다는 1988년 하마스 창설, PLO의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선언’, 1993년부터 시작된 ‘오슬로 협상’을 이끌어냈고, 그 뒤 오슬로 협상은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창설로 이어졌다.

그러나, 사실 이 협상 동안 이스라엘은 정착촌 확대, 검문소 설치, 관통도로 건설 등 공세적 점령 정책을 강화했고, 협상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 언급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결국 2000년 최종 지위 협상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요구는 무산됐다.

요컨대, 1978년 이후 지금까지 진행된 협상 프로그램들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은커녕 ‘점령지 전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를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2004년 야세르 아라파트의 죽음 이후 2005년 1월 마흐무드 압바스가 자치정부 수반으로 선출된 뒤에도 이스라엘은 더 공세적인 점령 정책을 추진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을 더 옥죄었다.

2006년 1월 총선에서 ‘점령지 전역’, 즉 동예루살렘·서안지역·가자지구에서의 완전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프로그램’을 내세운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대중의 큰 지지를 받으며 승리한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의 결과였다.

하마스 정부 이전까지 협상 프로그램은 미국의 후원 하에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주도해 왔다. 반면, 이제 하마스 정부는 협상 테이블에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올려놓기를 원한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무장 투쟁보다는 하마스의 협상 프로그램이 공론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현재 이스라엘은 하마스 정부를 붕괴시켜 협상 시도를 좌초시킴으로써 지금껏 추진해 온 점령 정책을 지속하려 하고 있다. 아랍의 권위주의 정부들 역시 하마스 정권이 자국 내 반정부 세력인 이슬람주의자들을 활성화시킬까 봐 두려워하며 이스라엘을 돕고 있다.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살해 위협과 샬리트 상병 구하기를 빌미 삼은 ‘집단적 보복’, 그리고 그에 협력해 세계 열강이 강요하는 굶주림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다. 세계인들에게 도움과 연대를 요청하며 3차 인티파다를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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