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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가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 3: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지피지기’(知彼知己)라는 말은 오래되고 유익한 격언이다. 노동계급 운동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 ― 농민, 학생, 지식인 등등 ― 의 적(敵)은 자본주의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우리 운동 안에는 흔히 아주 모호한 자본주의 개념이 널리 퍼져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지배자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저급 언론부터 명문 대학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에 대한 혼란스런 개념을 널리 유포시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폐지하려는 생각을 꿈도 꿀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가 영원불멸의 체제 ― 인간 본성의 문제 ― 인 양 여겨지기를 바란다.

따라서 그들은 자본주의를 인간의 특성, 즉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인간만큼 오래된 ‘탐욕’이나 약 5천 년 전에 출현한 ‘화폐’나 약 1만 년 전에 출현한 ‘사유 재산’과 동일시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생각에 영향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자본주의, 특히 그들이 날마다 경험하는 자본주의의 결과를 싫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그들이 자본주의에 때로는 매우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칼 마르크스의 많은 지적 성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출현했으며,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근본 동역학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분석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가 어떤 태도나 관념이 아니라 특정한 경제 체제, 즉 생산을 조직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처음에 자생적으로,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출현했다. 자본주의는 유럽에서 중세 후기에 그 전의 생산양식, 즉 봉건제 안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는 과거에도 상품 생산 체제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상품은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생산한 제품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력도 상품이 되고 임금노동이 주된 노동 형태가 된다. 자본주의 체제를 지배하는 것은 자본이다(그래서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자본은 다른 자본들과의 경쟁에서 그 가치를 증식시킬 목적으로 임금노동을 착취하는 데 사용되는 축적된 부(富)다. 임금노동과 자본의 관계는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사회관계다.

임금노동

자본주의가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 자본주의는 경제적으로 발전해야 했을 뿐 아니라 자본 소유자들, 즉 자본가들,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는 정치 권력도 장악해야 했다. 그들은 처음에 16세기 네덜란드 혁명과 17세기 영국 혁명에서 그렇게 했다. 미국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그리고 (영국의) 산업혁명 뒤에 자본주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거의 모든 곳을 지배한다.

이런 기본적 특징들을 보면, 자본주의가 왜 봉건제보다 더 진보적인 체제인지 알 수 있다.

첫째, 임금노동은 그보다 선행했던 노예·농노·농민들의 노동보다 ― 인간의 자유, 생산성, 혁명적 잠재력의 관점에서 보면 ― 진보였다.

둘째, 자본가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과거의 봉건 영주나 다른 지배자들의 통치 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규모로 생산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 특징들은 모든 비인간성·불평등·경제위기·전쟁·[환경]파괴의 씨앗도 품고 있다. 그런 것들은 자본주의 역사의 특징이었고, 그 때문에 오늘날 자본주의의 전복이 그토록 절실한 것이다.

일반화된 상품 생산 체제의 발전 때문에 이제는 모든 것을 사고 파는 세상이 됐다. 자본가들은 할 수만 있다면 허공의 공기도 판매할 것이다. 노동력도 상품이 되다 보니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서, 그리고 자신이 노동해 만든 생산물에서 소외된다. 그 때문에 노동은 무의미한 고역이 되고 노동자들은 기계(와 사무실)의 부속품이 된다. 자본에 의한 임금노동 고용은 착취 과정이고, 그 때문에 노동자들은 기력이 쇠하고 불평등은 더 심해진다.

자본들 간의 가차없고 통제되지 않는 경쟁 때문에 주기적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해, 기업들이 부도나고 생산이 감소하고 대량 실업과 빈곤이 잇따른다. 똑같은 경쟁 때문에 더 크고 강력한 기업들이 더 작고 약한 기업들을 인수하고 자본과 생산이 점점 더 소수의 거대 기업들 손에 집중된다. 이 기업들 간의 경쟁 ― 자원(석유!)·시장·노동력·투자처를 위한 ― 때문에 점점 더 잔인한 전쟁들과 끔찍한 환경 파괴가 일어나 사회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른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오해 두 가지는 자본주의를 1) 사적 소유와 동일시하거나 2) 자유 시장과 동일시한 것이었다. 두 경우 모두 체제의 중요하고 때로는 유력한 특징 하나를 체제의 본질 자체와 동일시한 것이 잘못이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독일 사민당이나 영국 노동당 같은)은 자본주의 국가가 국가 소유와 국가 계획을 확대하면 자본주의를 점차 폐지하거나 적어도 자본주의를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틀렸다. 그 결과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의 혼합이었을 뿐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국가 소유와 국가 계획이 거의 절대적인 나라들(옛 소련과 중국 등)이 사회주의 사회였다고 믿었다. 비록 그런 나라들에서는 노동자들이 생산도 국가도 통제하지 못했고 임금노동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 국가가 나머지 세계 자본주의와 경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스탈린주의자들도 틀렸다. 특권적인 국가 관료들이 사회를 통제하는 체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억압 체제였을 뿐이다.

오늘날 반(反)세계화 운동 안의 일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만이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가 적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히드라의 여러 머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 머리를 자르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른 머리들에 치명타를 가할 수 없다.

결국은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노동자들 스스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과정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그들은 전에 부르주아지가 했던 것처럼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요약했다. “자본주의의 사슬은 그 사슬이 벼려진 곳에서 끊어져야 한다!”

영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인 존 몰리뉴의 ‘실천가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을 격주로 연재한다.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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