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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위기와 반전 운동의 쟁점들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이 촉발한 반전·반제국주의 정서와 급진화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영국에서는 10만 명이 결집했다. 레바논에서는 헤즈볼라 지지율이 치솟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레바논 침공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파병반대국민행동과 평화단체들의 집회가 두 차례 열렸고, 기독교와 불교 인권단체, 여성단체 등도 기자회견을 열어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비롯한 국회의원 36인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레바논 전쟁 소식을 실은 〈맞불〉7호는 지난주 거리 가판에서 2분에 1부 꼴로 판매됐다. 이태원의 이슬람성원 앞 반전 홍보전에서는 40분 동안 1백40여 명이 서명했고 몇몇 무슬림은 즉석에서 홍보전에 동참하기도 했다.

지금 반전 운동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운동이 직면한 몇몇 쟁점들에 분명히 답해야 한다.

첫째, 유엔과 평화유지군 투입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부시와 콘돌리자 라이스가 다국적군 투입을 서두르는 것은 헤즈볼라의 완강하고 효과적인 저항에 직면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분쇄에 실패하지 않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헤즈볼라의 저항이 완강하고, 국제적 항의가 거센 상황에서 평화유지군은 이스라엘에게 정치·군사적으로 유용할 수 있다. 미국에게도 이란과 시리아를 압박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부시의 전쟁

최근 통과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필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헤즈볼라에게는 군사 행위 중단을 요구하면서도 이스라엘의 방어적 군사 공격은 인정하는 데서도 드러나듯이, 이번 결의안은 헤즈볼라를 완전히 무장해제하고 이란·시리아 등 다른 나라들의 지원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군이든 미군이든 유엔군이든 모든 종류의 군사 개입과 점령에 반대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한국 정부의 ‘평화유지군’ 파병도 경계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이미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레바논 정부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피랍된 이스라엘 병사들의 석방을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납치단체들이 이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7월 14일 외교통상부 성명)하며 이스라엘과 미국의 전쟁을 정당화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나오자 노무현 정부는 8월 14일 이를 환영하며 “안보리 결의의 정신에 따라 국제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 활동”은 바로 ‘평화유지군’ 파견을 뜻한다.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데다 최근 우익들로부터 한미동맹 강화 압력을 받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이 전쟁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강력한 반전·파병반대 운동을 건설해 전쟁광들의 동맹에 파열구를 내야 한다.

둘째, 미국이 워낙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전쟁과 미국의 관계를 알아채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해외원조 최대 수혜국이다. 미국은 전체 해외원조 예산의 5분의 1을 이스라엘에 쏟아붓고 있다. 이스라엘이 사들이는 무기 가운데 미국산 비율은 80퍼센트가 넘는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이며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위한 예비 단계로 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이라크 전쟁의 전초전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부시는 “현재의 위기는 중동에서 자유세력과 테러세력 간 광범한 투쟁의 일환이며 우리가 원하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확실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전쟁은 곧 부시의 전쟁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다면 부시의 패권 전략에도 타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헤즈볼라에 대한 태도도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다.

부시는 영국의 항공기 테러 공격 계획 적발 직후, “우리는 미국을 파괴하려는 이슬람 파시스트들과 전쟁중”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런 “이슬람 혐오”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슬람 혐오”는 세계 곳곳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정당화하고 국내 억압을 강화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공동전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종교가 때로는 지배 체제에 맞서 싸우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게다가 헤즈볼라는 매우 세속적이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는 투쟁을 통해 지지 기반을 확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키는 민족해방운동을 “무조건, 그러나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자들은 헤즈볼라가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을 반전 공동전선에 적용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반전 운동은 전쟁 반대라는 비교적 협소한 쟁점을 둘러싼 공동 행동을 위한 것이므로, 이 안에는 평화주의자들도 광범하게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헤즈볼라와 레바논 무장 저항의 지지를 운동 참가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다면 운동은 분열할 것이다(관련기사 ‘중동 위기의 핵심 쟁점’ 참조).

사실, 헤즈볼라의 무장 저항이 이스라엘 저지의 핵심 관건이라고 보는 것은 협소한 관점이다. 헤즈볼라의 무장 저항은 중요하지만, 헤즈볼라와 세계 4위인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비교가 안 된다.

헤즈볼라의 저항뿐 아니라,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에서의 저항과 서방에서 벌어지는 반전 운동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베트남인들의 저항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인 항의 운동과 미군 사병 항명사건들이 미국에게 패배를 안겨 줬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넷째, 우리 운동 안에는 레바논 전쟁을 평택 미군기지 반대 투쟁보다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꽤 있다.

중장기적으로 한반도를 전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평택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미국 자신의 온 힘을 쏟고 있는 전략적 집중점인 중동의 중요성을 세계 여러 나라들의 불안정들과 단순 병렬할 수는 없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개입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지금 중동에서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을 좌절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일부 좌파들이 ‘다함께’가 평택 투쟁에 (열의있게) 참가하지 않은 것처럼 왜곡하는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다함께’는 지난해 7월 12일부터 평택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중요한 행동에 빠지지 않고 참가해 왔다. 올해 5월 4일 대추분교가 경찰에 점령당했을 때도, 우리 회원 1명이 구속되고 3명이 불구속됐다. 무엇보다 ‘다함께’는 그 운동 안에서 평택 투쟁이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 반대 투쟁과 연결돼야 한다는 정치적 분석을 내놓고 둘을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 권력과 한국 정부 권력이 존재하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대중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고, 파병반대국민행동 안에서도 서울 시위에서 두 요구들을 결합할 것을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하반기 FTA 반대라는 중요한 투쟁도 있다. 우리는 오늘날 미국의 전쟁몰이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군사적 표현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껏 그래 왔듯이 FTA 반대 투쟁에 참가해 반전 운동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의 결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FTA 반대 투쟁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듯한 동지들처럼 둘을 대립시키기보다는 서로 협력적으로 운동을 건설하자고 참을성 있게 주장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