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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국주의의 모순

미국 제국주의의 모순

이정구

미국 지배자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승리를 미국의 권력에는 걸림돌이 없다는 증거로 삼고자 한다. 하지만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은 경제적·정치적 약점과 결합돼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조지 W 부시가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의 첫번째 국면일 뿐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 자신의 헤게모니를 천명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상대인 아프가니스탄을 골랐다. 인구, 국가의 부, 산업 발전, 군사력 등 모든 면에서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상대가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힘의 불균형이 극명하게 드러난 전형적인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아마 소말리아도 그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소말리아는 내전으로 이미 황폐해 있어 공격하기 적합한 대상이다.

미국은 제국주의 전쟁을 통해 자신의 힘을 전 세계에 확인시키고 싶어한다. 1989년 냉전이 해체되면서 미국은 이전의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예컨대 미국의 군사비는 서방 전체 군사비의 36퍼센트를 차지했다. 하지만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의 낙관주의는 몇 가지 약점을 갖고 있었다.

첫째, 1990년대 이후 서방 열강 내에서 미국이 차지했던 우위는 냉전 시기에 못 미친다. 유럽연합(EU)의 총산출량은 미국과 비슷해졌으며, 일본은 미국의 절반 수준으로 성장했다. 미국은 1990년대 내내 국제수지 적자를 면치 못했다.

둘째는 미국의 성장률 자체도 예전만 못했다. 1990년대에 미국의 제한적 호황은 경기가 하강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려 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거품이 터지면서 미국 경제의 취약한 측면이 그대로 드러났다. 엔론 사의 파산은 단적인 예다. 셋째, 미국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됐고 사회의 불안정이 증대했다. 1990년대에 미국의 빈부 격차는 더욱 커졌다.

분열과 갈등

넷째, 제국주의 강대국들 사이의 틈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동맹은 매우 불안정하고 취약했다. 탈레반 붕괴 이후 아프가니스탄 정치 세력들은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다. 전리품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여러 군벌들은 언제라도 내전에 돌입할 태세다. 중앙 아시아에서 패권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움직임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최근 가까워지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잠재적인 경쟁자로서 중앙 아시아에서 미국이 독주하는 것을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부시가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자 이에 대한 반발이 유럽의 동맹국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부시의 일방적 독주에 대한 동맹국들의 견제와 반발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악의 축을 물리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의] 동맹국들을 분열시킬 것이다.”미국은 1991년 제2차 걸프전에서 유엔의 외피를 쓰고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1999년 발칸 전쟁 때는 나토의 깃발 아래 군사 행동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때는 동맹국들의 지원과 결속력이 전보다 훨씬 더 약화됐다. 미국은 제3세계와 서방의 우방국들에게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각인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방국들로부터 더 많은 견제와 갈등,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다섯째, 서방 세계에서 미국과 우방국들 사이의 동맹은 매우 불안정하다. 제3세계에서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 또한 미국 패권주의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중동에서 급진 이슬람 운동은 제국주의, 특히 미국에 대한 반감과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 때문에 지난 반세기 동안 민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지원 때문에 미국에 대한 중동 민중의 반감은 더욱 증대했다. 제2차 걸프전 이후 중동 주둔 미군 기지와 미 대사관에 대한 테러가 빈번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중동 국가의 ― 특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을 후원했던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의 ― 지배자들은 민중의 반미 감정 때문에 초긴장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에도 제3세계에서는 불안정과 갈등,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리엘 샤론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전시 상태에 처해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전쟁 직전 상황이다. 미국이 콜롬비아에서 벌이는 “플랜 콜롬비아”는 콜롬비아를 다시 내전으로 몰아넣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체첸 분리주의자들을 상대로 한 ‘테러와의 전쟁’을 용인받았다. 중국도 중앙 아시아의 신장·위구르 자치주의자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 공격하고 있다.

조지 W 부시는 미국의 힘에 굴종하는 세계를 바란다. 그러나 상황은 결코 녹녹치 않다.

미국의 전쟁광들은 자신들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를 수 없다는 점을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쉽사리 공격 대상을 정하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조지 W 부시가 소말리아나 이라크를 다음 표적으로 고른다 할지라도 서방 우방국들과의 갈등과 제3세계에서 증대되고 있는 반미 분위기 때문에 사태가 그의 뜻대로 되지만은 않을 수 있다.

만약 대중적 저항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베트남 신드롬은 부활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 때와는 달리 즉각 대중적인 반전 운동이 일어난 것은 이 가능성을 보여 준다.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전 세계 민중의 힘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물러서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은 결코 무적의 국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