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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를 훔치려는 도둑들

우리의 미래를 훔치려는 도둑들

이인제 - 박정희를 닮고 싶어하는 자

정병호

민주당의 일곱 마리 용 가운에 기업에 친화적이고 노동자에 적대적이기로 제일 가는 후보가 바로 이인제다. 그는 사장들에게 잘 보이려고 걸핏하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혁명적 방법으로 규제를 없애겠다”고 장담한다. 그는 1997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과 키는 1㎜도 안 틀리[다]”며 박정희를 흠모했다. 그리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박정희가 보였던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벌 개혁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재벌 체제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재벌에 대한 대중의 거부를 애써 무시한다. 가증스럽게도 그는 아예 우리더러 “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라고 충고한다.

이인제의 일관된 구조조정 원칙은 다름 아닌 정리해고 밀어붙이기다. 그래서 그는 당선되면 그의 신념에 따라 가장 먼저 “공무원을 3분의 1 정도 감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인제의 신념은 “장사가 안 되면 내보내야 한다”는 말에 집약돼 있다. 그래서 노동자를 집요하게 공격했던 쌔처와 레이건을 흠모한다. (마가릿 쌔처는 1980년대 영국 총리였고, 로널드 레이건은 같은 시기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는 “노조 위원장도 모여서 뽑지 못하고 우편투표로만 가능케 했”던 쌔처의 극심한 노조 탄압을 찬양했다. 이인제는 “일자리 창출”이 당선 이후 최대의 국정 과제라고 말하지만 정작 주5일 근무제 도입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주5일 근무제로 인해 “공무원들이 토요일에 다 놀아 공공서비스가 멈추면” 나라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이인제는 반노동자적일 뿐 아니라 민주 개혁과도 거리가 먼 인물이다. 1997년 대선에서 개혁적 이미지의 필요성 때문에 “3김 청산”을 부르짖던 그가 최근 “3김 시대는 위대한 시대”라면서 노회한 정치인들에게 아양을 떨고 있다. 그는 심지어 박정희 군사 독재의 2인자였던 김종필에게 “경륜 높은 정치사 거목”이자 “국가 원로로서 존경한다”라고 구애했다. 이인제는 자신이 마치 개혁적인 양 “학생 운동 참여는 자랑스럽다”고 말하지만, 학생 운동을 하다 구속된 사람들을 “양심수라는 이름으로 풀어 주어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인제의 정치 인생은 거짓말로 얼룩져 있다. 대표적인 거짓말은 “경선 승복” 발언이다. 그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겠다고 14번이나 약속해 놓고는, 경선에서 패배하자 탈당하여 독자 출마했다. 그 자신이 당선되면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하게 수시로 말을 바꾸는 이런 자한테 과연 “건강한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까?

노무현 - 파산한 김대중 개혁의 변호사

김덕엽

노무현은 “비이성적인 정치 행태에 대해” “정치 생명을 걸고 저항해” 왔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러나 정작 반개혁적 정치 형태가 불거질 때 그는 저항하기는커녕 요리조리 숨거나 피해 가기 바빴다. 지난해 민주당이 자민련에게 의원을 꿔 준 사건을 두고 “언론하고 싸우기도 힘든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까지 거론하기 버겁”다고 회피했다. 노무현은 민주당 쇄신파가 인적 쇄신을 주장하자 “그 사람들도 고생해서 그 자리까지 온 사람들인데 좀 먹고살게 놔 두면 안 되나” 하며 인적 쇄신을 반대했다. 기자실에서는 쇄신파의 인적 쇄신 요구를 “찬성한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번복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는 권력형 비리들이 민주화 과정의 부산물인 양 말한다.

“뇌물 규모만 해도,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수천억 원이던 것이 김영삼 정권 때는 수십 억으로, 현 정권에서는 수천만 원 수준으로 줄었다. 이런 변화는 민주개혁 세력이 정권을 잡았기에 가능했다. 부패 구조는 다음 정권에서 더 빠른 속도로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술 더 떠, “연일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 사건이야말로 우리 사회 부패구조가 개선돼 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노무현은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쌔처 시대에 영국 공항이 마비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탄광 노조와 싸우느라 1년 이상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했어요. 사회 구조 개혁에 그만큼 시간이 걸렸습니다. 국민의 인내심과 지지가 그 바탕이 됐던 거예요. 우리 국민은 말이죠, 5·6공 때는 그 가혹한 정치마저 잘도 참아 내더니 요즘은 이거, 너무한 것 아녜요?”그는 김대중 정부가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국민들로부터 이렇게 몰매를 맞아야 할 만큼 잘못한 것도 없다”고 했다. “기대치는 잔뜩 높아서 전혀 현실성 없는 요구만 끊임없이 해 대는 사람들,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김대중 정부의 개혁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기회주의자는 포섭 대상이기는 해도 지도자로 모시지 않는 것”을 자신의 “철학”이라 말하지만, 노무현이 “모시고” 있는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김종필과도 손을 잡았다. 노무현은 김대중의 “정통성과 정치 노선을 올바르게 계승”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는 우리더러 5년을 더 참으라고 요구한다. 이런 노무현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는가?

정동영 - 이미지만 ‘개혁적’

강철구

MBC 뉴스 앵커 출신인 정동영은 1996년 총선 때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입문 후 4년 간 국민회의와 민주당의 대변인을 맡았다. 그는 집권 여당의 변명과 위선과 거짓말들을 거리낌없이 대변했다. 정동영은 지난해 민주당의 당풍 쇄신 운동에 참가해 개혁적 이미지를 획득했다. 그러나 정동영의 개혁적 이미지에는 실체가 없다. 〈한겨레〉는 7명의 민주당 대선주자 중 정동영이 가장 보수적 색채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정동영은 “정치란 국민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다수 국민들을 눈물 흘리게 만드는 시장 지상주의 정책을 신봉한다. 정동영은 국방비의 증액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복지예산은 늘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친시장 기조는 반노동자적 정책으로 이어진다. 정동영은 “노조가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구속될 수밖에 없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그는 분배보다는 성장을, 정의보다는 효율을 강조하는 철저한 시장주의자다.

김근태 - 민주주의자에서시장주의자로

이수현

김근태는 민주당 대선 주자 중에 노무현과 더불어 이른바 개혁 후보로 거론된다. 그는 한때 민주주의 운동에 몸을 담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가 추진하려는 개혁은 지금까지 우리가 신물나게 겪었던 김대중의 ‘개혁’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김 대통령이 실패하면 대한민국이 실패한다.”고 생각하는 김근태는 현 정부의 “각종 개혁과 평화정책의 방향과 원칙은 계승해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 “정책을 추진하는 방법”만 쇄신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 주도의 세계화”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철도는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노조는 “구조조정의 걸림돌”이라고 매도한다. 평균 30퍼센트 수준인 중진국 복지 예산에도 못 미치는 13퍼센트의 복지예산은 “현재 상황에서 불가피하”다는 게 김근태의 지론이다. 그는 부유층에 세금을 많이 물리는 것보다는 “탈루 소득을 파악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근태가 지난해 8월에 맡았던 민주당 소득격차완화 특별위원회는 별다른 성과 없이 ‘개점 휴업’ 상태다.

그는 최근 미국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는 한반도 내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존중하고 있다. 주한 미군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며, 중국과 일본이 갈등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조정자” 구실을 할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타고 안보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개혁은 민주개혁과 거리가 멀다. ‘언론개혁’ 문제에 불명확한 태도를 취한다며 이인제를 공격했던 김근태는 지난해 10월 탈세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조선일보사 사장 방상훈을 면회했다. 또, “동교동계 해체”를 강력히 주장했던 그는 지난해 민주당 전당대회 때 동교동계의 우두머리 권노갑한테서 돈을 받았다. 김근태는 김윤환, 박근혜, 정몽준과 회동하는 등 자신의 정치적 입지 확대에 골몰할 뿐이다. “YS가 민주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김영삼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김종필을 “서울대 학생운동의 선배”로 모시기도 했다. 1987년과 1992년 대선 당시 김대중에 대한 이른바 “비판적 지지론”(실제로는 무비판적 지지였다.)을 주창했던 김근태는 이제 김대중의 정책뿐 아니라 그의 집권 전략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한화갑 - 부패 스캔들의단골 주역

이원재

한화갑은 김대중 정권의 ‘넘버2’라 불리는 권노갑과 함께 “투갑스”라 불린다. 그의 부패 커넥션과 조폭성은 영화 ‘투캅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리틀 DJ” 한화갑의 김대중에 대한 충성심은 조폭들의 의리를 무색케 한다. 그는 다른 대선 주자들이 김대중 정권과 차별성을 그으려 하자 “은혜를 모른다”며 그들을 비난했다. 김대중이 총재직을 사퇴할 때도 한화갑은 오직 김대중 걱정뿐이었다. “오죽 시달렸으면 그런 결심을 하셨겠나. 한편으로는 의지하고 상의하던 어른이 우리와 틈이 생기는 게 아닌가 해서 외롭고 불안하다. 이런 게 고아의 심정이 아닌가 싶다.” 김대중이 대선자금 20억 원 수수 고백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 할 때도 국내에서 모금한 자금 중에 친일파 돈도 있었다”고 거들었다. 그는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정책에도 적극 지지를 보내고 있다. “IMF 이후 우리 경제의 체질이 강화됐고, 구조조정도 할 수 있었다. 공기업이 민영화되면 경영이 좋아져 오히려 단가를 내릴 수 있다.” 한화갑은 부패한 정치인이다. 청와대와 검찰, 경찰 할 것 없이 국가 기구 자체가 부패의 온상임이 드러났는데도, 그는 “우리가 저지른 게 아니라 과거 정권에서 벌어진 것들이다. 대통령 주변은 직접 연루된 사람 없어 비교적 깨끗하다”고 우겼다. 이 말은 완전한 위선이다. 각종 게이트 때마다 한화갑의 이름은 거의 빠진 적이 없다. 그는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호남의 조폭 여운환을 비호했다. 또,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로비사건에 연루됐다. 최근에는 레미콘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수많은 부당노동행위를 한 레미콘사업자연합회 회장 유재필 기소를 방해했다. 한화갑은 수많은 부패 연루설이 끊이지 않는 더러운 자다.